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日成
1912∼1994
북한 지도자.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현 평양시 萬景臺區域) 출생.
본명은 성주(聖柱 또는 成柱).
북한 정권수립 이전인 1946년부터 사망시까지 49년간 최고지도자로서
사회주의의 변형인 유일체제를 고수하였다.
1920년(9세) 무렵 부모를 따라 만주 파다오거우[八道溝]로 가서 초등교육을 마쳤고,
지린성[吉林省]의 유웬중학교[毓文中學校]를 중퇴하였다.
1929년(18세) 무렵 동만(東滿;당시 간도지방) 공산주의청년동맹위원회 서기를 지냈다.
1931년(20세) 중국공산당에 입당하고,
1932년(21세) 안투현[安圖縣]에서 항일유격대원으로 활약하다가
1934년(23세) 중국공산당의 동북인민혁명군 제 2 군 독립사에 들어갔다.
1935년(24세) 김일성으로 개명하고,
1936년(25세) 동북인민혁명군 제 2 군 독립사가 항일민족통일전선운동의 일환으로
동북항일연군 제 2 군으로 재조직될 때 정치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37년(26세) 6월 그가 지휘하는 중국공산당 동북인민혁명군 6사 병력 100여 명이
조국광복회 국내 지하조직과 연합하여 함경남도 보천보(普天堡)에서 일본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1940년(29세) 3월에는 백두산록 홍치허[紅旗河]에서 일본경찰토벌대 180여 명을 전멸시켰다.
1941년(30세) 유격대원들과 함께 소련으로 가서 청년간부훈련을 받고
1945년(34세) 소련군 소좌가 되었으며, 북한에 대한 소련의 점령정책이 시작되자 입북하였다.
이어 기존세력이던 국내파·연안파에 대한 우위를 장악,
1946년(35세) 2월 내각 성격을 갖는 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이 되어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하였다.
1948년(37세)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내각수상이 되고,
1949년(38세) 남북 노동당을 합당하여 조선노동당을 결성하여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1950년(39세) 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6·25를 일으켰다.
1953년(42세) 이때부터 원수(元帥)·영웅 칭호를 사용하면서 박헌영(朴憲永)의 남로당파,
김두봉(金枓奉)의 연안파, 허가이(許哥而)의 소련파를 숙청하여 권력체제를 구축하였다.
1960년대(49세) 초반부터 <주체사상>을 국가이념으로 정착시키며 중국·소련에 대한 자주노선을
선언하였다.
1970년(59세) 당 중앙위원회 총비서가 되었고,
1972년(61세) 헌법개정으로 국가권력구조를 국가주석중심체제로 바꾼 다음 국가주석,
·국방위원회위원장에 취임하였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남북한 문제를 논의하였으며,
1980년(69세) 남북통일방안으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을 제안하였다.
1990년(79세) 국가주석에 재추대되고,
1992년(81세) 대원수 칭호를 받았으며,
1993년(82세) 국방위원장직을 김정일(金正日)에게 이양하였다.
1994년(83세) 6월 카터 전 미국대통령 면담 때 남북정상회담을 제안, 회담준비가 진행되던 중
7월 갑자기 사망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한국 현대사에 무시할 수 없는 발자취를 남겼지만,
한국전쟁을 도발하였으며 권력을 세습시키는 등 북한사회를 사유화함으로써
저발전체제로 귀결시킨 과오를 남겼다.
갑산파(甲山派) 8·15 후 북한에서 다른 정치세력들을 약화시키고 김일성(金日成) 중심의 단일적
지도체제를 구축한 정치세력.
1941년 일본군의 대토벌을 피해서 소·만 국경 일대로 이동하기까지 동만주지역에서
항일무장투쟁을 한 세력으로, 광복후 소련군과 함께 북한에 들어가 연안파·국내파·
소련파 등과의 권력투쟁을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 지도집단으로 등장하였다.
주요 인물은 김일성을 비롯해 최용건(崔庸健)·김책(金策)·김일(金一) 등
북한정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빨치산 동료들이 대부분이었다.
6·25 이전에는 북한에서 여러 정치세력들이 비슷비슷한 힘을 발휘하였으나
김일성이 6·25를 도전세력을 제거하는 계기로 삼았고, 또한
1950년대 중반에 진행된 이른바 반종파투쟁 과정에서 갑산파가 승리함으로써
58년까지 김일성 중심의 확고한 권력기반이 구축되었다.
1970년대 이후 김정일(金正一)로 권력이 승계되면서 혁명 2세대가 부상,
빨치산세대는 일부 퇴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1994년 김일성 사후에도
북한의 요직은 대부분 이들이 맡고 있다.
첫댓글 김일성이 독립운동했다는 것은 쌧빨간 거짓말입니다. 그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서 대 일본 투쟁, 항일투쟁을 한 것일 뿐입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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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