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님의 글을 보니
최근에 댄스모임에 나갔다가 돌아섰다 한다.
그게 무슨 댄스였던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의 경험을 떠올려 사교댄스를 시도해보라 했다.
그리고 우리 카페에 사교댄스를 하는 댄스동호회도 있지 아니한가.
결정이야 본인이 하겠지만
아래에 나의 댄스 이야기를 붙여본다.
지난해 시월, 양띠 모임에서다.
그미 2 여사가 춤을 추자 하더라.
그런데 거절했으니...
나는 이젠 그녀 앞에 나타날 수 없을 것 같다.
마담의 프러포즈를 거절하다니...
그것도 새파란 숙녀의 청을...ㅠ
다음엔 내가 청해야겠다.ㅎ
2천년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야인이 되었는데
제일 먼저 한 일이 댄스학원을 찾는 일이었다.
잠실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진 댄스학원,
한 달에 30만원씩 내고 2년을 교습받았다.
그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게 하루의 운동량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날 원장이
"사장님, 이젠 실전을 해보셔야지요."
"실전?, 그거 어디서 하는데요?"
"워커힐 아래에 무도장이 있어요, 거길 가보세요."
큰맘 먹고 거길 찾아가 두리번거리는데
어느 할머니가 다가오더니
"한 번 추실까요?"
순간 당황할 수밖에, 그래서
"아아 네, 저는 친구 만나러 왔어요!"
하고 황급히 거길 빠져 나왔던 거다.
이 이야기를 원장에게 했더니
"아이구우, 사장님이 큰 결례를 했어요, 잡아드렸어야지욧"
그래서 뒷머리가 스멀거렸었는데
이제 또 그미 2 여사에게 그런 큰 실례를 했던 거다.ㅎ
하지만 이건 을미생 후배님들에게 양보한 것이니
이해 하리라고 보면서
나의 댄스 이야기를 아래에 붙여본다.
아, 옛날이여 / 댄스
김 난 석
어제는 가족 나들이를 마치고 저녁 무렵
댄스 동호회 모임에 들려봤다.
얼마 전 탁구동호회 창단 1주년 기념일에
댄스동호회 회장과 총무 두 분이
모두 방을 비워놓고 왔다기에 하도 고마워서
답방을 겸한 나들이를 한 셈이다.
봄 가뭄을 풀어주는 듯 비가 오락가락하여
바짓가랑이가 젖으니 추적거렸지만
호기심에 가득 찬 발걸음은
그에 아랑곳할 것도 없이 무도장으로 내달았다.
플로어를 지나 회원들이 모여 있는 부츠에 들어서자마자
반가운 눈빛들이 선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등산동호회나
탁구동호회 모임에서 이미 뵈었던 분들이
대부분인 때문이었다.
하늘을 이고 사는 사람들이라면
어버이를 사랑하거나 그리워하지 않는 이는 없다.
자라면서도 어머니 아버지요 커서도 어머니 아버지요
자식들을 다 여의고 나서 허리가 한참 휘어진 뒤에도
어머니요 아버지를 부르고 그리워하기에 말이다.
그런 우리들의 어머니요 아버지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바로 여기에 성성하게 모여든 것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건 내 어버이가 있음을 뜻하며
그 어버이는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거룩한 존재다.
내 어버이만 그런 게 아니라
남의 어버이도 이치는 마찬가지다.
비록 검버섯에 주름살을 훈장처럼 새기고
손등은 솥뚜껑처럼 무뎌졌지만
우린 그런 얼굴과 손의 모습을 그리워해오지 않았던가.
이제 그들은 누구에게 의지할 것도 없이
서로 어울려 외로움을 달래며
그들의 어머니요 아버지를 떠올려보는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고유의 춤은 허공을 향해 휘젓는
손끝에서 풍기는 아스라한 여운이 일품이다.
하지만 서양 춤인 댄스는 뭐니 뭐니 해도
손맛이 제일이라 한다.
잡아당기는 듯 밀어내고 밀어내는 듯 잡아당기되
가슴 사이로는 열정과 서늘한 바람이
함께 통하도록 길을 내놓는
이체(二體) 이심(二心)의 고추 섬 속에서
손끝의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는 게
그것일 터이다.
뒤집어 말하면 손맛은 역시 댄스라고 하는 이치다.
홀로 추면서 손끝으로 허공을 한껏 휘저어보기도 하고
둘이 추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손끝으로 느껴보는 것이라면
손으로 하는 재미가 그보다 더 좋기도 쉽지 않을 성싶다.
서툰 솜씨로 이손 저손을 잡아보면서
고왔을 시절도 상상해 보고
따뜻했을 시절도 상상해 보다가
때로는 그 손으로 하 많은 눈물도 훔쳐냈을 생각을 하면서
자리에 안내하고 돌아서니
비에 젖은 바짓가랑이도 열기를 받았던지
어느새 다 말라버렸다.
