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요를 불멸의 법등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봤습니다만,
오늘 아침에는 출근길에
일본어의 '방심'이라는 단어 역시
불멸의 법등과 연관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어로 '방심'은 '유단(油斷)'입니다. 기름이 끊기는 것이 곧 방심입니다.
방심을 하면 기름이 끊긴다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양의 기름을 더해줄 때
비로소 불멸의 법등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올 수 있습니다.
법등이 이어진다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제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스님이 두 분 중의 한 분이 단 하루라도
"에이, 오늘은 감기 기운도 있고 하니
그냥 더 누워있자.
어제 아침에 넉넉히 넣어주었으니까 내일 아침까지는 잘 탈 수 있을꺼야."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봅시다.
이게 방심 아닌지요?
뭐, 별 일 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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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곧 기름을 안 넣게 되고 불이 끄지겠지요.
"유단시데와 이께마센"(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유단을 많이 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안전불감증이라는 말도 나오지요.
지금도 우리는 어디선가 '유단'하지는 않는지요?
그러고 보니, 이 '유단'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설마'라고 옮겨도 좋겠네요.
"유단시떼와 이께마센"(설마,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설마' 하는 사이에 불은 끄지고 말 것입니다.
불이 계속 타올라야 한다고 믿는다면
설마 하지 말고
'자요'를 외쳐야 합니다. 실천해야 합니다.
히에이잔 1300년 불멸의 법등은 다행히
그렇게 유단하는 스님이 없어서 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