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너무 늦게 보내는 것 같네요. 죄송해요.
사실 메일 다 날렸어요. ㅠ.ㅠ
12번 보고서까지 다 붙이고 선생님께 편지 쓰는 도중에 버튼을
잘못 눌러서 그만... 흑. 전 왜 하는 일마다 이 모양일까요?
헤헤. 그래서 다시 메일 보내요~
참!! 선생님. 보고서 중 마지막 세 개는 너무 개인적인 얘기들이어서
조금 민망하더라구요. 그동안 선생님께 투정만 부리고 너무 고민얘기
만 늘어놓은 것 같아요. 흑. 선생님~ 익명으로 해주실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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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추악한 모습
저는 평소에 ‘참 착하다’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엄마께서는 가끔 “넌 그렇게 착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하니?” 하고 말씀하시죠. 그런데 저는 알아요. 제가 얼마나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인지... 저는 착한 게 아니라 착한 척을 하고 있는 것 뿐이라는 걸.
정말 제가 지긋지긋 할 때가 많습니다. 정말 착한 사람이라면 저와 같은 생각은 하지 않겠지요. 누가 상처를 주는 말을 했을 경우에도 머릿속으로는 반발하고 싶고, 따지고 싶지만 항상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냥 속으로 상처받고 혼자 끙끙거리기만 할 뿐이지요. 그러다 가끔은 그런 제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싫어서 울기도 합니다.
저는 잘 표현하지는 않지만 욕심도 굉장히 많습니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지만 저는 전혀 내색하지 못합니다. 착한 척을 하느라 그러는 거겠죠. 항상 집안 형편을 생각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착하다는 말을 못 들을 테니까요. 어릴 때부터 항상 “너는 착하니까... 그래. 우리 0 0 는 착하니까 언니한테 양보하자.” 이런 말만 많이 듣고 자라서 인지 착하다는 말이 싫지만... 그래도 그 말을 제가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남들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여지기 위해 이렇게 애쓰지는 않을 테니까요.
얼마 전, 언니는 집안 사정이 많이 어려워 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으로 어학 연수를 다녀왔습니다. 언니 학비 때문에 항상 힘들어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언니가 야속하기도 하고 밉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하는 언니를 보면서 많이 부러웠습니다. 내가 언니였더라면...
언니는 어릴 때부터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이라든지 하고 싶은 일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런 언니 덕에 동생인 제가 항상 양보를 해야 했지요. 정말 착한 사람이라면 그러한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양보를 하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어릴 때는 언니에게 양보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항상 양보만 하는 것이 억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양보를 합니다. 그래야만 예전부터 그래왔듯이 사람들이 '언니에게 양보를 잘 하는 착한 동생'으로 생각해 줄 테니까요.
전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제가 끔찍이도 싫습니다. 가끔은 저를 뚫고 나와서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들을 자유롭게 하고 싶습니다. 그 지긋지긋한 착한 척은 그만하고 싶습니다. 근 20년을 들어온 '착한 아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으며 또 다시 '참 착하다' 라는 말을 ! 듣게 될 것입니다.
'착한 아이'라는 굴레는 아마도 제가 스스로 씌운 것 일겁니다. 다른 사람이 씌운 것이었다면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쳤었겠지요. 하지만 여태까지 그 굴레를 빠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체념하고 받아들이고 속으로 상처를 받고... 그것들을 되풀이 할 뿐이었지요. 여태껏 그것이 저의 가장 추악한 모습이라는 것도 생각해보지 않았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추악한 모습'이라는 주제를 받고 며칠을 생각해 본 결과, 다른 사람들이 착하다고 칭찬했었던 제 모습이 가장 추악한 제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나를 조금 더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니 나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조금씩 조금씩 수정해 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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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2.
당신을 사랑한다는 건...
‘사랑은 거래다.’ ‘지금껏 들어왔던 모든 사랑에 대한 정의를 부정한 것이 사랑이다.‘너희들이 생각하는 사랑에서 계산과 시기심, 교만, 이기심 이런 모든 것들을 다 빼고 남은 것이 사랑이다.’
지난 시간 강의를 들은 후 나의 머리 속을 울리는 말들이다. 부모님과 언니, 내 남자친구, 그리고 다른 모든 친구들... 내 삶에 있어서 정말 잃고 싶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들... 정말 난 그들을 사랑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난 시간 강의를 들은 후 난 그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한다고 믿었던 엄마와 남자 친구 얼굴은 바로 볼 수조차 없었다. 부끄러움... 미안함... 아마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정말 사랑한다고 자신했던 마음들이 실은 '거래'에 불과했다는 사실.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는 사실이었다.