그러하매 누가 저들의 모습에서 꽃만을 보려 하는가.
저들의 뒤에 숨어있을 사랑과 헌신의 허공도
바라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불가(佛家)에는 염화미소라는 말이 전해온다.
영취산에서 석가가 설법을 하던 날, 그분은 설법 대신
들꽃 한 송이를 쳐들어 보였다고 한다.
많은 청중들은 석가의 손에 든 꽃송이를 바라보면서
의아해했다지만
청중 가운데 제자 가섭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니
석가도 따라서 미소를 지었다 한다.
염화미소는 이렇게 석가와 가섭이
미소의 대화를 한 것을 이름이요
이렇게 해서 석가와 가섭 사이에 진리를 소통하는
이심전심이 이루어진 셈이겠지만
그 둘 외에 석가가 꽃을 든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다.
다석(多夕) 유영모는
이 수수께끼 같은 불립문자의 뜻을 이렇게 설파한다.
“ 여기 이 꽃은 꽃을 보라는 것이 아니라
꽃 밖의 허공을 보라는 것이다.
꽃과 허공이 마주치는 아름다운 곡선을 보고도
꽃만 보고 허공은 못 보았다고 한다.
꽃 테두리 겉인 허공에는 눈길조차 주려하지 않는다.
꽃을 있게 하는 것은 허공이다.
꽃이 있는 것은 허공을 드러내 뵈자는 것이다.
요즘에는 허공이야말로 가장 다정하게 느껴진다.
허공을 모르고 하는 것은 모두가 거짓이다.
허공은 참이다.
절대자 하느님이다.
무한대한 허공이나 마음속의 얼은 결국 하나이다.”
(‘다석 어록’ 중에서)
흔히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려 한다고 나무란다.
총명함이 그러할진대 어찌 달 뒤의 허공을 볼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남성에겐 여성이 꽃이요
어제는 꽃구경을 많이도 했으니
이번 보름날엔 한적한 교외로 나가
누가 가리키는 것을 따라 할 것도 없이
잠시라도 꽃 뒤의 먼 허공을 바라보아야겠다.
(2007년 봄날에)
다 때가 있다
움켜쥘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울 때도 있고 웃을 때도 있다
끌어안을 때가 있고 밀어낼 때가 있는데
하나는 추운 겨울이요
하나는 더운 여름이다.
그대는 어떤 때인가?
때를 기다려야 한다
억지로 들이대면 안 되느니
나는 옛날을 노래할 뿐이다.
날마다 때를 기다리는 자가 누군지 아는가?
목욕탕 주인이라 한다.
선남선녀들이여! 때를 놓치지 말라.
체력이 받쳐주는 동안은 무엇이든 시도하라.
첫댓글 와 날마다 때를 기다리는 자
목욕탕 주인이라 ^^ 다양하세요
댄스로 시작하셔서 꽃과 어버이 사랑에서 선남선녀까지 왔으니요 우리 선생님 글은 감동과 재미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는 이 글만으로도 웃음이 나오고 즐거울 듯합니다 건강 행복하세요 😊🎁
사람마다 때가 다르지요.
저는 바라볼 때가 되었지만
나올님은 시도할 때가 아닌가요?
@석촌 네 아직 멈추기에는 아쉬움이 있기는 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즐거운 날들 되세요 🇰🇷☘️
한스님은 이미 댄스하기를
포기 하셨는 것 같은데,
아마도 다음 기회를 엿볼지 몰라도...
이야기가 이쪽 저쪽 건너 다니니
어디에 중심을 둘지 댄스 배우기 보다
댓글이 힘든 것 같습니다.
역시, 17년 전의 글은 젊어 있어 좋습니다.
항상 그시절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스님이 알아서 하겠지요.
그런데 그러고보니 17년이 흘렀네요. ㅎ
제가 얼떨결에 한 번 따라하고 포기한건
자이브라는 라틴 스포츠 댄스더군요,
소위 부르스 지르박은 사교 댄스라 부르고
차차차 자이브 등은 라틴 스포츠 댄스 ,
구분하는 것도 이 번에 알았습니다.
카페 댄스방은 걸음마 가르치는 곳이 아닌 것 같아
선배님 처럼 개인 교습소를 다녀야 될 것 같은데
몇 십 만원 주고 다니기에는 아직 망설여져 눈치 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여하튼 무엇이든 시도하는게 좋을것 같아요.
ㅎ 석촌님의 댄스하는 모습 보고 싶군요
ㅎㅎ
그거 후배들 하고 하면?
엮어요.악풀로
역시 춤은 글에서도
실전에서도 즐겁습니다.
밀고 당기고 그만큼
즐거운 놀이는 없었다는
전설입니다.
아, 옛날이여 ~
리듬과 몸이 늘 따로 노는 저는
혼자하는 댄스를 가끔 즐깁니다.
왈츠도 되고 살풀이도 됩니다. ㅎ
그것도 좋아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