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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명옥헌 별자리 최재영 원림에 드니 그늘까지 붉다 명옥헌*을 따라 운행하는 배롱나무는 별자리보다도 뜨거워 눈이 타들어가는 붉은 계절을 완성한다 은하수 쏟아져 내리는 연못 속 꽃그늘 그 그늘 안에서는 무엇이든 옥구슬 소리로 흘러가고 어디선가 시작된 바람은 낮은 파문으로 돌아와 우주의 눈물로 화들짝 여울져 가는데, 기어이 후두둑 흐드러지는 자미성(紫微星)** 연못 속으로 어느 인연이 자맥질 해 들어왔나 문이란 문 죄다 열어젖히고 한여름 염천에 백리까지 향기를 몰아간다 그 지극함으로 꽃은 피고지는 것 제 그림자를 그윽히 들여다보며 아무도 본 적 없는 첫 개화의 우주에서 명옥헌 별자리들의 황홀한 궤도가 한창이다 한 생을 달려와 뜨겁게 피어나는 배롱나무 드디어 아무 망설임 없이 안과 밖을 당기니 활짝 열고 맞아들이는 견고한 합일의 연못 눈물겹게, 붉다
*명옥헌(鳴玉軒): 전남 당양군 소재. 조선중기 오이정이 세움.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옥구슬소리 같다하여 명옥헌이라 함 **자미성(紫微星): 자미는 백일홍나무, 배롱나무라고도 하며 하늘의 은하수를 본따 명옥헌 연못 주위에 28그루의 배롱나무를 심었다고 함.
2019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역대 가장 작은 별이 발견되다 박신우 별이 깃든 방, 연구진들이 놀라운 발견을 했어요 그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별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은 별을 발견 했습니다 그 크기는 목성보다 작고 토성보다 약간 큰 정도로, 지구 열 개밖에 안 들어가는 크기라더군요 세상에 정말 작군요, 옥탑방에서 생각했어요 이런 작고 조밀한 별이 있을 수 있다니 하고 말이죠 핵융합 반응 속도가 매우 낮아서 표면은 극히 어둡다고 합니다 이제야 그늘이 조금 이해되는군요 이 별의 천장은 매우 낮습니다 산소가 희박하죠 멀리서보는 야경은 아름다울지 몰라요 어차피 낮에는 하늘로 추락하겠지만 그래도 먼지가 이만큼이나 모이니 질량에 대해 얘기할 수 있군요 그건 괜찮은 발견이에요 먼 곳에서 별에 대해 말하면 안돼요 다 안다는 것처럼 중력을 연구하지는 말아야죠 피아노 두드리듯 논문을 쏟아내지 말아요 차라리 눈물에 대해 써보는 게 어때요 별의 부피를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둘레를 더듬는 일이죠 옥상난간을 서성거리는 멀미처럼 말이에요 여기 옥탑에서는 중력이 약해서 몸의 상당부분이 기체로 존재해요 그래요 모든 별들은 항상 지상으로 언제 떨어질지 숨을 뻗고 있는 거죠 경운기를 부검하다 / 임은주
그는 차디찬 쇳덩이로 돌아갔다 날이 선 늦가을 바람과 졸음이 각을 뜨는 순간, 탈, 탈, 탈, 더 털릴 들판도 없이 홀로 2만Km를 달려 온 바퀴엔
▲임은주 시인(필명 임은호): 경기 김포 출생.
2009년 부천 신인문학상. 2014년 월간 '시와 표현' 신인상으로 등단.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 전문가 과정 수료.
[2019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고독의 방 / 차진주
사방으로 흐르는 하이얀 잉크에 투명한 창을 내고 시를 쓴다 바람을 묶어 단단히 메어두고 그 시로 난 길에 청보리밭 청명한 내음이 입속에 오도독 씹힐 때 영원으로 가는 내밀한 계단이 나직이 나를 부를 때 그 손 잡아 여여히 흐르는 강으로 회양목을 돌아 고이 들어앉은 앉은뱅이 숲 오래된 서커스처럼 안개 같은 향이 피어 오른다 영혼을 견인하는 차 야곱의 사다리 스톡홀름 증후군 콰지모도 콤플렉스의 아가씨들 영원을 향한 길목에서 자유를 찾은 소녀들의 밤 인생의 복락 삶의 뒤안길 수를 셀 수 없는 생의 명과 암 시간을 잊은 고독의 방 파두의 라틴어 원류가 깨어 있는 영혼으로 침묵을 두드리며 춤을 춘다
아서라, 영겁의 향기 부처님 자비가 고독을 빛으로 가득 채운다
2019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구릉 / 강대선
아가미를 버들가지에 꿰인 메기가 탁자에 앉아 있다
2019년 영남일보
이름 / 서진배
엄마는 늘 내 몸보다 한 사이즈 큰 옷을 사오시었다
2019 문화일보
마지막 할머니와 아무르 강가에서 /조온윤
2019년 강원일보 –측백나무 울타리 / 송연숙
누가 아무도 없는 벌판에 측백나무 울타리 세워놓았나 안쪽도 바깥도 없는 그 울타리 드나들며 나는 안쪽에서 바깥을, 또 바깥에서 안쪽을 넘겨보거나 내다보곤 했다 또 아주 오래전 허물어진 옛집을 수습해서 울타리에 기대 놓았다 그럴 때면 앞마당과 뒤란이 저희들까지 순서를 정하곤 하였다
