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에 보이지 않는 나라 눅 17:20-21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하나님은 그분이 오랫동안 약속하신 것을 이제 이루셨습니다.
주님은 “이것이 좋은 소식이며, 이것이 복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왕의 선포이며 하나님 나라의 선포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세상이 지금 같은 이유는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와 정반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이것은 의가 도래하며 평안이 온다는 뜻입니다.
악이 제어되고 패배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어진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며 우리에게 영원한 복락의 소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것이 전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 분명한 메시지이며, 왕께서 직접 선포하신 메시지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분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고 그 나라에 우선순위를 두라고 촉구하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는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하고 묻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첫 번째 요점이 여기 있습니다.
처음부터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방식을 오해했습니다.
정확히 똑같은 사실을 보여주는 예가, 요한복음 6:30-31에도 나옵니다.
여기서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묻습니다.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
이들은 이렇게 물은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지도자였고, 우리에게 율법을 주었으며, 만나를 줌으로써 표적을 행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의 표적은 무엇입니까?
선생은 계속해서 한 왕에 대해 말씀하면서 자신이 실제로 그 왕이라고 하고, 선생께서 한 나라를 세우리라고 말씀하는데, 그 증거를 우리에게 제시할 수 있겠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바로 이 문제를 놓고 계속해서 예수님과 논쟁했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8:33-37에 나옵니다. 그 본문을 보면 빌라도는 사실 주님께 다음과 같이 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네가 왕이라고 말하고 너도 자신이 왕이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네 나라는 어디 있는가? 나는 땅 위의 나라를 대표하는 로마 황제의 대사다. 나는 이런 것을 이해할 만한 사람이다. 그런데 네가 스스로 왕이라고 말한다면 네 나라는 어디 있는가?”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그런데 더 놀랍고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까지도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초막절 때의 일입니다.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요 7:2-7). 이들은 하나님 나라가 눈에 보이게 임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이 점은 제자들에게도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4-7을 읽어 봅시다. “[주께서]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예수님이 직접 택하신 사도들조차 하나님 나라를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위대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메시아가 오시면, 그분은 무엇보다도 먼저 군사적이며 정치적인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요한복음 6:15에 특별한 구절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주님은 방금 5천 명을 먹이는 엄청난 기적을 행하셨고,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랐습니다.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 다음을 주목하십시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일반적 오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러한 오해는 우리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 오해 가운데 하나는, 세상을 바꾸고 개혁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려면 저항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조직적 운동과 캠페인을 벌이고, 불의와 핵폭탄과 전쟁을 규탄하라고 외칩니다. 지금까지 수세기 동안 계속되어 온 비극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다루신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어떻게 옵니까?
첫째, 하나님 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능력과 함께 임하며, 임했습니다.
누가복음 11:14-20이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계셨을 때 하나님 나라가 임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며,
하나님이 자연을 초월하신다는 사실이 나타나는 것이며,
하나님이 귀신들과 모든 악한 것들보다 강하시다는 사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계시면서, 기적을 행하시고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실 때 “이것이 하나님 나라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옥에 갇힌 세례요한에게 이 동일한 대답을 매우 극적인 방법으로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1-5에 요한은 주님이 갈릴리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요한은 당황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왕으로 계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고통과 아픔을 겪고 있는 요한은 두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저는 당신이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정말로 ‘오실 그이’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예수님은 이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주님이 행하신 기적과 그분이 보이신 놀라운 권능이야말로 하나님 나라가 그분과 그분의 능력 가운데 임했다는 표시입니다.
그 다음으로,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는 바리새인들의 물음에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라고 대답하십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를 기다렸고 지금 그 나라를 보고 있지 않느냐?
하나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는데도 보이지 않느냐?
하나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데도 보이지 않느냐?
능력이 느껴지지 않느냐?
하나님 나라는 여기, 내 안에, 나의 아버지께서 성령을 통해 내게 주신 능력 가운데 있다.” 이것이 주님의 대답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처럼 벌써 임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또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그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할 때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교회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교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교회”는 외형적 기관이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몸입니다.
교회는,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
그분을 알고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몸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참 신자들의 마음에서, 그분의 사랑에 매인 사람들의 마음에서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주님은 그 무엇보다도 그분을 알기 원하고 그분을 섬기기 원하며 그분의 능력을 깨닫기 원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왕으로 다스리십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한 형태이며, 현세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주요 형태입니다.
주님이 육체로 세상에 계실 때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지금 그분의 백성 속에 계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통해 일하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입니다(고전 12:27).
그러나 이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 나라의 세 번째 형태는,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이에 대해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한 날에 “인자의 날”이 온다고 말씀하십니다(22절).
그날에 하나님 나라가 가시적으로, 외형적으로, 누구나 볼 수 있고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임할 것입니다. 그날은 아직 오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세 번째 형태입니다. 이것은 교회 시대의 끝을 의미합니다. 그날에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십니다.
눈에 보이는 육체의 형태로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시며 구름 타고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인자가…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막 14:62).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계 1:7).
하나님 나라는 아주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신성의 위엄을 띠고 오실 것이며, 왕으로 다스리고 심판하시며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분이 이에 관해 직접 하신 말씀들 들어 봅시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7-28). 바로 이것입니다.
인자가 오셔서 그분의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심판의 보좌를 세우시고, 온 세상을 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믿지 않는 자들은 누구든지 마귀와 악한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형벌에 떨어질 것이며 그분 앞에서 추방당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온 세상에서, 온 우주에서 악이 제거될 것입니다.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사 11:6). 이것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취하는 세 가지 형태가 이러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까?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옵니다. 주님의 가르침이 그렇습니다. 내가 그분이 누구신지 인정할 때 하나님 나라는 내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첫 단계입니다. 내가 그분이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을 때,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일 때, 그때에야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들어옵니다.
하나님 나라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은, 내가 나에 대한 그분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내가 그분의 의로운 가르침에 “아멘”이라고 말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바리새인들은 한 주에 두 번 금식했으며, 소유의 십 분의 일로 가난한 자들을 구제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부족하다. 충분하지 못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으로도 충분하지 못하다. 너희의 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능가해야 한다.” 주님이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주님은 율법을 설명하십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8-19).
그런 다음에 주님은 자신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십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마 5:21-22).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침을 계속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여러분의 마음에 있다는 것은 여러분이 그분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