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프플리온 3 - 나프플리온 성채를 보고 시내를 가로질러 해변을 구경하며 맥주를!
2024년 5월 1일 코린토스에서 버스로 미케네 Mycenae 에 도착해 옛 미케네 유적을
구경하고는 아르고스와 티린스를 지나 항구 도시 나프플리온 Navplion 에
도착해 버스 터미널에 가서 나중에 아테네로 돌아갈 16시 30분 버스표 부터 끊습니다.
이 도시는 신화상의 영웅 나우플리오스 (Ναύπλιος) 에서 따온 유서깊은 항구 도시이며
예전에는 아르고스의 세력권이니..... 제우스와 니오베의 아들인 아르고스가
도시를 창건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느데 성채에 오른후 언덕 너머 해수욕장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되돌아와서 시내를 가로지르는데.... 여기 좁은 도로변 탁자에는 점심을
먹는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며 또 붉은 부겐빌리아 꽃이 참으로 환성적입니다.
그러고는 이윽고 해변으로 나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는데.... 특이한 것은 바다
한가운데 작은 섬이 보이고, 거기 섬에 요새가 축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 한달간 터키 잔국 일주를 하면서 완전히 한바퀴를 돌았는데.... 지중해에 도착해 타르수스
Tarsus 에서 사도 바울의 집터 Antik Sehir 와 우물 St Paul Kuyusu. 에 돌로 된
성문인 클레오파트라의 문 Cleopatra’s Gate 을 보고 비잔틴시대 바울교회 까지 구경했습니다.
그러고는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달려서 “처녀의 성” 이라고 불리는 크즈칼레시 Kizkalesi 에
도착했는데..... 실리시아 Cilicia (킬리키아) 지방의 크즈칼레시 Kizkalesi 는
“역사 ”를 쓴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게오르기 Georges 라는 키프로스 왕자가 도시를 세웠답니다.
그런데 이르메니아 킬리키아 Cilicia 왕국에서는 18세가 되기 전에 뱀에 물려죽을 운명의 공주를 위해 국왕
은 저주를 비켜 가고자 뱀들이 닿을수 없는 바다 위 작은 돌섬에 성 을 짓고 공주를 보호(?) 했다고 합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공주는 무사히 18세 생일을 맞았고 국왕은 이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공주에게 선물로
과일 바구니를 보냈는데 그 바구니 안에 숨어 있던 뱀에게 물려 죽었다는 슬픈 전설 이 서린
성(城) 이라니.... 주술사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니 운명은 피한다고 피해갈수 없다는 뜻 일까요?
나프플리온 Navplion 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나브플리오스가 건설한 도시로 아르고스 남쪽 12km
에 자리하며 그리스 독립시에는 임시 수도였으나 지금은 한적한 도시인데 옛날에는 전략적 거점이라
팔라미드, 아크로 나브플리온, 부르치등 3군데 요새가 있었으며 팔라미드 성채는 아크로폴리스에 있습니다.
작은 섬에 있는 저 부르치성은 해발 216미터로 마치 바다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브플리오스
의 아들 팔라메데스의 이름을 땄다고 하니.... 팔라메데스는 트로이전쟁 에서 큰 공을
세우지만 오디세우스의 음모에 말려 죽었다고 전해지며 이 섬은 요새 내지 감옥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가서는 컵으로 맥주를 시키니 500 CC 한 잔을 가져다 주며 안주를 시키지 않앗는데도 얇게
쓴 감자를 한 접시 가져다 주기로 쟤들이 얼마나 받을지 궁금했더니 나중에 보니 그냥 서비스라 놀랍니다.
해변에서 이번 여행중 드물게 한국의 40대 후반 내지 50대 초반의 여자분 셋이 가이드 남자 한사람과
함께 레스토랑을 기웃거리는걸 보는데 나중에 멀어졌던 저 일행이 들어와 맥주에다가 연어
샐러드등 여러 안주를 시키는데 매우 시끄러운지라..... 요즘은 서로 아는체를 않는게 불문율인가 합니다?
맥주 한잔을 더 시켜 마시면서 종업우너에게 중학생때 배운 영어로 “왓타임이즈잇 나우” 라고 물으니 아직
버스 시간이 멀었기로 멍을 때리다가 다시 해안의 섬에 축성된 부르치성 요새를 바라보노라니
문득 조금 전에 아르고스와 티린스를 거쳐 오면서 보았던 만티네아 전투 중에 제 3차 전투가 떠오릅니다.
