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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아야꼬 빙점(氷点)의 시발점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에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차린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비록 작은 구멍가게이지만 최선을 다해
물건의 구색을 갖추어놓았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친절을 다했다.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조금씩 물건을 들여놓던 가게는 트럭으로 물건을
들여놓아야 할 정도가 되었다.
수입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여건도 좋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남편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 가게가 이렇게 잘되는 것은 좋지만 주위
다른 가게들이 우리 때문에 안 되면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보면 엉뚱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사를 하는 이유는 물건을 팔기 위해서이고
보다 더 많은 물건을 팔기 위해서라면
주변의 가게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인은 남편의 말을 엉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습게 여기면서 무시하지도 않았다.
여인은 남편의 말을 실천하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여인이 먼저 한 일은 물건의 구색을 갖추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히 손님이 찾는 물건이 없을 때가 많았고
그렇게 되면 여인은 손님을 다른 가게로 안내하였다.
손님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여인은 손님이 줄고 수입이 적어지는 것을 보면서
속상해 하지도 않았고 남편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다만 남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에
그 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틈이 날 때 썼던 글을 모아 책을 출간하였는 데
그 책이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유명한 [빙점]이다.
미우라 아야꼬라고 하는 일본 여류작가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손님을 다른 가게에 양보한 것이
커다란 행운을 가져온 셈이라고 할 것이다.
『빙점』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병원 원장으로 있던 스지구치의 아내인 나쓰에는 병원에 근무 중인 젊은 의사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고 세 살 난 딸아이를 밖으로 내보낸다. 이 작은 일로 인해 아이가 유괴되고 결국엔 죽음에 이르게 한다. 그와 동시에 간통의 현장을 목격한 남편은 아내에 대한 심한 배신감에 어린 여자아이를 입양하여 기르자고 한 아내의 요청에 범인의 딸을 데려다 기르기 시작하며, 이들의 내부 갈등은 시작된다. 요코라고 이름 지은 딸에게 온갖 정성을 쏟는 아내 나쓰에, 겉으로 가정은 다시 화목해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요코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남편 스지구치의 서재를 청소하던 중 그의 다이어리에서 떨어진 한 종이 메모지에 적힌 요코의 신분을 안 나쓰에는 남편에 대한 심한 배신감과 친딸 로리코를 죽인 살인범의 자식인 요코에 대한 애증이 뒤섞이게 된다. 그때부터 요코에게 마음을 닫아버린 아내 나쓰에. 요코는 갑자기 변한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알고 모든 상황을 묵묵히 이겨낸다.
세월이 지나 요코에게도 오빠 도루의 친구인 x군이 사랑을 고백해오고, 나쓰에는 요코가 그런 훌륭한 집안의 자제와 결혼하는 것이 못내 못마땅해 결국엔 요코가 자신의 친딸인 로리코를 죽인 범인의 딸임을 폭로하고 만다. 자신에게 범죄자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안 요코. 어떤 환경적인 어려움도 다 이겨낼 수 있었고 그런 이유들로 자신이 죄를 짓기를 거부하며 살아왔던 요코에게 범죄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본질적인 죄의식은 요코를 자살로 내몰고 만다.
로리코가 죽었던 그 강가에서 자살한 요코. 그러나 진실은 요코는 범죄자의 자식이 아니었던 것. 진실이 밝혀지며 나쓰에와 스지구치는 죄책감에 절규하고.
요코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쓴 스지구치. 이 글의 마지막은 요코가 살아날 거라는 희망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며 끝을 맺는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은 대충 이런 이렇다.
주인공은 우연히 자기 자신이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커다란 충격을 받고 자기를 낳은 어머니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마음과 또 자신의 출생의 비밀로 인하여 삶의 의욕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그래서 끝내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기로 결심하고 어느 추운 겨울날 눈 덮인 언덕길을 오르게 된다.
드높은 언덕에 오른 주인공은 하얀 눈길 위에 남겨놓은 자신이 걸어온 발자국을 한번 바라보게 된다. 자기의 발자국을 보는 순간 분명히 자신은 똑바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앞만 향해서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눈 위에 나 있는 발자국은 비뚤어지고 흐트러진 발자국이 아닌가. 인생을 바르게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달고 자기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이 일로 인하여 그 동안 용서할 수 없었던 어머니를 용서하게 된다. 즉,『빙점』은 인간의 사랑의 한계를 보여준 소설이다.
