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을 벗어던지고 봄맞이 준비를
마쳤다.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기어이 빨간 꽃망울
을 틔어내니 동백이야말로 가장 고
결한 꽃이 아닐까.
김좌기,
사범님(전 프로기사)을 처음 뵌 것은,
바둑친구인 박기봉 사범이 부평에
서 바둑교실을 오픈 할 무렵인 19
93년경이니까 벌써, 江山이 3번 바
뀐 세월이 지났다.
당시,
동생과 함께 김좌기 사범님한테
다면기 둔 사진이 빛바랜 사진으
로 남아 있다.
1993년 김좌기 사범님(오른쪽) 나와 동생(왼쪽)
구경하는 박기봉 사범
박기봉 사범 아들 지도대국하는 최명훈 현 프로9단(뒤).
내 자식 지도대국하는 김좌기 사범님(가운데)
박기봉 사범과 최명훈 9단부친(오른쪽) 1994년 경.
그후,
간헐적으로 만나 뵙다가 서울 신림동 대일
바둑교실에서 지도하고 계실 때 자식을 데
리고 가면서 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으니,
1998년 2월 봄 방학 때다.
당시,
대일바둑교실은 김희용 원장님이
운영했는데 2층에는 200명이 넘는
원생이 있었고, 3층 작은 교실에서
재능(윤준상 현프로, 한웅규 현프로 등이
공부하고 있었다) 있는 유망주들을 김
좌기 사범님이 지도하고 계셨다.
자식을,
4학년때까지 직접 가르칠 때라, 김
좌기 사범님의 지도와 비슷한 또래
의 아이들과의 경쟁을 위해서 올라
갔던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2시50분인데 택시로 부천
역까지 간 다음, 전철로 신림역에서
내려 서울대학교 방향쪽으로 약 20
여분 걸어 올라가면 얼추 5시가 다
되어 대일바둑교실에 도착한다.
밤,
9시30분에 바둑수업이 끝나 부지런
히 부천집으로 돌아와도 밤 11시가
훌쩍 넘어간다.
너무,
멀어 일주일에 하루만 바둑 공부하
러 올라간 까닭이다.
김희용,
원장님은 누구보다 열정적인 분으
로 항상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
한다.
그런연유로,
후에 ‘양천대일바둑도장’을 운영하
여 40명이상의 프로 입단자를 배출
한 명문도장으로 이름을 남겼다.
집이,
먼 탓에 일주일에 하루만 대일바둑
교실에 올라가는 환경이다 보니 공
부량이 턱없이 부족하여, 토요일이
나 일요일 가끔 김좌기 사범님한테
실전 지도대국을 받았다.
신림역,
근방 노영하기원, 영등포 로터리에
있는 자스민 바둑센터 등에서 100
국 이상의 지도대국을 받게 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둑,
가족재능 기부행사에도 몇 년 동안
초청돼 자리를 빛내주시기도 했고,
가끔은 내가 지도하고 있는 교실에
도 오셔서 손주를 지도해 주신다.
어르신 지도대국 김좌기 사범님(가운데)
(그 옆) 지도대국하는 동생.
(그 뒤) 양지 출판사 고 김태흥 사장님
지도대국하는 박병규9단(둘째사위)
교실에서 손녀 지도대국하는 김좌기 사범님.
작년,
가을에는 내가 진행하고 있는 ‘부천중앙 새마을
금고 문화센터 성인바둑강좌 10주년’ 가을나들이에
도 참여해 회원들을 흐뭇하게 해주셨다.
왼쪽에서 3번째가 김좌기 사범님.
그런,
김좌기 사범님이, 내가 11년동안 강의
해오는 ‘성인바둑강좌’ 현장을 오셨다.
중후한,
성품을 지니셔서 회원들에게 인기 만점.
마치,
기타줄이 ‘팅’ 튕기듯, 전광석화의 행마
는 전성기 시절 그대로다.
치고받고,
이제는 수면 아래로 잦아들고 있는 상황.
구경꾼들로,
파묻힌 대국장, 감동이 밀려온다.
오래간만에,
듣는 명품강의 덕분에 이 시간은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보람된 일이기도 하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하고
복된 일입니다’
메마른,
땅에 연둣빛이 풀리는 계절.
(가운데) 11년째 성인바둑강좌를 이끌고 있는 나(가운데)
(왼쪽) 새로 임몀된 김학윤 반장님.
짧은,
만남이 회원님들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