집을 품지 않은 울타리는 울타리가 아니어서 벌판에서 벌판으로 몇 천리 가면 기차가 떠나는 간이역이 있고 또 어느 쪽에서 몇 시간 동 안 그 기차를 타고가면 어리둥절할 양떼들이 있다 양들에게 측백나 무 울타리에 관해 물으면 예전 자신들이 구름의 일족으로 흘러 다닐 때 언뜻 본 것도 같다는 말을 하였다
측백나무 울타리에 오래전에 무너진 집을 다시 세운다 거미는 아침이슬로 기둥을 세우고 처마도 만드는데 머리가 먼저 이슬에 들어가 집을 짓는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둥근 배마저 이슬의 방을 하나씩 차지한다
안쪽도 바깥쪽도 없는 집 순서도 모서리도 신음도 만들지 않는 집 측백나무 울타리엔 거울 하나 둥실 매달려 있다
2019 경상일보
광고(廣告) / 김길전
파라킨사스 너는 뼛속까지 시린 밤에도 쇄골을 드러낸 가난한 여인의 입술에 걸린 광고 가진 것이 그저 빨강 밖에 없네요
추운 것들은 늘 번지려는 색 뿐이에요
낡은 예식장이 생각과 모자를 바꿔 장례식장이 되자 눈이 많이 내리고 대기하던 사람들이 죽었어요 간밤 그 신장개업의 담벼락에 어지럽게 나붙은 광고 생고무 신발 재고 정리 새 신발 신고 가세요
추운 것들은 늘 발이 젖어요
몸 전체로 광고인 갈치는 나무 상자 위 값이 치워진 나부처럼 누웠어요 그 은빛 몸을 쓸어 간을 보는 시선에도 동그랗게 뜬 눈
추운 것들은 늘 눈이 커져요
광고는 붉은 과장 광고는 춥고 따스함의 의도적 대비 광고는 움츠리는 불빛의 촉수
추운 것들은 언제나 끝에 있어요
오늘 파라킨사스는 눈 속에서도 드러낸 가슴이 너무 붉고 몇 낱알 쌀을 물고 누운 자는 신발이 없어요
단지 겨울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모두 돌아섰네요
타인의 추위를 수긍하지 않는 이들의 등 뒤로 드러냄이 참 스산한데요
2019년 경인일보 숲에서 깨다 / 하채연
등을 받치고 잠들었던 나무기둥에서 새벽이슬 냄새가 훅 끼쳐온다 사방에 울울창창하게 뻗은 녹음들 현시를 잊은 채 창공에 닿아 빛나고 꿈결처럼 말을 거는 선선한 바람에 나는 나무들이 지어놓은 미몽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새소리로 엮어놓은 문패를 열고 들어가자 억겁의 땅으로부터 솟은 나이테의 내력이 기둥을 키우며 나의 발목에 작고 푸른 원주를 새기고 육신과 나무, 나무와 육신 사이를 비집고 난 샛길 사이로 와본 적 있는 것만 같은 울렁이는 향수가 지천에 빛난다 목피들이 전생을 벗겨내는 소리가 알싸한 그 길목에선 곤줄박이 한 마리가 잎새 한 장을 전해준다 해독할 수 없는 이끼들의 필체로 쓰인 문장들 지워지지 않을 나의 태곳적 이름을 발설하고 있다 무한한 혈맥으로 엮인 나무 그늘 속 편안히 누워 흙이 된 이름들을 짚어본다 끝없이 이어져 불거진 이 뿌리들은 나를 이어주는 끈이었을까 억겁의 계절을 지나도 숨 쉬는 숲은 태양과 달을 이고 은빛 땀을 대지로 흘려보내고 나는 한 장의 연서를 쥐고 숲에서 깬다 뒤돌아보면 푸른 절경이 등허리에 축축하다
2019년 매일신문 사과를 따는 일/ 권기선
나는 아버지 땅이 내 것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런 마음을 먹은 뒤부터 아버지 땅에 개가 한 마리 산다 깨진 타일조각 같은 송곳니는 바람을 들쑤신다 비옥한 땅은 질기고 촘촘한 가죽의 눈치를 살피다 장악되고, 과잉되다, 갈라진다 아버지는 땅을 방치하고, 나는 그것을 납치한다 깊은 목젖을 끌어올려 목줄을 뜯은 늙은 개가 간신히 사과 하나를 놓고 엎드렸다 세상 혼자 짊어지려던 남자는 무게를 견디다 어깨가 굽었다 힘은, 무기의 정차역 같았다 엎드린 개가 일어서지 못하고, 사과는 지하의 고요한 관棺을 기억해낸다
아버지 땅에 몰래 사과나무 한 그루 심은 날 그해 사과는 한 개도 달리지 않았다 아버지 땅이 내 땅 되던 날 나는 사과나무 아래 아버지를 묻었다 병 걸린,
아버지를 먹고 자란 사과나무
붉은,
사과 따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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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원기자
[2019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원기자
기도
일면식도 없는 햇살이
평화의 소녀상 앞에 십자가로 세워집니다
아무도 보듬어주지 않는 상처를 온몸으로 끌어안은 할머니가
외줄 위의 어름사니처럼 아슬아슬하게 넘어갑니다
헐렁한 약속을 꿰어보자고
옷고름 풀고 앉아 빈 하늘에 보내는 침묵을
귀 세워 듣는 이 없네요
열세 살 어린 꽃송이
군용트럭에 실려 어둠의 터널로 들어섰지요
속살 드러낸 허공이 이제 막 달거리 시작한 꽃잎으로
휘파람을 불며 달려들던 밤에는
비린내가 사라질 때까지 노래를 불렀지요
그 노랫소리 배경삼아 스스로 껍질이 된
한 여자의 붉은 생, 반듯한 체면을 따라가면
목숨처럼 그러안은 기도가 쏟아집니다
인생이란 단막극을
주연으로 살아본 적 없는 몸, 숨이 멈추면
“미안합니다”
