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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시 영국편
스펜서
그의 사랑에게
어느 날 나는 그녀의 이름을 백사장에 썼으나
파도가 몰려와 씻어 버리고 말았네.
나는 또다시 그 이름을 모래 위에 썼으나
다시금 내 수고를 삼켜 버리고 말았다네.
그녀는 말하기를 우쭐대는 분, 헛된 짓을 말아요.
언젠가 죽을 운명인데 불멸의 것으로 하지 말아요.
나 자신도 언젠가는 파멸되어 이 모래처럼 되고
내 이름 또한 그처럼 씻겨 지워지겠지요.
나는 대답하기를, 그렇지 않소. 천한 것은 죽어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당신은 명성에 의해 계속 살게 되오리다.
내 노래는 비할 바 없는 당신의 미덕을 길이 전하고
당신의 빛나는 이름을 하늘에 새길 것이오.
아아, 설령 죽음이 온 세계를 다스려도
우리 사랑은 남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오리다.
*엘리자베스 조의 대표적 시인인 에드먼드 스펜서(Edmund
Spenser;1552__99)가 뒷날 아내로 맞은 엘리자베스 보일(Elizabeth Boyle)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소네트 연작 '아모레티' (Amoretti 전, 89편)중에 수록된
것이다.
그의 시집으로는 '양치기의 달력', '요정의 여왕' 등이 있다.
셰익스피어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죽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로다.
잔인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 속으로 참는 것이 더 고상한가.
아니면 고난의 물결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워
이를 물리쳐야 하는가, 죽는 것은 잠자는 것--
오직 그뿐, 만일 잠자는 것으로 육체가 상속받은
마음의 고통과 육체의 피치 못할 괴로움을 끝낼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심으로 바라는 바 극치로다. 죽음은 잠드는 것!
잠들면 꿈을 꾸겠지? 아, 그게 곤란해.
죽음이란 잠으로 해서 육체의 굴레를 벗어난다면
어떤 꿈들이 찾아올 것인지 그게 문제지.
이것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들고, 또한 그것 때문에
이 무참한 인생을 끝까지 살아 가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가 이 세상의 채찍과 비웃음과
권력자의 횡포와 세도가의 멸시와
변함 없는 사랑의 쓰라림과 끝없는 소송 상태,
관리들의 오만함과 참을성 있는 유력자가
천한 자로부터 받는 모욕을 한 자루의 단검으로
모두 해방시킬 수 있다면 그 누가 참겠는가.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지루한 인생고에 신음하며 진땀 빼려 하겠는가.
사후의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면
나그네 한번 가서 돌아온 일 없는
미지의 나라가 의지를 흐르게 하고
그 미지의 나라로 날아가기보다는
오히려 겪어야 할 저 환란을 참게 하지 않는다면--.
하여 미혹은 늘 우리를 겁장이로 만들고
그래서 선명스러운 우리 본래의 결단은
사색의 창백한 우울증으로 해서 병들어 버리고
하늘이라도 찌를 듯 웅대했던 대망도
잡념에 사로잡혀 가던 길이 어긋나고
행동이란 이름을 잃고 말게 되는 것이다.
('햄릿'에서)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__1616)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햄릿'에서 너무도 유명한 햄릿의 독백.
괴테, 슐레겔, 코울리지, 투르게네프 등 많은 사람들이 햄릿의 성격에 대해서 평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투르게네프의 '햄릿과
돈키호테'에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많은 점에서 자기 자신과 유사한 햄릿이라는 인물을 창조함에 있어서, 그를 자기 자신과 완전히 분리시켜 천부적인 창조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한 결과 그 불명확성으로 인해 영원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는 햄릿이라는 형상을 창조해 냈던 것이다. 이 형상을 창조해 낸 영혼은
북부인의 영혼이며, 고통스럽고 음울하며, 조화와 맑은 색채를 상실한 영혼이며 우아하고 때로는 섬세하기 조차한 외형을 한 결코 원만하지 않을
영혼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영혼은 깊고, 강렬하고 다양하며, 독립적이고도 지도자적인 영혼인 것이다...'.
