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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연의 시낭송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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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스크랩 눈 雪 에 관한 시
하르르 추천 0 조회 326 13.12.17 17:58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눈雪에 관한 시

강설 ㅡ유종원

겨울.눈.나무.숲 ㅡ 기형도

그 밤에 내린 눈은  ㅡ 길상호

깊은 눈 ㅡ 이재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ㅡ 백석

내리는 눈발 속에서 ㅡ 서정주

눈 ㅡ 구르몽. 김남조.김소월.김수영. 김종해.맹문재. 박용래.윤동주. 이분용.

눈가는 아침 ㅡ 백무산

눈가루 ㅡ 프로스트

눈길 ㅡ 문인수. 박영근

눈 내리는 마을 ㅡ 오탁번 

눈 내린 뒤ㅡ 이항복

눈 내린 날의 일기 ㅡ 유안진

눈 내리는 밤 ㅡ 정완영

눈 내린 날의 첫줄 ㅡ 문인수

눈 내린 뒤 ㅡ 이항복 

눈 녹으니 ㅡ 김기택

눈 많이 온 날 ㅡ 안도현

눈밭 ㅡ 조원규

눈보라 ㅡ 황지우

눈쌓인 나무 ㅡ 김정길

눈쌓인 밤의 품 속에 ㅡ 릴케

눈 속의 나그네 ㅡ 헤세

눈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ㅡ 이생진

눈 오는 마을 ㅡ 김용택

눈 오는 밤의 시 ㅡ 김광균

눈오는 저녁 ㅡ 김소월

눈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ㅡ 프로스트

눈 오시는 날 ㅡ 서정주

눈 온 아침 ㅡ 신경림 . 이영광

눈은 마당에 깃드는 꿈 ㅡ황인숙

눈을 맞으며 ㅡ 유안진

눈을 퍼내며 ㅡ 정희성 

눈의 풍경 ㅡ 서정윤

눈이 내리느니 ㅡ 김동환

눈이 내리면 총체적으로 불행하다 ㅡ 김영남

눈이 오면 ㅡ 김영승

대설주의보 ㅡ 최승호

동안거    고재종

마지막 눈이 내릴 때 ㅡ 문충성

밤눈 ㅡ 기형도.김광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ㅡ 김춘수

산협의 노래 ㅡ 오장환 

삼남에 내리는 눈 ㅡ 황동규

새벽길2 ㅡ 박영근 

설경 ㅡ 김영태 

설야 ㅡ 김광균. 이재무 

성긴 눈 ㅡ 심재휘

심해에 내리는 눈 ㅡ 이수정

오시는 눈 ㅡ 김소월

이심전심의 눈 ㅡ 고재종

작은 지붕 위에 ㅡ 전봉건

주먹눈 ㅡ 전동균

주먹눈이 내리는 해변을 걸어가오 ㅡ 문태준

진눈개비 ㅡ 기형도 . 박용래. 황인숙

첫눈 ㅡ 김진경.문인수.송수권 윤석산.이재무.정완영. 정호승. 함순례

첫눈 오는 날 ㅡ 곽재구

첫눈 위를 ㅡ 에세닌

첫눈이 오는데 ㅡ 송수권

춘설 ㅡ 정지용 

하얀 눈 덮어쓰고 ㅡ 이오덕

함박눈ㅡ김영랑

흑죽 ㅡ 손택수 

 

 

    강설江雪      유종원(773-819)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에는 사람 자취 끊어졌다

외로운 배에 탄 삿갓 쓴 늙은이가

혼자서 낚시질하는데 강에는 눈이 내린다

 

 

  

 

  겨울.눈雪.나무.숲          기형도

눈은

숲을 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쌓여 있다

'자네인가

서둘지 말아'

쿵, 그가 쓰러진다

날카로운 날刀을 받으며

나는 나무를 끌고

집으로 돌아온다

홀로 잔 가지를 치며

나무의 침묵을 듣는다

'나는 여기 있다

죽음이란 가면을 벗은 삶인 것

우리도 우리의 겨울도 그와 같은것'

우리는

서로 닮은 아픔을 향하여

불을 지피었다

창너머 숲 속의 밤은

더욱 깊은 고요를 위하여 몸을 뒤채인다

내 청결한 죽음을 확인할 때까지

나는 부재할 것이다

타오르는 그와 아름다운 거리를 두고

그래, 심장을 조금씩 덥혀가면서

늦겨울 태어나는 아침은

가장 완벽한 자연을 만들기 위하여 오는 것

그 후에

눈 녹아 흐르는 방향을 거슬러

우리의 봄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알래스카

 

 

   그밤에 내린 눈은            길상호

유리에 닿아도

지문 남지 않는 손가락이었어

무슨 말인지 단서가 없는

수화를 읽어낼 수 없었어

밤이 이불 끌어덮으며

더 깊이 잠들 때 너도 답답해져서는

수없는 문장들을 한꺼번에 쏟아놓기도 했어

영하의 눈금보다 추워질가 창은 열지 못했지

말을 걸면 뿌옇게 김이 서리는 대화

서로 다른 온도의 이야기가

유리를 사이에 두고 한동안 계속 되었어

말들이 성에로 꽃필 때까지

방과 밖의 수은주 그래프는 간격을 벌렸어

더는 좁힐 수 없는 거리에서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바닥에 누웠지

따뜻한 바닥에서 내 심장에

살얼음 끼는 동안 너의 심장은 차가운

바닥에 녹아버렸을까

바람벽 뚫고 들어온 바람이 전하는 안부 속에도

이제는 네가 사라졌어 

  

                                       루브시엔느의 밤나무   ㅡ 피사로

 

     깊은 눈      이재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출출이 ㅡ 뱁새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을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내리는 눈발 속에서       서정주

 

 

 

     눈         구르몽(1858-1915)

