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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5월 산불방지기간이 해제된 5월15일에 설악산에 간 것이 마지막인 것으로 기억된다. 몇 달 쉰 것으로 생각했는데 꽤 긴 기간 산행에 참석치 않았다고 하니 다소 놀라웠다. 정기산행 불참 기간이 길어진 것은 5월 이후 9월까지는 산 보다는 물을 즐기는 나만의 취미 때문이고 9월 이후부터는 날씨가 스산, 쌀쌀 해지면서 아침에 길을 나서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각설하고 4월부터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산행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까페에 조계산 산행 참가 의사를 밝혔다. 공지에 알대장이 금요일에 먼저 간다는 말이 있어 ‘아 남쪽 땅에서 실컷 포식하겠구나’ 싶어서 금요일 출발의사를 밝히고 잔뜩 기대를 가졌으나 성원이 안되어 금요일 출발은 무산되어 버렸다.
토요일 아침 6시30분 정각에 약속장소인 교대역 8번 출구에 나갔다. 나이 들면 아침 잠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지하철 계단 위에서 낯익은 목소리들이 들린다. 회장님, 컴불선배, 이희용선배, 강만석선배, 마포나루선배, 알대장. 참 아침잠도 없으셔. 일찍도 나오셨네.
선배들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예상인원은 8명. 한명이 보이지 않는다. 뒤늦게 산행의사를 밝히신 사니선배가 보이질 않는다. 얼마간 기다리다 기흥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마포나루 선배 차에 네 분이 먼저 떠나고 조금 있다가 사니선배와 합류, 알대장차에 회장님, 사니선배, 알대장 그리고 나까지 해서 출발한다. 그때가 6시50분. 오기로 한 오솔길이 몸이 안좋아 빠졌다. 이른 시간인데도 고속도로엔 제법 많은 차들로 붐빈다. 조금만 늦게 출발했으면 정체를 피할수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인 행락철이 시작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기흥휴게소에 도착, 라면과 우동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승주를 향해 달려갔다. 고속도로 주변의 산야는 바야흐로 봄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지기 시작한 벚꽃들이 도로주변에 만개하고 있었고 멀리보이는 산들엔 연초록 신록과 어울려 절로 탄성을 짓게 할 만큼 우리 눈을 홀리고 있었다. 특히 정읍을 지날 때 멀리 내장산의 산세와 이어진 연봉의 모습이 운전대를 잡은 알대장의 주의를 자꾸만 흐려놓아 동승한 세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알! 운전자는 앞만 보고 가는 거야. 경치는 승객에게 맡기라구. 아직 세상에 할일이 남았는지 여러 번의 아슬아슬한 고비를 무사히 넘기며 승주 IC를 지나고 전라도 남쪽에 이렇게 깊은 산골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산속 도로를 지나자 어느 순간 갑자기 그림 같은 전망이 눈에 들어온다. 낙안읍이다.
낙안재 (내가 임의로 붙인 이름임)에서 바라보는 낙안은 지금까지 지나온 길이 답답할 정도의 굽이굽이 산길이어서인지는 몰라도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탁트인 전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첩첩으로 이어진 산들이 마치 성벽처럼 지켜주고 있는 분지형 지세였다. 낙안읍성의 역사적 유래는 전혀 모르지만 아직도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이렇게 천혜의 요새 속에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두당 2,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낙안읍성은 1.8Km의 성으로 둘러싸인 성안마을이다. 초가집들이 옛 모습대로 재현되어 있었고 또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무척 더웠다. 12시가 넘었고 아침도 부실했기 때문이었는지 일단 점심부터 먹자고 다들 아우성이다.
낙안읍성 내에 있는 음식점들이 여타 관광지와 달리 음식이 매우 좋다는 알대장의 말도 있고 해서 잔뜩 기대를 하고 갔는데 여러 선배들 앞에서 낯이 뜨거울 정도로 값에 비해서 음식의 질과 맛이 너무 형편없었다. 같은 남도 출신으로서 몹시 부끄러웠다. 사실 이번 산행은 산도 산이지만 순천이니 벌교니 해서 맛있는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초장부터 기대가 어긋나고 말았다. 그러나 시장이 반찬인지라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먹었다.