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어느 사람이든지 그 자체로써 온전한 섬은 아닐지니,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양의 한 부분이어라. 만일에 흙덩어리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게 될지면, 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지며, 만일에 모랫벌이 그렇게
되더라도 마찬가지며,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렇게 되어도
마찬가지어라.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 나란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라.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기에.
('기도문'중에서)
*던(John Donne:1572__1631).
영국 최대의 형이상학과 시인으로 국교회의 성직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성폴교회의 부감독으로 있었다. 그의 성격은 무척 복잡 특이하였으며 생애는 영육과의 고투이었다. 단의 시는 기발한 상념이 넘쳐 종종 극도로 난해한 것이었으나 막힘없는 직감력과 불 같은 감정, 간결하고 강인한 표현은 현대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가요 시집' '유령' '기념일의 시' 등 많은 작품이 있다.
이 시는 마지막 대목에 있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n thebell tolls)'라는 구절이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으로 인용되면서 한층
유명해졌다. 깊은 신앙으로 점철된 명시이다.
밀턴
실락원
인류 최초의 불순종, 그리고 금단의 나무열매여,
그 너무나 기막힌 맛으로 해서
죽음과 더불어 온갖 슬픔이 이 땅에 오게 하였나니
에덴을 잃자 이윽고 더욱 거룩한 한 어른 있어
우리를 들이켜 주시고 또한 복된 자리를
다시금 찾게끔 하여 주셨나니
하늘에 있는 뮤즈여 노래하라.
그대 호렙산이나 시내산 은밀한 정상에서
저 목자의 영혼을 일깨우시어
선민에게 처음으로 태초에 천지가
혼돈으로부터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나이까.
아니, 또한 시온 언덕이 그리고 또한
성전 아주 가까이 흘러 내리고 있는
실로암 시냇물이 당신 마음에 드셨다면
이 몸 또한 당신에게 간청하오니
내 모험의 노래를 북돋아 주소서,
이오니아 산을 넘어서 높이 더 높이
날고자 하는 이 노래이니
이는 일찍이 노래에서나 또 글에서나 아직
누구나 감히 뜻하여 본 일조차 없는 바를 모색함이라.
그리고 누구보다도 그대 아 성령이여,
어느 궁전보다 앞서
깨끗하고 곧은 마음씨를 좋아하셨으매, 당신이여
지시하시라, 당신은 알고 계시지 않으시나이까.
처음부터 당신은 임석하시어 거창한 날개를 펴고
비둘기와 같이 넓은 심연을 덮고 앉으사
이를 품어 태어나게 하셨나이다. 내게 날개편 어두움을
밝히소서, 낮은 것을 높이고 또 받들어 주소서,
이는 내 시의 대주제의 높이에까지
영원한 섭리를 밝히고자 함이요, 또한
뭇사람에게 하느님의 도리를 옳게 전하고자 함이라.
'서시'에서
*단테의 '신곡'과 더불어 불후의 종교 서사시로 일컬어지는 밀턴(John Milton:1608__74)의 '실락원(Paradise Lost)'은 전 12권의 대장편이다. 눈이 먼 뒤에 딸에게 구술하여 완성된 대작으로 20년에 걸쳐 구성하였으며 구약성서의 창세기에서 취재하였다.
이야기는 사탄 및 인간의 반역과 몰락이며 하느님과 그리스도, 아담과 이브,천사와 타락한 천사, 특히 사탄의 비극적이며 영웅적 성격을 공상의 세계에 자유 자재로 구사하여 악에 대한 하느님의 형벌, 하느님이 창조하여 낙원에 살게 한 아담과 이브를 타락시키려하는 사탄의 복수 인류의 시조와 그 인과. 속죄의 희망 등을 지옥과 천국과 지상의 대무대에 전개시킨다.
작자 자신이 말하듯 '영원한 섭리를 말하고 신의 인간에 대한 도리가 옳은 것임을 밝히려는 것'에 그 모랄이 있으며 이것이 작품 전체에 시종 명확히
의식되어 있다 하겠다.
블레이크
호랑이
호랑이여, 호랑이여, 밤의 숲에서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존재여,
그 어떤 불멸의 손과 눈이
네 그 두려운 존재를 만들었는가?