시몽, 눈은 그대의 목처럼 희고

시몽, 눈은 그대의 무릎처럼 희다

 

시몽, 그대의 손은 눈처럼 차고

시몽, 그대의 가슴은 눈처럼 차갑다

 

눈은 볼의 키스에만 녹는데

그대 가슴은 이별의 키스에만 녹는가

 

눈은 소나무 가지에서 슬픈데

그대 이마는 밤빛 머리카락 밑에서 슬프구나

 

시몽, 그대의 동생 눈은 정원 속에 잠들고 있다

시몽, 그대는 나의 눈, 나의 사랑 

 

 

                               안나 까레리나

 

 

 

     눈          김남조

천국엔 주일뿐인가

천국사람들아

 

비행기 타도 못 가는

하늘 꼭두에서

희디하얀 편지, 눈이 오네

이 세상에선 못 만드는 깨끗한 반짝거림

빛나면서 얼어버린 눈물

눈이 오네

 

천국엔 주일뿐인가

주일의 촛불 밝히어

주일의 풍금 울리어

조용하게 꿈꾸는 유순으로

눈이 오네

 

아무 말도 못하겠는

그저 아득한 마음에

불의 밀시뿌리는 눈이 오네

깃을 치는 깃을 치는

유리의 새떼 오네

 

                                                             파타고니아 (아르헨티나 남부에 있는 반건조성 고원)

 

 

     눈       김소월

새하얗게 흰 눈, 가비얍게 밟을 눈,

재 같아서 날릴 듯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님의 마음 

 

                                     계집의 마음, 님의 마음

 

      눈          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은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이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눈            김종해(1941 - )

눈은 가볍다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

내리는 눈은 포근하다

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

눈내리는 날은 즐겁다

눈이 내리는 동안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 

 

 

     눈          맹문재

개 패듯이하는 바람에

온몸이 뒤틀리고

등뼈까지 바숴지며

하수구로 처박히네

야적장에서도

공사판에서도

소리 한 번 못 지르고

죽어가네

죽어가면서 억울하여

하?게 달라붙네 

 

 

                              스위스 융프라우

         눈        박용래

하늘과 언덕과 나무를 지우랴

눈이 뿌린다

푸른 젊음과 고요한 흥분이 서린

하루하루 낡아 가는 것 위에

눈이 뿌린다

스쳐 가는 한 점 바람도 없이

송이눈 찬란히 퍼붓는 날은

정말 하늘과 언덕과 나무의

한계는 없다

다만 가난한 마음도 없이 이루어지는

하얀 단층

 

 

   눈     여해순(경북 청리초등학교 2학년)

소나무에

눈이

꽃구름 같은데

눈이 보시보시하다

1962년 12월 6일

 

 

        눈       윤동주

지난 밤에

눈이 소오복히 왔네

 

지붕이랑

길이랑 밭이랑

추워한다고

덮어주는 이불인가봐

 

그러기에

추운 겨울에만 내리지 

 

 

      눈          이은봉

눈이 내린다

두런두런 한숨 속으로

저희들끼리

저렇게 뺨 부비며

 

눈이 내린다

별별 근심스런 얼굴로

밤새 잠 못 이룬 사람들

사람들 걱정 속으로

 

눈이 내린다

참새떼 울바자에 내려와 앉는 아침

아침 공복 속으로

 

저희들기리 저렇게 뽀드득뽀드득

어금니를 깨물며 

 

 

    눈가는 아침          백무산(1955 - )

눈 내리는 아침에

길을 나서다 저만치서

그만 돌아옵니다

돌아오다 가던 길 아쉬워

다시 길을 갑니다

가다가 그만 일없이

돌아옵니다

눈은 온다지만

저리 지우고 쓸고 비우니

간다고 할까요?

돌아오다 그만 아쉬워

다시 길을 갑니다

가다보니 가는 길이

오는 길입니다

흰눈 위에 

 

 

     눈가루         프로스트(1874-1963)

까마귀 한 마리

솔송나무 흔들어

내 머리 위로

눈송이 날렸네

 

그 눈송이

내 마음 흔들더니

우울했던 하루

얼마간은 잊었네 

 

 

           눈길           문인수

눈 덮인 들판을 가로지르며 길이 묻혀 있다

두더지 자국처럼 꾸불꾸불 한참 가고 있다

동구 밖의 등 굽은 홰나무 밑을 지나면서

까치집 한번 올려다보이고

더 춥다

저무는 길 끝 쇠죽여물 끓는 냄새가 난다 

 

 

           눈길          박영근

이십 리가 넘는 눈길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누우신 지 오래되어

마당에선 늙은 개오동나무가 혼자 우두커니 눈을 맞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두 번 들어가는 산골 버스가 끊겨

아버지는 새내끼줄로 감발을 치고

눈 쌓이는 길을 내처 걸었습니다

나는 아버지 넓은 등에 업혀

지나가는 전봇대를 세다가

깜뿍깜뿍 잠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면 선득선득 이마가 차고

눈에 덮여 조개미며, 큰다리며, 삼간리며

내가 이직 이름을 모르던 마을에서는

이따금씩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까웁던 산이 눈발 속으로 먼 곳으로 가 꺼뭇하게 떠오르고

아버지는 슬픈 소리가락을 불러내어

바람 속에 눈꽃을 매달아 두었습니다

배고픈 새 몇 마리가 눈밭에서 울다가

날 저무는 어둑한 눈밭 속으로 날아갔습니다

나는 아버지 등에 고개를 묻고

어머니가 방 아래목 이불 속에 묻어 두었을 놋쇠주발의 밥과

된장기가 얼큰한 시랫기국을 생각했습니다 

 

 

       눈 내리는 마을     오탁번

건너 마을 다듬이 소리가

눈발 사이로 다듬다듬 들려오면

보리밭의 보리는

봄을 꿈꾸고

시렁 위의 씨옥수수도

새앙쥐 같은 아이들도

잠이 든다

 

