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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법정의 타협안을 거부하고 죽음을 택하게 했던 내면의 신적 음성, ‘다이모니온(Daimonion)’
사도 바울: "내가 부득불(ἀνάγκη) 할 임이라"던 복음의 소명과 선지자적 야성
조선의 성리학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키려 했던 하늘의 이치, 즉 ‘성(性)’과 ‘리(理)’
2. 인류 지혜의 공통의 핵(Core)과 신화적 서사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며 우리가 배워야 할 참된 지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옳은 길을 찾고자 했고, 자기 시대를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 공맹의 유학, 인도 구도자들의 수행,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는 인류 전체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공통의 핵(Core)’이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위대한 가르침과 종교는 본질적인 차원에서 보편성을 띠고 서로 소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대인들은 이 거를 수 없는 우주의 법칙(아낭케)을 ‘신화적 세계관’을 통해 공동체에 각인시켰습니다. 오늘날 기독교회가 반복하는 예배와 성찬식 역시 본질적으로는 이러한 신화적 내러티브를 되풀이함으로써 복음이 가진 보편적 아낭케의 내용을 삶 속에 명확히 하려는 거룩한 연극입니다. 그 이야기를 공유할 때 인간은 비로소 이기심의 동굴을 깨고 나와 서로 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경색(梗塞)이라는 이름의 죽음: 치우친 사회와 교회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발딛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氣)을 바라보면 환멸과 슬픔이 앞섭니다. 여전히 세상은 비루한 가치관으로 약한 나라를 침공하는 야만을 반복합니다. 역사 속에는 늘 고결한 가르침을 왜곡하는 비겁한 제사장들과 비루한 선비들이 존재해 왔고, 오늘날 우리 사회와 교회 역시 그들의 어두운 그림자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비극은 ‘경색(Sclerosis)’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굳어버리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죽음의 현상입니다.
⚠️ 사회적 경색 (사법과 검찰)
만인에게 공평해야 할 보편적 이치(理)인 사법 정의를, 특정 권력 집단이 자신들의 조직 논리와 수단(氣)으로 독점하고 사유화할 때 사법은 경색됩니다.
⚠️ 영적 경색 (교회의 현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적 사랑과 공의라는 대양(理)을 잃어버린 채, 개교회주의와 도그마라는 좁은 동굴(氣)에 갇혀 배타성을 띨 때 교회는 영적으로 경색됩니다.
저 역시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하나님의 공평한 이상을 현실 속에 구현하려 분투하다가 사임이라는 아픈 현실을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이상을 고집하는 주리(主理)의 뜨거움과 현실의 제약을 고려하는 주기(主氣)의 유연함이 역동적으로 교차하지 못하고, 경색된 배타성에 부딪혀 깨어지는 아픔이었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쳐 굳어버린 사회와 교회는 더 이상 생명의 호흡을 하지 못합니다.
4. 탈종교 시대의 새로운 아낭케: 세상의 번영을 위한 거대서사
종교가 힘을 잃고 신화가 해체된 이 ‘탈종교의 시대’에, 현대인을 다시 하나로 묶어줄 새로운 동아줄(아낭케)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신학자 톰 라이트의 통찰은 이 어두운 질문에 장엄한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성경의 진짜 진면목은 개인의 영혼 구원이라는 좁은 틀에 갇힌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온 피조 세계의 창조와 “생육, 번성, 충만”이라는 위대한 목표, 즉 ‘세상의 번영(Flourishing)을 위한 하나님의 거대서사’입니다.
이 거대서사를 복원할 때, 복음은 비로소 현대인을 연대하게 만드는 새로운 아낭케가 되며, 우리가 행해야 할 실천적 과제는 명확해집니다.
생태적 연대: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 앞에서 전 인류가 ‘지속 가능한 공존’을 위해 지구적 연대를 이루는 것
사회적 공의: 사법 권력의 독점을 깨고 만인에게 평등한 공의를 흐르게 하는 것
교회의 본질 회복: 교회가 영적 독선의 동굴에서 걸어 나와 세상의 아픔을 치유하는 상호 의존성의 공동체로 거듭나는 것
5. 흔들리며 피는 꽃, 그리고 새로운 출정
인간은 한쪽 극단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이상(理)을 향해 돛을 올리면서도 현실(氣)의 파도를 넘어야 합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진자운동은 필연적이며, 이는 마치 양손에 노를 쥔 배가 좌우로 흔들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목회의 현장에서,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마주했던 그 수많은 흔들림과 아픔은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보편적 복음의 꽃을 피워내기 위해 줄기를 단단하게 하시는 하늘의 거룩한 섭리이자 아낭케였습니다.
이제 기독교회가 나아갈 길은 명확합니다. 낡은 교리의 연극을 멈추고, 온 세상의 번영을 위해 인류에게 맡겨진 공통의 사명을 세상 앞에 선포하고 삶으로 살아내야 합니다.
1987년 강의실에서 심겼던 그 작은 아낭케의 씨앗은, 이제 경색된 시대를 향해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거룩한 보편적 연대를 회복하라”고 외치는 선지자적 음성이 되어 내 안에서 요동치고 있습니다.
치우친 현실 속에서 언제나 '다른 쪽'인 하늘의 도리를 생각하며, 흔들림마저 품으시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 다시금 온 마음을 던져봅니다. 우리는 모두 이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가꾸어갈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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