그 어느 멀고먼 바다나 또는 하늘에서 네 눈의 불꽃은 타오르고 있었는가?
어떤 날개로 하늘을 날아서
어떤 손으로 그 불꽃을 붙들었는가?
그 어떤 힘과 그 어떤 기술로써
네 심장의 힘줄을 비틀 수 있었는가?
네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을 때
어떤 두려운 손이? 두려운 발이?
어떤 망치가? 어떤 쇠사슬이?
그 어떤 용광로에서 네 두뇌는 만들어졌는가?
어떤 철판으로 단련되어 가공할 만한 손아귀가
그 견딜 수 없는 공포를 움켜 쥐었던가?
별들이 그 창을 내던지고
눈물로 하늘을 적셨을 때
신은 자신이 창조한 것을 보고 미소 지었던가?
어린 양을 창조한 신이 너를 만드셨는가?
호랑이여, 호랑이여, 밤의 숲에서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는 것이여
그 어떤 불멸의 손과 눈이
네 그 두려운 균형을 만들었는가?
*블레이크(William Blake:1757__1828)는 번즈와 더불어 스코틀랜드의 대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학교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으나 일찍부터 시를 써서 1783년에 최초의 시집 '시적 스케치(Poetical Sketches)'를 출판하였고,
6년 뒤에 '순진한 노래'를 간행, 1794년에는 '경험의 노래(Song of Experience)'를 출판하였다. 두 권의 시집은 블레이크의 독특한 그림을 곁들여 인쇄하여 한 권으로 합친 형태로 된 것도 있다.
신비주의자인 그의 시는 난해한 점이 많지만, 장엄한 스타일과 순수한 정열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 '호랑이(The Tiger)'는 불타듯 번쩍이는 호랑이의 눈빛과 위압하듯 당당한 그 자태 그리고 아름답게 균형 잡힌 그 늠름한 모습을 노래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번즈
붉고 붉은 장미여
오오 내 사랑은 붉고 붉은 장미니
유월에 막 피어난 신선한 장미여라.
오오 내 사랑은 아름다운 곡조로
감미롭게 연주되는 노래이어라.
귀여운 사람아, 네가 귀엽기에
나는 무척이나 너를 좋아하노라.
바닷물이 모두 말라 비려도
나는 너를 사랑하리, 그리운 이여.
진정 바닷물이 모조리 말라 버리고
바윗돌이 햇빛에 녹아 버린다 해도
내 생명이 붙어 있는 한에는
진정 나는 너를 사랑하리라.
마음은 쓰라려도 이제 헤어져야 하나니
그러나 잠시 동안의 헤어짐이니.
나는 반드시 돌아오리라
비록 천 리 만 리나 된다 하여도
*번즈(Robert Burns:1759__96)는 질박한 전원 서정시를 많이 썼다. 그는 '스코틀랜드방언 시집'(1786)을 출판하여 하루 아침에 일류 시인이 되어 에딘버러에 나가 일류문인들과 사귀게 되는데, 그 당시의 모습을 15세의 소년이었던 윌터 스코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시골뜨기 냄새가 났으나 경우에 어긋나는 면은 없었다. 눈이 아주 크고 검게 빛났는데 이야기할 때는 번쩍번쩍 빛나곤 했다.'
한평생 사랑한 스코틀랜드 서민생활의 감정을 번즈만큼 실감있게 표현한 시인은 없겠다.
워즈워드
뻐꾸기에게
오오 쾌활한 새 손님이여! 옛날 일찍이 들은 바 있는
그 소리 이제 듣고 나는 기뻐한다.
오오 뻐꾸기여! 너를 새라고 부를 것인가
아니면 방황하는 소리라고 부를 것인가.
풀밭 위에 누워 듣고 있노라면
너의 두 갈래 목소리가 들려 온다.
그것은 멀리서 또 가까이서 동시에 울려
언덕에서 언덕으로 건너가는 듯하다.
너는 골짜기를 향하여 햇빛과 꽃 이야기를
다만 재잘거리면서 말하고 있을 뿐이지만
내게 가져다 주는 것은
꿈 많던 소년 시절의 이야기로다.