꿈나라의 마을에도

눈이 내리고

밤마실 나온 호랑이가

달디단 곶감이 겁이 나서

어흥어흥 헛기침을 하면

눈 사람의 한쪽 수염이

툭 떨어져 숯이 된다

 

밤새 내린 눈에

고샅길이 막히면

은하수 물빛 어린 까치들이

아침 소식을 전해 주고

다음 빙하기가 만년이나 남은

눈 내리는 마을의 하양 지붕이

먼 은하수까지 비친다

 

 

 

   눈 내린 뒤       이항복

눈 내린 뒤 산 사립은 늦도록 닫혀 있고

개울물 다리는 한낮에도 오가는 사람 적네

화로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거운 기운들

알 굵은 산밤을 혼자서 구워 먹네 

 

 

       눈 내린 날의 일기         유안진

눈 내리는 창가에 서면

그리워 집니다 다시금

 

저 순수와 정직의 꽃가루

가득히 쓰고 달려가

무릎 꿇고 싶습니다

 

어느 낯선 거리에서라도

객쩍은 웃음으로 마주치기를

 

눈내리는 창가에 서면

더운 눈물 데불고 찾아오는 이

간절한 그 누가 아직 있습니다

 

밤마다

박쥐떼 푸득거리는

추억의 동굴 속

허깨비의 거미줄을

말끔히 걷어내고

등을 돋운다

 

친구여 힘을 내자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힘찬 목소리

 

들창을 열고 보니

눈 속에 나무들 몰려와 섰다

 

이 정결한 시간에는

너를 생각하며

인적 드문 길을 걷는다

 

옷깃을 세워 입은

뒷모습을 대한 듯

 

동구나무 높은 덩치가

우뚝 막아선다

 

친지가 숨죽인 겨울날에

쏟아지는 눈발을 지켜본다

 

돌부리도

마른 그루터기도

눈 속 깊이 파묻힌다

 

그렇다 잊음도 아름다운지고

 

오늘은 흰 눈 속에

이름 하나 묻어두자

 

부르면 눈발을 타고

와 닿을 이름이

 

명년 새봄이 오거들랑

목청 풀린 시냇소리

촉 트는 갯버들로

 

찾아오라고

간곡히 일러두고

돌아서는 지금은

 

저무는 섣달

눈발도 굵은

어느 저녁답 

 

 

          눈 내리는 밤         정완영

산과 들, 마을과 숲, 고목나무 가지까지

한 집안 식구 되어 한 이불 잠이 든다

한밤내 눈은 내리고 등불 혼자 타는 밤에

 

 

 

       눈 내린 날의 첫줄     문인수

비쩍 마른 검둥개 한 마리가 잰걸음으로 지나간다

네 발바닥

뜨고 닿는 동작이 순서대로 다닥다닥 바쁘다

꽃자국 나는 바닥과 병뚜? 따는 것 같은 허공이 지금

일직선으로 길게 다라붙는 중이다 브라더미싱

어머니 재봉틀 소리 멀어져가는 것 같다

저 개, 방향을 꺽어 이번엔 또 가로로 자를 댄듯

내 눈썹 위를 오래 긋는다

지평선에도 박음질 자국이 만져질까 나는 자꾸

멀쩡한 데를 공연히 스스로 봉하는 것 아니냐

하긴 상처 아닌 행로가 어디 있을까

날지 못하는 흰 날개 양쪽 경치는 그저 차디차다 어딜 가나

벗어제낄 수 없는 틈바구니 이것이 길이다

나는 무심코 저 개를 한참 밀고 있구나

이쪽저쪽 끌어다 붙여 마음이 모처럼 광활한 아침이다

무수히 꿰맨 흉터

여기서는 안 보이는 곳으로 환하게 빠져나갈 것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

개 한마리가 첫 줄 타자처럼 새까맣게 지나간다 

 

 

          눈 녹으니           김기택

녹는 눈은 누더기처럼 헤어진다

부스럼 난 살갗처럼 푸석푸석 갈라진다

흰 철문에서 붉은 녹을 드러내며 들뜨는

낡은 페인트처럼 벗겨진다

찢어져 너덜거리는 눈 사이로

 

달동네 추운 맨살이 드러난다

천막으로 지붕을 기운 집들

연탄재와 쓰레기와 개똥 위에 서 있는 담장들

지붕에 어지럽게 얹어놓은 잡동사니들

양분 부족으로 누렇게 말라가는 삶들이

억지로 잠에서 낀 듯 드러난다

개구멍 같은 쪽문에서

가끔 연탄재를 들고 나오는

무릎 튀어나온 파자마와 슬리퍼 신은 맨발

햇빛을 받자마자 녹슨 철사처럼

헝클어지는 머리와 축 늘어지는 주름이

돋보기로 확대해놓은 듯

어쩔 수 없이 꼼꼼하게 드러난다

누군가 내장의 힘을 다해 게워놓은 것 같은

걸쭉하고 벌건 국물을 길가에 튀기며

차 한 대가 지나간다

녹는 눈은 순순히 으개어지며 또 녹는다

 

문드러진다 진물 흘린다 질척거린다

지난밤 백설공주를 덮었던

순백의 그 눈부신 살갗이

한나절도 안 되어 해골을 다 드러내며 녹는다 

 

 