이상한 복분자 막걸리를 반주로 해서...(나중에 이 기괴한 막걸리로 인해 여러 선배가 고생하게 된다) 낙원읍성 관광코스를 어디로 정할지 선배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여 고성이 오가기 일보직전에 타협을 봐 성벽 길을 따라 딱 1/2 만 돌기로 하였다. 4월인지 7월인지 모를 정도로 날씨도 더웠고 햇볕은 한여름 그것이었다. 식사와 관광으로 시간이 지체된 것 같아 산행을 서둘렀다.
알대장 차에 올라타 낙안을 빠져 나오려는 데 전화가 울린다. 마포선배다. 덮다고 차에서 쉬었는데 그만 문을 열고 오래 자는 바람에 밧데리가 방전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 모두는 카센터 차가 올 때까지 주차장 잔디밭에서 오랜만에 중.고생 학창시절로 돌아갔다. 100원짜리 동전던지기 내기를 했다. 정상 던지기 자세가 싫증나 거꾸로 던지기를 하는 등 깔깔거리며 놀았다. 우리는 30분 동안 십대로 돌아가 있었다.
선암사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가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 주차장에서 선암사로 가는 길은 옆에 계곡이 있고 숲도 좋아 산책길로는 더없이 좋아보였다. 우리는 그 유명한 승원교(아치형 돌다리로 승주하면 떠오르는 문화재)를 배경으로 가장 사진발이 좋다는 계곡 아래로 내려가 기념사진을 찍었다. 승선교 뒤 정자(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가 나오는 위치다. 오랜 가뭄으로 계곡물이 적은 것이 아쉬웠다.
선암사 경내로 들어섰다. 석가탄신일이 가까워져서인지는 몰라도 연등들이 줄지어 설치되어 있고 이곳저곳에서 불사가 진행되고 있어 다소 소란스런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희용 선배의 해박한 설명이 있어 산행이 아닌 문화재 답사 여행 같았다. 선암사는 태고종(? 천태종인지 헷갈림)의 본산이고, 이승만 정권 시 일어난 비구, 대처승 갈등 속에서 대처승들이 온몸으로 지켜낸 절이란것도 처음 알았고 아직도 선암사는 대처승들의 본산이라는 사실에 적지 않게 놀라웠다.
선암사의 유명한 해우소를 몸으로 체험했고 사찰 내 여러 건물들도 이 선배의 구수하고 자세한 해설 속에서 구경하다보니 제법 머릿속이 채워진 듯도 했다. 마포나루 선배는 산행대신 선암사 경내 관광을 더 하고 송광사에서 합류키로 했다. 갈길은 멀고 시간은 없어 아쉬움 속에 선암사를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희용선배가 선두에 섰다. 선배는 두툼한 외모와는 달리 놀라운 속도로 가파르게 치솟은 비탈길을 거침없이 차고 나갔다.
한 십오분 쎄게 오르니 삼거리가 나왔다. 낙안읍성에서 마신 그 복분자 막걸리 때문인지 철이른 무더위 때문인지 몰라도 땀이 무척 많이 난다. 컴불선배는 거대한 민생고를 해결키 위해 숲속으로 사라졌다. 강만석선배, 알대장은 막걸리와 무더위로 초장부터 탈진하신 회장님을 보필하느라 저만치 떨어져서 오르고 있다. 쉬고 있자니 오른쪽 길에서 노부부가 내려온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온 길로 절대 가지 말라고 극구 만류한다. 바위길이 너무 험해 오르기가 위험하단다. 이정표 상으로 좌로가도 장군봉, 우로가도 장군봉이고 거리도 같게 표시되어 있어 왼쪽 길을 선택했다.
