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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픽처
2024년 12월 15일 968번째 촛불집회
오늘 저녁 7시, 김천역평화광장에서 사드반대 촛불집회가 열렸다.
<박석민 사회자 여는 발언>
촛불시민들이 밝은 무언가를 들고 나와 세상에 빛을 비췄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윤석열의 두 번째 탄핵안 소추 제안 설명을 박찬대 의원이 쭉 하는 것을 들으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냐 하면, 민주당의 명문가들이 모두 달라붙어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괜찮은 문장과 단어, 구성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이 1980년에 5.18이 2024년의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건 참 명문장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5.18을 떠올렸습니다.
사실 계엄이 그때 전국으로 확대된 이후, 45년 만에 다시 강행된 이번 내란죄 계엄 선포와 관련하여, 광주에서 사망자의 수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10대 사망자가 58명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광주에서 10대가 총에 맞아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의 평균 나이는 27세입니다.
즉, 젊은 사람들이 광주를 지키기 위해 맨 앞에 서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와 연관 지어 단원고 세월호 아이들이 국가에 의해 구하지 못하고 모두 죽임을 당했는데, 그들이 살아있다면 지금 스물일곱 살이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로, 이번 탄핵과 국민들의 싸움,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젊은이들의 많은 희생이 있었고,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젊은이들이 가장 앞장섰다는 것을 보면서 여러 가지 희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은 힘을 얻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968회 김천 촛불 집회에서 윤석열 탄핵 열차에 올라탔습니다. 아직 종착점까지 가야 합니다. 그렇죠, 헌법재판소의 시간이 또 남아 있고, 반드시 탄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땅의 민주주의가 많은 희생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을 기억하며, 반드시 제대로 된 나라로 나아가야 합니다. 탄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권 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대개혁으로 나아가야 하며, 문재인 전 대통령이 하지 못했던 사회로 한 발 더 진전하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결의를 가지고 오늘 집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묵념 및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이종희 소성리대책위원장 발언>
이번 정권은 그만큼 사고친 일이 많았습니다. 우리 가정에 비유하자면 그 주정뱅이 아버지가 사고를 치면, 온 가족이 외상을 갚듯이, 우리 5,300만 국민들이 앞으로 이 외상으로 생긴 윤석열의 술값을 몇 년 동안 갚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술이 깰 만하면 또 마시고, 결국 아내의 화풀이를 국민에게 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통령실에 있는 참모들이 있지만, 그들보다 점쟁이들의 말을 더 믿고, 우리 뉴스 유튜버들 중에서도 이상한 말만 믿고, 이번에 계엄 선포할 때 정진석이 안 된다고 말했지만,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과 함께 이미 결정된 사항이라고 밀어붙였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비교한 바에 따르면, 대만과 우리나라의 주식 시장 시가총액이 1,300조 원으로 대만이 우리보다 높습니다. 대만의 인구는 우리보다 약 45%밖에 되지 않으며, 면적도 약 20%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국방비는 우리나라의 10분의 1도 안 됩니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남북관계보다 중국과 대만 간의 관계가 비교가 안 되지만, 그들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을 중시하고, 서민적인 정책을 추진하여 고용률과 실업률이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윤석열이 들어와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린 현상을 목도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탄핵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는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장시켰다면 다시는 부활하지 않도록, 제2의 윤석열이나 박근혜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정권은 국민 앞에 겸손하고 진정으로 마음으로 섬기는 정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정책을 수립할 때는 송곳처럼 날카롭고 정교하게 추진하며, 남북이 서로 진정한 형제를 나누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이루어내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여정이 우리가 큰 출발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어제 이재명 대표가 탄핵이 끝난 후 우리 민중들 앞에 나타나 과거 민주 정부, 특히 문재인 정부 초기에 자신들이 범했던 과오에 대해 언급했다고 하니, 그 초심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저는 현재 참외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제 참외는 제 자식과 같습니다. 4,500개를 밭에 심어 놓았는데, 20일 정도 되었지만 뜨거운 날씨 때문에 위에 많이 시들었고, 그중 몇 개는 시들시들하기도 하고 갈아입기도 합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면서 제 논 뒤에 있는 산을 바라보곤 합니다. 그러다가 낙엽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문학에 대한 애정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이 떨어지는 낙엽을 보니 정말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동지들은 떨어지는 낙엽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옛날 여자친구도 생각나고, 나이가 든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떨어지는 낙엽은 각양각색으로 떨어지는데, 어떤 것은 홀딱 비비면서 떨어지고, 어떤 것은 조용히 떨어지며, 또 어떤 것은 휙 하며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저 낙엽도 잎이 되어 생애 주기를 마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사드 투쟁에 비록 늘 바빠서 함께 동지들과 자주 모이지 못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더라도, 저 낙엽처럼 사드 투쟁에 대한 결의만큼은 다음 세대에 온전히 심어주고 생을 마감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비유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50년 전의 부부 이야기가 떠오르고, 그때의 애인 생각도 나고, 가슴 아픈 기억이 소환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어제 제가 말씀드린 대로, 희망을 갖는 것이 희망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드 철회라는 한결같은 희망을 끝까지 간직하여 반드시 이 사드 철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동지들과 함께하겠습니다.
