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m.blog.naver.com/hanjun105300/220995019641
셸리
제인에게
별의 반짝임을 그지없이 해맑고
그런 속에 아름다운 달이 떠올랐다.
그리운 제인이여,
기타 소리는 계속 울렸으나
네가 노래하기까지는 그 가락조차도
즐겁지가 않았다.
달의 부드러운 달빛이
하늘의 흐릿하며 싸늘한 별빛에
던져지는 것처럼
그대의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는
그때 혼을 지니고 있지 않는 현에다
스스로의 혼을 주었다.
오늘밤 조금 후에
달은 잠들고 말겠지만
별들은 눈뜨고 있으리라.
네 노래의 가락이 기쁨의 이슬을
뿌리는 동안
나뭇잎은 하나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그 울림소리는 나를 쳐부수지만
마음속 스며드는 네 그 목소리로
노래 한 곡 다시 한번 불러 달라.
우리 세계와는 멀리 떨어진 세계에 속하는 것
거기서는 음악과 햇빛과 감정이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겠지.
*셸리(Percy Bysshe Shelley:1792__1822)는 1811년 옥스퍼드대학 재학 중에 '무신론의 옹호'라는 팜플렛을 간행하여 퇴학처분을 당했고, 그해에 열여섯 살의 소녀 해리에트 웨스트브룩과 경솔한 결혼을 했다.
결국 그 결혼은 실패로 끝나고 말아 해리에트는 자살하고 셸리는 무신론자이며 무정부주의 사상을 지니고 있는 윌리엄 고드윈의 딸 마리와 재혼하게 되었다.
바이런과 친교를 맺어 함께 스위스에 머물기도 하였고, 이탈리아에 가 살며, 에스테, 베니스, 로마, 피사 등지를 오락가락하며 자유를 누리기도 하였다.
그는 스페티아 만에 위치한 레리치에 주거를 정하고, 레그혼에 사는 시인 리 헌트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애용하던 요트 에어리엘 호가 폭풍을 만나 전복하게 되어, 1822년 7월 8일 30세의 나이로 죽었다.
이 시의 영감이 된 여성은 제인 윌리엄으로서 피사에서 알게 된 셸리의 친구이다. 사랑이라기보다 존경의 감이 짙은 감미로운 작품이다.
서풍의 노래
1
오, 거센 서풍--그대 가을의 숨결이여,
보이지 않는 네게서 죽음 잎사귀들은
마술사를 피하는 유령처럼 쫓기는구나.
누렇고, 검고, 창백하고, 또한 새빨간
질병에 고통받는 잎들을, 오 그대는
시꺼먼, 겨울의 침상으로 마구 몰아가,
날개 달린 씨앗을 싣고 가면, 그것들은
무덤 속 시체처럼 싸늘하게 누워 있다가
봄의 파란 동생이 꿈꾸는 대지 위에,
나팔을 크게 불어 향기로운 꽃봉오리를
풀 뜯는 양떼처럼 공중으로 휘몰아서
산과 들을 생기로 가득 차게 만든다.
거센 정신이여, 너는 어디서나 움직인다.
파괴자며 보존자여, 들어라, 오 들어라!
2
네가 흘러가면 험한 하늘의 소란 가운데
헐거운 구름은 하늘과 대양의 가지에서
대지의 썩은 잎처럼 흔들려 떨어진다.
비와 번개의 사자들, 네 가벼운 물결의
파란 표면 위에 어느 사납기 짝없는
미내드의 머리로부터 위로 나부끼는
빛나는 머리칼처럼, 지평선의 희미로운
가장자리에서 하늘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다가오는 폭풍우의 머리칼이 흩어진다.
너, 저무는 해의 만가여, 어둠의 이 밤
네가 증기의 모든 힘으로써 이룬
둥근 천정과 돔의 큰 무덤이 될 것이며,
짙은 대기를 뚫고 내리는 검은 비와
번개 우박이 쏟아져 내리리. 오, 들어라!
번개 우박이 쏟아져 내리리. 오, 들어라!
3
베이이 만 경석의 섬 가에서
수정 같은 조류의 손길로 잠이 들어
상상만 해도 감각이 아찔해질 정도로
아름다움 하늘색 이끼와 꽃들로 뒤덮인
옛날의 궁전과 높은 탑들이 파도에
더욱 반짝이는 햇빛 속에 떨고 있음을
꿈에 보고 있는 푸른 지중해 바다를
그의 여름 꿈에서 일깨운 너! 너의
앞길을 위해 대서양의 잔잔한 세력들은
갈라져 틈이 나고, 훨씬 아래에서는
바다꽃과 바다의 물기 없는 잎을 가진
습기에 찬 숲이 네 목소리를 알고서
겁에 질려 별안간 창백해지면서
온몸을 떨며 잎이 진다. 오, 들어라!
4
만일 내가 휘날리는 한 잎 낙엽이라면
만일 내가 한 점의 빠른 구름이라면
네 힘에 눌려, 충동을 같이 할 수 있고
한 이랑의 파도라면, 물론 너만큼
자유롭진 못하나, 억제할 수 없는 자,
만일 내가 내 어릴 적 시절과 같다면
하늘을 방랑하는 네 벗이 되었으련만
너의 하늘에서의 속력을 이겨 내는 것이
결코 공상만이 아닌 그 때 같기만 하면
나는 이렇듯 기도하며 겨루지 않았으리.
오, 나를 파도나 잎과 구름처럼 일으켜라.
나는 인생의 가시에 쓰러져 피 흘린다.
시간의 중압이 사슬로 묶고 굴복시켰다.
멋대로며, 빠르고, 거만하여 너 같은 나를.
5
나로 너의 거문고가 되게 하라, 저 숲처럼
내 잎새가 숲처럼 떨어진들 어떠랴!
너의 힘찬 조화의 난동이 우리에게서
슬프지만 달콤한 가락을 얻으리라.
너 거센 정신이여, 내 정신이 되어라!
네가 내가 되어라, 강렬한 자여!
내 꺼져 가는 사상을 온 우주에 몰아라.
새 생명을 재촉하는 시든 잎사귀처럼!
그리고 이 시의 주문에 의하여
꺼지지 않는 화로의 재와 불꽃처럼
인류에게 내 말을 널리 퍼뜨려라.
내 입술을 통하여 잠깨지 않는 대지에.
예언의 나팔을 불어라! 오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즉, '겨울이 오면 봄이 오나니!'라는 이 시의 끝 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이 시는 그 마지막 구절로 해서 우리나라에도 아주 오래 전부터 알려진 명시이다.
이 시는 별로 어려운 대목이 없다. 그 대강 뜻을 각 장마다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 1장-- 땅에 부는 서풍, 즉 가을바람을 향해서 말한다.
제 2장-- 앞에서는 땅에 부는 서풍을 부른데 대하여 이번에는 하늘에 부는 서풍을 부르고 있다.
제 3장-- 바다에 부는 서풍을 향해 말한 것으로서 "베이이 만"은 이탈리아 지중해 해안에 이는 샛강이다.
