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블라냐 6 - 토로모스토보예 다리 옆 프레셰르노브 광장에서 프레세렌의 짝사랑을!
2022년 5월 5일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라냐 (Ljubljana) 에 도착해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걸어서
티볼리 공원 Tivoli Park 을 구경하고는 국립 미술관과 근대미술관을 지나 오페라좌
Opera 건물을 보고 작은 공원을 지나 시내를 남북으로 둘로 가르는 류블라니차 강 을 구경합니다.
슬라브인들의 나라 슬로베니아 는 오스트리아와 발칸반도 사이에 위치하며 동쪽 거대한 판노니아 평야 저편
에는 헝가리 인데...... 로마제국의 영토로 크로아티아와 함깨 일리리아 로 불렸고 14세기에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영토로 되었으니 그 지배하에서 슬라브족 이었음에도 독일어가 국어 가 되었습니다.
가톨릭 을 믿는 관계로 서구 유럽과 문화적 동질성 을 갖으며 1991년 독립전쟁을 거쳐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로 부터 독립했는데.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고 화폐는 유로 를 사용하며 도시가 작은지라 구시가지는 걸어서 구경할수 있습니다.
류블라냐 는 여러 세력을 지배를 받았으니 그때마다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 아르누보 양식등 각 시대
의 건축양식으로 재건되었으며 언덕 위의 류블라냐성 을 중심으로 중세 모습을 간직한 구시가지
와 류블라니차강 반대편에 신시가지 로 구성되니 다리가 두 지역을 연결하며 역사적 건축물이 많습니다.
오렌지색 기와 지붕 이 늘어선 거리풍경이 아름답고 신시가지는 바둑판처럼 질서정연
하게 정리되어 있으며 건축가 요제 플레츠니크가 건축한 그리스와 이슬람
같은 동양적인 건축양식 을 도입한 건축물과 개성 있는 다리 가 잘 어울리는 도시입니다.
류브라냐 는 27만 밖에 안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도처에 미술관과 박물관에 극장, 홀, 갤러리
가 널린 예술인의 도시 이니 연중 콘서트등 행사가 많이 열리며 슬로베니아인만의
독특하고 개성적인 음악과 문화를 접하며 천천히 거리를 산착하다가 피곤해지면
광장이나 강변의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드는데 일요일 오전에는 강변에 벼룩시장도 섭니다.
류블라냐를 소개하는 글에 보면.... “ 수면제를 먹고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 베로니카 는 우연히 잡지에
소개된 글을 읽는다 . ‘슬로베니아는 어디에 있는가?’ 세상 사람들이 슬로베니아라는 나라
이름도 잘 모르는데 류블라냐 는 과연 알까? 설마 어느 전설속에 묻힌 도시쯤으로 생각하는건 아닐까?”
“조금은 엉뚱한 상상 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그녀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공산국가 시절 유고
연방공화국 중에 하나인 슬로베니나와 수도 류블라냐를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류블라냐는 수도라는 거창한 타이틀과는 달리 사방이 아름다운 산에 둘러싸인 전원적인 도시 다. ”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대학 도시 로 발달해 지적인 분위기가 감돌고 젊은이들로 생기가 넘쳐흐르는
곳이다. 사랑과 자유를 노래한 민족시인 프레셰렌 동상 은 언제나 그의 연인 유리아 를 바라
보고 있고 동상 뒤로는 아름다운 류블랴니차 강이 흐른다. 강을 딸라 낭만이 흐르는 카페가
즐비하고 주위에는 활기차게 자전거 페달을 밟고 지나가는 시민도 많아 더욱 멋스러운 도시이다”
우리 부부는 류블라냐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류블라니차강변 에 도착해서는
천천히 걸어서 강변 풍경을 구경하며 걸어 드디어 이 도시의 중심이라는
토로모스토브예 다리 Toromostovje Most 에 도착하니 관광객으로 넘쳐납니다.
토로모스토브예 Toromostovje 다리는 트리플 다리 라 하며 맞은편에 보이는 교회는 프란체스코회
교회 Fran Ciskanska Cerkev 라고 하는데... 건물은 분홍색으로 1646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인상파 화가 마테이 스테르넨이 그린 천장의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건너편에는 관광안내소 Information Certer 가 있으며 여기 작은 광장을 프레셰르노브광장 Presenov Trg.
