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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 왕의 삶이 주는 교훈
역대하 14:1~8
찬송가 455장(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유다 왕 아사는 솔로몬의 손자입니다. 그가 왕위에 올랐을 때 북쪽에는 북 이스라엘 왕국의 여로보암 왕가가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아사는 왕위에 사십일 년 동안 있었으며 그가 다스리는 시대에 나라에 두 번에 걸친 큰 위기가 있었으나 잘 넘겼습니다. 아사 왕도 이스라엘 역사 속에 선한 왕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아사의 통치 기간에 그가 보여준 신앙의 모습과 삶의 모습에서 몇 가지 신앙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아사 왕은 하나님을 열렬히 찾음으로 평안을 누렸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 1절과 5절과 6절과 7절에 보면, ‘평안’이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나옵니다. 그 때 당시에 그만큼 평안한 때가 귀하였다는 뜻이기도 하며, 아사 왕 시대에는 평안이 유다 나라에 이례적으로 찾아왔음을 말합니다. 아사의 통치 초기에 이렇게 10년이나 찾아온 까닭에 대하여 7절에 보니, 아사와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았기에 하나님께서 유다 사방에 평안을 주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사와 유다 백성들이 우상의 제단들을 다 헐고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율법과 명령을 지켜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찾는 일에 부지런합시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힘써 드리고 그의 말씀을 늘 읽고 묵상하기를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드높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습관이나 행실이나 언어 습관이 있다면 다 버리고 날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를 기뻐하며 그에게 나와 기도하며 범사에 그에게 묻고 행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평안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둘째로, 아사 왕은 구스의 백만 대군이 침공해왔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의지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아사 왕 치리 십년째에 구스 사람 곧 에디오피아 사람 세라가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이끌고 애굽에서 올라왔습니다. 당시 애굽을 구스 사람 세라가 정복하고 애굽을 넘어 팔레스타인까지 정복하려고 나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구스 사람과 애굽 사람들까지 다 합친 군사력이 얼마나 강력했겠습니까? 그런데 아사 왕은 스바다 골짜기에서 적과 싸우기 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다음에 나오는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아사는 적군의 강력함과 자기 편 유다의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저 많은 구스 군대를 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도와주심을 간절히 청하였습니다. 적군이 아무리 강하고 많더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들을 쳐서 이길 수 있다고 믿고 간구했습니다. 그 결과 놀랍게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심으로 구스 군대를 쳐서 그 백만 대군을 다 멸하고 엄청난 노략물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안 중에 거하다가도 세상에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때에 오직 하나님 한분만을 의지하면서 간절히 기도합시다. 그러할 때에 아사를 도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큰 위기를 너끈히 넘기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셋째로, 아사 왕은 종교 개혁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아사 왕이 구스 왕과 그 군대를 쳐부수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영에 감동한 아사랴가 아사를 맞아서 신앙의 권면을 했습니다. 선지자로부터 힘을 다하여 주의 일에 힘쓰라는 격려의 말을 들은 아사는 마음을 강하게 먹고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산지에서 회복한 영토에서 모든 우상을 없애고 예루살렘 성전을 보수하고 백성들을 모아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자고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장애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그의 할머니 곧 르호보암의 아내였던 마아가가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역대하 15:16 말씀에서는 아사 왕의 어머니 마아가로 되어 있지만, ‘어머니’라는 히브리어 호칭은 어머니 뿐 아니라 그 선대인 할머니도 가리키는 용어이기 때문에 열왕기상 15:2 말씀을 통하여 그가 어머니가 아니고 대왕대비 태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비살롬의 딸이니 곧 다윗의 반역한 아들 압살롬의 친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압살롬의 어머니가 그술 왕가의 출신인 이방인이요 그 피 속에 반역의 기질이 내려왔기 때문에 압살롬의 딸 마아가는 이처럼 유다 왕가에 반역하는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우상 숭배를 했던 것입니다. 아사 왕의 신앙 개혁 운동은 큰 걸림돌을 만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 왕은 굳게 결심하고 자기 할머니 마아가를 그 태후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습니다. 태후의 자리를 폐하고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사르도록 했습니다. 이로써 굳건하게 나라가 여호와 신앙으로 서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이후에 나라가 더욱 평안하여 26년간 태평하였습니다. 우리도 신앙 생활에서 더 온전해져야 할 부분을 깨닫거든, 과감히 불신앙적 옛 습관과 생활의 관행들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만 사는 결단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할 때에 하나님께서 큰 평안과 은혜를 더해주실 것입니다.
넷째로, 아사가 그 말년에 믿음이 식어져서 시험에 넘어졌습니다.