작자는 1818년 그의 나이 26세 때부터 이탈리아에 살았는데, 이 시는 1820년에 피렌체에서 쓴 것이다. 즉, 이 장에서는 우선 베이이 샛강의 경석의 섬에서 본 지중해의 바람 잔잔하고 잠든 듯한 정경을 말한 뒤 바람을 향해 말하고 있다.
제 4장-- 시인의 현재 상태를 말하고 왜 서풍더러 자기의 말을 들어달라고 하는지 까닭을 말하고 있다.
제 5장-- 그런 서풍에 대해서 시인의 수원을 격렬하고 아름다운 말로 노래하고 있다.
작자가 서풍을 향해서 인류사이에 살포해 달라고 하는 '나의 사상, 나의 언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은 원래 자유로운 존재이다'라는 것이며 '인간
해방'의 외침인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 구절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라고 하는 말은 단순하게 계절적으로 봄이 온다고 하는 뜻만은 아니다. 인류에게 있어서의 봄
즉 전인류가 자유로운 날을 맞이하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키츠
나이팅게일에게 부쳐서
내 가슴은 아프고, 잠을 청하는 마비가
나의 감각을 아프게 한다.
그것은 마치 독약을 삼키고
또는 둔하게 만드는 아편을 찌꺼기까지 마셔 버리고
이윽고 망각의 강으로 가라앉는 듯하다.
네 행운을 시샘해서가 아니라
네 행복에 접하고 나는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날개조차 가볍게 날아다니는 너의 숲의 정령.
초록색 가지 편 너도밤나무 숲 그 짙은 녹음에서
울림도 아름답게 목청도 좋게 너는 여름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아아! 한 잔의 포도주를 마시고 싶구나.
깊이 파진 땅 속에서 여러 해 냉각되고
꽃내음과 전원의 초록과 댄스와 남국의 노래
그리고 햇빛 가득히 쬔 환락의 맛이 나는 술을.
아아! 그 잔에 따뜻한 남구의 멋진 술 넘치며
진실과 시의 붉은 샘물을 기리는 것이다.
잔 주둥이에까지 구슬진 방울이 떠돌고
마시는 입은 보라색으로 물들게 된다.
그 술을 마셔 사람 몰래 이 세상에서 떠나
너와 함께 어슴푸레한 숲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
멀리 사라져서 녹고 말아 잊혀지고 싶다.
나무 잎새 사이에 사는 네가 결코 모르는 것
권태로움과 열병과 번뇌를 잊고 싶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앉아 탄식하기만 하고
중풍든 노인은 몇 개 안 남은 백발을 슬퍼하며
젊은이는 창백하게 유령처럼 야위어 죽는다. 생각하기만 하여도 슬픔과
헤어날 길 없는 절망으로 가득 차서
미인은 반짝이는 눈동자를 간직할 수 없고
새로운 사랑은 내일을 지나서 그 눈동자를 그리워 할 수 없다.
가거라! 술, 바커스와 그 표범이 끄는
수레를 타지 않고 시의 보이지 않는 날개를 타고
너 있는 곳으로 날아 가리라.
둔한 머리는 머뭇거리게 하고 더디게 했으나
이제는 이미 너와 함께 있다. 밤은 포근하고
여왕인 달도 그 자리에 앉고
별들이 시중을 들고 있나니.
그러나 여기에는 빛이 없다.
어두컴컴한 나무 그늘과 굽은 이끼낀 길에
산들바람 불 때 스미는 하늘에서의 빛이 있을 뿐.
밭 아래 피어 있는 것이 무슨 꽃인지 나는 모르고
나뭇가지에 어리는 향긋한 냄새가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향기 찬 어두움에서 그 냄새를 짐작컨대
5월이 내린 떨기와 풀과 야성의 과일나무 냄새
하얀 아가위에 목장의 들장미
나무 그늘 아래 핀 생명 짧은 오랑캐 꽃
그리고 5월 중순의 맏이인
아직은 봉오리진 사향장미에다 여름철 저녁때
달콤한 꽃꿀이 이슬처럼 맺혀
붕붕거리는 날벌레들이 몰려온다.
어둠 속에서 나는 듣는다. 여러 차례에 걸쳐
편안스러운 "죽음"을 나는 거의 사랑하듯 바라고
수많은 명상시에 있는 이름으로
죽음을 부르고 공중에 고요히 숨을 거두려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죽기에 행복스러운 듯하여
이 한밤에 고통 없이 죽고 싶어라.
그 사이에 너는 이렇듯이 황홀하게
영혼을 기울여 노래를 부르누나!
너는 계속해 노래하나, 나 이미 듣지 못하리--
네 숭고한 진혼가에 나는 싸늘한 흙이 되리니.
너는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불멸의 새여! 굶주림과 고뇌의 시대가 너를
멸하게 하지는 못하리라.
깊어 가는 이 밤에 듣는 네 노래소리는
옛날에 황제도 또 농부도 들었다.
모름지기 같은 노래는 이국의 밭에서 고향 그리워
눈물 젖은 룻의 가슴을 에이게 했으리라.
같은 노래는 또한 때로 마술의 창문을 매혹하나니
"쓸쓸한" 신선 나라의 물결 출렁이는 거친 바다에
열려진 있는 그 창문을--
쓸쓸하다! 이 말이 종소리같이 울려서
너로부터 나에게로 되울려 부르고 있구나!
잘 가거라! 공상은 소문난 정도만큼 교묘하게
속이지 못하도다. 배반의 요정이여!
잘 가거라! 잘 가거라! 네 슬픈 노래 사라진다.
가까운 목장을 지나, 고요한 시내를 건너
언덕을 올라가 지금은 맞은편 골짜기 사이에
깊이 묻히고 말았나니
그것은 환상이었던가, 아니면 백일몽이었던가?
노래는 사라졌다-- 나는 깨어 있는가, 자고 있는가?
*키츠(John Keats:1795__1821)는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영국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며 셸리와 더불어 유명하다.
키츠는 런던에서 주막을 경영하는 집에서 태어났으나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고, 의사가 되려 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시작에 열중하게 되었다.
시인으로서는 야심작 '엔디미온'(1818)외에 뛰어난 Ode를 많이 남겼다.
예술 지상주의자였던 키츠는 철저한 미의 탐구자였다. 그리스 철인의 말처럼 '만물은 유전한다'는 이 세상에서 단 한가지 '유전'하지 않는 영원한 것은 바로 미인 것이며 그런 성격을 지닌 미이기에 'Beauty is truth'(Ode on a Grecian Urn에서) 인 것이다. 영원히 변치 않고 진실된 것으로서의 truth가 오직 하나의 가치인 beauty와 결부되는 곳에 키츠의 미에 대한 신념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1819년 7월에 'Annals of the Fine Arts'에 발표된 것으로서 각 연은 10행으로 되어 있다.