내 남자 친구는 지방 2년제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처음에 그 사람과 교제를 시작했을 때 내 주위 사람들은 날 말리고 설득했다. 그들의 요는 나보다 나은 사람하고 교제를 하라는 것이었다. 나보다 나은 사람? 나보다 좋은 대학 다니고 좋은 집에서 살면 나보다 나은 사람인가?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돼는 소리가 어디 있어! 요즘 세상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와 교제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한번도 싸우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엔 물론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사람 하나만 보고 좋아한 것이 사실이지만 오빨 만난 이후에 난, 늘 오빠를 공부시켜서 좋은 학교에 편입시킬 생각만 했었다. 물론 겉으로는 개인사정 때문에 더 이상 음악 일을 할 수 없게 된 오빠를 생각해서 공부시킨 것이었지만 속으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빠가 나보다 더 좋은 학교, 아니, 최소한 우리학교 만이라도 올 수 있었으면... 그럼 사람들 앞에서 창피하지 않을 수 있을 텐데... 항상 이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 나를 느끼면서도 난 다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미래를 위해서' 라는 거짓과 위선으로 나를 똘똘 감쌌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항상 남자 친구를 위한 선물을 살 때에도 그 이상의 것을 바라고 선물을 산다. '내가 이 정도 신경 썼으니까 오빠도 이 정도는 신경 쓰겠지.' 항상 남자친구의 선물을 고르는 내 머릿속은 그런 계산으로 가득 차 있다. 정말 순수하게 사랑하는 마음에서 선물을 골랐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 지긋지긋한 계산과 욕심. 그것들이 내가 그토록 주장했던 사랑의 본래 모습이었던 것이다.
지난 번 강의를 들은 후, 난 남자 친구와 우리 수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특히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사랑이 아닐 지도 몰라. 우리는 서로 거래를 하고 있는 거야. 그 거래를 사랑으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거라고.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에서 교만 빼고, 욕심 빼고, 이기심, 허영심 모두 빼고 남는 순수한 그 자체가 사랑이래.”
내 말을 들은 남자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런 거 다 빼고 나니까 뭐가 남았어?”
남자 친구의 질문을 들은 순간 난 머리가 멍해져 왔다. 뭐라고 해줄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랑'이 남았다는 듣기 좋은 거짓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에 오빨 만나면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오빠에 대한 내 사랑에서 욕심과 허영, 이기심 같은 걸 빼니까 아무 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허전했어. 난 아마도 온전하게 오빠를 사랑하지 못 하나 봐. 미안해.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그런 것들을 다 지워내고도 온전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그런 사랑을 가꿀 수 있도록, 내 마음속에 있는 그런 것들을 다 버리고도 사랑할 수 있도록 많이 단련할 거야.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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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3.
넌 누구니?
내가 지금 알고 있는 모습은 나의 진실한 모습일까? 내가 가지고 있는 나도 알아채지 못한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이야기는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다. 친구들과 뛰어 노는 것보다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막내로서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학생이다.
어느 날 아침, 조회를 나갔다가 용돈 8400원을 잃어버렸다. 그 당시만 해도 나에게 8400원은 정말 큰 돈이었기에 펑펑 울고 상심을 했었다. 그러나 이미 잃어버린 돈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깨끗이 포기했다! .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방과 후에 좀 남으라는 부탁을 해왔다. 할 말이 있다고... 난 남아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친구들은 한 친구를 데려왔다.
“0 0 아, 얘가 범인이야.”그 아이는 몸이 조금 불편하고 말도 잘 못하는 아이였다. 내용인 즉, 평소에는 가난해서 군것질도 마음대로 못하던 아이가 그날따라 수첩이니, 지우개니 하는 이런 자잘할 것들을 사 모았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도 돈이 남아서 애들한테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사줬다고 했다.
“아니야, 나 8400 원 가지고 있지 않았어. 어제 할머니가 8300 원 주셨단 말이야.”
뭐... 8300원 이라고? 난 그때서야 신발주머니에서 남아 있었던 100원짜리 동전 하나가 생각났다.
“**야, 넌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이겠지만... 어쩌니? 이 말로 인해서 니가 범인이라는 게 확실해 졌어. 어제 내 신발주머니에 8400원이 있었는데 100원만 달랑 남아있었거든.”
그 아이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정말 실망했어. 난 니가 모습은 좀 초라해도 정말 착한 아이인 줄만 알았어. 이렇게 남의 돈 가져가고도 계속 시치미 떼고 거짓말하는 그런 아이인 줄 몰랐어. 지금이라도 인정하면 용서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어.”
그 친구는 계속 흐느껴 울었다. 속으로는‘뭐가 저렇게 서럽다고 울지?’하면서도 난 점점 더 잔인해져 갔다. 결국엔 그 아이의 자존심을 긁는 아주 나쁜 말까지 해가면서 그 아이에게 8300원의 대가를 치르게 했다. 내가 그 아이에게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니가 그러니까 너희 할머니가 장님이 됐지”였다.
부모님 없이 가난한 할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던 그 애. 그 전까지만 해도 난 그 애의 친구였다. 가끔 집에 놀러 가면 할머니께서 너무 좋아하셨기 때문에 난 그 아이와 놀아주는 것을 마치 큰 자선이라도 베푸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렇게 착한 척을 했던 내가 드디어 잔인한 본성을 드러낸 것이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때 그랬었나 싶은 후회가 든다. 그 멍청할 정도로 착한 아이가 어쩌다 실수로 돈을 가져갔던 것을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몰아붙였던 내가 참으로 무섭다.