아사의 재위 삼십 육 년에 북 이스라엘 왕국에 새 정권이 들어서서 그 왕 바아사가 유다를 치려고 라마 성을 건축하고자 많은 물자를 갖다 쌓아놓았습니다. 라마 성은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북방의 요지이기 때문에 라마 성이 건축되면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 성에게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사는 깊어진 고민 끝에 북 이스라엘 왕국 너머의 아람 나라에 사신을 보내었습니다. 성전의 은금을 가져와서 사신에게 맡겨 보내어 아람 왕 벤하닷에게 이스라엘 왕 바아사와 동맹을 폐하고 도리어 북 이스라엘 변경을 공격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 외교 전략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북방 변경에서 아람 나라가 침공하니 북 이스라엘 바아사 왕과 그 군대는 라마 성 건축을 중단하고 북쪽 방비를 위하여 몰려 올라갔습니다. 그 틈을 타서 유다 왕 아사는 군사와 백성들을 모아 라마 성 건축 자재를 다 가져와서 게바 성과 미스바 성을 건축했습니다. 그래서 아사 왕은 지혜롭게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사 왕에게 선견자 하나니가 찾아와서 엄중한 어조로 아사 왕에게 믿음으로 행치 아니했다고 책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는 말하기를, 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였을 때 백만 명의 구스 군대도 이겼었는데 이렇게 이방 나라에게 도움을 청하여 나라의 위기를 넘기려고 했느냐면서 이후부터는 아사 왕에게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아사 왕은 자기 잘못을 깨닫고 믿음으로 살겠다고 새롭게 각오했어야 하는데, 아사 왕은 도리어 선지자를 감옥에 가두고 백성 중 몇 사람까지 학대하였습니다. 자기는 지혜롭게 똑똑하게 일을 잘 처리했는데, 갑자기 선지자가 자기에게 잘못했다고 앞으로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불길한 예언을 하니까 화가 난 것입니다. 선지자가 그를 향하여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이 일이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으리이다”(역대하 16:9)
라는 엄중한 말씀을 했는데, 만일 아사가 이 말을 듣고 영적으로 각성되어 자기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회개했더라면 은혜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사가 도리어 분노하여 그 선지자를 감옥에 잡아 넣었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에 대하여 교만해졌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자 발병이 나게 하여 매우 위독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사는 하나님께 회개하며 병을 고쳐주시기를 구하지 않고 대신에 병을 고치는 의원을 찾는 데 바빴습니다. 역대하 16:12 말씀에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의 발이 병들어 매우 위독하였으나 병이 있을 때에 그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고 말씀하고 있으니, 이는 만일 아사가 하나님을 향하여 은혜를 구하고 회개하였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발병을 고쳐 주시고 많은 은혜를 더해주셨을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 후 아사 왕은 이 년 동안이나 더 발병으로 고생하였으나 끝내 의사들이 그를 고치지 못하고 아사는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아사는 처음부터 노년까지 신앙 생활을 잘 하고 평안을 누렸으나 그의 말년에 약 6년 동안에는 신앙을 잘 지키지 못하고 신앙이 연약해지고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긴 평안의 은혜 중에 믿음을 잘 가꾸지 못하고 도리어 약해져서 사람을 더 의지하게 되고 인간적인 계산이 빨랐으며 그 영혼을 살리고 세워주려는 하나님의 종의 가르침을 싫어하고 도리어 그를 감옥에 던져넣는 악행을 저질렀고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었으나 그 질병의 시간에도 병원 의사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간청하거나 주의 종을 청하여 기도 부탁을 하지 않는 완고함을 보였으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구약 시대 마지막 사사 중 한분이었던 엘리도 젊은 시절과 중년까지는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하나님의 말씀을 종종 받았으나, 그 노년에는 영안이 흐려지고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져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해져버리고 스스로 죽기를 자처하는 악행하는 아들들에게 엄중한 책망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그가 모시던 법궤도 이방 나라 블레셋에 빼앗기고 두 아들도 전쟁터에서 한날에 죽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도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의자에 떨어져 죽고 그 날 출산하던 며느리도 죽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말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믿음을 끝까지 아름답게 지킨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야곱, 사무엘, 다윗, 다니엘, 바울 등 생애의 마지막까지 귀한 신앙을 지킨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이 끝까지 믿음의 동앗줄을 붙잡은 특징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곱은 늙어가면서 점점 더 자기의 모든 삶의 소유와 여정을 하나님께 맡기는 신앙의 자세를 견지했습니다. 본래 야곱은 야심이 많고 욕심이 많고 자기 고집이 많은 사람입니다. 쌍둥이 형 에서와 관계에서도 장자권을 놓친 것이 늘 불만이어서 뱃속에서부터 형과 늘 싸우곤 했으며 오랜 세월을 계속하여 형의 장자권을 노리고 형의 축복을 탐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기다리기보다는 인간적인 술수를 사용하여 형의 축복을 얻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살아가면서 야곱은 형 에서로부터 연단을 받고 외삼촌 라반에게 시련을 많이 겪는 중에 서서히 달라집니다. 사람이 아무리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대단한 꾀와 술수를 쓴다 해도 도리어 손해가 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내려놓고 자기의 모든 장래와 자녀와 자손들의 앞날을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이가 많이 들어 눈도 보이지 않는 중이었을 때에 도리어 영안이 밝아져서 그가 아들들과 그 후손들을 축복할 때에 확신이 있었고 그 축복의 예언대로 그 후손들 열두 지파의 미래가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세월이 갈수록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해주심을 믿고 온전히 맡기면 그는 점점 영안이 밝아지고 영적 권세가 있습니다. 야곱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다 맡김으로써 우리의 영적인 권위를 인하여 자녀들이 우리에게서 한 마디, 한 줄의 축복의 말씀을 더 사모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시다.
