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삼층탑을 해석 도식으로 제안한다. 이는 개인의 주관이 아니라, 학술용어를 쉽게 푸는 것으로 객관화 된 것임을 밝힌다. 신문에서 가장 흔하게 튀어나오는 요즘의 좌파적 감수성 강한 젊은 기자들이 아무 각주 없이 쓰면서, 조갑제 기자는 아무리 연구해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패러다임'일 것이다.
비유이다. 정치사는 텔레비전 연예 프로에서 김선아 '삼순이'가 지나간 자리에 김정은이 '루루공주'로 남는 것이다. 그만큼, 휙휙 바뀌면서 권력 무상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방송사와 정치권의 조율 속에서 편집진행방향이 결정되는 중기적 기획이 있을 수 있다. 가령, 남자 성기를 내놓고 행동하는 가수가 설칠 수 없으면서도, 우리 나라 음반산업을 살리는 방식으로 하도록 하는 선택이 가능하다. 그리고, 방송의 질적 양적 스케일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변화가 있다. 이는 칼라 텔레비전과 흑백 텔레비전의 교체에 버금갈 교체를 준비하는 물밑의 흐름을 말한다.
'삼순이'--->'루루공주'(정치사) : 기억에서 확확 지나감.
방송사 사장과 정치권과 국민들간의 교감(경제사) : 중장기적 기획
방송방식의 변화(문화사) : 가장 오래 가장 늦게 변함.
박대통령의 5.16 전후를 해서, '경제사'와 '문화사'의 극단적 변화가 있었다. 정치사란 5.16과 경제사와 문화사의 동시적 변화가 있었다. 군사정부가 끝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박대통령의 전통을 계승하는 박근혜대표도 사실상 과거를 잘 계승할 수 있는 '문민정부'쪽에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새롭다'는 문명이 많이 창출되어 있어도 삶의 밑뿌리는 그렇게 많이 바뀌지는 않았다.(북한사회도 '단절'을 과시하는 개혁어법으로 화장된 전근대 '나랏님사상'의 극한으로 보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식의 '단절'의 표피성은 '나무'만 보고 '숲'을 못보는 그 환경의 일상인들일 것이다.) 이는 1920년대 출생세대가 대부분 삶을 떠나고 1930년대 출생세대가 정신이 흐릿한 노년세대에 처해도, 1940년대 출생세대의 '세대적 가치관'이 사회에 강하게 남은 것과 비슷할 것이다.
훗날의 '역사가'는 박대통령이 등장하고 안하고의 차이보다, 김영삼대통령 이하의 문민정부의 등장하고 안하고의 차이가 문화적 변화를 월등하게 적게 가져다주었다고 본다. 역설적으로 웃긴 것은 박대통령은 전통계승과 전통 보존을 외치고, 문민정부는 전통단절적 좌파적 개혁을 줄곧 외쳤던 정치였다는 점이다.
군사정부란 텔레비전 송출방식에서 문민정부란 송출방식의 절대적으로 새로운 창출방식이 아니라, 이전 송출방식에서 '업그레이드'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는 판단은, 한국사회를 온전하게 관찰한 사람으로서는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날 수 있는 '황혼'의 때에 중립적 객관적 판단으로 생각할 것이다.
박대통령시대는 19세기(고전적이라고 낡았다라고 하기보다는 과거 한국이 서구에서 '교과서 문명'으로 수입할 수 있던 최대치 수준) 자유주의 사상과 나랏님 사상이란 유교전통을 종합했다. 그런데, 일반인들의 기대는 박대통령 정치의 본질을 '유교적 충군애국정신'의 정치화라고 규정한, 재야 반체제운동가들이 집권세력이 되었을 때, '유교문명'으로서의 '나랏님'잔재는 사라지게 될 것으로 믿었다. 즉, 고전적 자유주의 국가론만의 새로운 그림이 될 줄 알았다.