잘 와 주셨다 봄철의 귀염둥이여!
지금도 역시 너는 내게 있어서
새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하나의 목소리요 하나의 신비로다.
내가 학교 다니던 때 귀를 기울였던
그것과 같은 소리. 그 소리를 찾아서
나는 사방 팔방을 둘러 보았었지.
숲과 나무와 그리고 하늘을.
너를 찾느라고 여러 차례에 걸쳐
나는 숲과 풀밭을 헤매었었다.
너는 언제나 희망이었고 사랑이었다.
언제나 그리움이었으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네 소리를 들을 수 있구나.
들판에 누워 귀를 기울이면
어느 덧 꿈 많고 행복스러웠던 소년 시절이
나에게 다시금 되돌아온다.
오오 행복스러운 새여!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이 대지가
다시금 멋진 꿈나라가 되고
네가 살기에 적합한 곳이 되는 듯하구나.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1770__1850)는 영국 낭만주의의 중심적 시인이며, 그의 시집 Lyrical Ballads(초판1708, 개정판 1800)의 서문은
고전주의에 대한 낭만주의 선언으로 유명하다. 쉬운 언어로 감동을 전하려고한 그에게는 자연을 솔직하게 노래한 작품이 많다. 무지개나 수선화나
뻐꾸기를 노래하고 순진한 어린이와 노래하는 아가씨 및 풍경 등 얼핏 생각하기에 감동의 대상이 되지 않을 듯한 것에 대해서 '놀라움'을 느끼고
감동하는 것이다.
흔히 워즈워드의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환상으로 바뀐 것으로 극히 인공적인 자연이라고 볼 수 있겠다.
초원의 빛
여기 적힌 먹빛이 희미해짐을 따라
그대 사랑하는 마음 희미해진다면
여기 적힌 먹빛이 마름해 버리는 날
나 그대를 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것이 돌아오지 않음을 서러워 말아라.
그 속에 간직된 오묘한 힘을 찾을지라.
초원의 빛이여! 그 빛이 빛날 때
그 때 영광 찬란한 빛을 얻으소서.
*나탈리 우드 주연의 '초원의 빛'이란 영화로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시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겠다.
코울리지
쿠빌라이 칸
재너두에 쿠빌라이 칸은
웅장한 환락의 궁전을 지으라고 명령하였다.
거기에는 거룩한 강 알프가
사람이 헤아릴 길 없는 깊은 동굴을 통하여
태양이 비치지 않는 바다고 흘러 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5마일의 두 배에 이르는 기름진 땅에는
성벽과 탑이 허리띠처럼 둘러싸여 있었고
굽이 쳐 흐르는 시냇물에 비쳐 반짝이는 정원도 있었으며,
향긋한 과일을 열매 맺는 나무들이 꽃피어 있었다.
숲은 언덕만큼이나 오래 묵었고
양지바른 녹지가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오호! 삼나무 숲을 가로질러 초록 언덕을
비스듬히 기울어진 크나큰 신비를 지닌 대지의 균열이여!
황량한 곳이로다! 창백한 달빛 아래 요괴인 애인을 그리워하여 우는 여인이
출몰한 장소와도 같이
신성하면서 마력을 지닌 장소다!
마치 대지가 가쁜 숨을 쉬며 헐떡이듯이
이 틈새로부터 계속 소란스럽게 용솟음치면서
거대한 분수가 시시각각 뿜어 나오고 있었다.
그 빠르게 끊어졌다 이어지는 분출의 한 가운데
사방으로 흩어지는 우박과 같이, 또는 도리깨를
맞고 흩어지는 곡식단의 낱알처럼
춤추듯 튀고 있는 바위 속에서 단번에 그리고 끊임없이
거룩한 강으로 물을 계속 흘러 내고 있었다.
마치 미로와 같이 구불구불한 5마일을
이 거룩한 강은 숲과 골짜기를 흘러서
사람이 헤아릴 길 없는 동굴에 이르러
생명 없는 대양으로 소란하게 가라앉았다.
그 떠들썩한 소리 속에서 쿠빌라이 칸은
전쟁을 예언하는 조상의 목소리를 들었다.