김천의 동지들이 이 겨울에 모진 바람을 견뎌주셔서 소성리가 조금 따뜻한 것입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며, 우리 소성리도 예전처럼 투쟁의 규모나 횟수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본질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한 치의 물림도 없이 사드 철회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항상 선봉에 서서 동지들과 함께하겠다는 것을 약속드리며 오늘 발언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자숙 기록팀장 발언>
제가 예전에 학교에서 근무할 때, 한 선생님이 저에게 만화책을 가져가서 한번 보라고 하셨습니다. 학생이 공부 시간에 그 책을 읽고 있었는데, 그때는 교사들이 체벌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만화책을 읽고 있던 학생에게서 책을 빼앗고, 그 선생님은 이 만화책을 돌려줘야 할지 아니면 영원히 압수해야 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으니, 저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책을 읽어보니 제목이 '올훼스의(오르페우스) 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인이 쓴 책이라고 하더군요.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만, 읽어보니 글자 수가 너무 많아서 보통 만화책을 읽는 데 30분에서 1시간이면 다 읽을 수 있지만, 이 책은 하루 종일 걸렸습니다. 빈 시간에 계속 읽으면서 해가 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읽어보니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생님에게 "이 책이 너무 재밌고, 내용도 괜찮은 것 같다. 돌려줘도 되겠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책을 돌려주셨고, 그때 저는 같은 학교 선생님과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모습을 보고는,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만화를 쓴 사람이 썼다고 했습니다. 그 만화는 20권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뒷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하니, 그분이 구해주셨습니다.
읽어보니 이 만화는 독일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여러 나라의 치열한 첩자들의 모습과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끝부분에는 러시아 혁명이 나옵니다. 만화책으로는 드물게 이 책이 검열을 받았습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의 이야기들은 당시 5공화국 치하에서 읽히기 어려워 금서로 지정되었고, 그래서 한국 사람이 원본을 보고 대충 그려서 뒷이야기를 마무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뒤의 이야기는 매우 재미없게 끝났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드디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 러시아 귀족이었던 누나가 평민인 척하며 탈출을 합니다. 평민들의 세상이 되니 자기에게 가해질 두려움 때문에 탈출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동생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국경 수비대가 되어 국경을 지키고 있었고, 누나가 국경을 넘는 모습을 보고 못 본 척합니다. 누나가 혼자 중얼거리며 "역사의 흐름 앞에서 너는 앞으로 나아가고 나는 뒤로 물러나는구나"라고 말하는 장면이 제 가슴을 쳤습니다. 그때는 5공화국의 엄혹한 군사 독재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1987년 6월, 토요일 대구역에 내려가서 엄청난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역사가 바뀌는구나, 그때의 구호는 '호헌 철폐, 직선제 쟁취'였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최루탄이 빙글빙글 돌면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게 뭐냐고 하니, 그것이 바로 지랄탄이라고 하더군요. 최루탄에 쫓겨 계단을 올라가 다방으로 숨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구경꾼이었지만, 혹시 모르니 조심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방은 문을 꽁꽁 닫아 걸고 저를 못 들어오게 하더군요. 그래서 뛰쳐 내려와서 들어간 곳이 요정이었습니다. 저는 시내 한가운데 요정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멋진 기와집이 있어서 들어갔다가, 색시들과 함께 한 방에서 있다가 다행히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보고는 "이렇게 역사가 바뀌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엄청난 민중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후 노태우가 6·29 직선제 수용을 발표하자 모든 것이 잠잠해졌습니다. 물론 각론에서는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노동자들의 비투쟁도 일어났으며, 학생들은 통일로 나아가자는 통일 운동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서울 사람에게 들은 바로는, 서울에서 직선제 개헌 당시 시민들이 호응했지만, 학생들이 통일 구호를 외치자 경찰은 "자, 좀 잡아가세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저는 박근혜 탄핵 이후의 상황도 느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함께 하셨겠지만,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 집회에 우리 김천에서도 약 30회가 진행되었고, 그중 15회 정도가 참여했습니다. 우리는 촛불을 들고 박근혜 탄핵을 외쳤습니다. 그 마음은 무엇이었습니까? 박근혜를 탄핵하면 우리 마을에 들어온 사드 배치를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를 탄핵한 후, 대통령이 없는 황교안 체제에서 사드가 배치되었습니다. 그렇게 악몽 같은 4월 26일이 지나고, 드디어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우리 여기서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득표율에서 매우 실망했습니다.