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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3
#연합
하나님의 신비 중 하나는 연합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성은 기본적으로 상호배타성을 띠므로 하나님의 연합의 속성과 원리를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20210923
#성육신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대한 묵상만으로는 우리의 신앙에 그다지 큰 유익을 주지 못한다.하나님의 세 위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어떻게 연계하셔서 사역하시는지를 상고해야만 한다.성육신 이전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배제해서는 안된다.창조부터 종말까지 예수그리스도의 인성이 항상 개입되어있기 때문이다.
#신명기 #Deuteronomy 32:9-14
9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2 여호와께서 홀로 그를 인도하셨고 그와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가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엉긴 젖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에서 난 숫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게 하셨도다
천지만물이 전부 창조주이신 여호와의 소유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백성을 특별히 분깃이라 칭하신 것은 그만큼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더할나위없이 아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을 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기 전, 더 거슬러 올라가 천지를 창조하시기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택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분깃이라 칭하신 것이다. 때문에 수많은 이방민족들이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자연만물을 자기들 멋대로 악용해도 그대로 두시고 그 자연만물들과 이방민족들 조차도 오로지 이스라엘만을 위해서 남겨두신 것이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다른 민족들보다 탁월하거나 무슨 선한 일을 행한 공로가 있어서 택함 받은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처지는 마치 이방족속 남녀간의 음욕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갓난아기와도 같았으며 그들의 성품은 어느 민족보다도 패역하고 완악하였다. 즉 여호와께서는 모든 민족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민족을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가장 최악이자 최약인 민족을 선택하신 것이었다. 여호와께서는 그런 이스라엘을 단지 당신의 소유로 삼으셨다는 것만으로 눈동자와 같이 애지중지 하셨고 모든 위험에서 지키셨으며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풍족하게 베풀어 주셨는데, 이는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죽어가던 이방족속 갓난아기를 급하게 거두어 살리고 고귀하게 길러서 왕비로 삼은 지극히 은혜로운 왕의 처사와도 같다.
오늘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선택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영원 전부터 분깃과 기업으로 삼으신 고귀한 사람들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보시기에 무언가 선한 일을 했다거나 그럴 것이라고 판단되어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이미 미리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덕분이었다. 이스라엘의 태생과 성품이 참으로 비천하고 비열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아무리 세상에서 난다긴다 하는 자들이라도 실상은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보잘것없고 패역했던 자들에 불과하였으나, 때와 장소를 따라 성령께서 각자 부르시고 죽은 심령을 새롭게 살리셔서 어느 누구보다도 고귀하게 당신의 하늘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백성 삼으신 그리스도인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우리의 신앙을 훼손시켜서 멸망시키려는 모든 사탄의 계교로부터 막아주시되 우리가 시험에 고꾸라지지 않도록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허락하신다. 또한 육으로는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필요한 만큼 부족하지 않게 내려주시고 영으로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을 보혜사로서 우리의 영에 거하게 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조잡한 언어로 기록된 완결판인 성경을 주셔서 누구든지 손쉽고 풍성하게 복음을 알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셨다.
#20220923
#신앙고백 #사도신경 #거짓교회
사탄이 광명한 천사를 가장하는 것처럼, 거룩한 공교회를 가장한 사탄의 거짓 교회도 있게 마련이다. 사탄의 거짓 교회는 요한계시록에서 용이 바다와 땅에서 세운 짐승을 타고 바다 짐승의 재력과 땅 짐승의 권력을 부여받으며, 광야에서 하나님께 양육받는 해를 옷입은 여인을 대적하는 큰 음녀 또는 큰 성 바벨론으로 비유된다. 이 음녀가 두 짐승에게서 지원받는 세속적인 부귀영화로 한껏 화려하게 꾸밈으로써 광야에서 볼품없이 지내는 여인을 멸시하고 사람들을 유혹하듯이, 거짓 교회는 재력과 권력을 과시하여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복음 사역에 충실하나 근근히 운영되는 작은 교회들을 얕잡아본다. 큰 음녀가 거상들과 더불어 음행을 저지르고 그들에게서 값진 물품들을 받는 것처럼, 거짓 교회는 세상의 부자들과 권력가들을 끌어들여 세속적인 이익추구를 위해 상부상조한다. 