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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2 - 마르세유 역사를 회상하고 언덕위에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사원에 오르다!
5월 23일 엑상 프로방스 Aix en Provence 에서 프랑스 국영철도 SNCF 가 파업중이라 기차가
없으니 7시 50분에 철도에서 운영하는 Autocar 버스를 타고 이오니아계 그리스의 도시
였던 마실리아에서 기원하는 마르세유 생 샤를 Marseille Saint Charles 역에 도착합니다.
3시간후에 부르고뉴 본으로 가는 12시 출발 파리행 떼제베 기차 좌석을 예약하고는 역을
나오니 멀리 언덕에 우뚝 서 있는 것은 바로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사원이라...
시간이 많이 남은지라 계단을 내려와서는 대로를 걸어서 마르세유 항구로 찾아 갑니다.
마르세유 시가지를 보자니 불현듯 서기 310년에 로마의 전임황제 막시미아누스 가
이 도시 마실리아 Marseille (마르세유) 로 도망쳐와서는 방어전을
준비하는데, 오래지 않아 사위인 콘스탄티누스 황제 가 추격해 여기 성벽을
포위하고 시민들에게 막시미아누스의 신병을 넘겨주기를 강요한 사건이 떠오릅니다.
로마 내란후 황제가 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게르만족과 페르시아에 대한 방어를
위해 로마를 4개로 나누고 서쪽 (갈리아, 브리타니아, 히스파니아) 을
콘스탄티우스를 황제(서로마 정제)에 임명해 맡기고 은퇴하는데 1년후인 306년
7월 25일에 콘스탄티우스가 죽자 병사들은 아들인 콘스탄티누스 를 황제로 추대합니다.
그러자 최고 상관인 동로마 정제 갈레리우스는 서로마 부제 세베루스를 정제로 올리고
콘스탄티누스는 서로마 부제로 암명해 서로 타협합니다. 그런데 서로마
정제였던 막시미아누스 는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동반 퇴진하기는 했으나 나이가
젊었기에 다시 황제 자리를 노리니 그 아들 막센티우스 도 로마에서 황제를 참칭합니다.
해서 서로마 정제 세베루스는 막센티우스를 진압하기 위해 밀라노에서 로마로 진군하는
데... 그러자 전 황제 막시미아누스 는 로마시의 병사를 이끌고 출진해 공격해 오던
세베루스를 붙잡아 살해하니 307년 2월로 이에 은퇴한 황제인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나서서 중재를 하여 제3의 인물인 리키니우스를 서로마 정제로 올려 사태를 수습합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아들 막센티우스와 틀어진 막시미아누스 는 310년에 딸인 파우스타를
남프랑스 아를에서 콘스탄티누스와 결혼시켜 장인이 되었는데, 게르만족이 쳐들어와
콘스탄티누스가 군대를 끌고 출격하자 장인 막시미아누스는 기회라 생각하고 사위의
지위를 뺏고자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해 달아나 여기 마르세유에서 잡혀 죽었던 것입니다.
플러타너스 나무가 우거진 Cours Franklin Roosevelt 거리를 걸어서 칸비에르
대로 La Canebiere 끝에 드골 광장 Pl. du Gaulle 에 도착해
오른쪽에 보이는 바로크식 고풍스러운 건물은 해양박물관 이지 싶고
그 너머에 있는 또다른 에쁜 건물은 아마도 마르세유 역사박물관인 모양입니다!
드골 광장 앞은 바로 마르세유의 구항구 벨주 부두 Quai des Belges 로 요트며 보트가
엄청 많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여기 항구에는 한가지 특이한
것은 "천장이 유리" 인지 도로며 지나다니는 행인 모습이 거꾸로 비취는 것이네요!!!
내가 어릴때 동네에서 어른들이 비누를 "사분" 이라고 부르던게 기억이 나는데....
프랑스 말로 비누를 "사봉 Savon" 이라고 한다네요? 오늘 생각해 보니
소금은 시칠리아 트라파니산을 최고로 쳐 주듯 "비누는 마르세유산" 이 최고라 합니다!
멀리 언덕에는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사원 이라 황금빛으로 빛나는 성모 마리아상이
보이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걸어서 올라가는 것은 무리라 코끼리 열차 를 찾는데
표를 파는 곳을 찾을수 없어 부득이 택시를 타니 경사가 심한 언덕길을
올라 꼬불꼬불 골목길을 거쳐 참으로 힘겹게 성당에 도착하는데 8유로가 나옵니다.
그러고도 언덕길을 올라가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 성당으로 들어가는데 높은 곳이라
"전망" 도 좋을뿐더러 바람이 무척 센데.... 여기 언덕 위에 높이 서 있는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사원 Basilique Notre Dame de la Carde 은 아프리카에서
바다로 마르세유항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성당 꼭대기에 금빛의 성모상 이 보입니다.
성당으로 들어가니 은은한 푸른 색깔의 제단화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그 한 복판에
바다를 항해하는 "범선"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 뱃사람들의 교회임을 깨닫는데...
