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부음을 받아야 합니다.
(열왕기상 19 : 1-8,15)
바알 선지자들이 모두 죽임당한 일로 분노한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자 광야로 도피한 그는 그만 낙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리야를 내버려 두시지 않고 위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어떻게 위로 하였을까요?
1. 지칠때가 있습니다.(2절)
과로로 지쳐버린 엘리야가 바로 이 우울증에 걸린 것입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 그들과 경쟁을 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을 신봉하게 하므로 여호와를 배반하고 반역하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완전히 가뭄으로 불탈 정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알이 왕성할 때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그 바알선지자들을 모두 한곳에 모여서 정말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지 바알이 참신 인지 서로 경쟁을 했습니다.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왕상 19:1)
엘리야의 재단에 하나님이 불로 응답한 일들과 백성들이 바알을 보고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작정한 일과 백성들이 힘을 합쳐 도움으로 450명의 바알선지자들을 다 죽인 사실과 그 결과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갈멜산에서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비를 주셨다는 이야기를 자기 아내 이사벨에게 아합이 이야기를 다하니까
이세벨이 분도막심해서 “내일 이맘때 내가 되기 전에 이 엘리야를 죽이겠다. 살아서 못나간다.” 이런 위대한 일을 한 엘리야가 마음을 놓고 있을 때 이세벨의 협박과 공갈을 들으니까 그만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자신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마음에 긴장을 놓고 있을 때 갑자기 굉장한 협박과 공갈을 당하니까 엘리야가 그 협박과 공갈에 견디지 못하고 일어나서 도망을 치고 거기에서 종을 두고 하루길을 걸어서 더 깊은 광야로 들어가서 로뎀 나무 밑에 앉아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왕상 19:2)
이 말을 듣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했었습니다. 무서움과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 속에 굉장한 스트레스가 되는 것입니다.
엘리야같이 위대한 사람도 심한 스트레스를 당하니까 죽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야 스트레스 당하면 살 희망이 다 없어지고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우리 오늘날 인생이 경험하는데 가장 참기 어려운 것이 스트레스인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우리에게 모든 희망과 용기를 다 빼앗아 가고 마는 것입니다. 좌절하고 절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만져 주십니다.(5절)
그런데 하나님은 이와 같이 자포자기한 엘리야를 도와주려고 천사를 보내 주신 것입니다. 자포자기한 엘리야를 찾아온 천사를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9장 5절에 "로뎀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완전히 탈진하고 자포자기해서 로뎀나무 아래서 드러누워서 죽기를 기다리는데 잠이 들었는데, 천사가 와서 어루만졌다고 했었습니다. 천사가 와서 발로 찼다고 말 안했습니다. “엘리야야!”고함을 쳤다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루만진다는 것은 쓰다듬는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영어로 말하면 마사지 했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와서 엘리야를 얼굴로부터 몸을 이렇게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부드러운 손으로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야.. 엘리야야 일어나서 먹고 마셔라.” 보니까 하나님이 떡을 굽고 물한 병을 준비해서 갖다 놓았었습니다. 엘리야가 일어나서 떡을 먹고 물을 마시고 또 드러누워서 또 혼몽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러니까 또다시 천사가 와서 엘리야를 어루만졌습니다. 쥐어박은 것 아닙니다. 스트레스 걸려서 고통당하는 사람보고 꾸짖고 쥐어박고 욕하면 안돼요. 천사가 와서 또 끌어안고 어루만져 주고 쓰다듬어 주고 그리고 난 다음 또 떡을 구워서 주고, 물을 마시고 “용기를 내고 힘을 내라.. 그리고 네가 일어나서 40주 40야를 걸어서 호렙 산으로 가라.”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떡을 먹고 물을 마시고 일어나서 걷기 시작한 것입니다.
40주 40야를 걸어서 호렙 산에 가서 굴속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마음이 새로워지고 새로운 사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 7절로 8절에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호렙 산에서 그냥 놀은 것이 아닙니다. 호렙 산 굴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가 기도하는 가운데 고요하고 잠잠한 음성으로 찾아와서 엘리야를 위로해 주고 새로운 사명을 주어서 그는 우울증에서 회복되고 일어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3. 기름을 부어져야 합니다.(15절)
15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
스트레스에 걸리면 먹고 마시고 잠자는 휴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스트레스에 걸렸다고 염려하고 근심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안 먹으면 안 되요. 스트레스에 걸릴 때는 먹고 마시고 잠을 자야 되는 것입니다. 휴식해야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1절에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
누가복음 21장 37절에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잠언 17장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이사야 40장 28절- 31절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치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앙망한다는 것은 하나님만 처다보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 안 해요. 말하려면 더 스트레스가 더 걸려요.
엘리야에게 해야 할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름부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어루만짐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사야10장 27절에 <그날에 그의 무거운 짐이 네 어깨에서 떠나고 그의 멍에가 네 목에서 벗어지되 기름진 까닭에 멍에가 부러지리라>
기름부음이 있는 곳에 멍에가 부러집니다. 무거운 짐이 내 어깨에서 떠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엘리야 너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 18절에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끊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 있다고 생각했지요. 하나님께서는 7천명을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각는 내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뜻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앞서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스트레스가 있나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그렇게 압력을 받아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어요.
바리새교인, 사두게교인, 교법사들이 끊임없이 따라다니면서 압력을 가하고 로마의 정권이 끊임없는 위협을 가했었습니다. 그는 먹고 자고 사는데도 정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괴로움을 겪어도 예수님은 스트레스에 안 걸렸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스트레스 안걸리고 살았는지 나 같으면 스트레스 걸렸을 것인데.. 주님은 스트레스에 안 걸리는 방법을 말해줍니다. “주님,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스트레스에 안걸립니까? ” 아마 주님이 씽긋 웃으면서 말할 것입니다. “욕심이 없으면 스트레스에 안걸린다.” “아이 주님 그렇게 간단합니까?” “간단하다. 욕심이 있으니까 스트레스에 걸리지 욕심이 없으면 결코 스트레스에 걸리지 않는다.”
탈무드에는 “승자의 주머니 속에는 꿈이 있고, 패자의 주머니 속에는 욕심이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꿈과 욕심은 다릅니다. 과도한 욕심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지만 마음의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베풀 때 건강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한 은혜와 축복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꿈을 가져야 합니다. 소명이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만 맡겨진 일이 있습니다.
내힘으로 살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름부음이 필요할때입니다.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하늘문이 열려야 합니다.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야 머루만짐이 있지요. 지치고 피곤한 사람에게 참 안식을 누리지요.
기름부음이 있어야 문제가 해결 됩니다.
사도행전 10장 38절에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븟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주안에서 지쳤을 때 스트레스 받을 때 하나님께서 어루마져 주심을 경험하십시오. 하나님으로 오는 기름부음을 충분히 받으십시오. 다시 시작할수 있는 힘을 공급받으십시오. 사명감당하는 자가 위대한 것입니다.
작은자이지만 큰용사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물고기가 물에 있을 때 행복한 것이지요. 사람은 하나님안에 있을 때 행복합니다.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떠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행복하지 않고요 건강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만나야 행복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 만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눈에 안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 위해 이땅에 오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