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충청북도 산 높고 물 맑은 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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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2.31. 02:23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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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높고 물 맑은 옥천
옥천의 신라 때 이름은 고시산군(古尸山郡)이며, 조선 태종 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북쪽으로 금강과 인접하고, 서쪽은 대전과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그 일대의 산천이 수려하고 깨끗하며 흙빛이 맑아서 서울의 지세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택리지』에는 “평야가 매우 메말라서 논도 수확이 적고, 주민은 오직 목화 심는 것으로 업을 삼고 있다. 이곳 땅이 목화 가꾸기에 가장 알맞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지금은 목화 대신 포도와 감 그리고 묘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옥천에 대해 조선시대의 학자 남수문은 기문에서 “산 높고 물 맑으며, 땅이 기름지고 물산은 푸짐하다”라고 하였다.
금산, 영동, 옥천을 지나는 강을 적등강(赤登江)이라 부르며 강물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른다. 경부선 철교가 보이는 이원면에 옛날 적등진이라는 나루가 있었다. 옥천과 영동 중간에 위치하여 영남지방과 호서지방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다. 추풍령을 넘고 금강을 건너 서울로 통하는 요충지였던 적등원1) 옆에는 적등루라는 누각이 있었다. 지금은 누각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서거정은 기문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옥천은 사무가 번잡한 고을로 남기의 주집(走集)이다. 서울에서 충청도로 가고 충청도에서 경상도로 가는 길목이어서 사신과 여행자들의 오가는 말굽과 수레가 날마다 서로 잇따라 있다. 군의 동남쪽 30리쯤에 속읍이 있으니 이산이라 하고, 강이 있어 넓이 수십 리에 가로질렀으니 적등이라 한다. 그 위에 원이 있고 누각이 있으니 참으로 큰 길거리의 중요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크게 더울 때나 몹시 추울 때나 모진 바람 불고 비 오는 괴로운 날에 길가는 이들이 여기에 와서 머물고, 혹은 물을 건너기 어려울 때나 길이 늦었을 때 마소가 모자라거나 도둑의 염려가 있을 적에는 여기서 쉬기도 하고, 누에 올라 구경하기도 하고 자고 묵기도 한다. 추울 때는 따뜻하게 해주고 더울 적에는 서늘하게 해주니, 사람들에게 덕을 줌이 어찌 적다 하겠는가. 그러나 건물을 지은 지가 오래되어 헐어서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적등진 나루
영남지역 선비들이 추풍령을 넘어 서울로 가던 중요한 길목으로, 적등진나루와 이원이라는 원집이 있었다. 지금은 경부선열차가 지나고 있다.
또한 이직은 “오가는 길손들이 하루에 만 명이 넘어 다투어 강을 건너는데 배는 한 척뿐, 다시 적등루에 올라 시를 지으니 갈매기도 한가로이 물 가운데 떠 있구나”라고 노래하였는데, 사실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당시 적등진에서 갈매기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적등진을 지난 물길은 옥천 동쪽에 있는 청성면에 와서 속리산 자락의 보은군 내북면 하궁리에서 비롯된 보청천 물과 합쳐지고, 서쪽으로 굽이져 흘러 금강이 된다. 적등강의 동편이 장수ㆍ무주ㆍ영동ㆍ황간ㆍ청산ㆍ보은이고, 서쪽이 진안ㆍ용담ㆍ금산ㆍ옥천이다. 장수ㆍ무주ㆍ용담ㆍ진안은 전라도 땅이고, 옥천ㆍ보은ㆍ청산ㆍ영동ㆍ황간은 충청도 땅이다. 무주와 장수는 덕유산 밑에 있는데, 큰 산과 깊숙한 골짜기들이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 높고 물 맑은 옥천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 5 : 충청도, 2012. 10. 5.,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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