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무덥던 날,영화의 전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버스내려 걷자니 땀이 줄줄 흐른다
건널목 세 개, 기다리지 않고 마침 맞게 초록불이 되니 햇볕만 가리곤 걷는 길이
그다지 힘들지 않으나 열기가 훅훅 끼치며 숨이 막힐 것같다
그렇게 6층 로비에 이르니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있고 오가는 일정한 사람들사이 냉기가 적당하게 나오니 숨을 돌릴만하다
예매번호를 알려주니 관람권을 다시 뽑아주는데 <퍼펙트 데이즈 소극장 j열 9 10 11번 >
받아들고 휘 둘러보니 영순이 앉은 모습이 보인다
먼저 와 땀을 식힌 모양으로 어제 새벽같이 부모님산소갔다 왔다는 얘기하고 있는데
엘리베이터문 열리고 정미언니 들어서는데 벌써 땀이 흐르는게 보일 정도다
언니는 어찌나 행동이 재바른지 심리적,정서적인 면에서 어정거리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활기를 유지한 채 종횡무진하며 지낸다
금새 들어갈 시간이 되어 일어서는데 “그래도 영화는 팝콘먹는 맛이지”하며 크다 싶은
중간 통 팦콘그릇을 들고 오른다
명절앞날인데도 관람객이 적당하게 차,보기좋을 만하게 영화는 시작하고 사이사이 팝콘 먹는 소리까지 곁들여 대사없이 진행되는 퍼펙트 데이즈와 어울린다
두시간이 금방가고 내려와 영화내용에 대한 얘기를 꺼내니 영순은 주인공남자의 일상을 지키려는 그날그날의 일정함에
마음이 쓰인다하고 언니는 긍정의 세계관을 보았다한다
건물을 나와 해운대로 옮기는데 별 생각없이 지하철 개찰구를 수영쪽으로 들어가자마자 영순이 잘못 들어왔다며 알아차리고
직원호출벨을 눌러 다시 찾아 들어가는 데,아차 싶은게
언제부턴가 세세히 확인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가는 습관이 나왔구나 싶어 속으로 좀 머쓱해진다
현직에 있는 영순이 그래도 순발력이 있는 셈으로 보인다
해운대역에서 구글 어스켜고 찾아가는 식당 <보리문디>,구청 옆인데 워낙 주변이 변해서 예전 기억이 잡히질 않는다
모퉁이건물에 허름한 이층으로 오르니 바닥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낡은 집인데
유명한 고등어초회를 한다길래 찾아 온 바,사시미모듬에 시메사바,하이볼을 주문하는데
진저에일, 유자,진토닉하이볼이 있다는데 어느 걸 선택하나 우물쭈물하는 사이 영순이
세 개 하나씩,이렇게 명쾌하게 결정한다
사람이 하나둘씩 모이자 왁자한 소리에 점점 우리 목소리도 높아지고 회는 적당히 숙성된 맛을 보이는데
기대보단 못한 정도로 값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미지근한 고등어초회가 진한 맛을 내고 양이 적어 한 점씩 먹으니 남는 게 없다
밥 한공기 나눠먹고 일어서는데 양은 적지만 어쩐지 미묘한 뒷맛을 남기는 게 이집의 특징인가 싶어 기분이 괜찮아진다
명절 연휴시작이라 그런지 길에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줄지어 걷는 모양새다
해운대 시장쪽으로 들어서니 외국인 노동자들이 길을 잇다시피하고 배가 덜 찬 언니는
뭘 좀 더 먹어야겠다길래 찾던 중 시장 골목은 사람발걸음 피하다보니 끝나고 큰길로
나오니 버거 킹이 보이길래 들어가니 긴 줄을 또 기다려야하는 형편, 여기도 외국인들이
혼자 또는 삼삼오오 둘러앉아있고 오가는 사람들 보니 외국인노동자없이 우리 산업이 돌아가질 않는다는 말이 실감된다
햄버거를 나눠먹으며 언니는 엄마와의 다양한 생활상을,
우리나이에 느끼는 나이 든 엄마와의 우애와 지겨움, 뻔한 하루하루의 모습을
나는 아프고 나서 형편없이 쇠약해진 몸의 중요함을
영순은 활동의 영역에서 비교적 성과를 내며 특유의 맺고 끊음의 단순함에서 오는 번거로운 일들을 처리해내는 데 가벼워보인다
엄마 형제 조카들 사정과 앞으로 맞게될 우리인생의 마감의 심정까지
유쾌할 것없는 얘기지만 그렇다고 침울하지도 않게 예사로이 오가는 심정토로가
오래 알면서 다져진 인정으로 받아들이는 게 편안했다
끼리끼리 모인다지만 학교 때 단짝으로 지내다 졸업하곤 적조했다가 다시 보게 되니
더 좋은 점은 뾰족하던 모서리들이 둥글어져 이젠 서로 사정을 알아채고 받아들이는
나이가 주는 넉넉함을 가진 채, 육친을 대할 때 느끼는 친밀함이랄까
이렇게 늦여름 후텁지근한 추석 전날 밤,적당한 냉기 속에 작은 소음이 깔린 도시의 바다옆 중간건물에
별별 인종이 섞인 공간에서 만나 별 특별할 것없는 얘기를 하며 얼굴을
마주보고 그 표정에서 마음놓고 있음을 그래서 가까이 다가갈 수있다는 정감이 더해지는 시간을 보냈다
꾀꼬리에게 청중은 필요없다,밤의 한복판이면 충분하다
파스칼 키냐르가 <사랑바다>에서 한 말인데
잡다한 거,욕망을 거두고 이 나이쯤의 여자들이 받아들이는 인생의 한 경지로 읽어도 되겠다
Henri Matis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