제3차 만티네아 전투는.... 제1차 마케도니아 전쟁 시기인 기원전 207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동맹
세력인 아카이아 동맹군이 로마 공화국의 동맹 세력인 아이톨리아 동맹군을 격파한 전투입니다.
기원전 208년, 한니발 바르카와 동맹을 맺고 이탈리아로 넘어가서 로마 공화국을 공략하려 했던 마케도니아
국왕 필리포스 5세는 위기에 직면했으니 이탈리아로 건너가기 위한 교두보인 아폴로니아를 공략
하기 위해 벌인 아폴로니아 공방전에서 패배한데다, 그 직후 로마가 아이톨리아 동맹, 스파르타,
메세네, 엘리스, 페르가몬 왕국을 끌어들여 사방에서 마케도니아를 공격하게 하는 바람에 수세에 몰립니다.
기원전 208년 무렵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막시무스가 이끄는 로마 해군과 아탈로스 1세가 이끄는
페르가몬 해군이 에게해를 지배했고, 아이톨리아 동맹은 테르모필레를 요새화하여 필리포스 5세가
남하하는 것을 저지했으며, 로마와 동맹을 맺은 일리리아의 스케르딜라이다스는 아들 플루라토스
3세와 함께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리소스, 아크로폴리소스 등 일리리아 내륙 영토를 탈환합니다.
필리포스 5세는 이탈리아 원정을 단념하고 지휘관과 군대를 분산시키고 여러 고지에 봉화를 설치해
적의 움직임을 자신에게 즉시 전달하도록 한 뒤 수비에 전념하면서 상황을 살피자 얼마후,
반 마케도니아 연합이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니 로마군은 한니발 바르카에 전력을 기울
이느라 발칸 반도에 육군을 보낼 여력이 없었기에 갈바는 오직 소규모 함대만 운용할수 있었습니다.
육상에서는 아이톨리아 동맹, 스파르타 등이 공세를 주도했지만, 유일하게 마케도니아 편을 들고
있던 아카이아 동맹을 제압하는 것조차 애를 먹고 있었고 일리리아인들은 자국의
영토를 탈환하는데 관심이 있었지만 그 이상 공세를 펼칠 생각은 없었고, 페르가몬
왕국은 이웃 국가인 비티니아 왕국과 갈등을 벌이고 있어서 역시 전력을 기울이기 힘들었습니다.
이때 공세를 시작한 갈바는 페르가몬왕 아탈로스와 함께 60척의 연합 함대를 이끌고 아이기나에서 렘노스로
항해했으니 아탈로스는 페파레우스를 공격한 뒤, 갈바와 함께 니케아로 건너갔고 이후 마케도니아
수비대가 점거하고 있던 우라에오스를 공격하기 위해 에우보이아로 이동하여 우라에오스를 공략합니다.
그는 뒤이어 칼키스를 공략하려 했지만 적의 방비가 생각보다 강하자 로크리스의
항구 도시인 키노스로 이동했으며 한편 아탈로스 1세는 로크리스 동부의
주요 도시인 오푸스를 점거한뒤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며칠간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이때 봉화를 통해 적이 오푸스를 공격했다는 것을 파악한 필리포스 5세가 달려왔고, 약탈품을
수집하느라 사방에 흩어졌던 페르가몬군은 제대로 된 대항 한번 못해보고 패주
했으며 아탈로스 1세는 마케도니아군에게 사로잡힐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고 바다로 탈출합니다.
마케도니아 왕국과 동맹을 맺은 비티니아 왕국이 페르가몬 왕국을 공격하자, 아탈로스 1세는 마케도니아
와의 전쟁을 중단하고 본국으로 귀환하니 갈바는 할수 없이 아이기나로 철수했고, 로마로 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기원전 206년까지 그곳에 머물며 별다른 군사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페르가몬 왕국과 로마 모두 전쟁에서 이탈하면서 여유가 생기자, 필리포스 5세는 아이톨리아
동맹에 대한 공세를 개시해 트로늄과 케피소스강 북쪽의 티트로니움 과 드리마이아를 공략합니다.
이집트, 로도스, 비잔티움, 키오스, 미틸레네, 아테네에서 파견된 사절들이 아이톨리아 동맹과
필리포스 5세가 화해하도록 중재해 기원전 207년 봄 엘라테이아에서 사절단을 만난
필리포스 5세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아이톨리아 동맹은 전쟁을 이어가기로 결의합니다.