독후감 1
일본 홋카이도 도카치 연봉을 둘러싼 분지 아사히가와는 빙점의 주무대이고 시대는 일본이 종전을 마친 1946년의 무더운 여름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빙점하면 비유적으로 몸도 마음도 싸늘하고도 차갑게 굳어져 버린 상태가 아닐까 한다. 게이조와 나쓰에라는 부부의 사랑과 질투ㆍ증오ㆍ복수ㆍ용서ㆍ화해가 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으며 일본 국민성의 특성상 왈가닥하면서도 호탕한 맛보다는 속으로 느끼고 속에서 감정이 쌓아져 카타르시스를 분출하는 그들만의 혼네도 충분히 엿볼 수가 있었다.
미우라 아야코식의 사랑과 절망, 응어리와 오해와 질투가 어른들의 심리 세계를 마음껏 이해하고 음미해 보는 인간 심리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부부는 사랑으로 맺어졌을지라도 살다 보면 외도를 할 수가 있고 발각이 되면 서로 씻을 수 없는 배신과 응어리로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헤어짐도 이어지고 맞불작전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게이조와 나쓰에는 전형적인 일본인상이라고 생각된다. 소설은 늘 하나의 사건이 크게 확대되어 진행되다 소멸해가는 불씨마냥 우리 주변의 삶을 반영한다고 보여진다.
병원장을 하는 게이조는 무뚝뚝하고 신경이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그를 내조하는 나쓰에는 겉으로는 친절하고 상냥한 성격이지만 남편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늘 도사리고 있었던 듯싶다. 게이조의 병원 안과의인 무라이와 나쓰에는 깊어갈 대로 깊어져 간 사랑의 늪에 빠지고 마는데 ,그의 딸 루리코가 죽던 날도 둘만의 만남과 대화가 일본식 목조가옥의 어슴푸레한 거실에서 진행이 되고 가족 누구에게도 사랑과 관심이 엷은 루리코는 그만 밖으로 쫓겨나게 되며 결국 사이시의 손에 의해 불귀의 객이 되면서 빙점은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사태에 빠지고 만다.
생후 1개월밖에 안된 영아를 촉탁 받아 기르던 다카키는 게이조의 친구로서 영아를 루리코 대신 키우겠다고 데려 오는데 이름은 요코이며 나쓰에는 루리코에게 못해준 사랑을 정성을 다해 쏟는데, 남편 게이조의 서랍에서 발견된 요코의 정체를 알고부터는 요코에 대해 목을 조르고, 요코가 중3 졸업식 때 답사를 백지로 바꿔치기 하는 식으로 남편에 대한 미움과 질투를 요코에게 돌리게 된다.
요코는 비록 데려온 자식이지만 밝고 예의 바르며 자신의 앞가림을 또래들보다 일찍 깨닫게 된다. 월사금을 주지 않아 그녀 혼자 우유 배달을 몇 달 다니던 모습도 친자식이라면 그리 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요코는 그런 자식을 책망하고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게 되고 어느덧 대학을 앞둔 고3이 되면서 오빠인 도루의 친구 기타하라에게도 연정을 품으며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어한다. 양엄마 나쓰에는 요코와의 관련된 것들은 참견하고 가타하라와의 관계마저 실을 끊듯 끊으려 하게 된다.
요코는 오빠 도루에게도 친오빠의 감정으로 좋아하고 오누이의 정을 나누는데 도루가 외할아버지 댁에 간 사이에 결국 사단이 벌어지고 만다. 기타하라가 요코를 만나러 찾아오던 날,나쓰에는 요코의 모든 정체를 밝히면서 그간 힘들었던 내막을 모조리 쏟아붓게 되고 요코는 삶의 진정한 의미와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딸이라는 원죄의식 및 살아오면서 느낀 얼음장 같은 빙점이 있었음을 자각하면서 자살을 결행한다. 자살은 결국 미수로 끝나게 되며 나쓰에는 요코가 살인자의 딸이 아니라는 것을 다카키로부터 새롭게 알게 되고 요코에 대한 그간의 속죄를 원없는 눈물로 푼다.
