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주일설교 시편53:1-6
본문: 시편53:1-6
제목: 어리석은 자의 특징
오늘은 시편53:1-6의 말씀을 가지고
“어리석은 자의 특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눌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어리석은 자의 특징”
사무엘상25장을 보면
나발과 아비가일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나발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선한 마음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조롱하여 화를 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선하게 행동하도록 하는 자가 아니라
선한 사람으로 악한 일을 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다가온 사람에게 상처를 입혀서
칼을 들게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나발이었습니다.
나발이라는 말의 뜻은 미련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무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양 삼천 마리와 염소 천 마리를 가진 부자였습니다.
총명한 아내가 있었고
많은 종들과 땅들이 있었습니다.
반대로 아비가일은 나발의 아내였습니다.
그는 총명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선한 자를 선하게 대우하는 자였습니다.
싸우러 오는 자의 마음을 가라앉혀
부드러운 마음을 갖게 하는 자였습니다.
혈기로 사람을 헤하려 하는 선한 다윗의 마음을
잠잠케 하여 악한 일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더 나가서는 하나님이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혈기를 가지고 나발을 죽이려는 행위는
원수 갚는 일 곧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나발을 죽이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
나발을 죽이셨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이 막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하실 심판을 다윗 자신이 할 뻔 했습니다.
잘못하면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올라갈 뻔 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데
자신이 멸시 당했다고 화가 난다고
그 화풀이로 나발을 죽여 원수를 갚으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나발은 어리석고
아비가일은 어떻게 그렇게 총명할 수 있었습니까?
1.하나님이 없다는 자
오늘 시편은 다윗의 마스길이란 제목의 시편입니다.
마스길이란 말은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경험한 나발과 아비가일과 만남을 통해서
얻은 교훈을 시로 쓴 시편이
바로 오늘 함께 나눌 시편53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
어리석은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머리가 나쁜 사람입니까?
공부를 안 한 사람입니까?
셈이 느린 사람입니까?
융통성이 없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선언합니다.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그 사람은
바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그래서 박사가 되고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그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가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일까요?
그들은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부패하면 먹을 수 없습니다.
부패한 음식을 먹으면 몸에 이로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해로움을 주게 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자신을 정상적으로 유지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생물입니다.
생물은 살아 있지 않으면 죽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생령을 주어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없다고 하니
어떻게 그에게 하나님의 생령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선하게 태어났다고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은 원죄가 있고
그 죄로 인해 죽어야 하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매 그는 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손도 마찬가지로 죄 가운데
태어났기에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행하신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부패하여 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 우리를 위해 베푸신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어린 아이를 천사 같다고 하지만
그들을 살펴보면 그들에게도 욕심이 있고
사람을 조정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양보도 잘하고
친절하고 말도 부드럽습니다.
그냥 보면 전혀 욕심이 없을 것 같지만
자신에게 무슨 손해가 나는 일이 있거나
무시나 멸시를 당하면 전혀 달라집니다.
우리는 다윗을 아주 훌륭한 인격자라고 생각합니다.
시편을 보면 참으로 선한 신앙과
좋은 성품을 가지고 있어 보입니다.
그런 다윗이 나발에게 무시를 당하고
오해를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칼을 들고 자신이 데리고 있는 군대를 동원해서
나발을 죽이겠다고 나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우리가 몇 사람이나 죽였을까요?
하나님이 두렵지 않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했을는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겠습니까?
자신을 이익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은 밥 먹듯 할 것이고
도적질도 마음대로 할 것이고
남을 속이는 일은 할 수만 있으면 항상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을 만나보면
교회에 나와 하나님을 믿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두려움과 믿음 때문에 착한 일을 하고
구제를 하고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주교 신학자 카를 라너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부르거나 믿지는 않아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며 살기에 나름 그리스도인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그런 주장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고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발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였습니다.
그가 믿는 것은 자신의 부요함이었습니다.
양이 삼천 마리 염소가 천 마리면 아주 부자입니다.