그 일 뿐 아니라 중, 고등학교 때 무심코 했던, 나의 사냥개에 의해 의도된 착한 말이 아닌 정말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서 ! 친구들에게 상처를 줬던 잔인한 말들...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잔인한가. 그런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반성은커녕 ‘난 착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다니... 나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알아가면서 반성하고 이제는 조금 더, 진실로 너그러운 사람, 마음에서 우러나는 모든 것들이 착하고 깨끗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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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4.
진정한 지성인이 되기 위한 발걸음
“공부해라,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 주니?”
“고등 학교 3년만 수도하러 산에 왔다고 생각해라. 그러면 너희들 평생이 편해진다.”
지난 고등학교 3년 동안 선생님들께 지겹도록 들어왔던 말들이다. 대학에 가면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 다 할 수 있을 거야. 대학에 가면 맘껏 멋도 부리고 미팅도 하고 남자 친구도 만나고... 대학에 가면... 대학에 가면...
우리가 그토록 '대학'을 동경해 왔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지성인이 되기 위해서? 글쎄... 고등학생 중에 지성인이 되기 위해 대학을 가고 싶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대학생 중에 자신이 지성인이라고 자신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올해 초, 학교에 합격을 하고 떠났던 새내기 배움터. 그곳에서 우리는 학생회 선배들이 준비한 공연들과 교육(?)을 받았다. 주제는 반미 투쟁과 등록금 투쟁. 교육을 받는 내내 너무 지루하고 쪼그려 앉아 있는 것이 힘들기만 했다. ‘도대체 이러 것들을 왜 하는 거지?’ 그때는 정말 이해가 안됐다. 사실 요 근래까지도 등굣길에 학생회에서 나눠주는 소식지 하나하나가 너무 지겹고 귀찮기만 했다. 애써 나눠준 것이지만 제대로 읽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족들이 모이는 저녁 시간에 많은 숙제와 시험 때문에 걱정하는 날 보고 우리 부모님은 안타까워하시며 “아빠 학교 다닐 때는...” “엄마 학교 다닐 때는...” 하며 항상 우리와는 다른 낭만적인 대학생활 얘기를 많이 해주신다.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많지는 않았지만 훨씬 낭만적이었다고. 그리고 현실 비판에 대해 무관심한 나와는 달리 부모님께서는 수업이 끝나면 항상 친구들과 모여서 현실에 대해 비판하고 반성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많은 운동에 참여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그런 말씀들을 하실 때만해도 그때는 우리와 많이 다르니까... 하는 생각만 하고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번 수업에서 "To say 'no' to society"라는 칠판 글씨를 보았을 때, 이상하게 앞이 캄캄해 졌다. 그동안 내가 했던 행동들... 무심히 지나쳤던 많은 현실들... 현실 참여를 촉구하는 많은 글들. 그런 것들이 여기저기서 마구 쏟아져 나왔다. 난 그런 것들을 왜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일까. 왜 나는 그런 것들에 무관심했었던 것일까. 정말 나 자신에 원망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를 내려가면서 나는 수많은 소식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에 대한 미군 사과 촉구, 장애인 보호를 위한 서명 운동... 그동안 그런 것들을 바쁜 발걸음으로 도망치듯 지나갔던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서명을 했다. 이제 시작이다. 정말 진정한 지성인이 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 사회에 ‘no’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그저 방관하고 있지 않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학교 교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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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5.
생각이 너무 많아 힘든 나
난 이제까지 22년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생각으로 나를 채찍질하며, 허덕이며 살아왔다. 모든 슬픔과 불안은 '생각'에서 온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순간 그 동안 그놈의 몹쓸 '생각' 때문에 울며 힘들어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특히 지난 2 년 동안 매일 밤 나를 울게 했던 그 '생각'... 다름 아닌 '대학'과 '자존심'이었다.
2000년 첫 번째 수능을 치르고 들어간 학교는 지방에 있는 사범대였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외대에 들어오고 싶어했었지만, 2000 년 입시에서 외대에 떨어지고 말았다. 재수를 할 것인가 합격한 학교에 갈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결국 사범대에 입학을 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만족을 할 수 없었다.
내 머리 속에는 항상 친구들이 떠올랐다. 누구는 연, 고대, 누구는 서울대, 또 누구는 성균관대... 이렇게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내가 너무 창피하고 부족하게 느껴져서 친구들한테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항상 내 맘속에서 외톨이였다. 밤이면 아무도 없는 하숙집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울기 일쑤였고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방황하며 겉돌았다.
마음속으로는 항상 ‘난 너희들과 달라. 난 고등학교 때 공부도 잘했어. 나는 이런 지방 학교에 만족하는 너희들과 친구를 할 수 없어. 내 친구들은 모두 서울대, 연, 고대에 다닌다구.’ 이런 생각을 하며 의식적으로 그 친구들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내가 그 아이들보다 나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까칠해져 갔고 말라만 갔다. 몸이 너무 아파서 학교에 갈 수 없었다.