          눈 많이 온 날        안도현

눈 많이 온 날 장수에서 비행기재 겨우 넘어온 김선생이 말했다

안선생, 내 갤로퍼가 눈길에 토끼를 치웠어요

귀가 갑자기 토끼처럼 길쭉해진 안선생이 김선생을 따라나섰다

비탈진 고갯길 눈 뒤집어쓴 마른 억새 밑둥치에 토끼가 납작 엎드려 있었다

옆구리에 얼룩진 핏자국을 눈발이 슬슬 가려주고 있었다

왼쪽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브레이크를 잡을 수가 있어야지,하고

김선생이 말하자 안선생이 고개를 흔들며

자동차에게는 측면이었지만 토끼한테는 정면이었겠지요, 하고 말했다

김선생이 머리를 긁적였고

그러자 하늘이 토끼털처럼 어두워졌다

두 사람은 괜히 짠해졌고

토기를 숲 속에 다시 던지고는 허청허청 고개를 내려왔다

 

퇴근 무렵 서무실에서 토끼탕을 끓였으니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날은 정말 눈이 많이 와서 안선생도 소주가 싸하게 생각나던 참이었다 

 

 

          눈밭          조원규(1963 - )

두 무릎으로 엉금엉금

눈밭을 가면서 통곡을 한다

 

깨고 보면 눈밭 이전도

눈밭 다음의 일도 생각나지 않는다

 

희고 넓은 눈밭

대체 어디쯤이었을까

 

사라지는 누군가가

따뜻한 눈물 흘리던 그곳 

  

 

           

 

         눈보라          황지우

원효사 처마 끝 양철 물고기를 건드는 눈송이 몇 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는 한 사람을 단 한 사람으로 있게 하고

눈밭을 민 히말라야소나무숲을 삼봉으로 데려가 버린다

눈보라여, 오류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무등산 전경을 뿌옇게 좀먹는 저녁 눈보라여

나는 벌받으러 이 산에 들어왔다

이 세상을 빠져나가는 눈보라, 눈보라

더 추운데, 아주아주 추운 데를 나에게 나믹고

이제는 괴로워하는 것도 저속하여

내 몸통을 뚫고 가는 바람소리가 짐승 같구나

슬픔은 왜 독인가

희망은 어찌하여 광기인가

뺨 때리는 눈보라 속에서 흩어진 백만 대열을 그리는

나는 죄짓지 않으면 알 수 없는가

가면 뒤에 있는 길은 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앞에 꼭 한 길이 있었고, 벼랑으로 가는 길도 있음을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 저녁 눈보라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눈 쌓인 나무        김정길(경북 청리 초등학교 4학년)

눈이 오니 나무가 무거운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땅하고 무슨 약속을

하는 것 같다

1964년 3월 17일 

 

 

     

 

      눈 쌓인 밤의 품 속에       릴케

은빛으로 밝은, 눈 쌓인 밤의 품 속에

이 세상 모든 것은 졸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만이

누군가의 영혼의 고독 속에 잠깨어 있을 뿐

 

너는 묻는다 영혼은 왜 말이 없느냐고

왜 밤의 품 속으로 슬픔을 부어넣지 않느냐고

ㅡ 그러니 영혼은 알고 있다 슬픔이 그에게서 사라지면

별들이 모두 빛을 잃고 마는 것을 

  

 

        

 

       눈 속의 나그네         헤세

한밤 자정에 시계소리 산골을 울리고

달은 헐벗고 하늘을 헤매고 있다

길가에 그리고 눈과 달빛 속에

나는 홀로 내 그림자와 걸어간다

얼마나 많은 푸른 봄길을 나는 걸었으며

또 타오르는 여름날의 해를 나는 보았던가!

내 발길은 지쳤고 내 머리는 회색이 되었나니

아무도 예전의 내 모습을 알지 못한다

지쳐서 가냘픈 내 그림자 이제 걸음을 멈추나니

언젠가는 나그네길도 끝이 나리라

세상 화려한 곳에 나를 이끌던 꿈도 사라지나니

꿈이 나를 속인 것을 이제 알겠다

시계소리 산골에서 자정을 울리고

오, 달은 저 하늘에서 차갑게 웃고 있다!

흰 눈은 내 이마와 가슴을 차갑게 안아준다!

죽음은 내가 알던 것보다는 무척 깨끗했다 

  

 

   눈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이생진

시 읽는 건 아주 좋아

짧아서 좋아

그 즉시 맛이 나서 좋아

나도 그런 생각하고 있었어

하고 동정할 수 있어서 좋아

허망해도 좋고

쓸쓸하고 외롭고 춥고

배고파도

그 사람도 배고플 거라는 생각이 나서 좋아

눈 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누가 찾아 올 것 같아서 좋아

시는 가난해서 좋아

시 쓰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서 좋아

그 사람과 헤어진 뒤에도

시 속에 그 사람이 남아 있어서 좋아

시는 짧아서 좋아

배고파도 읽고 싶어서 좋아

시 속에서 만나자는 약속

시는 외로운 살마과의 약속 같아서 좋아

시를 읽어도 슬프고 외롭고

시를 읽어도 춥고 배고프고

그런데 시를 읽고 있으면

슬픔도 외로움다 다 숨어 버려서 좋아

눈오는 날 시를 읽고 있으면

눈에 파묻힌 집에서 사는 것 같아서 좋아

시는 세월처럼 짧아서 좋아

 

  

 

    눈 오는 마을          김용택

저녁눈 오는 마을에 들어서 보았느냐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마을이 조용히 그 눈을 다 맞는

눈 오는 마을을 보았느냐

눈과 밭과 이 세상에 난 길이란 길들이

마을에 들어서며 조용히 끝나고

내가 걸어온 길도

뒤돌아 볼 것 없다 하얗게 눕는다

이제 아무 것도 더는 소용없다 돌아설 수 없는 삶이

길 없이 내 앞에 가만히 놓인다

저녁 하늘에 가득 오는 눈이여

가만히 눈발을 헤치고 들여다보면

이 세상엔 보이지 않은 것 하나 없다

다만

하늘에서 살다가 이 세상에 온 눈들이 두 눈을 감으며

조심조심 하얀 발을 이 세상 어두운 지붕 위에

내릴 뿐이다 

 

                빨간 머리 앤

 

  눈오는 밤의 시          김광균

서울의 어느 어두운 뒷거리에서

이 밤 내 조그만 그림자 우에 눈이 나린다

눈은 정다운 옛이야기

남몰래 호젓한 소리를 내고

좁은 길에 흩어져

아스피린 분말이 되어 곱-게 빛나고

나타-샤 같은 계집애가 우산을 쓰고

그 우를 지나간다

눈은 추억의 날개 때묻은 꽃다발

고독한 도시의 이마를 적시고

공원의 동상 우레

동무의 하숙 지붕 우에

카스파처럼 서러운 등불 우에

밤새 쌓인다 

 

 

    눈 오는 저녁      김소월

바람 자는 이 저녁

흰 눈은 퍼붓는데

무엇하고 계시노

같은 저녁 금년은 ..