그는 그 부를 가지고 있었기에
큰 소리 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말을 들었고
그가 그런 부를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은 똑똑하고 대단한 능력이 있는 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니 다윗이 우습게 보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다가
이렇게 어려움을 당하는 다윗이 우습게 보입니다.
다윗이 어떤 사람이고
그가 행한 일이 무엇이고
그의 마음에 어떤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현제 그가 사울 왕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 그것만 보았습니다.
나발은 지금 보이는 것만 보는 자입니다.
다윗의 지금 초라하고 쫓기고 있고
광야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발은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만 보였습니다.
그러니 무시하고 멸시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왕에게 쫓겨 다니는 다윗,
그래서 권력도 집도 가진 것도 없는 다윗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집도 있고
많은 가축도 있고 자신을 따르는 많은 종들도 있으니
다윗은 참으로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보였습니다.
나발은 돈이 중요했고 권력이 중요했고 많은 재산이 중요했기에 그것이 없는 다윗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그러니 먹을 것을 구하러 온 다윗을
마음껏 무시하고 멸시하여
조롱하고 쪽박을 깨버리는 행동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다면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았다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만 믿고
우리의 가진 것만을 으스대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은
그 다른 사람이 믿는 하나님, 그 다른 사람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살펴보십니다.
왜 살펴보십니까?
심판하시기 위해서 살펴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돈 때문에 가볍게 대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지식 때문에 무시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힘 때문에 멸시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행위에 대해서
심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가족들에게 한 행동을
내가 다른 성도들에게 한 행동을
내가 이웃들에게 한 행동을
하나님은 굽어 살펴보십니다.
이미 나발이 다윗에게 그렇게 무례하고
악하고 치졸하게 행동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심판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렇게 나발에게
당했을 때 감당할 수 없어서
보복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칼을 들고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었던 아비가일은
그런 다윗을 막아섭니다.
그런 미련한 자의 행동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들과 같이 화내고 칼을 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막아서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말렸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요?
아비가일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았습니다.
다윗이 비록 초라하지만 그의 진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아비가일은 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커다란 살육이 칼날 상황을 멈추게 했습니다.
어떻게 멈추게 했습니까?
말을 잘해서 멈추게 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보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하실 일은
자신이 손으로 행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총명함을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심이 하실 일을 하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도록 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을 드러내고 남을 무시하며
자신의 욕망에 따라서 혈기에 따라서 행동하는 자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차이가 날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계심을 인정하고 믿는가
그렇지 않는가 차이입니다.
그 후 나발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열흘 후에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심으로
그가 죽었습니다.
그때 다윗은 깨닫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당한 모욕을 갚아 주사
종으로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하였습니다.
나발은 힘이 있었고 심히 부자였지만
하나님께서 치시니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없는 듯이 행한 결과
그의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하지 못한 자들의 뼈를
흩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않을 곳에서
크게 두려워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됩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물리치셨기 때문에
그들은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2.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굽어
살펴보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그것을 판단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굽어본다는 것은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행동하는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하나님을 두루 두루 살펴보십니다.
슬기로운 자가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지 두루 살펴보십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보내 주셨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함께 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을 믿고 성령의 인도 따라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굽어 살핌 속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내 능력으로는
딴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한결같이 썩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착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사실을 알고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우리는 악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떡 먹듯 남을 해롭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살다가는
어느 날 하나님의 심판 앞에
겁에 질려 소스라치게 놀라는 날이 있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지
산이 자신을 가려주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으면
우리의 뼈는 흩어지고 세상에서 조롱거리가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시온에서 오기를 간절히 구합니다.
그렇습니다.
시온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시겠다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만나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해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잡혀간 백성들
곧 어려움에 처한 자들 고통속에 있는 자들을
하나님은 구원해 주십니다.
그때 우리는 즐겁고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즐겁고 기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재산을 믿고 살아야
즐겁고 기쁘게 살 수 있을까요?
그렇게 살다가는 미련한 나발처럼
그의 뼈가 한 순간에 흩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보내주신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합니다.
그 말씀을 깨닫고 행하기 위해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의 권고하심에 따라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게 총명하고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행하여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은
기쁘고 즐거운 삶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