국립이라 등록금도 싸고 게다가 장학생이니 학비 걱정은 없다고 좋아하셨던 부모님도 그렇게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많이 걱정 하셨다. 결국 나는 학교를 한 학기도 채 다니지 못하고 자퇴서를 내고 나왔다. 그런 후 다시 시작한 수능 공부. 하지만 모든 것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또! 한번 외대에 떨어졌고 그리고 나는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아만 갔다.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당시 항상 옆에 있어 주던 남자 친구와도 헤어진 채 하루 종일 방 안에만 있었다. 몇 달 사이에 8kg이나 빠지고 얼굴은 온통 울긋 불긋 여드름투성이가 되었다. 혼자 있을 때면 하루에도 몇 번씩 창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저 아래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죽겠지? 그래... 죽을거야. 이렇게 살아서 뭐해...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
이렇게 힘들어했던 2 년. 이 모든 것이 다 이놈의 몹쓸 '생각' 때문이었다니 정말 화가 났다. 결국 나를 괴롭혔던 것들은 입시도, 대학도 아닌 ‘나’였다는 걸... 나 스스로 나를 그토록 힘들게 만들었다는 걸... 비단 이것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오면서 부딪혔던 수많은 혼돈과 불안, 슬픔. 그리고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불안감. 항상 누군가 나를 쫒아 오고 있는 것 같은 이 느낌... 이런 것들은 모두 나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걸...
나만 변하면 되었을 것을... 난 지금까지 왜 그렇게 힘들어하고 헉헉거렸던 것일까?
이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다. ! 난 항상 생각이 너무 많아 힘들다. 이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이란 놈에서 좀 벗어날 수 없을까? 그럼 좀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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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6
새로운 시작
시험을 끝내 놓고 여유롭게 앉아서 책을 꺼내었습니다. 한 장 한 장 읽어 가는데 도무지 무슨 얘긴지, 읽은 내용이 도대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선생님 수업도 열심히 들었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케이 할배 말씀도 잘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었는데 아직은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그래서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렇게 수업을 듣고도 그 분의 말씀을 이해 못하다니... 그것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직 못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계속 머리만 아파 왔습니다.
다음날, 이 책을 모두 이해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역시 아무 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전날보다는 훨씬 읽기가 수월했습니다. 읽는 중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셨던 사냥개와 쏠라당, 사랑, 자유, 지성에 대한 것들이 하나 하나 떠올랐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저의 내적인 성숙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높은 등수와 더 나은 점수만을 위해 공부하고 다른 것들은 애써 외면하려 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왜 고달픈지, 이런 것들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학교에서, 집에서 하라는 대로, 모범생인척 하면서,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사는 삶이 최고로 잘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이 아님을 어렴풋이 느낍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면서 너무너무 힘들었고, 고달프고, 외로웠습니다. 막상 주위를 보면 다 나만 쫒아오는 것 같았고, 어쩔 때는 친한 친구들까지도 무섭게 보였습니다.
비단 저만 이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모순을 잘 알면서도 애써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내 모습을 들여다보면 내가 더 고통스러울 거라 믿었고, 그래서 애써 외면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수업을 들으며, 케이 할배의 말씀을 천천히 읽으며 다시 저의 모습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점점 편안해 짐을 느낍니다. 처음에는 내 스스로의 모습이 너무 추하고 무서워서 당장 큰 일이라도 날 것 같더니, 지금은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내가 지금까지 외면해 왔던 나의 모습들에도 연민과 애정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나만 이렇게 힘들어하고, 참아왔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세상에는 나 혼자만 이렇게 아픈 것이 아니라는 것,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고통스러운 모습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책을 읽는 동안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케이 할배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조금은 자신의 욕심,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 볼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아직은 어린 나이에 이런 말씀을 접할 수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수월 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수많은 세월을 자기 자신 속에 갇혀서 고통스러워하고 외로워했던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케이 할배의 말씀을 더 받아들이기 힘들겠지요.
하지만 무슨 욕을 얻어먹더라도 제 주위 분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들도 저처럼 처음에는 많이 혼란스럽고 무섭기도 하겠지만 나중에 자신의 모습을 계속 들여다보면 훨씬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끼겠지요.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편해지면 이 세상은 얼마나 편안한 곳이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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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7.
나의 열정을 찾아서.
이번 강의에서 선생님께서 "내 맘 속에서 진실로 우러나서 하는 일이 열정으로 하는 일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노력"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지금 내가 열정을 갖고 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열정을 갖고 매달렸던 일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나는 피아노가 참 좋았다. 다른 학원은 한 달도 못 채우고 그만두기 일쑤였지만 피아노 학원은 꼬박꼬박 빼먹지 않고 십 년 동안을 다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마지못해 했던 것 같다. 피아노 학원 가는 것이 재미 있기도 했지만, 가끔 빼먹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학원을 빼먹으면 엄마한테 혼날 게 뻔하기 때문에 빼먹을 수가 없었다. 내가 피아노 치는 것에 열정을 갖고 있었다면 그렇게 학원 가기 싫고 피아노 치기 싫은 날이 없었을 텐데... 그렇다. 그건 열정이 아니었다.
그럼 다음, 고등학교 때. 나는 중학교 때부터 프랑스어를 좋아했다. 따로 배우진 않았지만 막연히 프랑스가 좋고 프랑스어가 좋았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진학하는 최우선 조건으로 제 2 외국어를 프랑스어로 택할 수 있는지를 보았다. 그리고 입학한 고등 학교. 일주일 내내 불어 시간만 기다려지고 프랑스어를 배워 가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발음을 익히는 것도 재미 있었고, 그 어렵다는 문법도 참 재미 있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월등히 불어 실력이 좋았고 물론 점수도 높았다. 그때는 정말 열정을 가지고 공부를 했던 것 같다. 다른 아이들 수학문제를 푸는 시간에 불어 문제집을 풀면서 너무 행복했으니까...