또한 사무엘과 다니엘을 보면 끝까지 기도를 놓치 않았습니다. 먼저 사무엘을 보면 그가 은퇴식 때에 했던 그의 고백에서 그의 말년까지 변질되지 않고 이스라엘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위대한 주의 종의 삶을 산 비결이 나옵니다. 그가 회중 앞에서 은퇴식 때 고백한 말이 이것입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사무엘상 12:23)
사무엘은 백성을 위한 중보 기도를 드리는 것이 자기의 사명으로 알았고 백성을 위한 중보 기도를 쉬거나 게을리 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고 은퇴 후에도 기도를 계속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무엘상 7:13 말씀에 보면,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라고 하였습니다. 늘 블레셋 군대는 그들의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넘보곤 하였지만 사무엘이 늘 기도를 쉬지 아니함으로 인하여 함부로 이스라엘 영토를 넘보지 못하였습니다. 얼마나 사무엘이 기도 생활을 충만히 했던지, 사무엘이 거주하는 라마 나욧 동네에는 악한 사람, 귀신들린 사람들이 그 동네에 들어오면 와서 성령에 사로잡혀 땅바닥에 엎드려 예언하는 등 완전히 달라질 정도였습니다. 사무엘은 기도를 쉬는 것을 죄로 인식하고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는 그 순간까지 기도의 동앗줄을 붙들었던 것입니다.
다니엘 선지자도 고령에 이르렀을 때에 그가 여전히 메대와 바사의 국사에 종사하는 국무총리의 막중한 자리에 종사할 때였는데도 나라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다니엘을 시기하는 자들이 다리오 왕에게 그를 참소하려고 왕 외에 다른 어떤 신에게 기도하는 자는 사자굴에 던져넣는다는 황제의 어인이 찍힌 조서가 발표되었는데도 다니엘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난 창을 열고 하루 세 번씩 여전히 큰 소리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를 죽이려고 엿보던 자들이 곧장 왕에게 이 사실을 일러서 주저하는 왕을 강요하여 결국 왕이 할 수 없이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져넣었으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그 사자의 입을 봉하였으므로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근심하던 왕이 사자굴에 달려가서 다니엘의 이름을 불렀을 때에 설마 했던 바 다니엘이 살아서 그에게 응답하니, 왕은 다니엘은 건져올리고 그를 죽이려던 자들과 가족들을 대신 사자굴에 던져넣었으니 사자들이 그 사람들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뛰어올라 움켜 먹었습니다. 다니엘은 이처럼 그 노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늘 하루 세 번씩 드리는 유대인식의 기도를 늘 올려드리는 경건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이처럼 노년까지 쓰시고 보호해주시고 높여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를 그치지 않는 자가 됩시다. 그리하여 기도를 쉬지 아니하는 자가 되어서 우리 심령에 성령의 영감이 있고 세상 떠나는 날까지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다 살리고 복을 끼치고 악한 자들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보호받고 승리하는 영적인 파수꾼들이 됩시다.