 

꿈이라도 꾸면은!

잠들면 만날런가

잊었던 그 사람은

흰 눈 타고 오시네

 

저녁 때 흰눈은 퍼부어라 

 

 

       눈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        프로스트

숲의 주인이 누군지 알 듯하다

하지만 그의 집이 마을에 있으니

숲에 눈이 쌓이는 광경을 내가

지켜봄을 그는 모르리

 

주변에 농가라고는 하나 없고

일 년 중 가장 어두운 밤에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멈춰 선 나를

내 조랑말을 이상히 여기리라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

조랑말이 방울을 흔든다

방울 소리, 바람 스치는 소리,

사뿐히 쌓이는 눈소리뿐

 

숲은 아름답고 어두우며 깊지만

나에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기에

잠들기 전 수십 마일을 더 가야 한다

잠들기 전 수십 마일을 더 가야 한다 

 

 

     눈오시는 날          서정주

내 연인은 잠든지 오래다

아마 한 천년 쯤 전에...

 

그는 어디에서 자고 있는지

그꿈의 빛만을 나한테 보낸다

 

분홍,분홍, 연분홍,분홍

그봄 꿈의 진달래꽃 빛깔들

 

다홍,다홍, 또 느티나무빛

짙은 여름 꿈의 소리나는 빛깔들

 

그리고 인제는 눈이 오누나

눈은 와서 내리 쌓이고

우리는 제마다 뿔뿔이 혼자인데

 

아 내 곁에 누워 있는 여자여

네 손톱 속에 떠오르는 초생달에

내 연인의 꿈은 또 한 번 비친다 

 

 

    눈 온 아침         신경림

잘 잤느냐고

오늘따라 눈발이 차다고

이 겨울을 어찌 나랴느냐고

내년에는 또 

꽃을 피울거냐고

 

늙은 나무들은 늙은 나무들끼리

버려진 사람들은 버려진 사람들끼리

기침을 하면서 눈을 털면서 

 

 

    눈 온 아침          이영광

천지가 눈을 쓴채 가만히 있다

지붕들도 나무들도

각이 안으로 무너졌다

만만하여

만만치 않다

마을 속의 마음

마음 속의 마을

겉으로 부풀어 둥글다

안팎이 있다면 다들

꼴이 같으리

당신, 누구와 한편

되어본 적 있어?

당신 편 하얗게 지우고

누구 편에 가 서본 적 있어?

물어쌓는 눈발

 

눈을 쓸면 새길이 난다

세상의 모든 길을 낳는 골목

후미진 모퉁이에서

저 미지의 길끝가지 걸어가

가가호호

따뜻하게 쓸어오고 싶다

눈 온 아침

 

 

 

   눈은 마당에 깃드는 꿈         황인숙

눈이 온다

먼 북국 하늘로부터

잠든 마당을 다독이면서

 

단풍나무 꼭대기에서 기우뚱거리던 눈송이가

살풋이 내려앉는다

살풋살풋 둥그렇게

마당이 부푼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눈은 마당에 깃드는 꿈

마당은 커다란 새가 됐다

그리고 단풍나무 꼭대기에서

작은 새가 내려앉는다

 

저 죽지에

뺨을 대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그의 잠을 깨우지 않고? 

 

 

     눈을 맞으며         유안진

거꾸로 살고 싶다

잿가루 나는 이 가슴으로서도

눈발 속에서는 아이가되고 싶다

 

시골 국민하교 운동횟날같이

만국기가 나부끼는 소리로

웃어대는 아이들

 

나는 그애들이 만든 대견스런 눈사람

기우뚱 서서 무엇을 꿈꿀까?

연분홍 복사꽃빛 아득한 사랑얘기

진자주 모란꽃의 피를 튀던 그 사연들

어디를 헤매이다 하얗게 늙어서 돌아오는 눈발 속에

 

백 원짜리 동전같이 사탕같이

은하를 따라가다 길 잃은 별이 되어

두눈 글썽이는 아이가 되고 싶다

 

비탈길도 평지같이 별사탕같이

은하를 따라가다 길 잃는 별이 되어

두눈 글썽이는 아이가 되고 싶다

 

비탈길도 평지같이 타달타달 걷는 아이

훌쩍이며 혼자서 돌뿌리를 차고 싶다 

 

 

        눈을 퍼내며          정희성

 

      눈이 내리느니       김동환

북국에는 날마다 밤마다 눈이 내리느니

회색 하늘 속으로 흰 눈이 퍼부을 때마다

눈 속에 파묻히는 하아얀 북조선이 보이느니

 

가끔가다가 당나귀 울리는 눈보라가

막북강 건너로 굵은 모래를 쥐어다가

추위에 얼어 떠는 백의인의 귓볼을 때리느니

 

춥길래 멀리서 오신 손님을

부득이 만류도 못하느니

봄이라고 개나리꽃 보러 온 손님을

눈 발귀에 실어 곱게 남국에 돌려보내느니

백웅이 울고 북랑성이 눈 깜박일 때마다

제비 가는 곳 그리워하는 우리네는

서로 부등켜안고 적성을 손가락질하며 얼음 벌에서 춤추느니

 