밤에 우는 나이팅게일 소리에 이 세상의 슬픈 현실을 생각하고 환상의 세계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이다. 이 우수에 찬 노래도 '쓸쓸하다'는 한 마디
말로 문득 현실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노래는 사라졌다-- 나는 깨어 있는가, 자고 있는가?'라는 구절로 끝맺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에의 침잠을 동경하면서도 항상 현실과의 대결을 재촉받고 있는 인생이라 한다면 이 시는 여러 가지 문제를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시의 사회적인 정세(프랑스 혁명, 미국의 독립)와 키츠 자신의 신변문제 등도 포함하여 이 시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 옛 항아리에 부치는 노래
너는 더럽혀지지 않은 고요한 신부
너는 침묵과 기나긴 세월 속에 자란 양자
너는 숲의 역사가. 우리 시인의 노래보다 묘하게
꽃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이렇듯 말해 전할 수 있나니--.
네 둘레에 감도는 것은 그 어떤 전설인가.
그것은 템페의 골짜기인가, 아니면 알카디아 언덕의
신들의 일인가, 사람들의 일인가, 또는 신과 사람의 일인가?
그것은 무슨 사람일까, 어떤 신일까, 도망치려 하는 것은 어떤 소녀일까?
그 얼마나 미친 듯한 구애인가, 또한 도망치려 하는 몸부림인가?
그 어떤 피리며 또 어떤 북인가? 그리고 얼마나 미친 듯한 환희인가?
귀에 들려오는 선율은 아름다우나, 이를 울리지 않는 선율은
더욱 아름답다. 자, 네 부드러운 피리를 계속 불어라.
육신의 귀에다가 불지 말고 좀더 친밀히
영혼을 향해 소리 없는 노래를 불러라.
나무 그늘에 있는 아름다운 젊은이여, 네 노래는
멈추어지는 일 없고, 이 나무들의 일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젊은이여, 너는 결코 입맞출 수 없으리라.
목표 가까이 닿긴 해도-- 하지만 슬퍼 말아라.
비록 크나큰 기쁨을 얻지 못할지라도 그녀는 빛 바래는 일 없으니
영원히 사랑하라. 그녀는 영원히 아름다우리라.
아아 너무나 행복한 나뭇가지들이여!
잎은 지는 일 없고, 봄에 이별을 고하는 일도 없다.
또한 행복한 연주자여, 그대는 피곤한 줄도 모르고
영원히 새로운 노래를 영원히 연주할지니
더욱 행복스러운 사랑이여! 너무나 행복한 사랑이여!
언제나 따스하고 영원히 즐거워라.
언제까지나 불타듯 추구하고 언제까지나 젊도다.
살아 있는 인간의 정열이란
끊임없이 추구하여 가슴은 슬픔으로 넘치고
이마는 불타며 혀는 타올라 네 사랑에 미치는 것이 아닐지니.
이 희생 의식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오오! 신비로운 사제여, 비단과 같은 몸에다
화환을 장식하고 하늘을 우러러 우는 송아지를
어떤 초록빛 제단으로 데리고 가는가.
이 거룩한 아침, 여기 모인 사람들이 남겨 두고 온 것은
강변의 어느 작은 마을이던가, 바닷가의 마을이던가?
조그마한 마을이여 네 거리는 영원히
조용해질 것이리라. 그리고 한 사람도
돌아와 황폐해진 까닭을 말하는 사람 없으리니.
오오 아티카의 형체여! 아름다운 모습이여!
대리석 남자와 여자가 조각되어 있고
숲의 나뭇가지와 짓밟힌 풀들도 그려져 있다.
너는 침묵의 모습, 영원히 시키는 것처럼
우리를 사고의 저쪽으로 몰아낸다. 차가운 목가!
늙음이 지금의 사람들을 멸하게 할 때
너는 인간의 친구가 되어
지금 고뇌와 다른 괴로움 속에 남아 인간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진리요, 진리는 아름다움이다."
이것이 세상에서 인간이 알고 있는 전부요, 알아야 할 전부이러니.
*ode란 서정시의 한 형식으로 한시의 '송'이나 '부'에 속한다. 특징으로는 부름의 형식을 취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지니며 시인의 주관적 색채가 짙다.
이 작품은 시인의 나이 24세 때인 1819년의 작품으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고대 항아리에 그려진 모양을 보고 지난날의 영화로운 그리스를 생각하면서,예술작품으로서의 항아리의 아름다움을 의문문과 감탄문을 많이 사용하면서
영탄조로 노래하여 마침내 미의 영원성과 절대성까지 주장하는 것이다.
항아리는 물론 그리스 문화의 소산이다. 이 항아리를 통해 "Beauty is truth, truth beauty"라는 말까지 한 키츠의 시는 예술 지상주의적 빛깔이
짙고, 미의 탐구자로서 중세와 그리스의 먼 옛날의 세계를 동경하고 자유를 노래하고 혁명에 마음이 이끌렸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유미주의자가 아니요
깊고 조용하게 인생을 관조하고 거기서부터 영원한 것을 동경하였다고 할 수 있다.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읽고서
내 일찍이 황금의 영토를 끝없이 여행하였고
수많은 황홀한 나라와 왕국들을 보았었지.
시인들이 아폴로 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많은 서쪽 나라들도 돌아다녔고.
가끔 이마 훤한 호머가 다스렸던
한 넓은 땅 이야기도 들은 바 있었다.
그러나 채프먼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는
그 땅의 순수한 공기를 맛보지 못했으니.
비로소 나는 느꼈다-- 천체의 감지자가
시계 안에 새 유성이 헤엄침을 본 듯.
또는 용감한 코르테스가 날카로운 눈으로 말없이 다리엔의 한 봉우리에서
태평양을 응시하고, 그의 부하들은
온갖 억측으로 서로 얼굴을 바라보듯.
*그리스어를 해독하지 못했던 키츠가 채프먼이 영어로 번역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읽고서 그 감동을 노래한 시다.
클레어
마리
저녁 한 때
삼라만상이 고요하기 그지없고
초승달이 그 얼굴을
하늘과 더불어 강에 비춘다.
우리가 거니는 길에 밀리면서도
등심초 나란히 줄지은 호수는 거울처럼 해맑다.
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여,
거닐고 있는 나에게
한없이 즐거운 환상을 속삭이는 것이여,
이제 걸음을 멈추고 나와 더불어
이 고요한 때에 핀 아름다운 꽃을 꺾어
집에 가져 가자꾸나, 반짝이는 이슬도 떨치지 않으리.
마리, 네 착한 마음이여,
내일 밝은 해가 빛날 때에
네 까만 눈동자는 이 꽃을 보리니
내가 슬픔 속에서 모은 것
정처 없이 오직 혼자서 거니는 고요한 한때지만
너와 함께 거닐고 싶어라.
*존 클레어(John Clare:1793__1864)는 영국 중부에 위치한 노댐프톤 지방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열의로 존은 다섯살 때 마을 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2년 뒤에는 2마일 가량 떨어진 글링톤 교회 안에 있는 학교에 입학하여 열 두살 될
때까지 다니게 되었다.