몇년전에 캐나다를 여행할 때 세인트 로렌스 강변에 위치한 몬트리올 시에
있는 노트르담 드 봉스쿠르 교회 Chapelle Notre-Dame de Bonsecours 에 갔었는데....
1657년 몬트리올 최초의 목사가 돌을 쌓아 건축한 교회로 프레스코화와 스테인드글라스
도 유명하지만 내부에 천장에서 드리워진 줄에 묶인 선원들의 무사항해를 기원하며
봉헌한 "배" 가 눈길을 끌었던게 기억이 나는데 성당이나 교회의 주제단에는 십자가나
그리스도상이 보통인데 이 성당에는 "성모 마리아" 가 아기 예수를 안고있는 동상이라!!!
어찌나 정교하고 아름다운지 예술품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래 양쪽에 향로 를 보니 문득
생각나는게 있으니 1,996년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미술품 경매인 뉴욕 크리스티경매
에서 한국 철화백자 운룡문 항아리 가 동양 미술품 사상 최고가 64억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이렇듯 매년 봄가을 2차례 실시하던 "일본 & 한국 고미술품 경매" 에서 2015년
부터 "한국은 제외" 하고 일본 미술품만 경매를 한다나요? 이유인즉 저
1,996년 철화백자와 유사한 항아리는 64억원에서 2,006년에는 16억원으로
낙찰가가 떨어지더니 2014년에는 "10분지 1" 수준으로 경매가가 폭락했다나요!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국 고미술품을 고가로 살 외국인이 없어진데다가 한국의 큰손이나
재벌마저 크리스티 경매를 외면하니.... 2014년 서울 옥션 경매에서 저 철화백자 보다
더 크고 좋은 조선 항아리가 6억원에 낙찰된 것도 대단하다고 칭송하는 분위기라?
하지만 일본 미술품은 전세계에 우수한 예술적가치 를 알아주니 살아남는 것인가 봅니다?
아치형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붉은 줄무늬 가 어디서 많이 보았다고 했더니
스페인 남부 코르도바의 옛 이슬람 모스크 메스키타 가 떠오르는데....
성당은 1214년에 최초로 지은 이래 19세기에 다시 해발 160미터 언덕 위에 로마
비잔틴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는데 벽과 천장에 호화찬란한 모자이크 가 인상적입니다.
호화로움을 넘어 기품이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이 드는지라
밖으로 나오는데 성당의 테라스 는 사방이 연결되어 있는지라 동서남북 네방향에서
시가지지를 바라볼수 있어 전망 이 탁월한데 지중해 바다와 항구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성모 마리아를 받드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생각하노라니..... 문득 동아 일보 워싱턴 특파원
신석호 가자가 쓴 “예수 아내 언급한 고대 파피루스는 진품” 이라는 기사가
떠오르는데 미국 과학자들이 2년 조사 끝에 내린 결론으로 교황청은 가짜라는 입장입니다.
“예수가 ‘나의 아내’ 라고 언급한 구절이 담긴 고대 파피루스 문서가 진짜일 가능성이
크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0일 컬럼비아대와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 소속 교수 등의 과학자들이 2년여 동안 파피루스 문서 조각
들을 조사한 결과 파피루스와 잉크 모두 고대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파피루스는 2012년 미국 하버드대 신학대학원 캐런 킹 교수가 공개한후 위조인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됐다. 가로 7.6cm, 세로 3.8cm 문서에는“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의 아내…’”라는 어떤 성경 문서에도 없던 내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그녀는
나의 사제가 될수 있다” 는 문구도 여성이 신부가 될수 있느냐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교황청은 이 문서에 대해 “최근에 날조된 터무니없는 가짜” 라고 밝혔으나 과학자들
은 진품 가능성에 손을 들어줬다. 전기공학과 화학, 생물학자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적외선 분광기 등을 사용해 분석한 결과 문서가 4세기에서 8세기의
파피루스 문서와 유사하다고 보고했다. 킹 교수는 “진짜라고 확신한다” 고 말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문서가 예수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
다고 선을 그었다. 킹 교수도 “예수가 결혼했다는 결정적 증거로 볼 수
없다” 며 “초기 기독교인들이 독신주의와 결혼, 성생활, 제자의
신분 등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도 문서의 진위를 의심하는 이들을 확신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
고 NYT는 전했다. 문법이 형편없고 출처가 불분명해 의심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소설 등을 통해 예수의 결혼설이 제기된 적은 있으나
예수의 아내가 직접 언급된 고대 문서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AP통신· 뉴욕타임스 등은 기독교 역사 전문가인 캐런 킹 미국 하버드대 신학부 교수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콥트학회에서 공개한 문서에 나온 대화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마리아의 자격 등에 대해 토론했고, 예수가 “그녀는 나의 제자가 될수 있다.” 고
말했다고 밝혔다. 아내인 마리아가 제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 이라는 설명이다.“
“킹 교수에 따르면 이 파피루스 조각은 그리스어로 쓰인 2세기 복음서를 필사한 것이다.
킹 교수는 “이 파피루스 조각이 예수가 결혼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못 한다.”