계속되는 비탈길, 강렬한 햇빛과 30도가 가까운 더위, 막걸리 후유증이 겹쳐 나를 포함 여러분들이 쉽게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다시 30분쯤 오르니 산 칠부 능선쯤 시원한 바위샘이 나왔다. 모두들 물을 마시며 잠시 쉬어가는데 회장님은 사색이 다 된 표정이다. 산악회 사상 처음으로 중도하산의사를 밝히신다. 이 더위에 저 몸 상태로 계속 가다가는 큰 탈이 날성싶어 모두들 걱정스런 목소리로 일찍 내려가실 것을 권한다. 알대장이 회장님을 모시고 내려가 나중에 다시 송광사에서 합류키로 결정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발길을 재촉했다.
한참을 오르니 능선에 다다랐다. 제법 널찍한 공간에 안내도와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고 벤치도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송광사까지 가기에는 시간상으로 무리인 것 같아서 우리는 가야산 제2봉인 연산봉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연산봉 코스를 택하기까진 그냥 보리밥집코스로 내려가자, 아니다 장군봉은 오르지 못했지만 연산봉에는 올라가야하지 않겠느냐 하고 의견이 둘로 나뉘었으나 이희용선배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연산봉 코스를 택하기로 결정했다.
한 30여분 땅 밑만 보고 오르니 어느덧 연산봉 정상에 도착했다. 연산봉에 올라서 사위를 살피니 역시 올라오기 잘했다는 탄성이 쏟아졌다. 고도가 높아서인지 봉우리까지 봄은 올라오지 못했으나 부드러운 산세의 가야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왔고 멀리 남해안의 섬들이 구름에 가려 보일락 말락 하였다. 가야산 정상은 철쭉(인지 진달래인지) 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철쭉이 만개하면 그야말로 장관일 것 같았다. 철쭉 필 무렵 언젠가 꼭 다시 오고 싶었다. 우리는 대문사진을 위해 연산봉 표지석 주위에서 포즈를 취했다.
하산길을 서둘렀다. 송광사로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와는 달리 계곡이 깊었고 활엽수 대신 소나무와 대나무가 많아 보였다. 지친 몸으로 송광사 경내에 섰다. 송광사는 우리나라 3대 사찰답게 그 규모가 엄청나 보였다. 다시 이희용선배가 예의 해박한 불교지식으로 이곳 저곳의 경내 건물들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송광사는 규모는 장대했으나 최근에 중창되어서 인지 고풍스런 맛은 없었다. 법정스님이 송광사에서 공부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부처님의 말씀이 장광설이고, 모 기독계열의 신문사가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불교용어를 기사에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무지 애를 쓰고 있다는 말에 고소를 금치 못하였다.
송광사 주차장 입구에서 미리 와서 기다린 회장님, 알대장과 합류하였다. 애초 벌교나 순천의 이름난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으나 거리가 너무 멀어 송광사 입구에 줄지어 있는 식당들 중 벌교식당을 골랐다.
관광지내의 음식점이라 께름칙했으나 차려진 음식을 맛보고 모두들 맛이 일품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잔 두잔 기울이는 술 잔 속에서 선후배들이 나누는 정담과 웃음소리가 봄기운 완연한 송광사 계곡 밤하늘위로 건강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첫댓글 송광사, 선암사를(사실 조계산보다는^^) 이번에는 꼭 가 보려나 했는데, 많이 아쉽습니다. 경미하게 있던 감기 몸살 기운이 하필 그날 새벽 심해져서리...사진들 보니 정말 더위가 훅 느껴지네요. 거의 1년만에 참가하신 산행기라 그런가, 왕눈 형의 정성과 노고가 느껴져요....^^
이번 산행 또는 관광여행에서 기억나고 느꼈던 다섯가지...1. 하루 운전 9시간 830Km 정말 대단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넓은[?] 나라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 2.선암사에서 본 마치 카네이션을 송슬송글 묶어놓은듯한 벗나무 정말 예쁘던데요 3. 자동차 배터리 방전으로 인한 20분 시간 떼우기용 이벤트 동전던지기 ㅎㅎㅎ OB나서 다시 던졌는데 막판에 홀인원 했습니다. 4. 송광사의 엄숙하고도 고색창연한 모습과 분위기 그리고 향기... 다시 한번 가야겠구요 5. 끝으로 저 멀리 조계산이나 고속도로 주변의 들녁에는 봄이 오는데 아직도 대한민국엔 봄이 오지 않았다는 춘래불사춘!!