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득표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문재인은 노무현보다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무현은 육군 병장이었고, 문재인은 특전사 출신이었습니다. 노무현은 고졸이었고 문재인은 대졸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으로 빨갱이를 싫어했습니다. 여러 가지로 봤을 때, 문재인은 노무현처럼 허망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싸워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후보 시절 토론할 때 답답하게 했지만, 되짚어 보면 5년 동안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9월 7일에 사드가 추가 배치되고, 사전에 허락도 없이 사드를 들여왔습니다. 비리를 조사하겠다고 하더니 흐지부지되었습니다.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검찰 개혁도 한참 손을 놓고 있다가 나중에 조국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했지만, 조국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든 검찰이 조사를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나온 추미애가 혼자서 윤석열과 싸울 때, 모든 언론과 심지어 한겨레조차도 윤석열 편을 들었습니다. 저는 추미애가 당할 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언론이 그를 홀로 왕따시키는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문재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이 한 것은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길을 깔아준 것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윤석열이라는 답답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저지른 잘못을 보면 조국이나 이재명에게 왜 그렇게 먼지떨이식 수사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많은 잘못을 검찰은 덮어주고, 명품 가방 300만원짜리는 커녕 교사들은 3만원 이상도 못 받습니다. 그러나 300만 원 받은 것도 인정의 표현이니까 덮어주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보면서 참담했습니다. 제 후배도 한참 자고 있었는데 아들이 전화가 왔더군요. 아들이 "엄마, 계엄령이 선포됐다"며 북한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반박 대답은 "아니, 계엄령이 선포된다면 당장 북한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우리의 목숨과 안전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과거 잘못은 두고 보더라도, 나라를 일본 손에 넘기는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유튜브를 보면서 저는 국회로 달려간 시민들이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1987년 6월 대구역의 계단 위에서 봤던 많은 시민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졌던 희망을 다시 느꼈습니다. 오랜 투쟁의 경험들이 저항의 경험으로 면면히 이어져 또다시 역사를 바꾸기 위해 일어났다는 희망과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더 말씀드려도 될까요? 시간이 다 되었군요. 하지만 지금 얼마나 답답한 상황인지요. 탄핵은 이루어졌습니다. 매우 기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한덕수의 담화를 보면서 마음이 무너질 뻔했습니다.
이 혼란의 시국을 하루속히 안정시키고자 한다고 하지만, 누가 혼란을 일으켰습니까? 우리가 혼란을 일으켰습니까? 저들이 혼란을 일으켰습니까? 누가 국민에게 총칼을 들이댔습니까? 누가 군인들을 풀었습니까?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보면, 죽은 시신들을 태극기로 감쌀 때 가졌던 의문이 있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죽였는데 왜 태극기로 그 국민들을 감싸는가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주인공은 깨닫게 됩니다.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국가가 죽인 것이 아니라 군인이 죽였다는 것을. 그래서 그 군인에게 죽은 몸뚱이를 태극기로 감싸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 혼란의 주범이 누굽니까? 윤석열이 아닙니까? 한덕수가 아닙니까? 그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이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힘은 공범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오로지 이 탄핵 정국에서 자신들이 권력을 잃을까 봐 그것만 걱정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죽으면 죽으나 사나 그들은 관심이 없고, 자기들 권리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동훈이 이랬다 저랬다 할 때 그 기준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잡혀가느냐 마느냐, 내가 권력을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기준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정말 답답함을 느끼지만, 그러나 희망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한덕수는 경제가 어려운 것을 조속히 바로잡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제가 누구 때문에 어려워졌습니까? 그날 계엄령이 선포되던 날 주가가 엄청나게 폭락하고 환율이 얼마나 올랐습니까? 제가 자녀에게 "한국에 가거든 달러를 좀 써다오. 달러가 모자랄 수도 있다"라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어쩌면 IMF 때보다 더 힘들지도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지만, 우리 언론은 제대로 밝혀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도록 만들어 놓고 왜 그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깁니까? 