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
서울 남산에 위치한 밀레니엄 힐튼 호텔이 다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지난 해 마지막 날 문을 닫았다. 코로나19가 장기간 이어지며 수많은 호텔이 영업 부진으로 폐업했지만 힐튼 호텔은 각별히 주목받았다. 1983년 개업하여 40여 년 역사를 이어 온 상징적인 호텔이었고, 당시 우 리나라를 대표한 건축가 김종성이 지은 기념비적인 랜드마크였다. 건축 학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그곳을 흔적도 없이 허물고 새 건물을 올린다고 하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개인적으로도 아쉬움이 진했다. 삶의 순간순간을 함께한 추억 때문이었 다. 매해 크리스마스면 어린 딸아이의 손을 잡고 호텔 로비에 설치된 초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힐튼 자선 기차'를 구경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석 달 전, 어버이날에 둘이서 마지막 외식을 한 장소도 힐튼 호텔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 직원들이 병원에서 특별 외 출 허가를 받고 나온,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환자가 아니라 손님으로 정중하고 세심하게 대해 주었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이 작별을 고할 때. 애틋한 기억을 품고 나는 호텔 영업 마지막 날 아침에 그곳을 찾았다. 전날 밤 호텔에 투숙한 친구들과 만나 조식을 먹기 위해서였다. 한 시절의 영광을 뒤로한 호텔의 마지막 모습을 궁금해하며 나는 조금은 긴장한 상태로 회전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긴장은 나만의 몫이었다. 평소 특급 호텔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걸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대신 어딘가 긴장이 풀린 느낌 이 가득했다. 마지막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조식 뷔페로 향했다. 메뉴는 호텔의 그것이라 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부실했다. 마지막이 가까워 오면서 품질 유지보다 비용 절감에만 신경 쓴 것일까. 아쉬움을 속으로만 삭이고 있는데 친구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마디 했다. "어젠 수영 좀 해 볼까 했는데 실내 수영장도 안 하지 뭐니. 그건 그렇다 고 쳐. 명색이 호텔인데 바에서 칵테일 한 잔은 팔아야 하는 거 아냐? 거 기도 닫았더라고." 호텔을 허물기 전 마지막으로 적지 않은 숙박료를 내고 묵었건만 오히려 아쉬운 서비스를 받은 상황. 그들의 토로에 나까지 속상했지만 이게 폐업 의 현실인가 싶었다. 그래도 즐기자는 마음으로 조식 시간이 끝날 무렵까 지 느긋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로비로 나오니 상황은 더 심란했다. 호텔의 뒤숭숭한 분위기가 극에 달했 다. 객실 청소 직원 여럿이 식당 앞에서 다른 부서 직원들과 수다를 떨었 고, 접수처 직원들은 사복 차림으로 호텔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품격을 강조하는 특급 호텔인데 적어도 손님들이 다 퇴장하기로 한 정오 까지는 이런 무정부 상태의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 젠 손님으로서 불만을 제기할 수도 없었다. 해 봤자 무용지물. 어차피 내 일이면 모두가 사라질 터. 그 가운데 끝까지 호텔의 위엄을 지키려는 모습도 보았다. 힐튼 호텔의 총지배인 필릭스 부쉬가 정문 앞에 꼿꼿하게 서서 호텔을 떠나는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의 배웅은 두 시간 가까 이 이어졌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동안의 노고에 고마움을 전하고 한결 마음이 나아진 상태로 정오에 호텔을 나왔다. 귀가 후, 호텔의 마지막 날 모습을 에스엔에스에 올렸는데 어떤 분이 댓 글을 남겼다. "아버지가 평생 근무한 남대문 힐튼에 대를 이어 근무한 사람입니다. 애 통한 마음입니다. 호텔을 끝까지 아름답게 기억해 주시고 기록으로 남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뭇 긴장감 떨어진 호텔의 모습을 내심 못마땅해한 나를 반성했다. 겉으 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거니와 내 멋대로 이상화시킨 부분도 있었다. 마 지막에 슬픔이나 쓸쓸함뿐 아니라 후련함, 초연함, 즐거움 등 다양한 감 정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지극히 인간적인 것 아니겠는가.
건축가 김종성이 40여 년 전 자신이 설계한 밀레니엄 힐튼 서울을 배경으로 섰다. 영하의 날 씨 속 남산에서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왔지만 동그란 뿔테 안경, 롱 코트 차림의 건축가는 한 치 흐트러짐이 없었다. ‘건축계의 신사’다웠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임경선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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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고우신 걸음으로
소중한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쁨과 웃음이
함께하는 행복한
저녁시간되세요~^^
마지막 인사..
망실봉님
오늘도 귀한 글로
감동방을 채워주셔서 고맙습니다
한주간 수고 많으셨어요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안녕하세요
핑크하트 님 !
다녀가신 고운 흔적
남기심에 감사합니다~
기쁨과 웃음이
함께하는 행복한
휴일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