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포 갯가
따스한 햇살이 감돌아 봄기운 완연한 이월 하순인 주중 수요일이었다. 아파트 단지에서는 격주로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는 날이었다. 헌 신문지와 플라스틱 재질을 아파트 뜰에다 내려놓았다. 이후 등산복 차림으로 길을 나서 마산역 광장으로 갔다. 삼진 갯가로 나가 봄볕을 쬐며 걷고 싶었다. 마산역 기점인 선두마을로 가는 78번 버스를 탔더니 어시장을 거쳐 밤밭고개를 넘었다.
버스는 동전터널을 지나 진동 환승장을 둘렀다. 사동마을을 지나 버스는 좌회전해 신기마을 앞을 지나 죽전마을로 갔다. 우산초등학교를 지나면 고현이다. 고현은 옛적 현이 있던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현부터는 갯마을 해안선이다. 차창 밖에 비친 장기마을 회관 앞은 몇몇 아낙이 미더덕과 홍합을 파느라고 쪼그려 앉아 볕살을 쬐고 있었다. 나는 78번 버스 종점인 선두마을까지 갔다.
선두마을에 내려 방파제로 나갔다. 벼랑 아래는 근동에서 보기 드문 남근석이 세워져 있다. 돌이끼가 붙어 자연석인지 인공을 보탠 것인지 구분이 쉽지 않는 물건(?)이다. 석물은 동신제를 지낸 정초인지라 왼새끼를 두르고 오색 깃을 펄럭이고 있었다. 풍어와 다산을 기원하는 갯마을 특유의 제의양식과 전통문화를 엿보았다. 나는 이런 맛에 매료되어 길가에 서성이는지도 모르겠다.
방파제에서 돌아 나와 마을 회관 앞으로 갔다. 가건물 안에서 무언가 열심히 손놀림을 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중년 부부는 진동 앞바다에서 제철 수확이 한창인 미더덕 껍질을 까고 있었다. 그들은 낯선 외래인인 나타나도 신경 쓰지 않고 아주 익숙한 솜씨로 미더덕을 까고 있었다. 까놓은 미더덕을 덥석 친절하게 집어주며 맛보라고 했다. 짭조름하며 향긋한 향이 나는 미더덕이었다.
아이스박스에 포장된 미더덕은 서울이든 부산이든 요청하는 곳이면 일일 경매 시장으로 탁송한다고 했다. 미더덕 생산은 이제 갓 시작하여 봄 한 철 계속된다고 했다. 나는 걸어 가야할 발길이 남은지라 지역 특산물을 팔아주지 못해 송구스러웠다. 중년 부부는 미안해 할 일 없다면서 미더덕을 더 맛보라면서 한 개 더 집어 주었다. 갯가의 넉넉한 인심과 풍요를 낄 수 있어 좋았다.
미더덕 향을 맛보고 갯가를 돌아갔다. 버스도 갈 길이 끊어진 선두마을 종점이었다. 비포장 도를 따라가니 인적 드문 곳에 개사육장이 있었다. 낯선 외지인이 나타나자 여러 마리 개떼들은 일제히 짖어대어 귀가 멍멍했다. 갯가로 난 길을 따라 돌아가니 율티공단이었다. 해안가 공장은 대형 조선소로 납품하는 철제 선박 부품을 만들어 쌓아 두었다. 나에겐 낯선 육중한 구조물이었다.
공장 모퉁이를 돌아가자 바위 벼랑아래는 식당이었다. 갯가라면 으레 횟집이어야 할 텐데 순대집이었다. 기품 있는 정원 조경수가 눈에 띄었다. 주인 아낙은 혼자 들린 손님한테도 맛깔스러운 순대국밥을 차려내었다. 나는 밑반찬을 안주 삼아 ‘좋은데이’를 한 병 비웠다. 이어 근처 공장과 관련 있는 일을 하는 인부들이 들어섰다. 이후 율티마을 회관 앞에 놓인 구름다리를 건넜다.
오후의 햇살은 더 따사로웠다. 암하교차로에서 왼쪽으로 돌아 이창교를 지났다. 이창교는 이명리와 창포리를 줄여 부른 이름이었다. 창포만은 들물에서 날물로 바뀌는 때였다. 두 낚시꾼이 낚대를 던져 놓고 있었다. 내가 무슨 고기가 입질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처음 나와 잘 모르겠노라 했다. 그들이 낚시 초보자가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물때를 모른 채 낚시를 나온 사람들이었다.
창포 갯벌 앞에는 벼농사를 짓는 간척농지가 있었다. 오래 전 매립된 해안선 따라 걸었다. 썰물이 되니 넓은 갯벌이 드러나고 북방계 철새들이 먹이를 찾고 있었다. 다시 자동찻길로 나오니 이명리 앞엔 비닐하우스가 덩그런 파프리카 농장이 보였다. 창포를 지나 고성 동해로 가는 길목엔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는 이정표가 있었다. 창포 앞 갯벌엔 아낙들이 바지락을 캐고 있었다. 13.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