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된 남양유업 매각
남양유업은 국내 유통업계에서 ‘트러블 메이커’로 통한다. 대리점주에 대한 갑질과 과대광고, 상대 회사 비방 댓글 논란까지 10년 넘게 흑역사를 썼다. 유기농과 엄마 마음을 강조하는 이 회사 분유로 아이들을 키운 소비자들의 배신감은 컸다. 일이 터질 때마다 “남양이 남양하네”라고 고개를 내저을 정도다.
▷남양유업은 올해 4월 “불가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죽인다”고 발표했다. 국내 백신 기근으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소비자들은 실낱같은 희망으로 불가리스를 사 마셨다. 질병관리청이 즉각 “사람 대상 연구가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사회적 혼란이 빚어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품표시광고법 위반으로 고발하면서 경찰 수사로 이어졌다. 이 회사 홍원식 회장은 5월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사모펀드 한앤코에 오너 일가 지분을 3107억 원에 매각한다는 계약도 맺었다.
▷그랬던 홍 회장이 어제 회사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석 달여 만에 매각 계약을 뒤집은 것이다. 홍 회장 측은 “당초 지난달 31일 계약 종료 시점까지 양측이 맺었던 사전 약속을 한앤코가 지키지 않아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앤코 측 얘기는 다르다. 한앤코 측은 “홍 회장이 거래 종결을 계속 미루면서 무리한 요구들을 하다가 일방적으로 주식매매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홍 회장이 위기를 모면하려고 회사를 내놓겠다고 했지만 생각할수록 싸게 판 게 억울해 계약을 파기한 것 같다고 본다.
▷홍 회장은 5월 대국민 사과 때 말했다.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제가 회사의 성장만을 바라보면서 달려오다 보니 구시대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비자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남양유업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하면서는 검지로 눈물을 훔쳤고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주지 않겠다’면서는 울먹였다. 혁신을 거듭하는 경쟁 회사와 달리 남양유업은 ‘황제 경영’으로 난파선 신세가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홍 회장 측의 요구사항에는 매각가격 인상과 두 아들의 지위 보장 등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 대국민 사과 이후에도 홍 회장은 상근 회장으로 사옥에 출근하며 올해 상반기에만 8억 원이 넘는 보수를 챙겼다. 매각 발표 바로 전날엔 두 아들을 임원으로 복직과 승진시켰다. 남양유업 관계자는 “회장님이 회사를 매각하겠다는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주식시장에서는 홍 회장의 매각 의지에 신뢰를 보내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남양유업 제품을 사먹지 않겠다”는 싸늘한 반응이 나온다.
김선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