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17년 한양에서 태어난 김시습은 5세 때 이미 한시를 지은 신동으로 세종에게까지 이름이 알려졌다. 세종은 승지를 시켜 어린 김시습에게 시를 지어 보게 하였는데 세종의 마음에 들게 시를 척척 지어냈다. 세종은 어린 김시습을 장차 크게 쓸 재목이라 치하하고 선물을 내렸다고 하여 ‘오세(五歲)’라는 별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김시습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불교에 심취하였다. 혼인한 후 과거 공부에 매진하던 중 세조가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공부하던 책을 불살랐다. 이후 불가에 귀의한 김시습은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며 방랑객이자 구도자로서 살았다. 그는 31세에 경주 금오산에 집을 짓고 7년간 생활했는데, 이때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로 평가받는 <금오신화>를 창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시습은 세조의 왕위 찬탈을 반대하고 단종의 복위를 염원한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그는 유학자와 승려의 삶, 속세와 구도의 세계를 넘나들며 방랑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운명 속에서 참된 것을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와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에서 자유와 초월에 대한 염원을 구현하며 살았다. 말년에는 부여의 무량사에 머물며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