면서도 “그러나 이 문서 조각에 포함된 내용은 일부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결혼을 믿었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라고 말했다.“
“뉴욕 고대세계 연구센터의 로저 백놀 소장은 킹 교수가 ‘예수 아내 복음서’ 라고 이름
붙인 파피루스 조각이 진품으로 여겨진다고 말햇는데 전문가들은 파피루스의 진품
여부에 대한 추가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며, 특히 잉크의 화학 성분 조사에 주목
하고 있다. 이 파피루스는 민간인이 소장해 왔으며 출처는 이집트나 시리아로 추정된다.”
“그러나 소장가 및 파피루스 입수 경위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아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미 켄터키주 애즈베리 신학교의 성서학자
벤 위더링턴 3세는 이 파피루스가 2~4세기 초기 기독교 시대 신비주의적 이단
기독교인 그노시스교의 문서 형태를 띠고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독교계는 예수가 결혼하지 않았다고 강조해 왔지만 예수가 결혼했다는 주장은 끊임
없이 제기돼 왔다. 2003년 출판된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 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 아이까지 뒀다는 내용을 담아 논란을 일으켰다. 앞서
1982년 영국에서 발간된 ‘성혈과 성배’ 도 예수의 결혼을 다뤄 ‘불경서’ 로 분류됐다.”
항구로 들어오는 좁은 만에는 양쪽으로 육중하고 견고해 보이는 성채 가 들어서 있는데
가까운 쪽이 생 니콜라 요새 이고 저 건너편이 생장 요새 인가 보네요? 전쟁이
아니더래도 작은 전투는 늘 있는 일이고 지중해 바다를 700년 이상이나 휘젖고 다닌
이슬람 사라센인과 베르베르인 해적 들로 부터도 항구를 지켜야하니 방어가 우선이라!
그런데 항구의 양쪽 입구뿐만이 아니라 그 사이 바다에 섬 이 하나 보이는데 얼핏
보기에도 철옹성 으로 방비된 엄중한 요새입니다? 저 요새는 16세기에
마르세이유 수비를 위해 섬에 건설되었으나 이후 정치범 철가면 이
수용된 감옥으로 사용되었다는 바로 그 "이프 요새" Ile Chateau d'If 인가 보네요?
19세기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암굴왕” 에서 주인공 몽테 크리스토 백작 이 갇힌
곳이기도 한데 지금은 마르세유 벨주 부두에서 섬까지 페리가 운항한다는데,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 저 샤또 디프(이프섬) 의 바위굴에
갇혔다가 탈출한후 몬테 크리스토 백작이란 이름으로 나타나 복수한다는 줄거리라....
그런데 "몬테크리스토" 라고 하면...... 십여년 전의 세월호 사건에서
기독교 침례회 구원파 유병언의 장남으로 이름난 조각가 겸 화가인
유대균이 서울 역삼동에서 운영하는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 이름 이던가요?
일본에서는 1901년부터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암굴왕이란 이름으로 연재했는데 2004년
곤조가 애니메이션 으로 만들어 대히트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또 알렉상드르
뒤마는 17세기에 왕실 총사를 꿈꾸는 시골청년 달타냥 이야기인 삼총사
를 썼는데..... 그 완결편인 “브라쥐롱 자작 ” 에서 "아이언 마스크(철가면)" 가 나옵니다.
"1698년 바스티유 감옥으로 이감된 죄수가 철가면(벨벳가면)을 썼는데 프랑스 국왕 태양왕
루이 14세의 쌍둥이 형 이었다는 것인데, 루이13 세의 왕비가 쌍둥이 형제를 출산하자
리슐리외 재상은 장차 왕위 계승을 두고 권력 다툼을 벌일 것을 우려하여 비밀에 부칩니다."
"때문에 이 사실을 아는 달타냥의 연인 콘스탄스를 수녀원으로 보내자 달타냥 은
삼총사를 규합하여 그녀를 구하려고 하지만 리슐리외의 계략으로 삼총사는
추방되는데, 한편 이를 눈치챈 야심가 로슈포트는 동생을 납치하여
비밀리에 키운후 리슐리외가 죽고 어린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여 루이14세가 되자...."
"로슈포트는 왕을 납치하여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도록 철가면을 씌운 채 감옥
에 가두고 쌍둥이 동생으로 하여금 왕의 행세 를 하게 하니 달타냥 은
다시 삼총사와 힘을 합쳐 왕을 구한 뒤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는 것이라....."
그런데 볼테르 는 루이 13세는 성불구자였으므로 철가면은 왕비 앤이 재상
마자랭 추기경과 관계하여 쌍둥이를 낳았다고 주장했는데....
그러고는 서로 닮은 얼굴을 감추기 위해 철가면을 씌웠다는 것이네요?
이 도시 마르세유 는 언덕에 숲이 있고 그 사이로 붉은 지붕을 인 집들이 보이니 이건 숲속에 지어진
도시라는 느낌도 드는데, 멀리 산들이 둘러싸고 있어 넓은 평야가 있고 다시 언덕 아래
천혜의 항구가 자리잡고 있으며 신시가지의 빌딩들도그리 높아보이지는 않는 아담한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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