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1일 연중 제21주일 루카 13,22-30
-이동명 신부
“여보세요....주일 미사가 몇 시에 있나요?”
벌써 여기 본당에서 어느덧 여름을 세 번째 지내고 있습니다. 사제관 사무실에 머무르다 보면평일에는 가끔, 주말에는 조금 빈번하게 전화벨이 울립니다. 요즘 같은 여름에 특히 휴가철에는 더 자주 울리곤 합니다. 성당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면 이런 멘트를 들으시게 됩니다.(따뜻한 배경음악이 나오면서)
“찬미 예수님! 청송성당 미사 시간은 토요특전미사는 하절기 오후 8시/동절기 오후 7시 30분, 주일 교중미사는 본당 오전 11시 / 도평공소 오전 8시 30분, 평일미사는(이하 생략)오후 7시30분입니다.” 아름답고 또렷하지만 다소 기계적인 음성이 나오는데, 세 번 반복합니다.
때로는 제가 직접 받아서 낯선 신자분에게 미사시간을 말씀드릴 때도 있는데, 그분들은 꼭 특전미사나 교중미사에 참여하시고 가실 때 “신부님, 며칠 전에 전화했었던 (누구) 입니다.”라며 인사하시는데, 그럴 때 참 흐뭇하기도 하고 동시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늘 정해진 시간에 맞춰 봉헌하는 미사이지만 누군가 함께 해준다는 것은 감사할 일입니다. 본당 교우들은 물론이요 멀리 휴양하러 와서도 미사를 찾는 분들한테서 특별함마저 느낍니다. 어찌보면 신자가 주일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기 쉽지만, 요즘처럼 구성원들의 연령이 고령화되고 젊은 세대들이 줄어드는 상황에 찾아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기만 합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포스트 코로나를 맞이하면서 주일미사에 참여하지 않거나 신앙생활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모든 신자가 주일을 지키고 미사에 참여해야 하고 실생활에서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 합당하지만 오늘날 그것은 강제화될 수 없습니다. 설사 강제할 수 있다고 한들 어찌 참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 말씀에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라고 하십니다. 시대의 흐름이나 상황에 둔감해질 필요는 없지만, 유행이나 맹목적 경향에 빠져 신앙인들이 신앙인답지 못한 삶을 살게 될 위험과 유혹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신앙에 대한 성실성과 우직함은 결코 어리석음이 아닙니다. 6개월의 긴 예비자 기간을 거치고 받게 된 세례의 은총을 낡은 유산이나 헛것으로 여기는 그런 작태야말로 우리를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습니다.
신앙과 교회는 오늘날에만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지 않습니다. 늘 그것들과 마주해서 고심하며 인내합니다. 놀거리가 많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 천주교인으로 살기는 힘들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신앙은 삶의 특수함이나 한 부분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인 이들의 일상이며 삶의 전부입니다. 그러한 이들에게 어찌 구원의 문이 좁을 수 있겠습니까?
구원은 늘 열려있고 가까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누군가를 첫째, 꼴찌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늘 깨우치고 실천하는 이들과 어리석음이 있더라도 회개하는 이들에게 하늘나라의 문이 열려있을 뿐입니다.
“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 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히브 12,7)
안동교구 청송성당 이동명 사도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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