그래... 그것이 열정이었을까? 프랑스가 좋고, 프랑스어가 좋아서 택한 우리 학교, 우리 과. 하지만 지금 내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 좋아했던 불어를 실컷 배울 수 있는데도 예전처럼 신나서 공부하지 않고 정말 힘겹게, 힘겹게, 하루하루 좌절하면서 진도를 따라가고 있다. 책을 펴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온다.
물론 프랑스어가 싫어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재미 있고 정말 매력적인 언어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내 태도가 문제인 것 같다. 내 스스로의 여건, 모습을 보려하지 않고 프랑스에서 살다 온 애들, 불어를 잘하는 애들의 기에 눌려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고 있다. 어떻게든 따라가 보려는 욕심과 생각에 사로잡혀 점점 나를 몰아세우고 채찍질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열정보다는 노력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따라가는 것이다. 그래. 그거였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노력보다는 열정으로 불어 공부를 했던 나의 모습. 그리고 그와는 완전히 대조되는 지금의 내 모습... 욕심을 버리자. 생각을 버리자. 내가 예전만큼의 열정으로 사랑으로 불어를 공부할 수 있다면, 나는 자연히 예전처럼 불어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자. 나는 나일 뿐. 예전처럼 열정으로 공부를 다시 한다면 내가 하고 싶었던 통역도, 번역도, 그 모든 것도 못할 것이 뭐가 있을까? 다시 한번 나를 들여다본다. 내 안에 있는 나의 열정을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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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8.
쏠라당
유난히 추운 올 겨울, 코트 한 벌도 없는 남자 친구에게 코트를 한 벌 사주고 싶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다가도, 엄마와 함께 내 옷을 사러 간 백화점에서도 남자 친구에게 입힐 코트만 눈에 들어왔다. 난 아르바이트도 하니까 돈을 조금만 절약해서 쓴다면 얼마든지 코트 한 벌 정도는 사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하지만 난 지금 갈등하고 있다. 내 사냥개가 자꾸 내 바지 가랑이를 물고 늘어지고 있다.
‘바보야. 한번 생각해봐. 그가 너에게 무엇을 해 줬는지. 너 걔한테 그 흔한 꽃 한 송이라도 받아본 적 있어? 그것 봐. 그는 너한테 아무 것도 해준 게 없잖아. 이 바보야. 너만 손해야.’
‘그래도 코트가 있으면 남자친구가 겨울에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코트가 어디 한두 푼이야? 너 여름에 간다던 연수 비용 어떡하고? 남자 친구 코트를 사려면 넌 한 달을 더 고생해야 해.’
‘그건 그렇지만... 코트가 없으면 오빠가 추울 텐데?’
‘제발 정신 차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받는 것에 익숙해져서 나중엔 고마워하지도 않을걸?’
요즘 내가 가장 고민하고 있었던 부분이다. 남자 친구 코트를 사느냐 마느냐를 고민했던 것이 아니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사랑'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사랑' 수업에서 큰 충격을 받고 난 후 뭔가 달라지기를 바랐지만 난 아직도 그대로인 것이다. 내 마음속 잣대가 남자 친구를 이리저리 재고 있었던 것이다.
매일매일 되풀이 되는 쏠라당의 연속은 나를 참 지치게 한다. 그게 뭐 좋은 거라고 이십 년이 넘는 세월을 사냥개를 벗 삼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선생님의 수업에서 난 참 많은 생각을 하고 반성을 하지만 그것을 일주일 삶으로 끌고 가지는 못하는 것 같다. 도대체 왜 난 '뺀질이와의 대화'에서처럼 뭔가를 깨닫고 편안해지지 않는 것일까? 그만큼 내 안의 사냥개가 크기 때문일까?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지치고 힘들다. 나도 그들처럼 ‘알아채기’를 해서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내가 이렇게 많은 생각으로 힘들어하지는 않겠지요... 생각으로 힘듭니다. 답답하고 계속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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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9
한 시간 반의 실종
선생님 전 정말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오늘, 그러니까 정확하게 11월 16일 토요일 오후 일곱 시 30분 정도 되었을 때였어요. 남자 친구(제 보고서에는 남자 친구가 자주 등장하는군요. ^^;;)가 약속 시간에 많이 늦을 것 같다고 한 시간 반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군요. 제가 있었던 곳은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범계역이었어요.
지금부터 한 시간 반을 어떻게 기다리지? 남자 친구의 연락을 받자마자 걱정부터 되더군요. 그날따라 날씨도 너무 춥고 그래서 우선 범계역 안으로 들어갔어요. 실내 벤치에 앉아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워낙에 현기증이 있어서 인지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있으려니까 머리가 어질하며 멀미가 나더군요.
