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빛 강물 그리고 겨울
허 열 웅
강물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때로는 유현幽玄한 현악기들의 소리로 흐른다. 물의 목소리는 은유로 쓰는 한 줄의 시이며 소설가들은 물의 언어에서 신화와 전설의 서사를 읽고 기록한다. 강은 지상의 샘물이 모이고 빗물이 보태지고 시간이 쌓이면 힘이 되어 낮은 데로 길을 연다. 그래서 강은 만남이고 언제나 시작이다. 유장한 세월을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물도 그 행간을 읽고 있는 나도 하나의 풍경이 된다. 강이 모이면 사연도 쌓여 인생의 역사에 곧잘 비유된다. 강은 대지의 젖줄로 문화와 문명을 만들었고 만물을 풍성하게 양생했다. 강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에 순환하는 넋이다.
내가 환희와 우울 사이에 흔들리면서도 계속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숨어있는 우주의 영역 속에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일까. 책 읽기도, 글 쓰는 일에도 시들한 날에 나는 한강으로 간다. 지하철을 타면 한 정거장 지나 여의나루 역에서 내리면 된다. 어떤 때는 마포대교를 건너 걸어가면 20 분정도 걸린다. 막소금이 뿌려지듯이 내리는 눈발의 무게에 강물은 두레박처럼 가라앉아 있다. 물총새가 날아와 정지비행을 하다 온 몸을 내리꽂고, 소금쟁이가 원을 그리던 수면위에는 무수한 살얼음으로 부서지는 찬바람만이 지나가고 있다.
한강은 백두대간의 허리, 태백산 검룡소에서 발원하여 이 계곡 저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물줄기들을 모아 이룬다. 강원, 충청, 경기도를 지나면서 여러 작은 강물을 끌어안은 뒤 금강산 계곡으로부터 흘러내려온 강과 합치는 곳이 양수리兩水里다. 여기서부터 남한강과 북한강의 구분이 없어져 그냥 ‘한강’이 되고 이 한강은 서울 앞에서 다시 중랑천을 받아들인다. 한반도에서 제일의 기품과 위엄을 갖춘 한강은 파주 교하交河에서 임진강과 만나 강화도 앞까지 치달린 뒤 서해바다에 발을 담근다.
산모퉁이를 휘돌고 모래톱을 키우며 자유파행으로 흘러온 한강은 두물머리를 지나 광나루를 거쳐 이곳 여의나루 선착장에서 잠시 멈춘다. 산골마을 지나고 달동네 앞을 지나다 보면 사는 일 중에 가난한 모습, 아픈 사람 신음소리, 안타까운 사연도 들었을 것이다. 겨울 강은 이 모든 사연을 가슴에 품고 침묵으로 흐르고 있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겨울 강물처럼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득 삶이 무작정 떠밀려간다고 생각이 들면 강가로 나와 볼 일이다. 나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보일지도 모르니까.
인간 역사 이래 강을 다스리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치수를 위해 보를 막고, 범람을 위해 제방을 쌓고, 물을 가두었다가 용이하게 사용하려고 방죽이나 댐을 만들 었다. 요즈음 까지도 시끄러운 4대강 사업은 강의 처지에서 보면 자연의 파괴이고 학대일지도 모른다. 댐이 넘친 여름 강물은 욕망으로 범람하면서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리는 삶처럼 흘렀다. 허지만 지금의 강물은 여유를 갖고 서서히 흐른다. 내 가슴에 흐르는 강물도 이와 같아야 한다. 한 때는 미래에 있을 행복을 권세와 물질적 성공에만 찾았다. 이제는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겨울 강물이 되어야겠다. ‘上善은 如水’ 라 했다. 인생살이 제일 좋은 방법은 무리하지 말고 흐르는 물같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라. 노자의 말이다. 강물은 낮은 데를 찾아 길을 내고 몇 m만 흘러가도 스스로 맑아지니 도道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강이 흐르듯 시간도 흐르고 바람도 흐르고 나도 흐른다. 먼 바다를 향해 가는 내 인생은 냇물에서 출발해 강이 되고 바다에 이르는 여정이었다. 태어난 고을의 이름이 청양군 화성면 장계리長溪里다. 긴 시냇물이 흐른다는 의미의 동네다. 구불구불 흐르는 냇물에는 살찐 붕어가 헤엄치고 모래무지가 맑은 물아래 엎드려 있었다. 여름이면 우리는 벌거벗고 발장구치며 미역을 감았고 어른들은 일을 끝내면 붉은 노을을 등지고 삽과 호미를 씻었다.
스물일곱 청춘에 첫 직장을 백마강변에서 시작하여 오랫동안 살았다. 무너진 7 백년 왕조의 얼룩진 용포자락을 끌어안고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삶의 무거움도 가벼움도 사치라는 진리를 터득했다. 강물을 따라간 삼천궁녀의 슬픈 이야기와 황산벌에서 숨져간 계백장군의 함성을 들으며 역사를 익혔고, 살아가는 인생을 배웠다. 부소산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백마강 모래밭에 두 사람의 발자국을 남기다가 결혼을 했다. 두 아들은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노랫소리를 들으며 태어나 지금도 강물소리를 그리워하고 있다. 인생은 강물이었고 나는 노 젖는 나룻배였다.
‘ 요산요수樂山樂水,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달통한 사람은 물을 좋아 한다’고 했다. 수많은 별들 가운데 오직 지구만이 물을 갖고 있으며 내 몸 속에도 물이 가득 차있다. 자기 자신과 열애에 빠진 수선화 같은 사람은 물에 비친 달과 별에 자기 얼굴을 비추어 본다. 술에 취해 호수에 빠진 달을 건져 올리려다 죽은 시인 이태백의 넋과 체온을 기억하며 오늘도 강물은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선유도가 멀리 보이는 샛강 쪽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긴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온 철새 몇 마리 자맥질하고 있다. 갈대의 야윈 몸을 흔들고 있는 것은 찬바람이 아니라 그리움의 몸짓이었다. 강물만 강물이 아니라 하루도 강물일 것이니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겨울 강가로 나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옥빛 얼음 밑으로 흐르는 강물 소리는 서정시의 낭송이고 집시의 노래다. 귀 기우리면 오만한 우리에 삶을 너그럽게 품어주고 힘들고 고달픈 하루하루를 달래 준다. 겨울 강물은 세월의 작품이니 이곳에 오면 내면의 소리를 찾아내고 덧없는 세월도 통과할 수 있는 여유를 얻을 것이다. 친구여~ 글도 사랑도 안 되는 날은 옥빛겨울 강에 나가 생각의 갈대로 서서 그리운 이의 이름을 불러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