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인스키’는 유럽 알프스 지방의 산악에서 성행하던 산악 활강이 세계적 스포츠로 발전한 경우다. 선수들은 비탈진 곳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활강, 그리고 깃발 사이를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회전을 통해 승부를 겨룬다.
1936년 동계 올림픽 주 종목으로 채택된 후 70 여 년간 경기가 이어져왔다. 그런데 지난 17일(한국시간) 밴쿠버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휘슬러 크리크사이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알파인 스키 남자 수퍼 복합경기 일정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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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와 경기장 상황에 맞는 장비를 선택할 경우 10~20초 정도의 시간을 무난히 단축할 수 있다. | 지금 올림픽 현장은 눈은 물론 비까지 쏟아지면서 경기 운영자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폭설 등 악천후 상황에서 경기를 밀어붙일 경우 경기결과에 있어 변수가 너무 커지기 때문이다.
장비만 좋으면 악천후가 더 유리...
많은 선수들이 경기를 위해 적어도 10년 이상의 훈련을 해왔다. 그런데 고된 훈련 결과가 날씨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면 동계올림픽의 의미가 퇴색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경기를 무작정 연기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지는 최근 기사를 통해 알파인스키, 스노우보드 등 실외 경기에 참여하고 있는 선수들이 지금과 같이 악천후 속에서 (날씨와 관련된) 과학적 원리를 이해한다면 선수들은 그동안 꿈꿔온 메달을 손쉽게 획득할 수 있을 거라고 보도했다.
노르웨이팀의 스키훈련 감독인 크누트 니스타드(Knut Nystad)씨는 과학적 설계의 스키 장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강조했다.
“세계 각국의 선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시간의 훈련을 소화함에도 경기할 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날씨와 경기장 상황에 맞는 장비를 선택할 경우 10~20초 정도의 시간을 무난히 단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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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용 스키들. | 그는 “눈 표면이 부드러우면 유연한 스키가 위력을 발휘하며 눈 표면이 굳어있을 때는 탄력 있는 스키가 위력을 발휘한다” 면서 “상황에 따라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스키를 선택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눈의 온도와 습기 역시 스키 속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어서 눈이 많이 녹아있을 경우 선수들은 활주용 왁스(glide wax)를 사용한다. 여러 가지 종류의 왁스가 있는데 각국은 품질좋은 왁스를 개발하기 위해 저명한 과학기술자들을 동원하고 있다.
12명의 선수가 가져온 스키 450개
선수들이 보유한 장비의 양도 상상을 뛰어넘는다. 한 선수가 보통 20개 이상의 스키를 갖고 있는데, 독일의 바이애슬런(biathlon)팀은 12명의 선수들을 위해 무려 450개의 스키를 가져왔다.
미국팀은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일부 선수들을 미리 경기장 주변에 파견했다. 그들은 현지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경기 당일 사용하기 위한 스키 장비와 스노우보드 장비, 그리고 왁스를 테스트했다.
그러나 8천만 달러를 투입해 장비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캐나다 대표팀과 비교했을 때 미국팀의 노력은 초라한 수준이다. 캐나다는 밴쿠버에 소재한 영국 컬럼비아 대학 교수진에게 장비 연구를 의뢰했으며 연구개발을 토대로 신장비를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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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키왁스. 스피드 조절용으로 사용된다. | 캐나다 팀이 개발한 비밀병기는 지난 성탄절 직전에 공개됐는데 마찰을 20~25%까지 줄일 수 있는 스키와 스노우보드 장비였다.이 장비들은 지난 1월 독일에서 열린 스키점핑 월드컵에서 그 모습이 공개됐다.
수제품으로 제작한 이 장비들에 대해 제작업체인 유비에스(UBS)는 일체 함구해 스포츠 기자들이 알아낸 정보는 이 장비들이 향후 열릴 예정인 밴쿠버 동계올림픽 경기 현장에서 스피드를 낼수 있다는 정도였다.
UBS 관계자들은 그러나 스키와 스노우보드의 원료인 테프론(Teflon)에 대해서는 상세히 설명했다. 테프론이란 염소나 염산을 취급하는 장치, 전기절연 테이프, TV나 레이더의 특수 부속품 등에 원료로 사용되는 산과 고온에 강한 플라스틱 계통의 합성수지를 말한다.
UBS 제작팀 책임자 쉘던 그린(Sheldon Green)씨는 선수들이 테프론으로 제작된 장비를 사용할 경우 이전보다 더 쉽게 눈 위를 미끄러질 수 있어 결과적으로 기록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프론으로 제작된 스키나 스노우보드를 타고 달릴 경우, 그 아래에 맺힌 물방울들이 더 작게 쪼개지고 쪼개져 마치 팬 케이크처럼 펼쳐져 스키·스노우보드와의 마찰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테프론 효과는 이미 다 알려진 사실
이와같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그는 그린씨는 스키와 스노우보드 제작에 가장 적합한 원료로 결론을 내렸으며, 이를 ‘테프론 효과’라고 불렀다.
그러나 노르웨이 기술코치인 니스타드씨는 테프론 효과는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평가절하했다. 다른 국가대표팀 코치들도 UBS가 밝힌 테프론의 효과는 이미 비밀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세계 각국의 기술코치들이 스포츠와 함께 과학을 하고 있는 중이며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과학은 매우 경험적인 과학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나라의 스키선수단 감독들은 (비록 기술감독이 아니더라도) 과학적인 사실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왔다. 선수들에게 어떤 장비를 사용하게 하고, 어떤 왁스를 발라야할 지를 고민하고 이를 노트에 기록해 대회에서 최고 기록을 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왔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경기에 적용돼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는 미국 스노우보드 팀 선수, 네이트 홀랜드(Nate Holland)은 동메달 획득 후, 기자회견에서 “내가 사용한 스노우보드는 아무 문제가 없었고 내 스노우보드의 성능은 마치 ‘놀라운 로켓 배(freaking rocket ship)'와 같았다”고 표현했다.
그의 동료,그레엄 와다나베(Graham Watanabe) 역시 "그동안 왁스 담당 코치의 왁스에 대한 가르침은 완벽했다”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훈련을 해오면서 미국 팀의 왁스 담당 코치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왁스를 배웠으며 이번 경기에서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는 것.
지금 열리고 있는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악천후로 큰 곤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악천후가 더 심해질수록 더 많은 과학이 동원되고 있는 것이 현재 동계올림픽의 현주소이다.
미국 크로스컨트리 스키팀의 크리스 프리맨(Kris Freeman) 선수는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 사용할 왁스를 결정하는 일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동계올림픽에서 더 많은 메달을 따기 위해서는 스키선수단 감독들이 과학에 대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