그래서 잠시 눈을 감고 사람들을 다시 쳐다보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그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으려니까 마치 영화에서처럼 저 혼자만 정지되어 있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나는 가만히 정지되어 있고 사람들은 마치 비디오 테이프를 빠르게 돌린 것처럼 휙휙 무관심하게 지나가는 그런 느낌...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바쁘게 걸어가는 것일까? 엄마 손을 잡은 어린 아이부터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웃는 연인들에 바쁘게 뛰다시피 하시는 아저씨들, 그리고 힘겹게,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기시는 어르신들 까지... 이상하게 애틋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들도 저처럼 평생을 사냥개에 쫒기면서 살아왔겠지, 아니면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사냥개에 쫒기면서 살아가겠지? 눈물이 나올 정도로 애틋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눈을 돌렸을 때 보였던, 늘 손님이 없던 지하철 역 내의 '또띠아 슈' 매장 주인 아줌마도 오늘따라 너무 애틋하게 보였습니다. 손님도 없는 가게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빵을 굽고 계시는 아줌마가 참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늘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그 가게에 손님이 꾀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의식 중에, 내가 항상 그 가게 앞을 무심하게 지나왔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 가게를 그냥 지나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제가 그 가게를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는 동안 꾀나 많은 손님들이(세어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삼십 명은 넘었을 겁니다.) 그 가게에 들러서 슈크림이 가득 든 '또띠아 슈'를 사 먹고 가더군요. 왜 나는 내가 무심히 지나갔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 가게를 지나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내가 평소에 항상 날 중심으로, 내 생각대로만 살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이러한 생각에 빠져들면서 또 어쩔 수 없이 난 사냥개의 먹이라는 것을 깨닫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요? 정말 짧은 시간 동안 멍하니 사람들을 바라보고 가게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제 남자친구가 제 앞에 와 있더군요. 도착하려면 한 시간 반이나 걸릴 것 같다고 했던 제 남자친구가 말입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계셨나요, 아가씨?”
“어, 오빠 빨리 왔네. 도착하려면 한 시간 반 넘게 걸릴 것 같다더니.”
“무슨 소리야? 벌써 아홉 시가 넘었어. 오는데 한 시간 반도 넘게 걸렸는데?”
그 말을 들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분명히 고작 몇 분이 흘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제가 기다리기 시작한지 한 시간 반이 지났다니요. 사실 아직도 머리가 띵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선생님, 제 한 시간 반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원래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으면 시간이 그렇게 빠르게 가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정말 신기한 경험을 한 것일까요? 기분이 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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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10.
속물
목요일 영어 시간. 선생님께서 저번 시간에 보았던 단어 시험 결과를 나누어 주셨다. 단어 시험에서 한 문제를 틀린 것으로 기억하는데 시험지를 보니 만점으로 나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선생님께서 틀리게 쓴 철자 한 개를 알아채지 못하시고 그냥 맞은 것으로 하신 것 같았다. 순간 난 갈등을 했다. 선생님께 말을 드릴 것인가, 아니면 그냥 모른 척 하고 점수를 잘 받을 것인가. 많은 점수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일 점일 뿐이다... 하지만 난 결국 선생님께 말씀드리지 않았고 누가 볼세라 답을 얼른 고쳤다. 단지 일 점 때문에... 그렇다, 난 속물이다.
목요일 저녁. 오후 다섯 시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퇴근 시간과 겹쳐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난 다행히도 사당 역에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몰려 오는 졸음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자다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살그머니 눈을 뜨니 내 앞에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난... 결국 그 할머니를 보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자는 척을 했다. 나는 그런 속물이다.
금요일은 남자 친구와의 기념일이었다. 내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서 날 기다리고 있을 남자 친구를 생각하며 행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또 그 무서운 사냥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추운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사람보다는 그가 나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장미꽃을 한 아름 들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커다란 인형을 들고 서 있을까... 하지만 밖으로 나갔을 때 그의 손에는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순간, 그 실망스러움이란... 그리고 하루 종일 나는 남자친구 앞에서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난... 속물이다.
토요일, 내가 너무 좋아했던 엄마의 사촌 동생(내가 그냥 이모라고 부르는)이 결혼을 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너무 동경하고 인생의 모델로 삼았던... 나보다 아홉 살 위의 이모. 나처럼 키는 작지만 얼굴도 예쁘고 똑똑해서 나는 당연히 이모가 정말 좋은 조건의 사람과 결혼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동안 이모가 사귀어왔던 사람도 그런 사람들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모의 옆에 있던 분은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샐러리 맨 이었다. 외모도, 어떤 조건도 이모보다 많이 떨어지는 그런... 그저 그런 사람.
속물인 난 당연히 실망을 했다. 내가 기대했던 이모인 만큼, 정말 아까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결혼식 내내 난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치. 저 사람이 도대체 뭐가 좋아서 이모가 저런 사람하고 결혼을 하냐. 내가 보기에는 외모도, 학벌도, 직업도 이모보다 훨씬 떨어지는데... 하지만 이모와 새이모부의 신혼 여행 배웅을 할 때 이모의 행복해 하던 표정을 보고 갑자기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구나. 결혼을 하는데 사랑보다도 조건을 먼저 생각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어른들의 모습. 이모가 저렇게 행복해 하는데... 그거면 되는 건데... 난 정말 속물인가보다. 언제쯤이면 자유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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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11.
선생님... 어떤 것이 사랑일까요?