환락의 궁전 건물의 그림자는
물결 한가운데 떠서 흘렀고,
거기 솟아나는 샘물과 동굴로부터
뒤섞인 가락이 들려 오고 있었다.
그것은 진귀스러운 취향의 기적이었다.
얼음의 동굴이 있는 햇빛 쨍쨍 비치는 환락의 궁전!
거문고를 든 아가씨를 나는 일찍이 환상에서 보았다.
그것은 이비시니아의 소녀였었다.
그 소녀는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아보라 산에 관하여 노래하고 있었다.
내 마음 속에 그 소녀의
음악과 노래를 되살아나게 할 수 있다면
나는 그 너무 크나큰 환희에 이끌려
드높고 기나긴 음악 소리를 듣고서
공중에 저 궁전을 건설할 것이리니
바로 그 햇빛 쨍쨍 비치는 궁전! 그 얼음 동굴!
음악 소리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그것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크게 외치리라, 주의하라! 주의하라!
그의 불타듯 번쩍이는 눈, 그의 나부끼는 머리카락
그의 주위를 세 차례 들고서
성스러운 두려움을 느끼며 눈을 감아라!
그는 꿀이슬을 먹었고
낙원의 밀크를 마시고 자라났느니라.
*코울리지(Samuel Taylor Coleridge:1772__1834)는 1798년 워즈워드와
더불어 공동 시집 '서정시집'을 출판하여 영국 낭만파의 기수로 떠올랐다.
당시로서는 과감하다 할 정도로 구어체 시어를 사용하였고 또한 시적 표현의 영역을 확대한 작품으로 현대 시인에게도 크나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시 '쿠빌라이 칸'은 코울리지의 꿈의 소산이다.
1797년 여름 어느날 코울리지는 엑스무어 변방에 있는 한 농장에 나가 있었다고 한다. 몸이 좋지 않아서 수면제를 먹은 뒤 사무엘 퍼차스 목사가 쓴
여행기를 읽게 되었는데 쿠빌라이 칸이 지었다는 어느 궁전 이야기에서 그만 잠에 떨어졌다.
쿠빌라이 칸이라면 마르코 폴로 덕분에 유럽에까지 유명해진 황제다.
코울리지의 꿈에 우연히 읽은 그 귀절들이 되살아나더니 복잡하게 뒤얽히기 시작하였다. 잠자던 시인이 일련의 시각적인 이미지들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모두 말로 형상화된 이미지였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자고 난 시인은 자신이 틀림없이 3백여 귀절의 시를 썼거나 누구에게서 들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 귀절들을 이상할만큼 기억할 수 있었고 또 몇 귀절은 실제작품 속에 그대로 옮겨 놓을.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때 뜻밖의 방문객이 있어서 잠깐 붓을 놓았는데 그 나머지 부분은 전혀 기억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때 적잖이 당황하고 억울했던 것은 대략적인 이미지는 희미하게 남아있으나 여덟 아홉 줄의 산만한 귀절 밖에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마치 강물 표면에 돌을 던진 것처럼 이미지들이 깡그리 사라졌다. 정말 애석한 것은 그 마지막 귀절들을 최종적으로 마무리지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코울리지의 술회다.
하여튼 이 작품을 두고 스윈번은 그렇게 기억해서 써낸 부분이 '영어운율의 최상의 표현'이라 했으며, 키츠는 '메타포를 써서 그 부분을 분석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무지개를 따올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까지 말했다.
무어
늦게 핀 여름의 장미
오직 한 송이 피어남아 있는
늦게 핀 여름의 장미여,
아름다운 벗들은 모두 다
빛 바래어 떨어지고 이제는 없다.
붉고 수줍은 빛깔을 비추면서
서로 한숨을 나누고 있다.
벗이 되어 주는 꽃도 없고
옆에 봉오리진 장미조차 없다.
쓸쓸하게 줄기 위해서
시들고 말아서야 될 노릇이랴.
아름다운 벗들 모두 잠들었으매
가서 너도 그들과 함께 자거라.
그러기 위해 너의 잎을 잠자리에
나는 정성껏 뿌려 주리라.
너의 벗들이 향내조차 없이
누워 있는 그 근방에다.