김대중전대통령의 대북송금사태의 '통치행위'합리화부터 좌파정치권은 정신없이 '나랏님사상'의 복권으로 이어갔다. '나랏님사상'과 레닌 마르크스주의의 결합이었다. '나랏님사상'으로의 복권과 좌파사상과 결합은, 학생운동권 민족해방론 이념의 음험한 결탁으로 이어졌다. 국민의 정부의 캠페인이던 '제2의 건국'논리의 실체는 사실상 이렇게 드러났다. '태극기' '애국가'의 절대적 천시와 '한반도기'란 임수경의 불법 방북 때에서 빚어진 깃발에 과도한 탐닉은, 현재 사회의 밑둥에 대한 문화적 밑바닥의 조롱을 불러일으키려는 '反애국적'처사가 분명히 맞다.
역사드라마 '신돈'이 곧 방송된다. 나는 '신돈'을 생각할 때 '조갑제기자'가 생각이 난다. '신돈'의 역사소설적 형상화는 박종화의 [다정불심]이 최초였다고 안다. 유력 신문에 지면을 전혀 내주지 않아서 총독부 기관지에 기고를 하되, 그러한 지면을 택할 때 반드시 보게 될 울화통과 울분을 소설화시킨 것으로 본다. 박종화의 친구를 보면 박종화를 안다. 빙허 현진건의 글쓰기나 횡보 염상섭의 글쓰기를 보면, [다정불심]은 1930년대 후반기로서는 <성공한 매국노>로서의 '친일파'의 문제를, 은은히 '독립정신'을 품는 방식으로 다룬 것으로 본다. 1960년대에 영화화되어서 탄생의 배경은 묻혀졌으나, 고려조 왕씨 왕조를 개혁한다고 들어가서, '신씨'왕자를 출산하게 하는 끝부분에 이르러서는, 독립에 대한 기대가 가물가물해지는 가운데에서 1919년의 3.1운동의 전통을 소중히 생각하는 소설가의 <성공한 매국노>에 대한 울분을 반영한다. --물론, 박종화의 [다정불심] 창작 당시의 울분이 끝내 풀리게 되어서 정말 모두에게 축복이었다. 이완용과 친일파가 오랫동안 비판될 수 있음은 이러한 엘리트층이 있었다. 조갑제기자는 이러한 층을 능멸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창출하지 못했다.--조갑제 기자를 보면 왜 '신돈'이 생각나느냐 하면, 김대중대통령의 통치이념이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나랏님사상'을 더한다는 방식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에서, 조갑제기자도 철저하게 똑같은 방식을 가고 있다는 결과 때문이다. 물론, 김대중정부를 탄생시킨 [한겨레신문]의 정신적 지주인 송건호기자와 가까움을 과시하는 조갑제기자에겐 자연스러울 수 있으나, 우파 사회에서 우파 사회의 본연의 전통을 지우고 어떻게 '신씨왕자'를 탄생시켰는가를 생각하면 안다. 한번은 자기들이 새로운 건국세력이라고 지칭했다가, 뒤늦게 화들짝 이승만 찬양을 하는 모습을 보면, 전략전술적으로 우파 사회에 들어온 불순한 사람의 시대가 지나야 객관화될 검은 구석을 보게 된다. 우파사상의 본령이어야 할 부분은 전통계승에 단절의 방향으로 모든 방향에 틀어막고, 좌익적 감수성과 좌익선망증으로만 고정되도록 심리적으로 나아가는 조갑제기자의 글쓰기를 보면, '신돈;의 부활을 보게 된다는 평가도 정당하다.