오늘... 결국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정말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너무 힘이 들어요. 잠시 동안 연락하지 말고 시간을 갖자는 그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낮에 문자를 보냈어요. 제가 너무 힘들다고, 차라리 이럴 거면 헤어지자고 그렇게 보냈거든요. 전 그냥 투정부려 본 건데 그 문자를 받고 오빠가 정말 무섭게 화를 내더라구요.
그러더니 조금 전에 문자가 왔어요.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정해서 미안하다고. 근데 이제 더 이상은 니가 못 버틸 것 같다고... 저한테는 좀 더 자상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어울릴 거라면서 미안하다고 그러더라구요. 갑자기 그래서 미안하다고. 자기가 지금의 십분의 일 만큼도 너한테 신경 못 써 주면 넌 아마 못 견딜 거라고. 그런 말을 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그 동안 그 사람을 힘들게 했었나... 내가 욕심이 너무 많아서 그 사람한테 집착을 했던 것은 아닐까... 싶어서 반성도 많이 하고 다시는 힘들게 하지 않을 테니까 헤어지지 말자고 그렇게 말했는데 지금 까지도 아무런 대답이 없네요.
처음에는 정말 그 사람을 이 만큼 좋아하게 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너무 좋아지게 됐어요. 사귀면서 선물 한번 받은 적이 없지만 그래도 사랑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아무런 불만 한번 하지 않고 사이 좋게 지냈었는데... 전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 지금 닥친 상황이 너무 버거워서 자기 하나 감당하기도 힘들대요.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대요. 제가 지금 그 사람 옆에 그냥 있는 게 그 사람한테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니면 그 사람 뜻대로 헤어져서 못 본 척 하는 게 도움을 주는 건지 정말 모르겠어요. 저는 지금에서야 그 사람을 내가 얼마만큼 사랑하는지 알 것 같은데 헤어지자고 하니까 아무 생각도 안 나요.
선생님. 어떤 것이 사랑일까요? 지금 자기 사냥개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 그 사람... 그 사람이 원하는 데로 그냥 헤어져서 연락 끊고 지내는 것이 사랑일까요, 아니면 그 사람 옆에서 조금 힘들더라도 계속 있어 주는 것이 사랑일까요?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현명한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사랑한다면서 헤어지자고 하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죠? 불과 몇 일전까지는 사랑한다고 자기 입으로 그래놓고 이제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하지 않네요. 연락도 피하고...
선생님. 지금 제가 그 사람 옆에 있고 싶어한다면 그건 집착일까요? 이게 사랑인 건지 집착인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랑 매일 연락 못하고 자주 못 만나도 좋으니까 그냥 그 사람 옆에서 힘이 되고 싶은데... 왜 그걸 모르는 걸까요?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없는데... 그냥 옆에 있고 싶은 것뿐인데...
선생님 너무 혼란스러워요. 케이 할배 수업을 듣지 않았더라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었겠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데로 밀고 나갔을 거에요. 하지만 이제는 사랑을 따라가고 싶어요. 무엇이 사랑인지... 솔직히 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놓아주길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잡아주길 원하는 것인지... 그것만 알아도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무엇이 사랑인지도 모르겠네요. 정말... 왜 이런 것인지 모르겠어요. 마음을 비워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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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12.
생활의 발견
어제는 눈이 정말 펑펑 내렸다. 흩날리는 눈발을 보면서 마음이 정말 포근해 졌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오늘 아침 학교를 가는데 도로가 꽁꽁 얼어서 그런지 평소엔 오 분에 한 대씩 오던 버스가 삼십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삼십 이, 삼분을 지나서 온 버스는 정말 만원버스였다. 사람이 꽉꽉 들어찬 만원 버스... 난 겨우 자리를 잡고 손잡이에 매달렸다.
도로가 빙판이라 미끄러워서 차도 엄청 막히고... 이러다 학교 늦지 싶어서 애가 바싹바싹 탔다. 하지만 밀리는 차에서 내려 뛰어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런 저런 걱정을 하다가 어느새 지루해진 나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봤다.
세상에... 눈 쌓인 논 풍경이 너무 예쁜 것이다. 정말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도대체 여기가 어디지? 매일 지나가는 곳인데도 이런 논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주위를 둘러보니 왠지 낯이 익었다. ‘잠깐, 잠깐... 여기 우리 동네랑 가까운 데잖아. 그럼 난 우리 동네 근처에 논이 있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었단 말이야?’
고등학교 때부터 줄 곳 그 방향으로 학교를 다녔었다. 물론 고등학교 때는 학교로 가는 차 안에서 잠자기 바빴지만 말이다. 그래도 오 년을 넘게 다녔던 길에 논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그렇게 아름답게 눈이 쌓인 논은 정말 내 생에 처음 보는 것이었다. 또 한번 ‘아차~’ 싶었다. 이렇게 나는 내 주위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왔구나.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치고 있는가? 다시 한번 내 주위 사소한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또 하나 느낀 것. 내 주위에는 날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이었다. 헤어짐 후에 많이 힘들어하는 내게 정말! 많은 힘이 되어준 사람들... 일부러 시간을 내서 내 기분을 풀어주고, 좋은 얘기, 힘이 되는 얘기도 많이 해주고... 난 그들에게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그들은 나를 위해 걱정해주고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있었다. 난 그런 것들이 정말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리고 나도 온전히 많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세상 모든 것은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새롭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 비록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는 것들일지라도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사랑스러운 것들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 이런 사실들이 날 행복하게 해준다. 비록 내가 지금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순간순간 생활의 발견을 해나간다면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
넘 늦게 보내서 죄송하구요. 다른 분들 보고서에 비해서 제 것은 너무 형편없네요. ^^;; 헤헤... 그럼 다음 메일로 넘어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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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13
마지막 이라구요?