그때 그 학교 친구 가운데 마리 조이스라는 여학생이 있어 곧 친하게 되었다. 클레어는 그녀에게 플라토닉한 사랑의 감정을 품게 되었고, 그 감정은 일생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그 때부터이다.
이 시는 바로 그 마리를 향한 사모의 마음을 노래한 소품이다.
테니슨
울려라, 힘찬 종이여
--'인 메머리엄'에서
울려라 힘찬 종이여, 거친 창공에
날아 가는 구름에, 싸늘한 빛에.
오늘 밤으로 이 해는 지나가 버린다.
울려라 힘찬 종이여, 이해를 가게 하여라.
낡은 것 울려 보내고, 새로운 것 울려 맞이하라.
울려라 기쁜 종소리여, 흰눈 저 너머.
해는 이제 저무노니, 이 해를 울려 보내라.
거짓을 울려 보내고, 진실을 울려 맞으라.
울려 보내라, 이 세상에서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 사람을 생각하여 가슴에 번지는 이 슬픔을.
빈부의 차이에서 오는 반목을 울려 보내고
만민의 구제를 울려 맞아라.
울려 보내라, 이윽고 사라질 주장을
당파의 나쁜 습성인 그 다툼을
울려 맞아라, 보다 드높은 삶의 방법을
보다 아름다운 예절, 보다 깨끗한 도덕을 지켜라.
울려 보내라, 이 세상의 결핍과 고뇌와 죄악을
그리고 싸늘한 불신의 마음을.
울려라 울려 퍼져라, 내 애도의 노래를.
울려 맞아라, 보다 교묘한 노래를.
울려 보내라, 좋은 가문과 지나친 신념을.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의 중상과 모략을.
울려 맞아라, 진실과 정의의 사랑을.
울려 맞아라, 한없이 선한 사랑을.
울려 보내라, 세상에 있는 고질병 전부를.
울려 보내라, 마음에 꽉 찬 황금의 욕망을.
울려 보내라, 지나간 수천 차례의 전쟁을.
울려 맞아라, 영원한 평화를.
울려 맞이하라, 용기와 자유의 사람
보다 관대한 마음과 보다 자비 넘치는 손을.
이 나라의 어두움을 울려 보내라.
울려라,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비가 '인 메머리엄'은 1850년에 발표된 테니슨(Alfred Tennyson:1809__92)의 시집이다.
테니슨은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시절에 친구 아더 핼럼과 사귀게 되었다.
그는 수재로서 테니슨의 누이동생 에밀리아와 약혼했으나 1833년에 급사하였다. 그 죽음은 테니슨에게 있어서 크나큰 충격이어서 그는
인생무상을 느껴 자살까지 생각했었다.
궁핍속에서 10년 동안 그는 괴로움에 빠져 있었으나 이윽고 시작도 궤도에 오르게 되었고, 한때 심했던 정신적 불안도 안정을 찾아서 친구 핼럼의 죽음을 애도하여 '인 메머리엄'을 노래하게 되었다. 이 작품이 나오던 해에 테니슨은 워즈워드의 뒤를 이어 계관 시인이 되었고 1884년에 빅토리아여왕은 그에게의 칭호 Lord를 내렸다.
이 작품은 영문학사상 유명한 elegy(비가)로서, 밀턴의 Lycidas, 셸리의Adonais, 그레이의 Elegy와 더불어 4대 비가로 일컬어진다.
모랫벌을 건너며
해는 지고 저녁별 빛나는데
날 부르는 맑은 목소리
내 멀리 바다로 떠날 적에
모랫벌아, 구슬피 울지 말아라.
끝없는 바다로부터 왔던 이 몸이
다시금 고향 향해 돌아갈 때에
움직여도 잔잔해서 거품이 없는
잠든 듯한 밀물이 되어 다오.
황혼에 울리는 저녁 종소리
그 뒤에 찾아드는 어두움이여!
내가 배에 올라탈 때
이별의 슬픔도 없게 해 다오
이 세상의 경계선인 때와 장소를 넘어
물결이 나를 멀리 실어 간다 하여도
나는 바라노라, 모랫벌을 건넌 뒤에
길잡이를 만나서 마주 보게 되기를.
*워즈워드를 뒤이어 42년 동안 계관 시인의 자리에 있었고, 1884년에는 남작의 지위를 얻고, 자연을 사랑하면서 84세의 나이로 죽은 테니슨이 죽음을 앞둔 때 지은 작품이다.
E. 브라우닝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구요? 헤아려 보죠.
비록 그 빛 안 보여도 존재의 끝과
영원한 영광에 내 영혼 이를 수 있는
그 도달할 수 있는 곳까지 사랑합니다.
태양 밑에서나 또는 촛불 아래서나,
나날의 얇은 경계까지도 사랑합니다.
권리를 주장하듯 자유롭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칭찬에서 돌아서듯 순수하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옛 슬픔에 쏟았던 정열로써 사랑하고
내 어릴 적 믿음으로 사랑합니다.
세상 떠난 성인들과 더불어 사랑하고,
잃은 줄만 여겼던 사랑으로써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한평생 숨결과 미소와 눈물로써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의 부름받더라도 죽어서 더욱 사랑하리다.
*엘리자베드 브라우닝(Elizabeth Browning:1806__61)은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의 부인이다. 조숙한 천재로서 여덟살 때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그리스 원어로 읽었고, 14세 때 서사시 '마라톤의 전쟁'을 써서 인쇄하였다.
시인으로 유명해지자 그 당시 아직 무명 시인에 지나지 않았던 로버트와 서신 연락을 가지게 되었고 마침내 청혼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로 결혼이 이루어지지 못하자 이탈리아로 가서 결혼생활을 했다.
로제티와 더불어 영국을 대표하는 여류시인이다
브라우닝
밀회
회색 바다, 한없이 캄캄한 언덕,
금방 지려 하는 크고 노란 반달.
잔 물결은 잠에서 깨어나
둥근 고리 이루며 불꽃처럼 흩어진다.
나는 조각배를 몰아 샛강을 흘러서
물에 젖은 갯벌에서 배를 멈춘다.
바다 향기 그윽한 따스한 갯벌을 지나고
들판을 세 번 건너 농가에 이른다.
가벼이 창을 두드리면, 이어 성냥 켜는 소리.
타오르는 파란 불꽃.
목소리는 두 사람의 심장 합친 소리보다 낮고
기쁨과 두려움으로 마냥 설레이는구나.
*브라우닝(Robert Browning:1812__89)은 독학에 의해 역사와 고금의 문학을 탐구한 주지적인 시인이었다. 그는 이상한 신텍스와 풍부한 어휘로써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시에서 노래하고 있는 밀회의 상대는 뒷날 아내가 된 엘리자베드이다.