모닥불에 비치는 이방인의 새파란 눈알을 보면서

북국은 추워라 이 추운 밤에도

강녘에는 밀수입 마차의 지나는 소리 들리느니

얼음장 트는 소리에 쇠방울 소리 잠겨지면서

 

오호, 흰 눈이 내리는니, 보오얀 흰 눈이

북새로 가는 이사꾼 짐짝 위에

말없이 함박눈이 잘도 내리느니

<국경의 밤>1925년 

 

 

        눈이 내리면 총체적으로 불행하다     김영남

와 준이다 눈! 눈이 창을 가득 메우니

갑자기 따뜻해진다 눈은 가벽게 살아

사각의 창을 자유롭게 한다 나는 이 창을

친구에게 E-메일로 부칠 수 있어서 행복하다

 

이런 날 눈은 창을 넘고 산을 넘어

동서남북 저 아득한 곳까지 내린다

산골 마을에 내리고,제주도에 내리고,아메리카에도 내린다

눈 감고 죽어라고 죽어라고 내리다가

팽이를 돌리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띄운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 카드로 되돌아오며

눈은 잠시 멎는다

 

눈을 밟자, 이럴 때

멎은 눈을 밟으면 뽀드득 소리가 나고 모두 아름다운 흔적을 갖는다

그러나 지나치게 밟으면 미끄러진다 행복도

그대여. 눈을 밟자 더 아프게 미끄러지기 전에

 

우와, 다시 눈이다 눈!

분분한 눈이 창을 또 한번 메우니

이번에 나는 불행해진다 눈은 분분하게 다투면서

내 앞 창을 자유롭게 하지만 내 책상은 자유롭게 하지 못해

불행해진다 다투니까 자유로워지고 다투지 않으니까 갇히는

이 답답한 세상으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불행해진다

 

그리하여 오늘은 총체적으로 불행이다 창도 세상도 나도

눈은 어둠을 켜면서까지 계속 불행하게 불행하게 내린다 

   

                      고갱 ㅡ 겨울

 

 

 

      눈이 오면        김영승

눈이 오면 알리라

눈보다 더 흰 것은 어디에도 없음을

눈만큼 흰 것은 곧 사라져감을

 

하양 종이 위에 하얀 물감으로

그대의 얼굴을 그릴 수 없듯이

밤하늘이 깜깜하면 깜깜할수록 별빛이 밝듯이

 

눈이 오면 알리라

내리는 저 눈이 눈부신 것을

그리고 그것 때문에 눈물흘리는 사람이 있음을

 

나무도 사랑도 하늘도

우리들의 마음도

 

눈이 올때

내리는 저 눈이 그 하얀 빛이

새롭지 않은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노라

내 마음은 총천연색

그리하여 서럽고 죄많은 사람

 

나는 저 눈을 바라볼 수 없도다

눈이 오면 알리라

나를 사랑하는 그대의 마음도

나를 용서하는 그대의 마음도

 

끝없이 하염없이 더러움을 

 

 

         눈의 풍경         서정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까치집에 눈이 쌓인다

바람은 때때로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

우리 앞에 펼쳐 놓고는

설레는 나를 유혹한다

사람의 마음 속에도 눈이 오게 할 수 있을까

온갖 거짓과 위선, 사랑과 행복까지도

다 덮어놓고는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마음과 욕심은 조금만 나오게 하고

남을 위하는 마음과 작은 것에 만족하는 기쁨을

많이 나오게 하여

삶이 따사롭게 할 수 있을 것을

나뭇가지의 눈이 녹아

물방울로 떨어지는 놀이터

어느 정도의 고통은 나를 긴장시켜

겨울 찬바람에 맞설 용기를 준다 

  

 

      

  대설주의보      최승호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 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동안거    고재종

목화송이 같은 눈이 수북수북 쌓이는 밤이다

 

이런 밤, 가마솥에 포근포근한 밤고구마를 쪄내고

장광에 나가 시린 동치미를 쪼개오는 여인이 있었다

 

이런 밤엔 윗길 아랫길 다 끊겨도

강변 미루나무는 무장무장 하늘로 길을 세우리

 

 

 

 

      마지막 눈이 내릴 때    문충성

첫눈이 내릴 때 연인들은

만날 약속한다 공원에서

카페에서 서점에서 뮤직홀에서

인생은 연극이니 극장 앞에서

만나 연애를 하고 더러는

헤어지고 가벽게 그래

마지막 눈이 내릴 때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허연 머리칼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 눈송이

눈송이는 떨어질까

차가운 손 마주 잡고 눈물 글썽이며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말없이

눈 내리는 공동묘지 근처

아니면 이젠 없어진 뮤직홀에 앉아

나직이 드뷔시나 들으며 마지막 눈 소리나 들으며

 

 

   

 

 

      밤눈        기형도

 

 

          밤눈            김광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사진작가 ㅡ 최민식

 

  산협의 노래       오장환

이 치운 겨울 이리떼는 어디로 몰려다니랴

첩첩이 눈 쌓인 골짜기에

재목을 싣고 가는 화물차의 철로가 있고

언덕 위 파수막에는

눈 어둔 역원이 저녁마다 램프의 심지를 갈고

 

포근히 눈은 날리어

포근히 눈은 내리고 쌓이어

날마다 침울해지는 수림의 어둠 속에서

이리떼를 근심하는 나의 고적은 어디로 가랴

 

눈보라 휘날리는 벌판에

통나무 장작을 벌겋게 지피나

아, 일찍이 지난 날의 사랑만은 다스하지 아니하도다

 

배낭에는 한줌의 보리이삭

쓸쓸한 마음만이 오로지 추억의 이슬을 받아 마시나

눈부시게 훤한 산등을 내려다보며

홀로이 돌아올 날의 기꺼움을 몸가졌노라

 