첫 강의 시간이 생각나네요. 전 선생님 수업 단골 지각생이었잖아요. 그런 제 나쁜 버릇이 뭐, 처음이라고 달랐겠어요? 첫 시간에도 한 십 분 정도 지각을 했었어요.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아서 선생님 말씀을 듣는데 그때 선생님께서 사냥개 얘기를 시작하셨어요.
얘기하시다가 "도대체 사냥개가 뭐라고 생각하냐!" 라며 바로 제 옆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질문 하셨지요. 전 그때 속으로 "나!" 라고 외쳤습니다. 제가 속으로 한 말을 선생님께서 들으셨는지 "바로 '나'입니다. 나를 쫓고 있는 사냥개는 바로 '나' 라고요!!"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순간 전 생각했습니다. 아... 내가 이 수업만은 내가 정말 원하던 수업이구나. 정말 열심히 들어야 겠다... 그랬었는데도 첫 수업은 참 이상하고도 벅찬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래도 다짐(그땐 다짐만으로는 아무 것도 안 된다는 사실을 몰랐었지요. ^^)을 하고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지요. 처음에는 제가 생각했던 수필론이랑(전 그냥 말 그대로 한국 수필을 배우는 수업인 줄 알았어요. 헤헤...) 너무 달라서 당황을 하기도 했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이 맘속으로 이해되지 않아서 이 수업을 계속 들어야 하나, 듣지 말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강의가 한 시간 한 시간 더해질 때마다 가슴이 꽉 채워지는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까페에 들어와서 화학작용이나 전이를 경험하신 분들 글을 읽으면서 부럽기도 했고 나도 저렇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건 생각만으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그땐 몰랐기 때문이었겠지요.
선생님, 저는요, 선생님을 통해서 정말 큰 사랑을 배웠습니다. 사랑을 느낄 수 있게되었고 마음이 많이 편해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더라구요. 선생님 덕에 상처도 빨리 아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헤어지고 몇 일 동안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고 그냥 눈물만 나고 학교에 와서도 그냥 멍하게 정신을 놓고 있어서 주위 친구들을 불안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많이 나아졌어요. 사랑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매정하게 절 떼어버린 사람이지만 하나의 사람으로서, 이젠 아무런 미운 감정도, 원망도, 어떤 다른 감정도 없이 가끔 연락도 하고 마치 제 주위 친구들을 보살피는 것처럼 그 사람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걱정해주고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그냥 친구처럼요. ^^ 꼭 연인 사이여만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이제 전 사랑을 조금은 알 수 있으니까 '거래' 가 아닌 '참 사랑'을 할 수 있을 거에요. 그것이 가장 큰 기쁨이에요. 한 학기 동안 이렇게 큰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셔서 뭐라 말 할 수 없을만큼 감사해요. 선생님 못 만났더라면 전 아마 평생 불행하게 사냥개에 허덕이면서 살아갔을지도 몰라요. 그쵸?
참! 저희 같은 반 친구 중에 선생님 수업 듣는 친구들이 또 있더라구요. 까페에 보고서 올려진 것 보고 알았어요. 0 0 이 빼고 두 남학생 하고는 얘기도 한번 못해봤지만 이렇게 귀중한 수업을 같이 들었다는 게! 참 신기하고 반갑네요. ^^
참~! 얼마 전에 선배 분께서 들을 만한 교양 없냐고 하시길래 선생님 수업을 말했어요. "한국수필론 들어보세요" 그랬더니 "아~ 그거. 그거 그냥 일주일에 하나씩 수필 써가면 점수 잘 준대매?" 이러시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그건 아니라고, 정말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수업이라고, 만만한 수업은 아니지만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답을 주는 수업이라고 침을 튀겨 가면서 말씀 드렸어요. ㅋㅋ
우와. 제가 말이 굉장히 많았네요. 헤헤. 전 선생님께 정말 감사해요. 다 아시죠? 이제 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 이제 흔들릴 때마다 까페에 들어 와서 글 남길께요.
정말 한 한기가 이렇게 빨리 간다니 참 놀랍네요. 선생님 말씀대로 전 이제야 좀 알게 된 것 같은데... 항상 전 뒷북을 친다니까요. ㅋㅋ 사랑도 뒷북, 깨달음도 뒷북. ^^
그래도 섭섭하지 않아요. 선생님 까페 만드신 거 정말 탁월한 선택이셨어요. 이렇게 학기가 끝나도 수업은 계속 될 수 있으니까요. ^^ 감사드리고요, 항상 건강하세요. 선생님께서 건강하셔야지 곳곳에서 선생님 친구가 많이 생기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