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KDK1jueIaAU?si=pztMUb97wmsEspI4
-요약-
-연희전문학교는 일제식민시대 당시 조선에서 유일하게 근대식, 서양식 '천문학'을 가르치던 교육기관
-수물과(수학물리학과로 현재의 이공계열학과) 1회 졸업생은 4명( 1919년). 그 중에 한 명이 한국 이공계 박사 1호인 '이원철' 박사
-이원철 박사는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2년간 모교에서 후배들을 대상으로 수학을 가르침
-베커 박사(물리학), 루퍼스 박사(천문학)는 이원철 박사의 재능을 알아보고 장학금을 마련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보냄
-미국 알비온 칼리지에 편입 후 학사 졸업을 5개월만에 하고 미시간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천문학으로 박사 학위 취득
-박사학위 논문의 성과는 천체의 '독수리자리' 중 '에타'별이 '맥동 변관성' 이다 라는 것을 증명해내 (별이 팽창수축하면서 별의 밝기가 맥박처럼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증명)
-그는 미국에서 머물지 않고 조선으로 귀국 후 연희전문학교에서 수물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1928년 현재 언더우드 기념관 옥상에다 현대식 굴절망원경을 설치 하였으나 (1942년)일제가 전쟁물자로 징발해가버림
-창씨개명도 거부하였으며 일제의 압박에 학교에서 2번 해임당하기도 했지만 계속 조선인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쳤다.
-한국 천문학계에서는 중요한 인물이며 한국천문연구원 건물중에는 세종홀 장영실홀 과 함께 '이원철 홀' 이 있다.
-한국에서 한국 망원경으로 발견한 소행성에 '이원철' 이라는 이름을 붙여줌.
-1920~1930 한국의 최고학부는 현 서울대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이공계열 학부는 개설하지 않은 일본제국. (왜? 조선인들이 과학을 공부하면 안되니까)
-1940년대에 들어서야 그들의 필요에 의해(태평양 전쟁수행) 개설된 이공계열 교육과정
-그래서 1915년부터 과학을 조선인들 에게 소개시켜주고 교육과정을 만든 '연희전문학교' 가 중요한 의미를 가짐(윤동주 시인도 연희전문학교 출신)
-당시 식민지 조선의 문학가들도 과학의 중요성을 인지했었고 민간에서는 과학을 알리는 운동도 전개
-도쿄대 이학부 유학출신들이 조선으로 돌아와 아이슈타인에 대한 강의도 개최, 구름처럼 몰려든 조선인들.
첫댓글 과학 R&D 예산을 조 단위로 줄였다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IMF 때에도 줄이지 않았다는 예산이라고 하던데 지금 우리가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바이오 배터리 기술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한국정부가 지속적으로 늘려온 R&D 투자 덕분이 아닐까요? 애국심을 강요하며 언제까지 한국의 뛰어난 과학인재들을 붙잡을 수 있을까요? 중국이 호시탐탐 한국의 반도체 배터리 기술을 노리고 있던데. 게다가 글로벌화 된 세상에 다른 선진국들이나 중진국에서 한국의 우수한 과학기술인들을 무척 좋은 조건으로 콜 한다면? 대체 이 R&D 예산을 줄이자고 제안한 자들은 누구일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일본과의 격차를 다시 예전 처럼 돌려 놓고 싶은 듯 하네요
감히 대일본제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니
한국은 학생, 일본은 선생 포지션으로
다시 돌려 놓고 싶은 뉴라이트 매국노들의 장난질 같군요
@집중호우 한국을 학생정도가 아닌 노예로 전락시키려고 하는거죠
@집중호우 우리의 과학예산을 깎아서 이익볼 곳이 어디인지 대충 몇몇개가 나오는군요. 니혼랜드인들의 속담에 ‘적은 본능사에 있다’라는 말이 있더군요. 뭐 그렇다구요. ㅎ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