한 가지 더 아름다운 신앙의 예로 다윗의 성전 사랑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도 그의 말년까지 영적인 영감이 넘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더욱 영적인 사람이 되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심히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젊은 시절부터 하나님의 집에 대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전체 지파의 왕으로 추대되어 예루살렘을 도읍으로 삼자마자 이전에 엘리 제사장 시대부터 방치되어 있던 법궤를 찾아 모시려고 온 힘을 기울입니다. 법궤가 어디 있는지 찾기까지는 자지도 않고 침상에 오르지도 아니할 정도로 간절한 열망을 가지고 법궤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법궤를 도읍 예루살렘에 모셔오는 일을 온 백성들과 함께하는 거국적인 행사로 치렀습니다. 그리고 법궤를 휘장 아래 모셔 둔 것이 너무 초라하게 느낀 나머지 크고 성대한 성전을 지어 드리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하지만 상의를 나눈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기를, 성전을 짓는 일은 다윗에게는 허락되지 않고 그의 몸에서 날 아들 중에 성전을 짓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다윗 자신은 성전 짓는 일이 금해졌지만 성전을 위하여 헌신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아들 솔로몬이 자기 대신에 왕위에 오를 때 성전을 잘 지을 수 있도록 모든 물품을 준비하였습니다. 철, 놋, 은, 금, 보석 등을 많이 준비하였습니다. 다윗은 장차 솔로몬 왕 때 지을 성전을 위하여 자기의 재산을 많이 미리 드렸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전을 어떻게 지을까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여서, 성전의 모든 설계도를 받았습니다. 성전의 규모나 그 재료나 모양 등도 미리 하나님의 영감으로 받아 적어놓았고, 성전 기구들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도 미리 다 받았습니다. 또한 장차 성전에서 봉사하는 성가대들을 나누어 세우고 성전 문지기들도 나누어 세우고 그 외의 레위인들의 여러 직무들도 규정해놓고, 제사장들의 직무들에 대하여 자세히 성령의 감동으로 받아서 기록해놓았습니다. 그래서 성전이 세워지기 전부터 예배 드리는 일에 그 규정들을 적용하고 장차 성전이 세워질 때에 그렇게 운영함으로써 성전 예배가 질서정연하게 진행되도록 했습니다.
그는 평생에 성전을 사랑하였고 그의 직무가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에서 아예 살기를 바랄 정도로 성전을 늘 사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편 27편 4절에 보면, 그가 이렇게 고백한 바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라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한 마디로 다윗은 성전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한평생 성전을 사랑했고 성전을 짓고자 했고 성전을 위하여 하나님께 많이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성전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으니, 다윗의 성전 사랑은 곧 주님 사랑이었고 성도 사랑이었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성전 사랑의 다윗이 그 말년에 어찌 흔들릴 수 있겠으며 어찌 시험에 넘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성전을 사랑하고 성전 가까이 있고 성전을 늘 부지런히 드나들며 기도하고 예배하고 봉사하고 성도와 교제하기를 즐거워하는 성전의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그리할 때에 절대로 우리 말년에 흔들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세월이 깊어갈수록 한 가지라도 견고한 은혜의 동앗줄을 꼭 붙들고 놓치지 않도록 거룩한 결심을 합시다. 우리가 성전을 사랑하며 봉사에 힘쓰거나, 성경 읽기와 쓰기와 묵상을 꾸준히 하거나, 기도 생활을 꾸준히 하거나, 전도 생활을 꾸준히 하거나, 헌금 생활을 꾸준히 하거나, 성도의 교제를 꾸준히 하는 등 자신의 신앙이 지키기 위하여 더욱 굳은 결심을 갖고 끝까지 자신의 신앙을 잘 관리합시다.
누구라도 자칫하면 세월이 지나면서 신앙의 자세가 흐트러져서 세상 일락을 더 좋아하고, 돈 욕심에 마음을 뺏기고, 세상 관심사에만 마음을 쏟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틈엔가 믿음이 약화되고 변질되어 나중에는 하나님께서 계신가 아니 계신가 희미하게 되고 기도가 약해지고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감동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일이 없도록, 우리의 신앙을 결코 변질되지 않도록 자기를 잘 살핍시다. 끝까지 잘 신앙 생활을 잘하기를 결심합시다. 그래서 야곱과 사무엘과 다윗과 다니엘처럼 우리의 말년이 더 영성이 깊어가고 하나님과 더 깊은 사귐이 있는 그런 복된 생애를 살아갑시다. 오늘 우리가 신앙 생활을 열심히 잘 하다가 말년에 그 믿음이 식어진 아사의 생애를 살펴보았는데, 우리는 생애의 모든 나날을 아름답게 끝까지 믿음으로 잘 살아감으로써 우리의 아름다운 믿음 생활이 하늘나라 생명책과 행위 책에 다 기록되어 주님 앞에서 칭찬과 상급을 많이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