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1: 7. 요한에 대한 평가 8.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마 11: 7. 요한에 대한 평가 -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
그들이 떠나자,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문자 그대로 풀을 가리킬 수 있지만, 의심하는 사람을 표현할 수 있다.
1] 그들이 떠나매(*, 투톤 포류오메몬)
현재형 독립 속격 분사 구문으로서 '저물어 막 떠나가고 있을 때'라는 뜻이다.
이는 요한의 제자들의 뒷 모습을 아직 바라볼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 있을 때로 보는 것이 좋다.
2] 예수께서 무리에게
직역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 시작했다'(Jesus began to speak, NIV)가 된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물러가고 있을 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던진 질문으로 인해 손상된 세례 요한의 권위를 회복시키기 위해 말씀을 꺼내셨다(F. R. Fay).
혹자(Plummer)는 이때의 메시지가 바로 세례 요한을 위한 장례사(葬禮辭)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3]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던진 질문을 기회로 삼아 요한의 참된 사명에 관하여 무리들에게 가르치신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칠 때 많은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그가 외치는 말씀을 들었으며 특이한 그의 외양(外樣)과 가르침에 감동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 마 3: 1-12 –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그중에 일부는 호기심에서 그를 보러 나갔던 것 같다. 지금 예수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무리도 요한에게 나아갔던 그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예수께서는 이 기회를 잘 활용하여 그들이 과연 요한에게 나아가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질문하신다.
4]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광야'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던 유대 광야를 가리킨다(3: 1).
당시 세례 요한의 우뢰와 같은 메시지 앞에 유대 군중들은 구름떼처럼 광야로 몰려들었다. 그들의 관심은 일시적이요 충동적이었을 뿐 더 깊은 영적 진리에로 이르지는 못했다.
* 요 5: 35 -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본문에서 예수께서 이같이 질문하시게 된 또 하나의 의도는 그들이 세례 요한을 신(神)적 권위를 입은 선생으로 인정하면서도 그가 안내한 바 있는 그리스도는 믿지 않는 불신앙을 깨우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5]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갈대'(*, 칼라몬)는 집합 단수로서 커다란 줄기를 가진 식물을 의미하며 요단강 하류 쪽에 많이 자라고 있다. 갈대(calamus)는 가볍고 길어 글씨를 쓰는 도구, 지휘대, 측량자 등으로 사용 되었다.
* 요삼 1: 13 -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 마 27: 29 -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 계 11: 1 -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갈대'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정한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이리저리 휩쓸리고 방황하는 유대민족을 가리킨다는 견해도(Grotius, De Wette) 있으나 세례 요한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Allen, Bruce, D. A. Carson).
갈대란 오늘은 이것을 믿고 이렇게 말하다가 내일은 저것을 믿고 저렇게 말하는 불안정하고 변덕이 심한 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너희가 과연 요한을 그렇게 주관이 뚜렷하지 못한 자로 이해하고 있었더냐?'는 뜻이다.
실제로 요한은 수차에 걸쳐 예수가 메시아란 사실을 증언하였다.
* 마 3: 11-14 –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 요 1: 19-36 –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31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34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요 3: 27-30 – 27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8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자신의 증언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갈대처럼 흔들리지 않았고 받아들인 진리를 믿고 선포했다.
마 11: 8.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은 회개를 촉구한 선지자로 군중들이 광야를 찾았지만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무엇을 보려고 나갔느냐고 되묻고,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보려면 왕궁을 찾으라고 했다.
1]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말라코스)이란 부드럽다는 뜻 외에 '사치스러운', '방탕한', '나약한'이란 의미도 들어 있다.
* 눅 7: 25 -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 고전 6: 9-10 –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예수가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분명 풍자적인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부드러운 옷'은 왕실이나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들이 주로 입던 가볍고 얇은 장식용 의류를 말한다. 이 옷은 올이 가는 린넨 실로 만들어진 고가품(高價品)이었다.
'입은 사람이냐' -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가죽띠를 띤 검소한 옷차림을 하였다(3: 4). 예수께서 말씀한 이 질문은, 그들이 광야에 요한을 보러 나간 이유는 훌륭한 옷이나 외모를 보러 나간 것이 아니지 않느냐는 말이다. 여기서 예수는 점층법적인 수사법을 쓰면서 마지막에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2]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이는 헤롯 궁정을 뜻한다.
부드러운 옷 입은 자를 만날 곳은 헤롯 안디바스의 궁정 같은 곳이지 요한이 있던 광야는 아니다. 이런 옷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예수는 요한이 이 같은 부귀와 영화를 대변하는 인물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 역시 예수와 마찬가지로 야생(野生)의 투박하고 천한 생활을 하였으며 고난을 겪었지만 확고한 도덕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고난받는 메시아의 선구자로서의 자격을 갖춘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