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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도 사나 아-
김 선 구
나의 고향은 제주도 바닷가 작은 마을이다. 바닷가에 서면 바닷물의 술렁임이 내게 얘기를 걸어온다. 무심한 뜻 하면서도 내 영혼을 깊은 심연으로 인도하여 준다. 바닷물은 희 노 애 락의 감정을 싣고 있다. 기쁜 듯 출렁일 때도 있고, 성난 듯 휘몰아치기도 한다. 검고 음울한 파도 속에 슬픔을 안고 있기도 하고, 은은하게 미동하는 은파 속에는 즐거움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철따라 형상이 다른 모습으로 닥아 오기도 한다. 고향의 바닷가. 그곳에는 나에게 전해줄 많은 얘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짭짜름한 바다내음 속에서 아련하게 떠오르는 것은 ‘이어도 사나 아-‘ 하는 해녀들의 합창소리이다. 마치 물오리가 떼를 지어 호수 위를 헤엄쳐 가듯이 해녀들이 무리를 지어 먼 바다로 헤엄쳐 나갈 때 부르는 노래이다. 목청 좋은 해녀가 짤막한 사설(辭說)로 선창하면 나머지 해녀들이 뒤를 이어 “이어도 사나 아-, 이어도 사나 아-” 하고 후렴 부를 합창하였다. 해조음처럼 파도를 타고 멀리 퍼져 나갔다.
이 노래가 언제부터 제주 해녀들 사이에 전해 내려왔는지는 모른다. 생활전선에서 험한 바다와 더불어 살아야 했던 해녀들이 스스로 지어낸 노래인지도 모른다. 해녀들이 부르는 노래의 사설 속에는 한과 흥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이들의 삶속에서 느끼는 애환과 감수성을 노래 속에 깊이 담고 있다.
제주 해녀들은 언제 닥칠지 모를 사고와 죽음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바다에 나갔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부모와 형제, 자식과 남편들에 대한 절망과 슬픔을 기대와 희망으로 승화시키려는 의지를 키우고 있었다. 그래서 영혼들이 구원을 받아 ‘이어도‘로 갔다고 믿었다.
때로는 고기잡이 나갔다가 물살에 떠 밀려온 남편이나 자식의 시신을 붙들고 설움이 복받쳐서 울다가도 이내 마음을 진정하여 용왕님께, 칠성님께 제사지내는 모습으로 변했다. 이어도에 가 있어야 할 영혼들이 객귀가 되어 허공을 떠도는 것이 안타까워서 일까! 죽은 영혼을 천도(薦度)하고 이어도에 안주하기 바라는 간절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이어도는 제주도 남쪽 끝 섬 마라도에서 서남쪽에 위치한 수중 암초이다. 파랑도 라고도 불리며, 1910년 영국의 상선에 의하여 발견됨으로써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제주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전부터 이어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이들이 알고 있는 이어도는 또 다른 곳에 있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섬의 위치는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섬의 존재만은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이어도는 죽음과 구원을 동시에 품어주는 이상향의 세계로 여겼다. 한 번 도착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은 섬. 이승의 힘든 삶을 마치면 모두가 그 곳으로 가서 안식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해변 가의 아낙네들은 험한 바다를 상대로 생활을 꾸려가면서도 농사일도 겸했다.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서 땀 흘려 일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식구들이 삶을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태풍이 한번 훑고 지나가면 애써 키운 농작물들이 절단 났고 한해 농사가 허사가 되었다. 이것을 만회하기라도 하려는 듯 바다에 나가 멱 질을 하고 해산물을 땄다. 소라, 전복, 미역 등 등. 해산물은 생활에 주요 수입원이 되기도 했고 식량을 보충해 주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흔하면서 주요한 것이 미역이었다. 미역 따는 철이면 미역으로 풍성한 밥상이 차려졌다. 미역국은 밥상위에 오르는 주요 메뉴가 되었다.