과연 인간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값진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을까? 비단 게이조와 나쓰에 같은 성격도 문제이지만 사랑을 못 받아 외도를 하고 한쪽에서는 심한 질투와 복수로 상대를 할퀴려 하는 세태가 전후 일본사회의 단편적인 인간의 일상을 스케치한 것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간은 간사하다는 점도 간파할 수가 있다.
게이조 가족이 죽은 루리코 대신 양녀로 데려와 키워왔던 요코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티를 내지 않고 살아갔던들 요코에겐 감정이 얼음장마냥 단단하게 굳어져 버린 빙점은 없었을 것이다. 요코는 회생하여 오빠인 도루와 한 인생을 멋지게 살아갔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다.
독후감 2
우린 누군가를 증오하기엔 너무도 불완전한 존재이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등장인물이 심상치 않았다. 병원 원장인 게이조의 아내 나쓰에는 안과 의사 무라이와 외도 직전이고, 무라이의 유혹에 흔들리던 그 순간 딸 루리코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 게이조는 아내에 대한 복수의 의미로 루리코 살해범의 1개월 된 여아를 입양한다. 물론 아내에게 입양아의 과거는 비밀. 게이조를 몰래 짝사랑하는 병원 여사무원 유카코는 게이조에게 '원장님의 아이를 낳고 싶어요'라고 고백한다. 게이조의 아들 도루는 성인이 되어가면서 입양된 여동생 요코를 사랑하는가 하면, 도루의 친구 기다하라도 요코를 사랑하게 되면서 묘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그 밖에도 대학 시절 나쓰에를 사랑했던 게이조의 절친한 친구 다카키, 나쓰에의 친구인 매력적인 무용수 다쓰코는 등장인물의 복잡한 사연에 예측할 수 없게 얽혀 들어간다.
어떻게 보면 꼭, 욕먹으면서 시청률 높은 3류 드라마 같다고 할까? 각 인물이 드러내는 욕망과 사랑, 증오의 감정은 무슨 막장드라마를 보는 듯한 불쾌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작품을 제대로 읽기 전까지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막장드라마가 아니다.
우선은 제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빙점(氷點). 즉, 어는점을 말한다. 물의 어는점은 0℃. 아무리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이어도 0℃보다 0.000……0001℃만 높아도 물은 얼지 않는다. 오직 0℃에 도달했을 때에 물은 얼기 시작한다. 소설에서 말하는 빙점은 '물의 빙점'이 아닌 '마음의 빙점'이다. 어떤 고통과 시련도 꿋꿋하게 견뎌내던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얼어붙게 되는지, 강인하게 살아가려던 한 인간의 의지가 어떻게 꺾여지는지,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누군가를 증오할 때에도 언제나. 작품 속 인물들은 때론 서로 사랑하고 때론 증오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불안정하기만 하다. 증오의 씨앗은 오해에서 비롯되기 일쑤이고, 그들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속삭이는 것은 상대의 행복보다는 자신의 욕망에 치우치곤 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를 입에 달고 다니고 아내의 간통을 확신하며 괴로워하는 게이조이지만, 아름답게 성장해가는 요코의 모습에서 욕정을 느끼기도 한다. 나쓰에는 무라이, 기다하라에게 품는 마음의 정체가 결국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받기 위함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요코를 사랑하는 도루의 마음은 어떠한가.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라고 확신하지만, 실제 속마음은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요코뿐'이 아닐까? 요코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신의 잣대로 가늠질하는 그의 모습은 이기적이기까지하다. 무라이의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게이조를 헌신적으로 짝사랑하는 유카코와는 달리, 무라이는 노골적으로 나쓰에에게 접근한다.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할 수 있는 그의 경솔한 태도는 '사랑'보다는 '욕망'이라는 이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이러한 그들의 사랑과 증오의 감정은 요코의 빙점인 '잠재된 죄악성'을 향해 치닫는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는 죄 없는 존재임을 자신할 수 있는가.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가. 죄 있는 우리가 누군가를 '감히' 증오할 수 있는가.