기원전 207년, 스파르타 국왕 마차니다스가 이끄는 아이톨리아-스파르타 연합군은 아카이아 동맹의
영토로 침입하자 아카이아 동맹의 스트라테고스인 필로포이멘은 마케도니아
방식으로 육성된 아카이아 보병과 기병을 이끌고 이에 맞섰으니 양군은 만티네아 평원에서 조우합니다.
스파르타-아이톨리아 동맹군은 15,000명, 아카이아군은 15,000 ~ 20,000명이었다고 하는데
마차니다스는 좌익에 배치된 팔랑크스를 이끌고 아카이아 우익을 공격하게
하면서, 우익 부대의 대열을 길게 늘려서 아카이아군 좌익과 길이 같게 한 뒤 그들을
견제하게 했으며 또한 대열 앞에 투석기를 배치해 적 대열을 향해 돌덩이를 퍼붓게 했습니다.
적군이 투석기로 아군을 향해 돌덩이를 퍼붓기 시작하자, 필로포이멘은 일리리아 용병들에게
투석기들을 파괴하라고 명령했고 적진에서 용병들이 달려들자, 마차니다스 역시
용병을 보내 막게 했으며 양군 전체가 서로를 향해 진격하면서 전투가 본격적 으로 발발했습니다.
초기에는 승패가 판가름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차니다스의 용병들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으니 일리리아인들은 맹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패퇴했고,
아카이아군 좌익도 무너지자 마차니다스는 기병대를 이끌고 도주하는 적을 몸소 추격합니다.
마차니다스가 도주하는 아군을 쫓기 위해 전장을 이탈하는 것을 본 필로포이멘은 후퇴 명령을 내리는 대신
아카이아 보병대에게 전진해 전장을 장악하라고 명령했고, 살아남은 일리리아인, 전사 및 용병들을
끌어모아 팔랑크스 뒤에 자리를 잡아 마차니다스가 추격전을 마치고 돌아올때까지 기다리라고 명령합니다.
그 후 아카이아인들은 마차니다스의 이탈로 지휘 공백이 생긴 적의 통제되지 않은 공세를 그들 앞에 파진 넓은
도랑을 적절히 활용해 격퇴한뒤 도랑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적병들을 모조리 살육했으니 마차니다스
는 추격전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아군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서둘러 본영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전에 대기하고 있던 일리리아인 및 전사들이 마차니다스를 알아보고 공격하니 전사했으며 최소
4천명 스파르타인 및 아이톨리아인이 전사했고, 많은 병사가 생포되었으며 본영에 남아있던 보급품
과 수송 마차도 아카이아군의 수중에 들어갔으며 아카이아군의 손실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후 아카이아군은 필로포이멘의 지도하에 테게아를 공략하고 라코니카를 침공하여 황폐화 시킵니다.
만티네아 전투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접한 아이톨리아 동맹은 전쟁을 이어가봐야 소용이 없다고
판단하고 로마 동의 없이 필리포스 5세와 평화 협상을 벌였고, 기원전 206년 가을 필리포스
5세가 전쟁 중에 빼앗아간 영토가 마케도니아 왕국의 영토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국이
로마로 부터 넘겨받은 영토는 마케도니아 왕국에 돌려주는 조건으로 평화 협약을 맺었습니다.
로마는 반발하니 기원전 206년 봄 일리리아 총독으로 선임된 푸블리우스 셈프로니우스 투디타누스에게
보병 10,000명과 기병 1,000명으로 구성된 병력을 맡겨 전쟁을 재개하게 했지만 이 정도 병력
으로는 필리포스 5세를 상대하기 어려웠고, 아이톨리아 동맹이 전쟁을 재개하려는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결국 투디타누스는 필리포스 5세와 화해하기로 했고, 필리포스 5세는 디말룸 (Dimallum) 시와 파르티니
(Parthini) 는 돌려주되 아틴타네스(Atintanes) 는 그대로 지배하며, 필리포스 5세는 로마에 대한
어떠한 적대행위를 하지 않고 로마 역시 그러지 않겠다는 내용의 포이니케 협약을 맺고 전쟁을 종식합니다.
그러고는 이제 버스를 타고 아테네로 돌아가야 하는지라 레스토랑을 나와 마눌과 함께
부두를 걷는데 10척 가량의 배가 정박해 있는데 지금은 발판을 들어올리고 있지만
모양으로 보아 밤이 되면.... 관광객들을 태우는 선상 레스토랑으로 바뀌는 모양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