엘리자베드의 부친은 그들의 결혼을 적극 반대하였는데 그런 상황에서 사랑하는 자기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밤에 한 사나이가 배를 타고 들을
건너서 연인을 찾아가 허락되지 않은 사랑이기에 마음 태우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평생의 사랑
우리 둘이 살고 있는 집
방에서 방으로
나는 그녀를 찾아 샅샅이 둘러본다.
내 마음아 불안해 마라, 이제 곧 찾게 된다.
이번엔 찾았다! 하지만 커튼에 남겨진
그녀의 고뇌, 잠자리에 감도는 향수 내음!
그녀의 손이 닿은 벽의 장식 꽃송이는 향기 뿜고
저 거울은 그녀의 매무새 비치며 밝게 빛난다.
*'밀회'나 마찬가지로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 두 사람의 관계와 고뇌를 날카롭게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서는 연인이며 아내인 상대자가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 말아 사나이는 애타게 그녀를 찾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놀드
마거리트에게
그렇다, 삶의 바다 속에서 섬이 되어 서로의 사이에는 물결치는 소리
들리는 해협이 있고
기슭 없는 물의 황야에 점점이 위치하여
우리들 무수한 인간은 고독하게 산다.
섬들은 각기 에워싼 물의 흐름을 느끼고
더욱이 끝없이 넓은 세계를 느낀다.
그러나 달이 그들의 골짜기를 비추고
화사한 봄바람이 그 위를 불어 지나가
별이 반짝이는 밤에 섬의 골짜기에서
밤새가 소리 높이 노래하여
그 아름다운 가락이 기슭에서 기슭으로
해협을 건너 물목을 건너서 울려퍼지면
아아, 그 때 절망과도 비슷한 동경이
머나먼 동굴에까지 이르게 된다.
왜냐면 확실히 그들 역시 자기네가 일찍이
오직 하나의 대륙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네 주위에는 대양이 펼쳐져 있다--
아아, 우리의 기슭이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누가 정해 놓은 것인가, 그들의 갈망의 불꽃이
타오르고서 즉시 꺼져 싸느다랗게 만든 것은
누가 그들의 깊은 바람을 공허하게 하는가.
또한 하나하나의 기슭 사이에는
헤아릴 수 없는, 소금을 지녀 사이를 가르는 바다를 놓도록 지시하라.
*아놀드(Matthew Arnold:1822__88)는 옥스퍼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를 역임하며 영국 문단을 이끈 시인이자 평론가이다.
이 시는 인간의 고독과 그 마음에 솟아오르는 우애에 희망을 걸면서, 신에 의해 단절된 굴레를 탄식하는 작품이다. 이 시인의 또 다른 대표작 Cover Beach('도버 해변')와 마찬가지로 이 시인 특유의 부드러운 정감이 넘쳐 있다.
로제티
생일날
내 마음은
파릇한 나무가지에 둥지 짓고 노래하는 새와 같다.
내 마음은 가지가 휘 듯 열매 달린 사과나무와 같다.
내 마음은
잔잔한 바다에서 놀고 있는 보라빛 조개 같다.
내 마음이
그보다 더 설레임은 그이가 오기 때문이다.
날 위해 명주와 솜털의 단을 세우고
그 단의 모피와 자주색 옷을 걸쳐 다오.
거기에다 비둘기와 석류
백개의 눈을 가진 공작을 조각하고
금빛 은빛 포도송이와
잎과 백합화를 수놓아 다오
내 생애의 생일날이 왔고
내 사랑하는 이가 내게 왔으니.
*로제티(Christina Georgia Rossetti:1830__94)는 런던에서 태어나 병약한
몸으로 노모를 돌보면서 은둔자처럼 고요하게 살았다. 그러나 단테 로제티의 누이동생이며 종교적인 깊은 감정을 솔직한 언어로 표현하여 엘리자베드 브라우닝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여류 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앵글로 가톨릭의 열렬한 신도였던 로제티는 그 고독한 명상을 끊임없이 죽음의 감미로운 생각으로 채우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이미 열두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조숙성과 미끈한 시의 리듬은 음악적인 이탈리아어의 영향에 의한 것이리라. 기질도 솔직했던 듯하다. 사랑을 하고 있는 여성의 기쁨을 노래한 이 시가 그것을 증명한다.
노래
내가 죽거든, 사랑하는 사람이여
날 위해 슬픈 노래를 부르지 마셔요.
내 머리맡에 장미도 심지 말고
그늘진 삼나무도 심지 마셔요.
내 위에 푸른 잔디를 퍼지게 하여
비와 이슬에 젖게 해 주셔요.
그리고 마음이 내키시면 기억해 주셔요.
아니, 잊으셔도 좋습니다.
나는 사물의 그늘도 보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리다.
슬픔에 잠긴 양 계속해서 울고 있는
나이팅게일의 울음 소리도 듣지 못하리다.
날이 새거나 날이 저무는 일 없는
희미한 어두움 속에서 꿈꾸며
아마 나는 당신을 잊지 못하겠지요.
아니, 잊을지도 모릅니다.
*크리스티나 로제티는 두 차례에 걸친 불행한 사랑을 경험한 뒤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엄격한 은자와 같은 생활을 보냈다. 그녀는 신비스런
염세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계속 병상에 누워 있던 것과 언니인 프란체스카가 수녀가 된 사실도 그녀가 세속을 피하게 된 이유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이란 말은 이 세상 저쪽에
존재해 있는 것에 사용하는 말입니다"라고 그녀는 말하고 있다.
만년에 암의 수술을 받아 잠시 건강을 되찾았으나, 어느날 기도 드리는 도중에 숨졌다고 한다.
브리지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한다
네, 모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여
그것을 찾으며 또한 숭배하느니
신인들 그보다 더 찬미할 게 무엇이랴.
사람은 그 바쁜 나날 속에서도
아름다움으로 해서 영예로운 것.
나 또한 무엇인가를 창조하여
아름다움의 창조를 즐기려 하느니
그 아름다움이 비록 내일 오게 되어
잠을 깬 뒤에 기억에만 남아 있는
한낱 꿈 속의 빈 말 같다고 해도.
*1913년 이래로 계관 시인이었던 브리지스(Robert Bridges:1844__1930)는
새로운 고전주의를 제창하여 운율과 언어와 철자 등의 실험을 줄곧 시도하였다. 그 실천 가운데 한 결과가 철학적 장시 '미의 유언'이다.
스티븐슨
진혼곡
별빛 아름다운 넓은 하늘 아래
무덤 파고 거기에 나를 눕혀 다오.
즐겁게 살았고 또 즐겁게 죽으니
즐거이 또한 이 몸 눕노라.
묘비에 새길 싯구는 이렇게 써 다오.
오래 바라던 곳에 그는 누워 있느니
바다에 갔던 뱃사람 집으로 돌아오다.
산으로 갔던 사냥꾼 집으로 돌아오다.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등 소설가로 유명한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onson:1850__94)의 시. 이것은 시인이 죽는 날 이런 심정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것이리라.
하우스먼
팔리지 않는 꽃
나는 땅을 갈아 도랑을 파고 잡초를 뽑고
그리고 활짝 핀 꽃을 시장에 가져갔다.