거짓 교회의 목적은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더 끌어모아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하고 짐승의 우상을 섬기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목을 잡아끌만한 재력과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복음을 대적하게 되면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경계하게 마련이므로 복음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교묘하게 위장하여 크게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는 동시에 심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건물과 시설과 설비를 가장 좋은 것으로 마련하고 대외 봉사와 지원과 후원을 적극적으로 함으로써 주변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거짓 교회는 자기들의 사역을 증진시킨다는 빌미로 세속적인 영리사업들을 벌이거나 영향력있는 권력가들을 섭외하거나 하는 식으로 자기들의 세력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간다. 결국 거짓 교회의 교인들은 어느새 거짓 교회가 주는 편안함에 익숙해져서 거짓 교회가 이끄는대로 분별없이 따라가게 된다. 사람의 몸에서 어떤 세포가 자기의 역할을 하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끊임없이 증식하게 되면 종양이 되고 암덩어리가 되어버리듯이, 거짓 교회 또한 사람과 돈과 권력을 끊임없이 끌어모으므로 세상의 소금과 빛이 아닌 암덩어리 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우리를 참으로 난감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거짓 교회 대부분이 처음부터 악의를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분명 누가 보기에도 선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월이 지나면서 시나브로 거짓 교회로 변질되어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참된 신자인 줄 알았어도 나중에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저버리고 배교하는 자들이 있듯이, 처음에는 참된 복음 사역을 하는 주님의 교회인 줄 알았어도 나중에는 짐승을 탄 큰 음녀로 정체가 드러나는 거짓 교회들이 있는 것이다. 주님의 편지를 받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 중 다섯 교회들은 만약에 주님의 책망과 경고를 듣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거짓 교회로 변질 될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이 땅의 교회들에도 해당되는 원리이기 때문에 어느 교회든지 스스로 주님의 교회라고 자부하기 전에 자신들의 교회가 과연 성경과 성령의 원리를 따라 주님의 복음 사역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지를 수시로 점검하며 고쳐나가야 한다.
#20200923
#레위기 #Leviticus 21:10-12
10 자기의 형제 중 관유로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그 예복을 입은 대제사장은 그의 머리를 풀지 말며 그의 옷을 찢지 말며
11 어떤 시체에든지 가까이 하지 말지니 그의 부모로 말미암아서도 더러워지게 하지 말며
12 그 성소에서 나오지 말며 그의 하나님의 성소를 속되게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께서 성별하신 관유가 그 위에 있음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여호와께서 아론을 백성의 첫 대제사장으로 삼으신 이유는 아론에게서 무언가 신령하고 거룩한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도리어 아론은 모세가 여호와를 뵈러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에 백성들의 성화에 못이겨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게 한 전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아론을 택하셔서 대제사장으로 세우시고 그의 반차를 따라 그의 자손들이 대제사장을 물려 받아 섬기도록 하신 것이다. 그래서 아론을 비롯한 대제사장들은 여호와 앞에서는 자기의 그 어떤 것도 내세울 수 없었으며 여호와께서 명하신 대제사장으로서의 지켜야 할 규례들이 아무리 엄격하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준수해야 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심지어 부모의 장례조차도 치를 수 없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매우 무자비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백성 전체를 여호와 앞에서 대표해야 하는 공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사적인 일에 연연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론은 자기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제사장으로 위임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들 자신의 미숙함 때문이었건 교만함 때문이었건간에, 성소에서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드렸다가 죽임을 당했어도 슬픔을 내비칠 수 없었던 것이다. 대제사장은 항상 성소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성소 밖 상황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 이유도 없었고 지나치게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대제사장은 그저 지극히 거룩하신 여호와 앞에서 자기 자신을 비롯한 백성들의 속죄와 화목을 위한 제사를 잘 드리는 것에만 신경을 쓰면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그만큼 그는 제사 규례에 흠이 없도록 철두철미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아하시야 왕이 예후에게 살해된 후에 황후 아달랴에 의해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가운데서 아내 여호세바를 통해 요아스를 살려내어 7년 동안 성전 안에서 양육한 후에 왕위에 앉히고 아달랴를 처단하는 공을 세웠다. 아론의 16대손인 에스라는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향했을 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여호와의 규례를 완벽히 익혀서 학사로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데 힘썼다. 성전을 재건할 당시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 앞에서 사탄의 참소를 받아 불에 그슬린 나무와 같이 아무런 쓸모도 볼품도 없었지만 오로지 여호와의 은혜로 말미암아 정결하게 되어 대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았다.