네 뒤를 따라 나 또한 곧 가리니
벗들과의 사귐도 바래지고
빛나는 사랑의 귀한 굴레로부터
구슬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져 사라질 때
진실된 사람들 숨져 눕고
사랑하는 사람들 덧없이 사라질 때,
침울한 세상에 오직 혼자서
아아! 누가 길이 살 수 있으랴?
*무어(Thomas Moore:1779__1852)는 아일랜드의 국민 시인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시인 바이런과의 친교는 '바이런 전기'로 발표되어 남아
있다.
그의 시집'Irish Melodies'는 아일랜드의 민요를 널리 모은 위대한 작업이다.
이 작품은 친구들에게서 떨어져 쓸쓸하게 홀로 남아 피어 있는 아름다운 장미를 노래하면서 인생의 무상감을 노래한 것이다. 친구나 연인 등 육신의
사랑에 에워싸여 즐겁게 지내는 것도 잠시 동안의 일로서, 인생의 황혼에 대결하지 않으면 안 될 이별의 슬픔을 감상적으로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아름다운 멜러디와 더불어 널리 애창되고 있는 유명한 가요이다.
바이런
그러면 내가 맥없이 있을 때
그러면 내가 맥없이 있을 때 그대는 울겠다는 것이냐?
사랑하는 사람이여 그 말을 다시 한번 들려 다오.
그러나 말하기가 슬프면 말하지 말아라.
나는 결코 네 마음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은 슬프고 희망은 사라졌다.
가슴에 흐르는 피는 싸느랗게 바뀌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버린다면 너만이
내가 잠든 곳에 서서 한숨을 쉬어 주리라.
그러나 나는 괴로움의 구름 사이를 누비며
한 줄기 평안의 빛이 빛나듯이 느껴진다.
그러면 슬픔은 잠시 사라지게 되나니
그대 마음이 날 위해 탄식해 줌을 알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여, 네 눈물에 축복이 있으라.
울 수조차 없는 사람을 위해 그것은 부어진다.
좀처럼 눈물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런 눈물 방울이 가슴에 한껏 스미게 된다.
사랑하는 이여, 내 마음도 지난 날에 따뜻했고
느낌 또한 네 마음처럼 부드러웠었다.
하지만 아름다움조차도 나를 진정케 못하고
한숨짓기 위해서만 창조된 가련한 사나이다.
그런데도 내가 맥없이 있을 때 너는 눈물을 흘려주겠다는 것이냐?
사랑하는 이여 그 말을 다시 한번 들려다오.
하지만 말하기가 슬프면 말하지 말아라
나는 결코 네 마음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
*셸리, 키츠와 더불어 영국의 3대 낭만파 시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바이런(George Gordon Byron:1788__1824)은 격렬한 성격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나면서부터 절름발이었으나 우아한 얼굴 모습과 뛰어난 시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열렬한 사랑을 하였다.
남부 유럽과 근동을 여행하여 장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를 써서 혁신적인 정견을 발표하기도 했고, 질투와 일신상의 문제도 생기게 되자 런던 사교계는 바이런에 대해 차갑게 대했다.
결국 그는 1816년에 영국을 떠나게 되었고 그 뒤로 두 번 다시 고국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를 전전하면서 창작활동을
계속하여 많은 걸작을 발표하였다.
서른 여섯 살이 되는 날에
청춘을 뉘우치면서 왜 생명을 오래 지니려는가?
여기는 영예로운 죽음을 이룰 수 있는 나라 이러니.
자, 어서 전선으로 달려가
생애를 끝맺음하도록 하라.
병사의 무덤을 구할지니
그것이 내게는 최상의 것이다.
구하지 않고 쓰러지는 사람도 많다.
둘러보고 적당한 땅을 찾아 휴식하도록 하라.
*바이런은 1823년에 그리스 독립 의용군에 참가하고, 다음 해에 열병 때문에 미솔롱기에서 다감한 생애를 바쳤다. 의용군은 바이런의 나이와 같은 36발의 예포로 이 시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바이런의 죽음으로 문학사상 낭만주의 시대는 끝나는데, 그는 이 시를 쓴지 5개월 뒤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