앞서, 빙점은 어는점을 의미한다고 했다. 하지만 한가지 의미가 더 있다. 빙점, 그것은 '녹는점'이기도 하다. 얼어붙은 한사람의 마음을 우린 어떻게 녹일 수 있을까? 소설의 끝부분이 ‘to be continued……'의 느낌을 준다 했더니 『속 빙점』이 있단다. 본작이 인간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빙점을 이야기하다면, 『속 빙점』에서는 그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용서하는 마음과 새롭게 세상을 볼 수 있는 소망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고 한다. 『빙점』만큼 기대가 된다.
독후감 3
죄의 가능성과 구원의 이야기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을 읽고 얼마 안 있어 연달아 읽은 소설이 『빙점』의 후편인 『속 빙점』이다. 『빙점』의 성공은 미우라 아야코를 무명의 보통사람에서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빙점』은 잘 쓰인 재미있는 소설이다. 인물간의 심리묘사나 인간 내면에 기생하는 악의 뿌리인 죄의 문제를 이정도로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담은 소설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거기다가 소설 읽기의 흥미 차원에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를 두루 갖춘 빼어난 작품이란 데 독자들은 동의할 것이다.
『빙점』을 10년 사이에 두 번 읽은 나이지만 이 작품의 후편인 『속 빙점』을 읽어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우라 아야코와 요즘의 나는 코드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작가다. 그는 젊은 시절 고뇌의 답을 신앙에서 찾은 사람이고, 그 답을 찾기까지 그가 겪은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은 너무나도 처절해서 그가 수기로 적은 『길은 여기에』의 절절한 울림은 숱한 비신앙인들을 신앙의 길로 인도했을 게 분명하다. 스물네 살 때, 군대 서가에서 우연하게 발견해 읽은 아아코의 책은 내게 인간에게 종교가 줄 수 있는 구원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빙점』은 이 같은 아야코의 신앙적 체험과 깨달음을 죄의 본질과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해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군상들을 보면,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며 또 친숙하다. 아야코가 이 소설에서 나열한 인물들은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다. 소설 속 범주가 현실의 우리 세계의 영역을 분명하게 반영한다. 등장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사건 또한 보편적이다. 이 소설의 주요한 테마는 ‘불륜’이다.
‘불륜’은 이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죄안에 갖힌 인간의 구원이라는 큰 테마를 이끌어내는 소재다. 전편에서 병원장 게이조오는 자신의 딸 루리코가 살해된 이유를 아내 나쓰에와 의사 무라이의 불륜으로 넘겨짚고, 아내에게 복수하고자 살인범의 딸 요코를 몰래 데려와 아내에게 맡아 키우게 한다. 그건 아내에 대한 들끓는 복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륜을 저지른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게이조오의 행동도 또한 결코 용서될 수 없는 잔인한 복수 심리에 불과하다. 이 사실을 몰래 알게 된 나쓰에가 요코를 구박하고, 요코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살을 감행했다. 또, 도덕적으로 깨끗함을 자신했던 요코는 부모의 사악함을 알게 되자, 자신의 핏속을 흐르고 있는 죄의 무게감에 쓰러지고 만다. 결국 요코는 마지막 유서에서 자신을 죄로부터 구할 수 있는 `권위 있는 존재'를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
『속 빙점』에서 요코는 살아나지만,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살인범의 자식이 아니라는 오명을 벗었지만, 요코는 자신의 출생이 어머니의 부정이라는 큰 오점에서 기인한 것을 알고, 어머니를 결코 용서하지 않으려한다. 큰 맥락에서 보자면 속편은 요코가 어머니를 용서하게 되는 기나긴 여정인 것이다. 요코는 때가 타지 않은 청순한 여성으로 자라나지만, 자신의 내면 속에 흐르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전혀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즉, 깨끗한 자신이 부정한 어머니를 심판할 수 있다고 여긴다. 작가는 여기서 신약성서 속 예수의 일화를 모티프로 가져온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가르침을 이어가던 어느 날, 유대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 앞으로 데리고 온다. 유대 율법에 간음한 여인은 현장에서 돌로 쳐 죽이게 돼 있었다. 유대인들이 말했다.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에 그녀를 감싸고돈다면, 예수는 율법을 어기게 되고, 또 죽이자고 하면 자신이 가르쳤던 사랑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모순에 빠지고 만다. 침묵을 지킨 예수가 군중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조용히 땅에 몇 글자를 쓴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이 글자를 읽은 유대인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작가는 예수의 일화를 통해 태생적으로 죄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고, 결국엔 죄책감으로 어둠속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인간적 한계를 지적한다. 하여,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깨끗하지 않으며 우리가 타자를 심판할 자격이 되지 못함을 드러낸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성경은 ‘의인은 없다’고 적시하고 있다. 요코는 스스로를 의인으로 생각했으리라. 그래서 어머니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알게 모르게 그렇게 순수했던 요코도 마음속엔 죄의 씨앗인 ‘빙점’이 흐르고 있었다. 빙점은 인간의 차가운 성질이다. 성경 속에서 예수는 말한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코는 자신의 죄에서 자유를 얻는 하나의 힌트를 감지한 걸까?