눈 속에 싸인 골짜기

사람 모를 바위틈엔 맑은 샘이 솟아나고

아늑한 옹달녘에 눈을 헤치면

그 속에 고요히 잠자는 토끼와 병든 사슴이

 

한겨울 내린 눈은

높을 벌레 쌓여

나의 꿈이여!  온 산으로 벋어나가고

어디쯤 나직한 개울 밑으로

훈훈한 동리가 하나

온 겨울, 아니 온 사철

내가 바란 것은 오로지 다스한 사랑

 

한동안 그리움 속에

고운 흙 한줌

내 마을에는 보리이삭이 솟아났노라

 

                                                      모네

 

 

  삼남에 내리는 눈       황동규

 

 

  새벽길2             박영근

서둘러 겨울은 오고, 이미 쓸려 간 핏자국 위로

무심히 눈은 쌓이고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

 

버릇처럼 새벽길 따라 공장 뒷담을 돌아

언 발 구르며 길목을 서성이면

마주치는 얼굴들, 웬일일까

두려워 숨고

반가워 순옥아 불러도

멈칫 멈칫 돌아서 버리는 친구들

 

어디로 갈까 무엇으로

우리들 떠돌 수 있을까

가로수들이 묻히고, 눈보라에

길목이 막히고

 

무엇을 덮으려, 우는 아우성으로

눈은 내릴까, 가자, 가자

가슴 붉게 붉게 그리운 얼굴 있을까

 

지우지 못해 자꾸만 돌아보면

공장 굴뚝 위에서 흐린 부두 멀리서

하나 둘 번지는 작은 불빛들

지우고 나면 또 그만큼 울고 있는

시간들 속에서 비로소 만져지던

우리들 맨살, 감출 수 없는 맨살들로

출렁이는 눈물의 뜨거운 몸짓으로

서리 서리 피 적시는

눈송이, 눈송이여

더러는 역전 뒷골목 행상이 되었는지

고향벌 갯가에서 머리를 풀었는지

떠나서는 모른다, 모른다고 우기면서

바람으로 바람으로 몰려오는지

아, 모진 세월의 뒤를 밟는 발자욱들

몰라라 어디선들 씻겨질 리야 있을까

 

두드리는 공장문마다 울음만 남고, 이미 지워져 버린 이름들 위로

무심히 눈은 쌓이고,

아무도 우리를 부르지 않았다

 

 

 

  설경       김영태

우리 눈높이만큼 위에 있는 음악이다

밝은 바람이 멎은 후에

꽃나무 사이로 꽃이 없는 풍경처럼 삭막한 음악이다

표정만 한 가벼운 몸 둘레에 따뜻한 얼굴

더 소중한 그 무엇을 소망하는 얼굴이다

우리 시야보다 머언 데 있는 종소리다

귀를 막고 숨어도 들려오는 종소리다

하여,

이후에 찾아올 몇 몇 친구

이미 묘비에 잠든 이

사랑하는 이

모두 한결같이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여

얼굴의 미소여

저 제야의 종소리는 무슨 연유에서일까

우리가 사랑한다는 한마디의 유언은

 

                               고갱 ㅡ 눈 속의 브르타뉴 풍경

 

 

  성긴눈         심재휘

 

 

 

  설야           김광균

 

 

 

 

  설야      이재무

 

 

 

  심해에 내리는 눈              이수정

바다엔, 한 생애를

지느러미에 맡기고 살던 것들이

수평선 너머로 가고 싶은 마음인 채로 죽어

아래로 아래로 가라 앉는다 하는데

흩어진 사체가 고운 눈처럼 내린다고 하는데

구만리 날고 싶은 눈 먼 가오리

햇빛이 닿지 않는 바다 밑에 엎드려

수평선 너머로 가고 싶던 마음들은

펼친 날개에 고이 받고 있다 하는데 

 

                                                                          닥터 지바고 1965년 

 

  오시는 눈         김소월

땅 위에 새하얗게 오시는 눈

기다리는 날에는 오시는 눈

오늘도 저 안 온 날 오시는 눈

저녁 불 켤 때마다 오시는 눈 

 

 

  이심전심의 눈          고재종

 

 

  작은 지붕 위에      전봉건

 

 

 

 

  주먹눈              전동균

 

 

 

  주먹눈이 내리는 해변을 걸어가오    문태준

 

 

 

  진눈개비             기형도

 

 

  진눈개비             박용래

 

                                                                          닥터 지바고 

 

  진눈개비           황인숙

 

  첫눈        김진경

딸랑딸랑 말방울을 울리며 사랑하는 이의 집 앞에 멈춰 서기도 하리라

붉게 단 쇠말굽을 물에 담금질할 때처럼

연탄 화덕에서 푸르게 연기가 솟는다 

 

 

첫눈            문인수

나는, 이 아침 환한 벙어리인 둘레

어디라 할 것 없이 사무치게 그대 있네 

 

첫눈               송수권

눈이 내린다 어제도 내리고 오늘도 내린다

미욱한 세상 깨달을 것이 너무 많아

그 깨달음 하나로 눈물 젖은 손수건을 펼쳐들어

슬픈 영혼을 닦아내보라고

온 세상 하얗게 눈이 내린다 어제도 내리고 오늘도 내린다

살아 있는 모든 것 영혼이 있고

내 생명 무거운 육신을 벗어 공중을 나는 새가 되라고

살아 있는 티벳인이 되라고

한밤중에도 하얗게 내린다

히말라야 삼나무숲을 흔들며

말울음 소릴 내며

이렇게 고요하게 지금 첫눈이 내린다 

 

 

첫눈           윤석산

예진이가 사는 집은 시장통 한 평도 채 되지 못하는 단칸방

할머니랑 함께 꼭 끌어안고 누우면 얼추 꽉 찬다

다 늦게 시장통 한 켠에 있는 공중변소엘 가려고

예진이가 이불을 꽁꽁 싸매고 쪽문을 열었다

반쯤 열린 쪽문 사이로, 깜깜한 밤하늘 함박같이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할머니 이제 화장실 가기가 힘들겠어요 ..."