이라고 하는데..... 우선 갈증이 나는지라 카페에 노변에 내놓은 테이블에 앉자 우선 맥주 부터 시킵니다.
카페 바로 앞에 슬로베니아의 민족시인 프란체 프레세렌 France Preseren 의 동상이 서 있으니....
여행가이드북에서 읽은데로 시인의 시선을 따라 맞은편 작은 골목에 서 있는 건물을 훑어 봅니다.
보행자천국인 초포바거리 Ulica Copova 에 20미터쯤 떨어진 작은 건물 2층에 작은 여인의 좌상 이 보이니....
저 시인 프레세렌(슬로베니아어: France Prešeren) 이 짝사랑했던 여인 율리아 Julija 좌상이 마주 보입니다.
프란체 프레세렌 (France Preseren) 은 강렬한 감정이 담긴 글을 주로 썼으며, 슬로베니아
낭만주의의 선두 주자 로 평가받는데..... 1800년 12월 3일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 하의 슬로베니아의 브르바 (Vrba, 현재의 지로브니차)의 농촌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성직자 가 되기를 바랐지만 빈 대학교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한 후, 당시 오스트리아의
주도인 라이바흐(류블랴나)에 있는 법률 사무소에 비서 로 취직했지만 독립 변호사는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나폴레옹 전쟁 당시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 지어본 시가 대박을 터트려 시인 으로서
유명해졌으니... 이때 지은 시들 중 하나가 현 슬로베니아의 국가인 “축배” 라고 합니다.
후에 슬로베니아는 프레셰렌의 사망일을 '프레셰렌의 날' 로 지정했으니, 현 슬로베니아의
문화 공휴일 중 하나이며, 유로화 이전에 슬로베니아에서 사용됐던 1천 톨라르 지폐
에는 그의 초상이 있었고.... 현 슬로베니아의 2유로 주화 에도 그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독일어로는 프란츠 프레셰렌 (Franz Prescheren) 이라고 하는데 그의 작품은 〈소네트의 화환〉
(Sonetni venec, 1834년) 과 〈사비차의 세례〉 (Krst pri Savici, 1836년) 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시인이 짝사랑 했다는 율리아 Julija 는 줄리아 라고도 하니 유럽에서는 흔한 이름
인데, 로마의 카이사르의 딸 이름도 율리아이니.... 시인이 뜻을 이루지
못한건 저 여인의 신분이 매우 높았기 때문 이니 문득 마키아벨리 가 떠오릅니다.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옆에 아르노강에 놓인 10개의 다리중 가장 오래된 다리 폰테 베키오
Ponte Vecchio 가 있으니 다리 위에는 골동품 과 금은세공업 가게들이 들어서
있는데.... 이 다리에서 9살의 단테가 8살의 베아트리체 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 에
빠졌다고 하며 또 공무원(외교관) 이었던 마키아벨리 가 건너 다녔던 다리 이기도 합니다.
베아트리체 의 모델이 된 폴코 포르티나리의 딸 비체 는 은행가 시모네 드 바르디에게 시집
가는데 10년후 저 다리에서 19세가 된 단테와 우연히 마주쳤다고 합니다. 불륜이 될수
밖에 없는 사랑은 6년 후인 1290년에 베아트리체가 죽으니.... 단테는 낙심하고 방황
하는 데 5년후에 아버지는 예전에 약혼자로 정해진 마네트 도나티의 딸 젬마와 결혼시킵니다.
단테에게 베아트리체는 운명의 여인 이었기에 “돈나(여주인)” 로 불렀는데, 후일
"신곡" 에서 그녀를 자신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여인 으로 묘사하기에 이릅니다.
즉 베아트리체를 "사랑의 지성을 가진 여인" 으로 표했했던 것인데 이때까지는 "사랑" 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사랑만이 사랑 이고 인간의 사랑은 욕망 이라고 생각되던 중세 였음에....
첫댓글
재산을 잃은 사람은 많이 잃은 것이고,
친구를 잃은 사람은 더 많이 잃은 것이며,
용기를 잃은 사람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
-세르반테스-
건강과행운이 함께하는 기분좋은 하루길 되세요.
짝사랑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추억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