왜 자신이 나서서 문제를 바로잡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저는 조사받아야 할 죄인이 또 조사받아야 할 주인이 검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선생님의 딸이 그러더군요. "아빠, 차라리 잘 됐어.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검찰 개혁을 외치지 않고 검찰 해체를 외칠 거야." 그들은 민낯을 우리에게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기들이 이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김민석이 얼마나 조목조목 이야기합니까? 검찰은 조사할 자격도 권한도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기들의 권한을 넘기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경찰은 서울 경찰청장과 전국 경찰청장을 체포했지만,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은 잡지 않았습니다. 자기 상관을 거느리는 저작자들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빨리 검찰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기기를 바랍니다. 한덕수가 쓸데없이 황교안처럼 대통령이 없는 틈을 타 사드를 들였던 그 행동을 저지르지 않기를 경고합니다. 이는 정말 역사의 길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저는 요즘 소성리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이 사진을 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경찰들에게 걸릴까 봐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박제시키고 싶습니다. 나중에 역사에서 이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기록하고 싶습니다. 제가 한 가지 덧붙이자면, 퇴직 교사 시절에 학교를 방문하여 교장 선생님을 면담했을 때, 김천 시내의 교장 중에서 4.19 교원 노조 때 활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때 활동했던 사람이 단 두 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이 그때 활동을 해보니 어리석은 짓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료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이 사람들이 안심하고 자신을 세탁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똑똑히 지켜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합시다. 김천에서도 현재 이 시국에 편승하여 여전히 감천 댐을 진행하려 하고 있고, 신음동에 SRF 폐플라스틱 소각장도 여전히 진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드는 조기에 또아리를 틀며 미군들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국면에서도 숨죽이며 자신의 힘을 기를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겨내도록 합시다. 버티고 싸우고 이겨내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박석민 사회자 마무리 발언>
박근혜가 저지른 것보다 훨씬 심각한 일을 지금 저지르고 있기 때문에, 만약 이를 기각한다면 사람들은 헌법재판소를 파괴하러 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기각된다면 헌법재판소는 이제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생길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1987년에 헌법을 개정할 때 만들어졌습니다. 6월 항쟁의 최대 성과라고 하지만, 그 내막을 보면 당시 김재순과 헌법 개정 관련 논의를 할 때 헌법재판소가 필요하다는 제안을 전두환이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두환은 헌법재판소 같은 것을 만들면 대법원에서 한 군데서만 데모해도 되는데, 헌법재판소가 생기면 데모하는 곳이 또 생기니 그걸 왜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반대했다고 전해집니다.
어쨌든 현재 남아 있지만, 박근혜는 13개 죄목으로 탄핵 당했습니다. 2004년에 노무현이 탄핵당했는데, 노무현은 63일이 걸렸고 헌법재판소 판결까지 박근혜는 92일이 소요되었습니다. 윤석열은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들이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듭니다. 박근혜처럼 3개월 만에 끝내지 않을 것이고, 지금 소환에도 불응하고 있으니 버틸 것입니다. 이들을 또 옹호하는 호위무사들이 국민의힘에 속해 있으며, 이번에 12명 또는 14명의 의원들이 투표를 통해 탄핵이 가결되었지만, 96명이 남아 있습니다. 기권과 무효표를 던진 사람들은 그나마 양심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므로, 기권하고 무효표를 만든 사람들은 열다섯 명이 있다고 하지만, 전체로는 96명이 윤석열의 호위무사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각각의 헌법 기관이 있기 때문에 구자숙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만만치 않은 싸움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첫 번째 탄핵은 1925년 3월 18일 이승만이 우리나라의 모든 권한을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넘긴 것 때문에 임시 정부 시절에 탄핵당하게 됩니다. 이승만은 끝까지 출석하지 않고 5년을 버티다가 결국 2019년에 탄핵이 발의되었고, 1925년 3월 18일 임시의정원에서 탄핵되고 박은식을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하게 됩니다.
이번 탄핵은 역사적인 고비마다 사람들의 움직임과 이 땅의 민주주의를 살리려는 노력들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자숙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눈을 똑바로 뜨고 이들이 나쁜 짓을 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재판소에 대응하고, 부당한 일이 발생하면 다시 촛불 민중들이 광장을 메울 것이며 반드시 이 역사를 바꿔낼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