첫눈은 그렇게 한밤 내내 내리고 있었다 

 

 

첫눈           이재무

그대는 내리면서

만나는 사물마다

악보를 그려놓고

나는 그 악보에 맞춰

회한의 노래 부르고 ... 

 

 

첫눈           정완영

새 연? 깎아 내리듯 사각사각 내리는 눈

쓸어 둔 앞마당에 향내 솔솔 흐릅니다

등불도 첫눈에 취했나 잠이 솔솔 흐릅니다 

 

 

첫눈          정호승

너에게는 우연이나

나에게는 숙명이다

 

우리가 죽기 전에 만나는 일이

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나는 네가 흘렸던

분노의 눈물을 잊지 못하고

 

너는 가장 높은 나뭇가지 위에 앉아

길 떠나는 나를 내려다본다

 

또다시 용서해야할 일과

증오해야 할 일을 위하여

 

오늘도 기도하는 새의

손등 위에 내린 너 

 

 

첫눈         함순례(1966 - )

서울 모퉁이에 집 한 채 들였습니다

위풍 심한 살림에도 찡그림 없던 애기씨

저리 펄펄 납니다

십사 년 재치기 다 쏟아내어 사뿐 

 

 

첫눈 오는날         곽재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 속에 촛불 하나씩 켜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첫눈 위를            예세닌(1895 -1925)러시아.

첫눈 위를 서성이면

마음은 타오르는 불길의 은방울꽃

길이 뚫린 하늘에는

바람이 푸른 촛불을 켜 들었다

 

무언지 알 수 없다 저것이 빛인지 어둠인지

밀림에 노래하는 바람인지

또는 수탉의 홰 치는 소리인지

아니면 들에 겨울은 멀어도

백조가 어느 초원에 내렸는지

 

오오, 하얀 수면의 아름다움

엷은 추위가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드러낸 잣나무 가슴에

나는 무심코 몸을 밀어붙이고 싶었다

 

오오, 밀림의 희미한 둘레

눈을 둘러쓴 밭의 향기

버드나무 옆구리를

나는 무심코 껴안아 보고 싶었다 

 

 

 

  첫눈이 오는데     송수권

첫눈이 오는데

나는 며칠쯤 자고 싶다

이 숨가쁜 연대 위에

내가 쓰는 시는

무릎이 아프고 관절이 쑤신다

첫눈이 오는데

 

첫눈이 오는데

나는 멀리 노고단쯤 나가

늙은 산지기의 방에 군불 펴고

아무 생각 없이 내 삭신을 묻고 싶다

 

저 낡은 성당 위에 종이 우는데

추억의 눈이 오는데

나는 돌계단에 주저 앉아

흐느끼는데 

 

 

 

   춘설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 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웅숭 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순 돋고

움찍 아니 하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핫옷 ㅡ 솜옷

  

 

닥터 지바고 

 

 

하얀 눈 덮어 쓰고  이오덕

자다가 깨어나

생각하니

내가 하얀 눈을 덮어쓴

지붕 밑에서 자고 있었구나

아침마다 창문을 열면 하얀 세상

건너편 산도 마을의 집들도 길도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정작 내가 그 눈밑에서 자고 있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으니1

지붕뿐 아니지

내가 덮고 있는 이불도

하얀 양털에 하얀 목화로 짠 베다

이불뿐 아니구나

내가 입은 잠옷도 하?고

내복도 하얗고

낮이면 추워서 방 안에서도 입고 있는

오리털 겉옷도 새하얀 빛

 

하얀 것만 입고 덮고 하얀 쌀밥까지 먹고

의사가 권해서 포도당 하얀 가루까지 날마다 먹고

하얀종이에 글을 쓰고

그러고 보니 이거야말로 전신만신 하얀 것뿐

하얀 것뿐일세

그렇다면 내 마음은 어떤가?

마땅히 하얗게

눈같이

깨끗하게 되어 있어야 할

내 마음은?

자다가 깨어나 생각하니

내가 올겨울 내도록

하얀 눈을 덮어쓰고서

자고 먹고 숨쉬고

살고 있었네

하느님 선물을

덮어 쓰고 있었네

 

 

   함박눈     김영랑

바람이 부는대로 찾어가오리

홀린 듯 기약하신 님이시기로

행여나!  행여나!  귀를 종금이

어리석다 하심은 너무로구려

 

문풍지 설움에 몸이 저리어

내리는 함박눈 가슴 해어져

헛보람!  헛보람!  몰랐으료만

날다려 어리석단 너무로구려

 

                         무주

 

 

 

    흑죽黑竹   손택수

습자지처럼 얇게 쌓인 숫눈 위로

소쿠리 장수 할머니가 담양 오일장을 가면

 

할머니가 걸어간 길만 녹아

읍내 장터까지 긴 흑죽을 친다

 

아침해가 나자 질척이는 먹물이

눈 속으로 스며들어 짙은 농담을 이루고

 

눈 속에 잠들어 있던 댓이파리

발자국들도 무리지어 얇은 종이 위로 돋아나고

 

어린 나는 창틀에 베껴 그린 그림 한 장 끼워놓고

싸륵싸륵 눈 녹는 소리를 듣는다

 

대나무 허리가 우지끈 부러지지 않을 만큼

꼭 그만큼씩만, 눈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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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2.18 00:05

    첫댓글 시낭송을 배우고 싶은데
    긴장을좀 많이하는편이라
    가능할까요 나이를 헛목었나봐요

  • 작성자 13.12.18 12:01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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