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죄의 삯(결과, 대가, 값)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죄인은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났는데 그 죄인(옛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의인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벧전 1:3)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거듭남(다시 태어남)의 근거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 십자가에서 나의 옛 사람, 죄인이 죽고 부활 때 나의 새 사람, 의인이 태어남
위의 구절들을 합쳐서 이해해 보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우리는 영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었는데(거듭남) 그때는 죄인이 아니라 의인으로 태어났습니다. 새 사람인데 또 죄인일 리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아담의 원죄 때문에 죄인으로 태어나 죄의 본성(=죄성)을 갖게 되었던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 의인으로 다시 태어나서 의로운 본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죄성'이란 말은 있는데 '의성'이란 말은 없네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죄의 본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의의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성 자체가 아예 바뀐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보통 거듭난 이후에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죄성'은 죄성이 아니라 육신입니다. (육=육신=육체 다 같은 말입니다.) 죄성이라는 단어는 NIV가 처음 썼는데 원래 KJV(킹제임스)에서 육신이라고 기록한 것을 NIV는 죄성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육신은 말씀인 영spirit과 반대이므로 말씀에 합당하지 않은, 즉 새롭게 되지 않은 우리의 mind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우리에게도 육신이 남아 있으나, 다시 태어났는데도 본성 자체가 죄인인 것은 아닙니다.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죄성이나 육신이나 비슷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육신은 생각을 새롭게 하므로 버릴 수 있으나(육신에 대하여 죽을 수 있으나) 죄성은 본성인데 어떻게 버리겠습니까?
그런데 나에게 죄성이 있다고 믿으면(본성 자체가 죄인이라고 믿으면) 어떻게 될까요? 본성이 죄인이니까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는데 바로 죄에 해당하는 벌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대'란 언젠가는 벌을 받는다고 '예측'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예측은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이 너무 행복하고 잘 풀리면 오히려 불안한 마음이 들고, 오히려 무슨 일이 일어나서 자신이 뭔가 벌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 때 마침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저는 은혜의 복음을 알고 나서 너무나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이미 주신 복이 풀어졌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입니다.) 어떤 날에는 나에게 주신 축복들을 바라보면서 “나만 이렇게 복 받고 행복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죄책감이 듭니다. 내가 덜 행복하면 그들이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닌데 내가 나 자신을 채찍질해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하지 않기로 하신 징벌을 내가 나 스스로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우리 혼의 메카니즘을 알고 있고, 이것을 알기 때문에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죄책감 대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 하는 편이지만 복음의 핵심을 몰라서 스스로를 징벌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병이 나도 하나님이 주신 것, 코로나가 터져도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징벌을 이미 예수께서 다 받으시고 우리를 용서하셨지만 그것은 머릿속 교리일 뿐, 내 마음에서는 내가 징벌을 받아야만 마음이 편안한 것이지요. 그러니 뭔가 풀릴려고 하다가도 꺾이고 또 풀릴려고 하다가도 꺾이는 것입니다. 뭔가 잘 되려고 하고 특별한 혜택이나 복을 받으려는 순간에, 본인이 스스로 찬물을 끼얹기도 합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불행은 마음 가운데에서 하나님과 분리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의 열매입니다. 그리고 종교란 그 사망의 열매를 다루는 것이고, 신앙이란 그 원인(뿌리)을 다루어서 자연스럽게 열매가 변화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분리되었다는 생각에서 자유케 될까요? 오직 예수께서 이미 완성하신 일을 믿음으로써 하나님과 나와의 막힌 담이 완전히 허물어졌다는 것을 묵상을 통해 마음으로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구속사역을 통해 그분의 정체성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젠, 마치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실 때 가지셨던 그 마음을 우리도 그대로 가지고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을 거니셨을 때 가지셨던 바로 그 마음을 가지고 우리도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소식, 이 복된 소식을 오늘도 묵상하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