그러나 아무도 사는 이 없어 집으로 가져왔지만
그 빛깔 너무 찬란하여 몸에 치장할 수도 없다.
그래서 여기저기 꽃씨를 뿌렸나니
내가 죽어 그 아래 묻히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까마득히 잊혀지고 말았을 때
나와 같은 젊은이가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떤 씨앗은 새가 쪼아 먹었고
어떤 것은 계절의 매움에 상처받았으나
그래도 이윽고 여기저기에
고독한 별들을 피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벼운 잎을 지닌 봄이 올 때마다
매해 빠짐없이 꽃을 보여 줄 것이며
그리고 내가 죽어 이미 사라지고 만 뒤에
불행한 젊은이가 몸에 장식할 수 있게 되리라.
*하우스먼(Alfred Edward Housman:1860__1936)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유명한 고전학자로 전문적인 업적도 많은 20세기의 대표적인 학자시인이다.
그의 시는 고전적인 간결한 표현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브론테
추억
흙 속은 차갑고, 네 위에는 깊은 눈이 쌓여 있다.
저 먼 곳 쓸쓸한 무덤 속에 차갑게 묻힌 그대
하나뿐인 사람아, 모든 것을 삼키는 시간의 물결로
떼어져 나는 사랑을 잊고 만 것일까?
홀로 남게 된 내 생각은
산봉우리들을 날고, 앙고라의 기슭을 방황한다.
지금 날개 접고 쉬는 곳은 히드풀과 양치기 잎이
네 고고한 마음을 항시 덮고 있는 근방이다.
흙 속은 차가운데 열 다섯 차례의 어두운 섣달이
이 갈색 언덕에서 어느새 봄날의 물이 되었다.
변모와 고뇌의 세월을 겪어 왔으나
아직 잊지 못할 마음은 너를 배반하지 않았다.
젊은 날의 그리운 사람아, 혹시 세파에 시달려
너를 잊었다면 용서하기 바란다.
거센 욕망과 어두운 소망이 나를 괴롭히나
그 소망은 너 생각하는 마음을 해치지는 않았다.
너 말고 달리 내 하늘에 빛나는 태양은 없었다.
나를 비추는 별도 역시 달리 없었다.
내 생애의 행복은 모두 네 생명에서 비롯되었고
그 행복은 너와 함께 무덤에 깊이 묻혀 있다.
그러나 황금의 꿈꾸던 나날은 사라지고
절망조차 힘이 빠져 파괴력을 잃었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기쁨의 도움이 없이는
생명을 이루고 강해지고 키울 수 없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정열의 눈물을 억제하고
네 영혼을 사모하는 내 어린 영혼을 일깨워
나와는 관계 없는 무덤에
서둘러 가려 하는 열망을 호되게 물리쳤다.
때문에 지금 내 영혼을 시들게 하려 하지 않고
추억의 달콤한 아픔에 잠기려 하지 않는다.
깨끗한 고뇌의 잔을 모두 마신 지금에
왜 다시 헛된 세계의 일을 추구하리오.
*소설 '폭풍의 언덕'의 작자인 브론테(Emily Jans Bronte:1818__48)는 무척 격정적이고 정열적인 시인이었다.
브론테의 세자매(나이 순으로 샤롯트, 에밀리, 앤)는 서로 협력하여 자비로 한 권의 시집을 출판하였다. 그런데 그 작자는 세 명의 남자 이름으로 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아무도 천재적인 이 세자매가 간행한 시집이라는 사실을 안 사람은 없었다.
브론테의 집 어린이들은 한 명도 예외없이 일찍 요절하는 데, 에밀리도 결핵에 걸려 30세의 나이로 죽는다.
언니인 샤롯트에 의하면 '남자보다 강했고, 어린이보다 단순했다'고 한다.
그녀는 병상에 누워 왕진을 받을 때도 반드시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단정히 입고 의사를 맞이했다고 한다.
불타는 듯한 열정이 있는 한편 이런 금욕적인 결벽성의 갈등이 있음으로 해서 '추억'과 같은 시가 창작되었을 것이다.
스윈번
걸음마
아장아장 걸음마, 아름다운 꽃 활짝 핀
5월의 들길보다 부드럽고 예쁘게
우리 아기 걸음마는 비틀거린다.
아장아장 걸음마
새벽 하늘 같은 맑은 눈으로
엄마의 눈만 향해 마주 바라보며
노래하듯 즐거워.
황금빛 봄날을 반기듯 즐거운 얼굴
그 첫날의 한 토막 놀이런가.
사랑과 웃음으로 귀여운 다리 끌며
아장아장 걸음마.
*스윈번(Algermon Charles Swinburne:1837__1909)의 시세계는 테니슨과
마찬가지로 기교파라 할 수 있다. '그 어떤 대상이든 음악으로 만들고 마는 한줄기 갈대피리'라고 테니슨이 그를 평한 바와 같이 그의 시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아름다운 리듬이 흐르고 그 서정성이 그의 문체에 풍부하게 넘치고 있다.
홉킨즈
평화
평화, 너 낯선 산비둘기여, 너 언제나 그 놀라기 잘하는 날개 접어
이 이상 더 내 주위를 방황 말고, 내 나무 그늘에 쉬려는가?
평화여, 언제나 너는 평화로우려나? 나는 내 자신의 마음에 대해 위선자가
되지는 않으련다.
어느 때든지 네가 오기를 기다리마.
그러나 겉치레한 평화는 어리석은 것. 어느 순수로운 평화가
전쟁을 경고하고, 전쟁을 굴복시키고, 전쟁의 끝장을 가져 오려나?
오오, 내 주는 정녕 평화를 빼앗는 대신
얼마간 보류하는 것-- 훗날 평화를 자랑하기 위해
주는 심한 인내를 점지하신다. 그리하여 평화가 여기
자리잡을 때, 주는 일거리를 가지고 온다.
소근거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는 내려와 앉아 생각에 잠긴다.
*목사였던 홉킨즈(Gerard Manley Hopkins:1844__89)의 시는 생전에 전혀
이해되지 못했다. 현대 영국시는 그에게서 비롯된다고 했지만 그 당시 그의 새로운 리듬과 신선하고 개성적인 언어는 이해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시에는 인류 평화에 대한 염원이 짙게 배어 있다
시먼즈
사랑한 뒤에
이제 헤어지다니, 이제 헤어져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다니.
영원히 끝나다니, 나와 그대,
기쁨을 가지고, 또 슬픔을 지니고,
인제 우리 서로 사랑해서 안 된다면
만남은 너무나, 너무나도 괴로운 일,
지금까지는 만남이 즐거움이었으나
그 즐거움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우리 사랑 인제 모두 끝났으면
만사를 끝내자, 아주 끝내자.
나, 지금까지 그대의 애인이었으면
새삼 친구로 굽힐 수야 없지 않는가.
