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나의 동반자 / 김 난 석
“마리우스가 묵게 된 주막집에서
그의 말 장신구에 이상이 생겨 그의 출발은 지체되었다.
그는 올리브나무가 그룹 지어진 정원에 앉았다.
그는 그의 기쁨을 함께 나눌 어떤 사람을 찾고 싶었다.
그런 사람과 친밀하게 지낸다는 것은
이 고달픈 인생순례의 도정에서 가장 큰 기쁨인 것이다.
지루한 여행의 발걸음을 두 배로 가볍게 해주는 길가의 장미처럼
그의 까다로운 성품이나 기분을 참아주고
어린 시절부터 이 지상에 온 것을 감사하게 여기는
자신의 철학에 공감하는 충실한 친구가 또 있을까?
만일 친구 하나 없이 그가 이 지상에 홀로 남는다면
온 세계가 소멸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공상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그 세계 속의 여행자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 되어
나란히 평원을 걷고 있었다.
(......)
이러한 각성과 이해가 그에게 임함에 따라
순수한 물질세계는 자기 주위로부터 용해되고 무산되고 마는
가상이요 허상에 불과했다. “
위 글은 페이터의 ‘위대한 이성’ 중의 한 구절이다.
그렇다면 나의 영원한 동반자는 누구일까?
내 주위 사람들은 모두 존귀한 존재다.
그들은 그들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나가는 것이지만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그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기는커녕
괴롭히거나 괴롭게 하거나 적어도 언짢게 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럴 때면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철인들은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분석하고 처방을 내놓기도 했다.
성악설이니 성선설이니 하는 것도 그런 맥락 중의 하나일 터이다.
성악설은 원래 나쁜 품성을 타고났으니 부단히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고
성선설은 원래 좋은 품성을 타고났으니 나쁜 물이 들지 않도록
부단히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나,
이것이나 저것이나 부단히 갈고닦아야 함은 마찬가지라 해야겠다.
그러나 남이야 남이 갈고닦을 일이니 내가 어찌할 수 없으니
무엇보다 스스로 갈고닦아
고양된 자신의 이성이 자신의 동반자가 될 때
외롭지 않고 떳떳하며 보람된 삶이 가능한 게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가끔은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잠시 두리번거리면서
주위의 풀잎이라도 매만지며 바람의 향긋한 내음을 맡아보는 것도
긴장된 이성을 쉬게 하는 것이려니
이런 감성도 이성에 못지않은 동반자가 되는 것이리라.
떨어져 나갈 일도 돌아설 일도 없는 나의 동반자는
바로 나의 이성과 감성이라 해야겠다.
허나 때때로 엄습하는 고독과 공포를 어찌해야 할지 생각하다 보면
나의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소리 없이 속삭이는 어떤 예시가
내 인생 마지막까지의 영원한 동반자라 해야겠다.
첫댓글
개성있는 사람이라면,
이성과 감성이 바란스가 잘 맞아가야 합니다.
감성이 앞서가면
이성이 제어해 주고
이성에 너무 굳어지면
감성이 풀어야 합니다.
이성과 감성이 사이좋은 동반자로 이끌어 가려면,
내 자신의 노력도 필요 하지요.
그렇겠지요.
인간은 정신과 육체가 요구하는 바가
다를 수 있으니까요.
남이야 남이 갈고 닦을 일이고
힘께 할 동반자인 이성을 스스로 닦아서 고양해야 할것이다
새겨 듣게 됩니다.
위에 짧게 인용한 구절만으로는
페이터가 말하고자 한 철학이 이 지상에 온것을 감사히 여긴다는 것인지요?
자기성찰로 깨닫게 된
아포리즘이라 할까요?
먼 길에 홀로의 육신은 외롭고 고달파도
정신적 자아가 있으니 둘이라는
은유의 위안이겠지요.
제목을 보고
석촌님께서 사모님 얘길 하시나 보다
지레 짐작 했는데
역시 석촌님 다우시네요.ㅋㅋ
내면 깊숙이 내재된 자신의 좋지 않은 특성들
아니, 불완전성과 맞서 싸우는 일들이 많아서
저는 성악설이 맞다고 여깁니다.
그건 사람이 날 때부터 악하다는
성경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선하게 살고자 하면서도
악으로 흐르는 경향과 싸우게 되고
교육을 통해 자신을 바로잡지 않으면
가치관이 무너지고 도덕표준이 낮아져서
이성없는 사람으로 전락되기 십상이지요.
건전한 정신으로
사물에 대한 감사와 감동이 느껴질때
일시적인 쾌락과는 다른 지속적인 행복지수가
상승하구요.
댓글을 쓰고 보니
좀 부끄럽기도 합니다.ㅋㅋ
그게 바로 至福이겠지요.
그런데 인간은 세 축의 삼각형 안에서 살아요.
하나는 이성이요 하나는 감성이요
또 하나는 하늘의 예시인데요
신을 믿는 제라님은 정삼각형의
윗꼭지점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신을 생각지 않는 사람은
역삼각형에서 윗쪽을 지향하는 사람인데
저는 사실 왔다갔다 해요.ㅎ
페이터의 '위대한 이성'은 몰랐는데 그 내용을 읽다보니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그렇게 중시했던 성리학의 이기론과 성과 경에 대한 탐구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논리나 감각 이전의 자연스러운 알아차림이 저의 동반자가 아닐까 가끔 생각해 봅니다.
중용에서 천명지위성이라 하던데
마음님은 그런 性을 따르는 것 같네요.
그러고보면 동서양이 다 통해요.
동반자가 늘 같을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이제는 이성보다는 감성의 동반자가 저를
편하게 한다는것이 점점 깨달아 집니다.
그리고 (오우아) 책이 감명을 주었습니다 .
나는 나를 벗 삼는다 ...내가 나의 동반자가 되고 싶습니다 .
맞아요, 자기보다 더 좋은 동반자는 없겠지요.
글의 제목을 보고 나의 영원한
동반자는 누구일까 잠시 생각해보니
결국 나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도 가족도 또한 가장 가깝다는
배우자도 누가 먼저 떠날지 알 수 없고요.
오늘도 영원히 함께할 동반자
제 자신을 다독여야 겠습니다.
네에 누구나 그럴겁니다.
이성과 감성이 잘 어우러지는
그런 마음의 상태가 내 동반자가 되어
인생 길을 걸어가면 이상적인 삶이 될 터이지요.
생각해 하는 글 ,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세요.
네에, 날씨가 많이 춥네요.
이성도 감성도 또
건강도 잘 돌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