“요코는 기다하라에게, 도오루에게, 게이조오에게, 나쓰에에게, 그리고 준꼬에게 지금 본 불타는 유빙의 놀라운 광경을 알려 주고 싶었다. 자기의 눈앞에 생각지도 않았던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을 알리고 싶었다. 그리고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죄가 많다고 마음속으로 느꼈을 때 이상한 안식을 얻을 수 있었던 불가사의함도 알리고 싶었다.” ㅡ555쪽, 『속 빙점』의 마지막 장인 「불타는 유빙」에서
전 문화부장관이자 한국의 대표적 지성인 이어령 선생은 74세에 세례를 받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일평생 무신론을 소신처럼 여기고 살았던 지식인의 회심은 많은 걸 말해준다. 그는 왜 그 늦은 나이게 회심했을까?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절대 고독 속에서 절대자를 느꼈으며, 지상의 언어가 헛되다는 것을 50년 만에 깨달았다.” 우리의 약함과 부족함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인생임을 생각케 한다. 그 유약함이 인간의 본질이며, 그 깨달음 속의 결론이 신에 대한 경외심이며, 인간에 대한 겸손함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빙점』이 말하고자 하는 건 예외 없이 죄짓는 우리가 진정 누구에게 그 죄를 용서받아야 하며, 죄를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가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죄의 가능성과 구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앙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작가 미우라 아아꼬는 벅찬 기쁨과 희망을 불멸의 예술로 펼쳐 보이고 있는 것이다.
1. 네덜란드의 꽃밭 6. 알제리아 El Atteuf 7. 이집트 Abu Simbel rock 위 람세스II 사원 26. 쿠웨이트 Al-Jahrah 인근 사막에 있는 이라크 27. 말리(Mali)에 있는 모스크 마을 28. 요르단에 있는 원형의 관개 시설 29. 캐나다 누나부트(Nunavut) 위에 쇄빙선 ' 30. 스페인 안달루시아(Andalucia)에 있는 올리브
2. 러시아 캄차카 반도 Karymsky 활화산
3. 아르헨티나 미시오네스(Misiones)주, 우루과이강 합류지점
9. 몽골 울란바토르 외곽 유목민의 천막집 (유르트 : Yurt)
10. 뉴욕 Central Park
11. 뉴칼레도니아 보(Voh)에 있는 하트 모양
12. 이집트 Dovecote(비둘기장)
15. 바이칼호수 얼음위에 어부들
16. 이집트 아시우트(Asyut) 공동묘지
18. 스위스 제네바 부근의 휴가 마을
19. 프랑스 꼬냑(Congnac)마을 근처 농경지
20. 인도 자이푸르, 젖은 페인트 카펫을 말리는 광경
21. 칠레 모래언덕 사이에 목장과 소들
22. 남극 보퍼트(Beaufort)섬 황제펭귄 서식지
23. 코티디부아르 Kossou 호수에서 배를 타고있는 어부
24. 케냐 Nakuru 호수의 플라밍고들
25. 덴마크 코펜하겐 교외 Brondby 주거지역
탱크 공동묘지
농장
32. 파리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지역 에뜨와르 개선문
34. 그린란드 피요르드에서 아이스버그(빙산)
35. 이집트 나일강에 히아신스(hyacinth)덤블
36. 일본 후지산
38. 시리아 팔미라(Palmyra)의 로마극장
39. 이스라엘 사해(Dead Sea)에서 소금 형성 장면
40. 시리아 알레포(Aleppo)도시의 위성수신 접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