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 기독교 기원에 관한 대중 스토리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논란이 많은 호주 페미니스트 클레멘타인 포드는 최근에 I Don't: The Case Against Marriage를 출간했다. 한마디로 결혼하지 말라는 책이다. 결혼이 특히 여성에게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결혼 종식’을 바라면서 쓴 책이다. 지금 내가 쓰는 이 글은 결혼이라는 이 책의 주제에 관한 게 아니다. 결혼 반대를 주장하면서 저자가 이 책 초반에 펼치는 놀라운 방식에 관한 것이다. 포드는 기독교의 역사를 개괄하여 설명하면서 동시에 교회의 도덕 권위를 무시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초대 교회 역사에 대한 포드의 무식함은 놀랍고도 실망스럽다. 그녀는 출처를 밝히지도 않은 채 확인되지 않고, 사실이 아닌 많은 주장을 펼친다. 이 글에서 나는 기독교와 기독교 윤리의 신뢰성을 훼손하려는 그녀의 주장을 팩트 체크하려고 한다.
초대교회에 관한 클레멘타인 포드의 주장
포드는 성경이 역사에 근거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글을 시작한다.
신약성경은 한마디로 전혀 확인되지 않은 보고서의 뒤죽박죽이다. 그 대부분은 거리에서나 파는 강력한 마약을 먹고 취한 상태에서 쓰인 것처럼 보인다. (21쪽)
그녀는 나아가 초대교회가 예수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기까지도 자신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그 실체를 제대로 몰랐다고 주장한다.
서기 325년경 터키의 주교들이 모여 제1차 니케아 공의회를 구성하고 기본적으로 종교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를 확립할 때까지, (사실상) 기독교의 공식적인 형태와 교리는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 (22쪽)
이걸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 교리는 자의적이다.
기독교가 자의적이기에 그 가르침은 이기적이다. 교회의 진정한 우선순위는 교리나 영성이 아니라 돈이었다.
교구민으로부터 십일조를 거두는 데에 온통 열중하는 종교로서는 웃기게도 ‘돈 버는 것’이 교회의 우선순위 목록에서 상위를 차지했다. (22쪽)
사실, ‘돈은 항상 교회의 주요 관심사였다.’ (22쪽)
포드는 오늘날 윤리 토대의 확립에 지대하게 이바지한 기독교의 영향을 무효화하려는 강력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쓰레기로 인한 피해는 과소평가될 수 없다’라고 그녀는 계속해서 주장한다(27쪽). 성경은 결코 ‘인간 존재를 좌우하는 권위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30-31쪽).
이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성경은 역사의 기록이다.
신약성경 저자들은 자신들이 역사를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누가는 복음서 시작 부분에서 이미 과거에 “많은 사람이 예수에 관한 기록을 쓰려고 시도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그러므로 그는 목격자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자신의 ‘순서대로 기록’하기 위해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조사’했다(눅 1:1-4). 일반적인 역사적 신뢰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누가는 중요한 저자이다. 저명한 고고학자 윌리엄 램지 경(Sir William Ramsay)의 주장이다.
누가는 일류 역사가이다. 사실에 대한 그의 진술은 신뢰할 만할 뿐만 아니라 … 그는 사실상 가장 위대한 역사가들과 동등하게 배치되어야 한다.[1]
비록 당신이 성경의 진리에 대해 전적으로 확신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초대교회에게 일반적인 역사, 특히 질서 있고 검증된 방식으로 예수님의 전통이 기록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는 사실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성경을 ‘전혀 확인되지 않은 보고서의 뒤죽박죽’이라고 일축한 포드는 심각한 착각에 빠져있다.
니케아 공의회가 기독교를 창시한 게 아니다.
새로운 기독교 신앙의 교리 기초는 이미 1세기에 만들어졌다. 예를 들어, 고린도전서 15:3-5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근본이 되는 교리를 개괄하여 설명하는 초기 신앙 진술로 인식해야 한다.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리 근거에 따라서 거짓 교사들을 비난하는 내용이 신약성경에 담겨있다는 사실은(예: 요일 4:1-3) 니케아 공의회가 열리기 수 세기 전에 이미 교회가 정의된 교리 경계를 유지했다는 또 다른 표시이다. 그래서 유다서 1:3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에게 단번에 맡기신 믿음을 싸우라” 촉구한다.
니케아 공의회가 소집된 건 교회 교리의 기준을 확립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주로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한 가지 구체적인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기독교의 공식 교리가 서기 325년까지 확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황당한 수준의 비역사적 과장이다.
초대교회는 돈 버는 데 관심이 없었다.
이 저자의 주장이 믿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교회 역사에 대한 슬픈 고발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을 강조하여 가르치셨다(마 6:24). 정기적으로 가난한 자의 행복과 더불어서 돈과 재물의 위험을 경고하셨다(예: 눅 6:20, 12:14). 교회가 설립된 후 처음 몇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은 거의 항상 가난하고 박해받고 소외당했다. 사도 바울은 걸핏하면 감옥에 갇혔고, 신자들은 재산을 몰수당했으며(히 10:34), 베드로는 신자들에게 고난을 견디라고 격려했다(벧전 4:12).
심지어 니케아 공의회에서도 돈 문제가 논의되었다. 성직자의 고리대금을 금지하는 결의안(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 Canon 17)이었다.
영향력과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짐에 따라 교회가 돈을 섬기려는 유혹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신약성경이 경고하는 유혹이다. 그러나 돈 문제가 본질적인 의제였다는 주장에는 전혀 근거가 없다.
이야기의 힘
클레멘타인 포드는 교회의 기원이 거짓되고 자의적이며 이기적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주장은 기독교의 도덕 권위를 노골적으로 무시한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역사와 성격을 간략하게만 살펴보아도 저자의 주장은 말 그대로 거짓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이 글을 통해서 모든 기독교 교리의 진실성을 증명했다고 하는 건 아니다. 더불어서 결혼이나 다른 도덕 문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무조건 다 옳다는 뜻도 아니다. 포드는 이 책 전체를 통해서 기독교가 승인하는 결혼을 왜 거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조목조목 열거한다. 지금 이 글의 목적은 초기 교회 역사에 대한 그녀의 비판적 설명이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아예 기독교의 시작에서부터 불신하는 그녀는 성공하지 못했다.
따라서 예수님과 그의 백성이 결코 간단하게 무시될 수 없는 무엇이라면, 그들이야말로 오늘날 윤리적 담론에 추가할 만한 가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1. Sir William Ramsay, The Bearing of Recent Discoveries on the Trustworthiness of the New Testament, p.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