애국우파들의 집회의 상당 부분에서는 그러한 차원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적 나랏님이 훼방했다. 인공기 찢기 행사-나는 박대통령에 저항했던 감수성의 복제란 측면에서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대의적 차원에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에서 '공권력'이 대체로 훼방을 놓았다는 측면에서는, 국민의 동의와 무관하게 권력을 선점한 자가 벌이는 <새로운 '나랏님'의 권위주의>를 보게 된 것이다. 우파의 악몽은 마침내 그 권위주의가 최강으로 커져서 '전체주의 파쇼사회'수준에 이르게 되는 바탕을 걱정하는 것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전통지향적인 이들에 좌파적 나랏님 건설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절대적 불이익을 주게 되고, 그러한 절대적 불이익을 주는 바탕은 '퇴임이후'어쩐다는 말을 스스로가 퍼뜨리는 좌파정치를 하게 된다. '나랏님사상'으로 퇴임이후를 걱정하게 되는 정치는 일본적 문화이며, 자민당의 장기 집권의 배경이기도 하다. 한때, 국민의 정부 때에는 서구 사회 수준으로 정치가 발전했고 아시아를 탈피했다는 자화자찬이 '도올김용옥'의 입을 통해서 벌어졌다. 이 배경으로 온갖 유럽 좌파 텍스트가 우리 사회에 수입되기도 했다.
박근혜대표는 호남에 서진정책이니 포용정책이라고 내세우는 것보다도, 정치권력만 바뀌면 똑똑한 호남인이 많이 픽업되고 드러나게 될 것이란 호남인들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난 점을 인정하고, 호남인들의 이익을 유지할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준에서, 조갑제기자 수준의 디제이코드의 나랏님사상을 싸그리 찢어갈겨도 될만큼으로,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전통적인 삶의 가치와 나랏님사상과 상관없거나 영향적은 자유주의 국가론을 홍보해야 한다. 국민의 정부가 정권을 갖게 된 배경은, 사실상 김대중정부 때에 문민정부 때 억압받던 보수논리가 대부분 인정되고 높임을 받았던 의지에 있다. 양보할 수 없는 선에 대해선, 호남인 몇몇을 더 끌어들이고자 애써 죽일 필요도 없다. 그래도 다 알것은 알기 때문이다.
도청문제의 본질은 '인권'문제가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사수하여 '나랏님사상'으로서의 왕조사회의 초호화기득권그룹의 '자기멋대로'바탕을 사수하려는 문화적 양식에 있는 것이다. 와이에스정부의 도청의 본질도 결국은 정권을 놓자마자 일반국민들의 기대와 절대 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있고, 좌파정부의 도청의 본질도 정신바짝 차리지 않으면 '도루묵'된다는 불안감에 있을 것이다. 그 문화양식이 고쳐지지 않았다면, 그 어떠한 정치쑈로도 국민의 의심을 고치긴 어려울 것이다. 글의 처음에 제시한 '시간의 삼층탑'에서, 박정희대통령 때의 자유주의 국가론과 나랏님사상의 종합에서 문민정부와 마르크스주의와 나랏님사상의 종합에서, 박근혜대표가 집권하여 자유주의 국가관 하나로 회복하는 문화적 전환의 밑바닥을 변화시키기 전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그 멋대로'지위를 선망하는 백수들의 말의 성찬이 가득한 담론공간으로서의 (한국에서 곧잘 말하는 부정적 의미의) '정치'이미지는 계속될 것이다.
**. 도청문제는 개개인의 사생활을 시원하게 쳐다보는 '인권침해'의 문제로 접근하면, 진정한 본질을 숨기게 된다. 사실, 도청은 과학의 수혜이다. 과학을 쓰는자가 '권력의 이익'방향에서 쓴다는 것이 문제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평등하고 공정해야 할 부분에서, '과학'을 쓰고서 '믿어'라고 하게 되는 부분에서 '제한'이 필요하다. 할아버지 할머니나 청소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과학은 얼마든지 잘못 쓰일 요소가 너끈하며, 현재는 무분별하게 과학의 부당한 사용으로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 깨질 요소가 많이 나와 있다.
과학을 도구적으로 쓰게 되어서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해칠 요소는 앞으로도 적잖이 남아있다.
**. 도청문제를 애국인사들이 몰리거나 전통적인 국가관을 반영하는 곳을 없애는 좌파적 개혁의 매개로 해석해서도 안된다. 사실, 국가정보원이 문제라고 싸그리 해체시킨다 해도, 과학기술을 정권 이익의 문제로 써서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을 위협하는 일이 없어진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