대제사장이 아무리 백성을 대표하고 누구보다 엄격한 규례를 지킨다고 해서 백성들 위에 군림해도 된다거나 사회적인 상위 계급이라 여겨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대제사장은 아무런 공로 없이 오직 은혜로 세움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도리어 백성들을 다스리는 자가 아니라 백성들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했다. 그들에게서 대제사장이라는 직분을 제외하먼 그들은 백성들 중에서 가장 연약하고 볼품없는 자들에 불과했다. 따라서 대제사장들은 여호와 앞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사람들 앞에서도 겸손해야 했다. 첫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조차도 이를 잠시 망각해서 스스로 고귀한 줄 착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론은 모세가 아내 십보라를 사별한 후에 구스(에티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을 때 누이인 미리암과 더불어 자기들도 여호와께로부터 존귀함을 얻었다는 이유를 들어 혈육으로는 동생인 모세를 인간적으로 책망하였다가 도리어 여호와의 호된 질책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만약에 그가 대제사장이 아니었다면 누이 미리암처럼 여호와께로부터 나병을 얻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다윗과 솔로몬 이후 왕국의 대제사장들은 자기들의 직분을 마치 신분 계급처럼 여겨서 백성들 위에 군림하려 한데다가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 규례들을 번거롭고 귀찮은 것으로 여겨 멸시하였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그런 백성들의 제물에 신물이 난다고까지 한탄하신 것이었다.
대제사장은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세우신만큼 백성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마땅히 대제사장의 권위를 존중하고 순종해야 했다. 대제사장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은 바로 그를 세우신 여호와의 권세를 무시하는 것과도 같다. 그래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은 광야에서 모세와 더불어 아론도 함께 대적했다가 여호와께로부터 땅이 갈라져 삼키움을 당하는 형벌을 받았고 그들을 따라 반역을 꾀한 250명의 우두머리들은 들고 있던 향로에서 나온 불에 타죽고 말았다. 사울은 사무엘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기가 번제를 드렸다가 여호와께 버림을 받았으며, 자기가 대적으로 여기는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대제사장 아히멜렉을 비롯한 제사장 85명을 살해하였고 이 죄로 말미암아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참패하여 비참하게 전사하고 그 시체가 목이 잘린 채 블레셋 성벽에 달리는 수치를 당했다. 요아스는 죽을뻔한 자기를 살리고 왕위에까지 올려주고 무려 40년이나 보필한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은혜를 잊고 그의 아들 사가랴가 선지자로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책망했다고 해서 성전 뜰에서 그를 죽였다가 정작 자기는 옆 나라와의 전투에서도 패배하고 반역한 부하들에게 암살 당한데다가 백성들에게 배척을 받아 왕들의 묘실에 안치되지도 못하는 수치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들은 언제까지나 그 직분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레위인 대제사장의 직분은 완전할 수가 없었다. 도리어 구약시대에 여호와께서 인정하셨던 유일한 대제사장은 아브라함을 축복한 살렘 왕 멜기세덱 뿐이었다. 멜기세덱의 제사가 여호와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했던 이유는 그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영원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되시고 영원하신 대제사장으로서 구약 시대에 살렘 왕으로 오셔서 먼 훗날 본격적으로 이 땅에서 행하실 대제사장의 직무를 위해 그 기틀을 살렘 땅에서 마련하신 것이었다. 따라서 구약 시대에 아론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들이 드렸던 제사는 그것 자체만으로 효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 멜기세덱으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제사의 기틀을 통함으로써 여호와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에는 물론 대제사장이라는 직분 자체는 폐지된지 오래지만,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세우신 목사와 장로들은 교회를 책임진다는 면에서 대제사장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교회의 목사와 장로는 여느 교인들보다도 더 신앙의 의무와 책임이 막중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는 성경을 아는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복음에 기반한 행실에 있어서도 다른 누구보다도 더 높은 수준을 갖춰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교회 안팎으로 존경을 받는 목사와 장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목사들 중에는 간음과 횡령을 일삼아 세간의 비웃음을 당하는 자들이 많은데다, 전광훈처럼 신성모독 하는 자를 옹호해주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장로들은 대체로 낮은 마음으로 섬기기보다는 강압적으로 권위를 내세울줄만 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직분의 권위를 정당하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불의함을 가리기 위해 부당하게 내세우곤 하는데, 이는 마치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 다른 불을 드리는 것과도 같은 죄임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