*시먼즈(Arthur Symons:1865__1945)는 영국에서의 상징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그에 의하면 참다운 문학정서는 인생의 윤리도덕과
관계없는 것이라는 입장에서 순수하게 예술을 주장하였고 감각적이며 순간적인 착상이야말로 귀중한 것이라 하였다. 시집으로 '런던 밤 경치'(1895)가 있다.
다우슨
시나라
--지금의 나는 사랑스러운 시나라와 함께 있을 때의 내가 아니다.
지난 밤, 아 어젯밤에 그녀와의 입술 사이에
시나라여! 그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며
그대 숨결이 입술 사이와 내 영혼에 내려왔었지.
하여 나는 쓸쓸해지며, 옛 사랑이 괴로와서
그래, 나는 쓸쓸해져 머리 숙였지.
시나라여, 나는 그대에게 충실했었다.
내 가슴 위에서 밤새껏 그녀의 가슴은 고동쳤고,
내 품 안에 밤새껏 그녀는 누워 있었느니라.
돈으로 산 그녀의 키스는 정녕 달콤했었으나
그래도 나는 쓸쓸했고, 옛 사랑이 괴로웠다.
내가 잠 깨어 먼 동이 트는 것을 볼 무렵.
시나라여, 나는 그대에게 충실했었다.
나는 잊었다, 시나라! 바람과 함께 사라진 백합을 기억에서 지우려 춤추며
남 따라 야단스러이 장미를, 장미꽃을 던졌으나
그래도 나는 쓸쓸했고, 옛 사랑이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래, 춤에 빠져서 나는 마냥 고민했지,
시나라여, 나는 그대에게 충실했었다.
나는 자극스런 음악과 독한 술을 원했으나
향연이 끝나고 램프가 꺼지면
그대 그림자 진다, 시나라여! 밤은 그대의 것.
하여 나는 쓸쓸했고, 옛 사랑이 괴로워서
그래, 내 연인의 입술을 갈망했었지!
시나라여, 나는 그대에게 충실했었다.
*다우슨(Ernest Dowson:1867__1900)은 20세기에 들어서는 해에 서른 두 살로 죽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을 중퇴하고 '시인 클럽'에 가입했으나, 그 무렵 종교적인 구원을 추구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조그만 레스토랑의 아가씨에게 사랑을 원했으나 실연을 당했다.
다우슨은 더욱더 술과 방탕에 빠지게 되었고, 그래도 가까스로 시를 쓰는 일만은 계속하였다. 그리고 이윽고 세기말의 절창 '시나라'가 창작되게 되는 것이다.
이 시에는 달콤한 센티멘탈과 관능의 소용돌이밖에 없다고 할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시나라'는 동시에 기품이 넘치고 있고, 겨우 20여행 밖에 안되는 시속에서 시의 기적을 이루고 있다.
이 시에서 따온 것이 M. 미첼의 그 유명한 소설 제목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다.
예이츠
이니스프리 호수섬
일어나 지금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가지 얽고 진흙 발라 조그만 초가 지어,
아홉 이랑 콩밭 일구어, 꿀벌 치면서
벌들 잉잉 우는 숲에 나 홀로 살리.
거기 평화 깃들어, 고요히 날개 펴고,
귀뚜라미 우는 아침 놀 타고 평화는 오리.
밤중조차 환하고, 낮엔 보라빛 어리는 곳,
저녁에는 방울새 날개 소리 들리는 거기.
일어나 지금 가리, 밤에나 또 낮에나
호수물 찰랑이는 그윽한 소리 듣노니
맨길에서도, 회색 포장길에 선 동안에도
가슴에 사무치는 물결 소리 듣노라.
*이 시는 예이츠의 서정시 가운데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서 1890년에 창작되어 'The Countes Kathleen and Various Legends and
Lyics'(1892)에 발표된 것이다.
시인의 고향인 아일랜드의 슬라이고우(Sligo)지방의 경치가 깊이 시인에게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시로 이니스프리 호수섬이 있는 고향이 대도회지 런던의 현대적인 생활의 소용돌이 속에서 얼마나 시인의 마음을 받쳐 주고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
언어의 사용 방법이 아주 교묘하고 또한 주의 깊으며, 작자의 심리상태를 묘사해낸 리드미컬한 시이다.
쿨 호수의 백조
나무들은 아름답게 가을 단장을 하고
숲 사이의 오솔길은 메마른데
10월의 황혼 아래 물은
고요한 하늘을 비춘다.
바위 사이로 치런히 넘치는 물 위에
떠노는 쉰 아홉 마리의 백조
내가 처음 세어 보았을 때로부터
열 아홉 번째 가을이 찾아왔구나.
그 때는 내가 미쳐 다 세기도 전에
모두들 갑자기 치솟아 올라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날개 소리도 요란히 흩어졌던 것을.
저 눈부신 새들을 바라보노라면,
내 가슴은 쓰라려진다.
모든 것은 변해 버렸나니
맨 처음 이 기슭에서 황혼에
머리 위에 요란한 날개 소리를 들으며,
보다 가벼운 걸음으로 걸은 그 날 뒤로,
아직도 지칠 줄 모르고 자기 짝끼리
그것들은 차가운 정든 물결을
헤엄치거나 공중을 날아가나니
그들의 마음은 늙지 않았다.
어디를 헤맨든지 그들에게는
정열과 패기가 항상 따른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고요히 물 위를 떠간다.
신비롭게, 또 아름답게
어느 동심초 사이에 둥우리를 짓고
어느 호숫가 또는 물웅덩이에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 것인가.
내 언제 잠깨어 그들이 날아가 버렸음을 깨달을 때.
*이 시는 1916년에 창작되어 'Little Review'(June, 1917)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1865__1939)는 더블린에서 태어나 에이레 문예부흥에 적극 힘썼다. 192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 최고의 시인 중의 한 사람이다.
조이스
아아, 그리운 이여 들어보라
아아, 그리운 이여 들어 보라
너를 사랑하는 자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버림을 받으면
사나이는 슬픔을 지니게 마련이다.
사나이는 그때 알게 마련이니
친구들에게 성실함은 없고
약간의 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말은 헛되다는 사실을
하지만 한 사람이 살며시
사나이에게 가까이 다가와
정겹게 그의 마음을 구하나니
온갖 사랑의 증거를 보여 주면서
사나이의 손은 더듬게 되나니
그녀의 부드럽고 포근한 가슴을
이리하여 슬픔에 잠겼던 사나이도
마음의 평안을 얻게 마련이나.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1882__1941)라고 하면 '율리시즈'라든지
'젊은 예술가의 초상' 등의 소설, 특히 거기서 사용되고 있는 '의식의 흐름'의 수법을 사용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소설가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조이스의 문학자로서의 출발은 1907년에 출판된 '실내악(Chamber Music)'이라는 작은 시집이었다. 16세기 엘리자베드 여왕 시대의 가요를 모방한 듯한 수법으로써 소박하고 감미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된 36편의 서정시를 모은 것으로서 발표 당시는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얻지 못했다.