해녀들 중에는 나의 어머니도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잉태하고도 깊은 바다 속을 누비면서 해산물을 채취하였다. 나뿐만 아니고 나의 형제들 모두를 배속에 품고 바다 속을 헤엄쳐 다녔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깊은 바다 속을 유영하며 진귀한 바다풍경을 경험한 셈이다.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내는 물살 가르는 소리,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깊은 숨을 몰아쉬는 휘파람소리, 바다로 나가면서 부르는 노래 ‘이어도 사나 아-’를 들으며 성장하였다. 태평양의 물결소리는 나의 태교음악이었고. 어머니가 먹었던 미역국은 내생명의 자양분이었다.
“설룬 어멍 나 설아 올적 어느 바당 미역국 먹고, 바람 불적 절 일적마다 절 국마다 날 울렴싱고!” (사랑하는 어머니 나 임신 했을 때 어느 바다 미역국을 먹었던가, 바람 불고 파도 칠 때면 물결구비마다 나를 울리는구나!)
이것은 제주 사람들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사모곡 중 한 구절이다. 온갖 시련과 풍상을 겪으며 살다 간 어머니를 잃고 나서 그리움에 부르는 노래이다. 이 가사 또한 ‘이어도 사나 아-‘와 함께 부르며 해녀들은 그들의 어머니에 대한 시름을 달래었다.
“설룬 어멍 나 설아 올적/ 이어도 사나 아- 이어도 사나 아-”
“어느 바당 미역국 먹고/ 이어도 사나 아- 이어도 사나 아-”
“...........”
지금은 기억초차 희미한 노래 가락이다. 어린 시절에는 무심하게 따라 외웠던 가사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 내용의 깊이를 더 깊게 헤아리게 되었다.
오래 만에 고향마을의 바닷가에 섰다. 건너편 해변 가에 쭈뼛 쭈뼛 높이 솟아있는 건물들 모습이 세태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개발바람을 타고 늘어서는 고층건물들이 마을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다. 즐비하게 들어선 음식점들은 손님을 맞이하기에 여념이 없다. 낯익은 사람들은 드물고, 외지에서 이주해온 낯모르는 사람들이 주인인 것처럼 마을을 차지하고 있다. 물질하던 해녀들의 모습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됐고, 지나간 세월의 흔적마저 찾아볼 길 없어졌다.
그러나 바닷가에 서면 파도소리 물결소리는 여전하다. 바닷물의 술렁임은 깊은 신음을 토해내며 변화의 아픔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 “고향의 옛 모습을 잊지 말라“고 내게 호소하는 것 같다. 저 물결 넘어에 있을지도 모르는 섬, 이어도에 나의 어머니 영혼이 안주하고 계실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나의 살갗을 스친다. 바람결 타고 들려오는 해조음 속에 “이어도 사나 아-, 이어도 사나 아-, ”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온다.
첫댓글 수필창작반 입소 초기에 섰던 '어머니의 바다'라는 작품을 제목을 바꾸고 체제를 달리하여 재 구성해 보았다. 주제는 고향이고 소재는 고향의 바다이다. 초기의 작품을 수정해 보는 것도 힘든 작업처럼 느껴진다.
“설룬 어멍 나 설아 올적/ 이어도 사나 아~ 이어도 사나 아~” 한 구절이 제주 해녀의 고단한 삶과 애환을 모두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해녀 학교의 인기가 요즘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옛날 자당께서 물질하시던 그 시절, 고단한 삶이 글 속에 녹아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 내가 그 바닷가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그러나 척박한 환경, 모두 힘들게 살아왔고 또 살아갈 앞날을 생각하며 찡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고향 제주바다의 풍경이 눈에 선한 글 잘 읽었읍니다. 물질하는 해녀들을 바라보며 억척같이 살으신 어머님의 모습을 그려보는 그 마음 이어도 사나-아 이어도 사나-아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합니다.
새로운 글로 재탄생 되었습니다. 처절하게 살아가는 선조들의 삶이 보입니다. 어머니가 가문을 일으키고 오늘이 있게 한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우리의 지난 세월, 우리부모님세대는 어디 바다 뿐이겠습니까? 민속 박물관에서 미투리를 보았습니다. 고무신 살 돈이 없어서 미투리를 신고 산에 나무하러 가는 일꾼들이 많았지요. 우리세대는 긱접보았기 때문에 지난시절의 삶의 증인이기도 하지요. 또다른 삶의 고달팟던 사연을 읽고 갑니다.
제주도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