오랜만에 왕눈 후배의 구수한 글을 대하니 지리산 에피소드가 떠올라 웃음이 절로 나네. ㅎㅎㅎ송광사는 한 번 가고팠던 곳인데..... 인복 언니, 중도하산을 하시다니 무쟈게 힘이 드셨나봐요. 어머님은 어떠신지 염려되네요. 어째 컴불은 몸이 쫌 늘은 거 아녀? 난 8키로 정도 빠졌걸랑. 바지가 다 헐렁해. 30대로 보인다는데 마음은 20대랑께.ㅋㅋㅋㅋㅋ
반갑다.헬렌아! 8키로가 빠졌다니 대단타.부단히 노력해서 서울에서 볼 때 요요현상 운운하지않기다.기왕이면 캐나다에서의 사진도 카페에 올리기라.
메일 주소 확인하고 연락 드려야지 맘만 먹은 지 어언 몇 달... 어떻게 지내고 계신 거예요? 이번주나 다음주쯤 부모님 산소에 가려 하는데 선배님 안계신 경주는 왠지 허전하군요.
음, 이래저래 바쁘게 지내. 글고 아들이 한글 자판 있는 낡은 컴퓨터를 팔고 좋은 걸 새로 샀거든. 문제는 내가 자판을 못 외우니 불편하다는 거. 여름엔 비자를 연장해서 12월 초에 갔다오려고 해. 망년회때는 볼 수 있을거니깐 건강히 행복하게 지내자.
왕눈 진짜 수고했다. 몇가지 오자만 빼면 가야산(조계산), 마포 차 방전은 잠잔 게 아니라 에어컨 켜놓고 가서 그랬자나. 점심 먹으러 같이 갔는데 웬 잠? 그리고 정자 이름은 강선루...아, 성질 내지 마. 기껏 썼더니 트집만 잡는다고...그게 또 다른 재미자나..암튼 오랜만에 쓰니 그래도 말발 좋다. 수고!!! 헬렌,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 울엄마는 최근 간단한 수술 뒤 회복중. 이번주말 퇴원예정. 그날 정말 이상하게 힘들어서 토할 것 같아서 더 못올라갔음. 한참 쉰 다음에 알이랑 조금 더 올라갔다가 하산. 너무 더웠고, 옷도 잘못입었고(겨울 옷) 등등...최악의 컨디션이었어. ㅠㅠㅠ
저는 탐구정신이 투철하신 왕눈 형이, 해인사까지 들러 오신 줄 알았어요....거푸 가야산이 나오길래....ㅎㅎ 컨디션도 안 좋으신데, 저의 갑작스런 '병환'으로 임시총무 보시느라 욕보셨어요..^^
왕눈이가 떳다 하면 항상 숨은 비밀 하나씩이 꼭 있다.오자도 왕눈이의 오자인지 우리회사 여직원의 오자인지 밝혀봐야 알 문제.^.^
이건 또 무슨 소리? 왕눈이와 여직원이 얽혀들지? 혹시 왕눈이가 구술한 것을 여직원이 타이핑했다는 건가?그리고 컴불 형님 문장의 맨 마지막에 '밝혀봐야 알'은 또 뭐지? 그리고 왕눈이 정말 고생했다.씨 어쩌구 하면서 그 큰 눈망울 굴리며 컴퓨터 자판 응시했을 것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돈다.ㅋㅋ
장군봉과 연산봉, 그리고 그 두 봉우리를 잇는 능선 모두가 철쭉으로 가득했습니다. 꽃이 피면 보기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들 반가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