노래
아아, 도니카아니 근방에 갔을 그때
박쥐가 나무에서 나무를 날아다닐 무렵
사랑하는 이와 나는 거닐었나니
그녀의 말은 사랑에 겨웠다.
여름날의 바람은 우리들과 함께
속삭이며 지나갔다--무척이나 즐겁게!
그러나 여름날의 산들바람보다도
그녀가 준 입맞춤이 부드러웠다.
*시집 '실내악'에 수록되어 있다.
행복에 겨운 추억이 산뜻하게 노래되고 있다.
스티븐즈
꽃이 핀 숲
꽃이 핀 숲속으로 갔나니
다른 사람과 함께 간 것이 아니라.
여러 시간 혼자서 거기 있었다.
그렇듯 행복했던 일이 있었으랴
꽃이 핀 숲속에서.
대지에는 초록색 풀
나무에는 초록색 잎
바람은 소리를 내면서
명랑하게 지껄이고
그래서 나는 행복했다.
무척이나 행복스러웠다.
꽃이 핀 숲속에서.
*시는 뜻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요 느껴야 하는 것임을 이 시는 가르쳐 주고 있다.
이 시는 중간에 자연묘사를 두고 그 앞뒤가 상징화되어 있어 대자연과 꿈의 균형이 미묘하고도 아름답게 우리로 하여금 어린이 그림처럼 이상한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브룩
노래
부는 바람은 갑자기 부드러워지고
다시금 봄이 찾아왔다.
당산사나무는 초록빛 싹에 힘을 얻고
내 가슴에는 괴로움의 싹이 움튼다.
겨우내 내 가슴은 기운을 잃고 병들었고
대지 또한 죽은 듯이 얼어 있었기에
나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봄이 오리라고는
내 가슴이 자리에서 일어나리라고는.
하지만 겨울은 끝나 대지는 눈뜨고
새들은 다시금 왁자지껄 지저귄다.
당산사나무 생울타리는 움트고
내 가슴에는 괴로움의 싹이 움튼다.
*브룩(Rupert Brooke:1887__1915)은 학생 시대부터 시인으로서의 뛰어난
소질이 인정되어 크게 기대를 받았으나, 세계 제 1차 대전 때 전쟁에서
부상당하여 요절하였다.
D. H 로렌스
봄날 아침
아아, 열려진 방문 저쪽
저기 있는 것은 아먼드나무
불꽃 같은 꽃을 달고 있다.
--이제 다투는 일은 그만두자.
보라빛과 청색 사이
하늘과 꽃 사이에
참새 한 마리가 날개치고 있다.
--우리는 고비를 넘긴 것이다.
이제는 정말 봄! --보라
저 참새는 자기 혼자라 생각하면서
그 얼마나 꽃을 못살게 구는가.
--너와 나는
얼마나 둘이서 행복해지랴. 저걸 보렴
꽃송이를 두드리며
건방진 모습을 하고 있는 저 참새.
--하지만 너는 생각해 본 일이 있나?
이렇듯 괴로운 것이라고. 신경 쓰지 말지나
이제는 끝난 일, 봄이 온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름처럼 행복해지고
여름처럼 우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죽었었다, 죽이고 피살된 것이니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나는 새로운 느낌과 열의를 지니고
다시 한번 출발하려 마음먹는다.
살고 잊는다는 것, 그리고 또한
새로운 기분을 가진다는 것은 사치다.
꽃 속의 새가 보이는가? --저것은
흔히 취하는 일 없는 큰 소동을 벌이고 있다.
저 새는 이 푸른 하늘 전부가
둥지 속에 자기가 품고 있는 작고 푸른 하나의
알보다 훨씬 작다 생각한다--우리는 행복해진다
너와 나와 그리고 나와 또 너와
이제 다툴 일이란 하나도 없다--
적어도 우리들 사이에서는.
보라, 방문 밖의 세계는
그 얼마나 호화로운가.
*D. H 로렌스란 이름을 들으면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나 '아들과 연인'의소설을 연상하면서, 제임즈 조이스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우선 소설가로 서의 그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일찍부터 시를 써서, 최초의 소설 '흰 공작' (The White Peacock, 1911년)을 간행한지 2년 뒤에 시집 '사랑의 시기타'(Love Poems
and Others, 1913년)를 간행하였다.
그 뒤에도 소설과 평론 등 산문에 의한 작업을 하는 한편 계속해서 시를 썼고, 중요한 시집만도 여러 권을 출판하였다.
이 '봄날 아침'은 1917년에 간행된 '보라, 우리는 고비를 넘긴 것이다'(Look! We Have Come Through!)라는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전 해에 영국 남서쪽 끝인 콘웰에서 쓴 작품이다.
메이스필드
그리운 바다
내 다시 바다로 가리, 그 외로운 바다와 하늘로 가리.
큼직한 배 한 척과 지향할 별 한 떨기 있으면 그뿐,
박차고 가는 바퀴, 바람의 노래,
흔들리는 흰 돛대와
물에 어린 회색 안개 동트는 새벽이면 그뿐이니.
내 다시 바다로 가리, 달리는 물결이 날 부르는 소리
거역하지 못할 거칠고 맑은 부름 소리 내게 들리고
흰 구름 나부끼며 바람 부는 하루와 흩날리는 눈보라
휘날리는 거품과 울어대는 갈매기 있으면 그뿐이니.
내 다시 바다로 가리, 정처 없는 집시처럼.
바람 새파란 칼날 같은 갈매기와 고래의 길로
쾌활하게 웃어대는 친구의 즐거운 끝없는 이야기와
지루함이 다한 뒤의 조용한 잠과 아름다운 꿈만 있으면 그뿐이니.
*시집 '바다 조수의 민요(Sat--Water Ballads)'속에 수록되어 있는 걸작으로서 1930년에 브리지스의 뒤를 이어 계관 시인이 된 메이스필드(JohnMasefield:1878__1967)의 시 가운데서 가장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바다의 풍경, 조수 냄새, 선원의 생활이 생생하게 노래되고 있다.
시사에 이른바 이미지즘의 사란 것이 있다. '음악보다 조각에 귀보다 눈에 호소하는 시'를 주장했는데, 이 시는 바로 그런 작품 가운데 한 대표작이다.
흄
부두 위
한밤중 고요한 부두 위
밧줄 드리운 높은 돛대 끝에
달리 걸렸고, 그렇게 먼 것은
놀다 잊은 어린아이의 풍선뿐이다.
가을
가을 밤의 싸늘한 감촉--
나는 밖으로 나갔다.
불그레한 달이 울타리 너머로 굽어 보고 있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도시의 아이들처럼 흰 얼굴로
사방의 별들은 어떤 생각에 골똘히 잠기어 있었다.
*이미지즘 운동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고 자신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 흄(Thomas Ernest Hulme:1883__1917)이 남긴 시험작 5편 가운데서 뽑은 두 편이다. 아무 기이한 면이 없는 듯하지만 정서적인 표현을 완전히 배제하고 이미지만을 포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