듣고 싶은 그 말 한 마디 염원으로 남기고
십자가 꼭대기 푸른 하늘에 한 줌 햇살이 되리
[당선소감]
김군자 할머니의 영면 소식이 전해지던 날
햇살보다 더 환한 모습으로 수요집회에 모인 학생들이
십자가처럼 오랫동안 평화의 소녀상 앞을 지켰습니다.
낙엽 같은 당신이 눈에 밟혀 낮선 기억을 더듬어봅니다.
그날의 슬픔이 오늘 이렇게 큰 기쁨이 되어 부메랑처럼 날아오다니, 꿈만 같습니다.
어린시절 목이 긴 양말을 문고리에 걸어놓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던 것처럼 우편물을 보내놓고 짧은 오침 시간에도 전화기를 꼭 쥐고 얕은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당선 전화를 받고 히죽히죽 웃으며 거리를 걷는데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선물처럼 다가섭니다.
허리가 휘도록 자식들 뒷바라지한 어머니, 당신의 거친 손마디가
한없이 그리운 날입니다 당신 딸이 시인이 된 것을 알면 두 눈 가득 눈물 글썽일 어머니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행복하시길 기도할게요.
처음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적어 보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제 글이 미흡하여 그분들께 오히려 상처가 되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큰 상을 받게 되어 기쁘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듬직한 남편, 사랑하는 딸들
늘 엄마를 자랑스럽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살아가면서 힘든 일도 기쁜 일도 두 손 꼭 잡고 웃으면서 함께 가보자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원님, 영주일보 사장님과 관계자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영주일보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뚜벅뚜벅 걸어보겠습니다.
원기자_강원도 둔내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수료
[시 부문 심사평]
좋은 시 한 편에 가닿기까지 숱한 절망과 좌절의 고통을 겪어야만 되는 것 같다. 응모 된 천여 편에 가까운 시를 읽으면서 시를 향한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띄는 한 편을 찾기 위해 정성스레 세세히 살피면서 읽어 내려갈수록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유행처럼 번져 식상 단계에 다다른, 새로운 감각을 만들려는 시도는 엉뚱한 단어와 억지스런 문장으로 조립된 시들로 넘치고 있었다. 마땅한 자리에 적확히 놓인 단어를 통해서 우리의 생각은 구체화 되며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게 된다. 생각의 구체화를 통해서 다른 생각으로의 이행 혹은 비약, 깊어지면서 새 길을 찾을 때 우리는 그러한 시에 매료되는 것이다.
심사자는 고심 끝에 최종 세 편으로 압축해서 살폈다. 「분보후에」를 쓴 송종철의 시선은 현미경처럼 정밀하다. 사물을 세세히 묘사하는 솜씨 또한 놀라웠다. 응모된 다른 두 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응모된 작품이 세 편뿐이라서 그런지 세 편 모두 시의 소재가 낯선 것들을 다루고 있다. 소재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다. 당선작으로 해도 무방할 것 같아 손에서 놓기가 아쉬웠다. 고영숙의 「나를 낳아주세요」는 언어를 비틀어 이미지의 신선함을 이끌어내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원기자는 「기도」 외 두 편의 시를 응모했는데 진부한 주제와 제목이 눈에 거슬렸다. 그러면서도 다시 읽게 하는 힘이 있었다. 우리 주변의 인물들에 대한 시인의 속 깊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웃의 비극적 삶에 대해 무관심했던 우리의 시선을 공동체의 삶 속으로 끌어 들이는 울림이 컸다. 그렇다고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어 시적 미학을 놓친 것은 아니었다. 2019년 벽두에 원기자의 발견으로 우리 시단이 조금은 더 풍요로워지길 바란다.
심사위원 김성주 시인 대표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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