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在美親友(김병규 님)의 mail을 보냅니다.
시간관계로 새로히 정리도 못하고,
그대로 보냄을 양찰하야주세요.
부산에서 濟進 朴鑽達 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1976년부터 1987년까지)
새마음 병원을 운영하면서 430만 명의 환자를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그러니까 10·26 사태 이후 청와대 금고 속에 있던
전두환으로부터 받은 6억 원(후에 3억으로 알려짐)으로
박근혜, 그녀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청와대에서
눈물로 보따리를 싸고 나와서는 새마음 병원을 경영한 것이다.
모전여전인가?
육영수 여사의 피를 이어받은 훌륭한 사람, 박근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시에 MB 갬프에서 부동산 전문가답게
그돈으로 부동산을 구입했다면 아파트가 수십채가 되었다고 공격하였다.
부동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 답게 공격을 했지만박근혜는 그돈으로 새마음 병원을 경영하여 민초들을 구휼했다.
그래도 그들은 아직도 할 말이 있는지...
그 돈으로 뭐했느냐고 그리도 끈질기게 공격하는 것을 우리 국민들은 모두 보고 들었다.
MB 캠프의 박모와 진모...
그때 한나라당 경선유세시에 홍준표 의원이 "조의금에 세금내는 것 봤느냐"고 하여 그들을 잠 재운것도 지나고 나니 우습기도 하고 비참하기도 한 모습이었다.
박대통령이 절대 가난을 우리나라에서 몰아내고민족중흥에 끼친 지대한 공헌으로 따진다면 조의금치고는 작은 편이 아닌가?
그리도 공격을 받았건만 끝내 박근혜 본인 입으로는 새마음 병원의 선행을 밝히지도 않았다.
경선 끝나고 알고 보니 문제된 6억 원으로 새마음 병원을 경영했다고...
과연 박근혜 다운 모습이다.
<주간조선- 1988년 11월13일 대담>
■ 새마음 병원은 명지학원으로 넘어갔지요.
"87년 10월에 넘겼습니다.
76년 12월 성결교 서울신학대학 건물을 구입, 야간병원으로 시작했어요.
경로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주로 노인 분들에게는 무료로 치료해 줬고, 일반에겐 실비만 받았어요.
헌혈본부도 처음 이곳에 개설했습니다.
작년(1987년) 10월 명지학원에 넘길 때까지무료로 치료받은 사람을 따져보니까 연인원 4백 30만 명이나 됐어요.
무료진료액을 수가로 환산하면 1백억원이 넘었구요.
그렇게 무료봉사 위주로 병원을 운영하다 보니까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새로운 의료시설이나 장비를 구입하는 일이 벅차고 힘들었어요.
능력있는 사람에게 넘기면 더 잘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인데 평소에 잘 아는 유상근 선생이 이사장으로 계신
명지학원에서 인수의사를 밝혀왔어요. 그래서 넘기게 된 거죠."
■ 주로 하루 일과를 보내는 곳은 어딥니까.
"서울 능동에 있는 어린이회관의 일을 보고 있어요.
70년 4월 어머니가 설립한 육영재단의 이사장 자격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주요 일과입니다.
최근에는 어린이회관 안에 근화원이라는 한국 전통양식의 집을 지어
유치원에서 초.중.고교생들에게 우리 전통과 생활예절을 알려주는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아파트 생활을 많이 하는 탓인지 청소년들 가운데 우리의 전통예절을 모르는 아이들이 적지않아요.
1박 2일 또는 3박4일 코스로 이들에게 우리것을 가르치고 있는데,
인기가 높은 편입니다."
■ 박대통령의 비망록도 있다던데...
"아버지가 청와대에 들어오신 이후 개인적으로 메모하신 것인데,
언젠가 아버지 전기를 발간할 때 저본으로 쓰여지겠지요.
책 발간계획도 기념사업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 아까 기념사업회 발족의 동기를 밝힐 때
'해산당한 새마음봉사단' 옛 식구들이 재기해 보자는 얘기를 했다고 했는데
새마음봉사단이 해체 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80년 타의에 의해 그만두게 된 것입니다.
그만하면 짐작하지 않겠어요? 그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지금 정치인들이 너나 할 것없이 대중인기주의의 구호를 외치는
포퓰리즘 (populism)에 빠져들 있지만
박근혜는 그 당시 벌써 대중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있었지만 한마디도 자신의 선행을 알리지 않고묵묵히 불리한 경선에 참여하여 패배에 대하여도 아름다운 승복을 한 정치인이다.
자신의 이익에 대해서 결코 앞장 서서 나서지 않는 정치인.그런 정치인을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
사고뭉치, 거지발싸개 같은 싸가지없는 쓰레기 좀비들이 각종 포털에서 박근혜 전 대표를 씹고 또 씹는 주제들이 몇가지 있는데 그걸 한번 더 알아보고 바로 일러줄테니 제발 비열한 짓은 이제 그만들 하라.
위에서 언급한 6억에 관해서 한번 더 살펴보자.
10,26 사건 후 박정희 시해의 범행동기와, 범인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수사과정에 나타난 거액을 처리하면서 전두환은 박정희의 금고에서 나온 돈이고, 존경하던 박정희의 죽음으로 졸지에 고아가 된 박근혜에게 그 돈을 챙겨주는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을것이다.
그럼 박근혜 입장에서 그 돈을 받은 정황을 보자.
졸지에 고아가 된 27살 아가씨 박근혜는 아무런 실권도 없는 형식적인 퍼스트레이디 대행이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범인이 누구인지,
범행동기가 무엇인지, 경황도 없고,
자신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군복 입은 사람이 전달해 주는 봉투를 웬 돈이냐고 따질 정신이 있었겠나?
27살 먹은 곱게 자란 처녀가 그 돈이 얼마나 크고, 받아야되는 돈인지 거절해야 되는지 따질 경황이 있었겠느냐 말이다.
1996년,
역사바로세우기 재판때 김계원 대통령비서실장의 금고에서 발견된
9억 원의 행방을 물었다.
전두환은 9억 원 중 6억은 박근혜가 어려울 것 같아 박근혜에게 주었고, 1억은 합수부 조사자금으로 썼고,
나머지 2억은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에게 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6억을 받은 박근혜는 '아버지 수사에 만전을 기하는데 써 달라’며 3억 원을 전두환에게 가져와 도로 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 3억 원 중 5천만 원을 당시 노재현 국방장관에 주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그럼, 박근혜는 그 돈을 가지고 무엇을 했나?
박근혜는 그 돈으로 새마음 병원이란걸 운영했다.
76년 12월 성결교 서울신학대학 건물을 구입, 야간병원으로 시작했다.
노인에겐 무료진료를 하고 일반인은 실비로 치료를 했는데. 그렇게 무료봉사 위주로 병원을 운영하니 어떤 지원도 없이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의료시설이나 장비를 구입하는 일이 벅찰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결국 명지학원에 넘겨주고 말았다.
이게 청와대 금고에서 나온 돈의 사용처다.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그 돈으로 형제들과 먹고 살궁리를 했을지 몰라도, 공무원의 딸을 유학까지 보내기 힘들다는 아버지밑에서 가르침을 받은 박근혜가 시간이 지나고 그 돈의 용도가 무엇인지 짐작하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