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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별' 노재봉의 사상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가장 정확하게 이론화
"한반도선 자유민주주의가 진보며 전체주의는 반동"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추도사 작성, 눈물 흘리자
일생에 단 한번 운다는 봉황에 비유해 '봉황의 눈물'
2021년 10월 30일 고 노태우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추도사를 하는 도중 눈물을 훔치는 노재봉 전 총리. 노 전 총리는 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연합
고 노재봉 전 총리의 나라사랑 정신은 그가 2021년 10월 30일 서울 송파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에서 작성한 추도사와 그가 흘린 눈물에 잘 담겨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 뒤 그는 제자들과의 공부모임에서 자주 눈물을 흘렸다.
제자들에 따르면 그는 극심한 이념대립과 6.25로 인한 분단을 극복하고, 지도자와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만들어내었던 자유대한민국의 기적이, 21세기 들어 민족, 민중, 인민을 강조하는 좌파세력들에 의해서 국가역량이 총체적으로 망가지고 있는 작금의 위기상황을 깊이 염려했다고 한다.
김영호 통일장관 등 그의 제자들은 그의 존함에 들어있는 ‘봉(鳳)’을 따서 ‘봉황의 눈물’이라고 했다. 제자들은 노 전총리의 눈물이, 일생에 단 한번 우는 봉황의 눈물이, 작금의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수많은 자유애국시민들의 영혼도 함께 움직일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전했다.
노재봉 전 총리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가장 정확하게 이론화한 정치학자였다. 한반도의 정치현실에 대한 그의 진단과 해법은 2017년 1월 23일 한국자유회의 창립대회 선언문에 잘 담겨 있다.
이 선언문에서 그는 "북한의 정치체제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는 절대로 융합될 수 없는 전체주의체제"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그는 지금까지 한국사회 지식인들이 북한 체제를 경제적 범주로 보기 때문에 북한 체제의 전체주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남과 북은 체제와 이념을 초월해서 같이 살 수 있는 한 민족이며 체제와 이념을 초월해서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 전 총리는 이런 주장이 ‘불가능한 망상’이라고 쐐기를 박아놓고 있다.
선언문에서 노 전 총리는 또 "자유민주세력과 전체주의세력이 마치 동일한 정통성에 합의 기반을 가진 두 개의 상대적 세력인 것처럼 ‘보수 대 진보’라는 허구의 도식으로 세력과 의식을 분류하는 의도적 조작을 엄중히 규탄한다.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 보수가 아닌 진보며, 전체주의는 진보가 아닌 반동이다."고 정의했다.
노 전 총리는 이 정의에서 한국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보수 대 진보’라는 구분과 도식을 비판한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의 진보세력들은 자국의 헌법체계를 인정하는 체제 내부의 비판세력이나 한국의 자칭 진보세력들은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는 체제 바깥의 존재들이라는 그의 통찰 때문이다.
그는 이어서 2차대전과 냉전 시기에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 등 양대 정치세력은 히틀러의 전체주의와 스탈린의 전체주의에 맞서 싸울 때 일치단결하여 미국의 자유와 자유민주 진영을 지켜냈으나 현재 한국의 민주당 세력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 전 총리는 또 선언문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1조 2항)고 떠드는 정치인들은 전형적인 전체주의자들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말을 하는 정치인들의 의식은 개인의 존재와 자유를 부정하며 국가와 개인을 동일시하는데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즉 북한헌법 63조가 말하는 ‘집단적 개체’를 주권자라고 인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가 지적한 이런 말들은 박근혜 탄핵과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광화문 광장에 모인 민주당 정치인들이 고정 메뉴였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들의 주권은 촛불집회같은 대중집회로 구현되지 않고 국민들의 대표자가 국회에서 하는 의정활동, 즉 ‘대의민주주의’로만 구현될 수 있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그는 자유민주주의가 보장하고 있는 근대적 자유를 전체주의혁명 수단으로 역이용하여 체제 전복을 꾀하고 있는 혁명세력들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자들은 그래서 그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보수 대 진보’라는 상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나라걱정으로 흘리는 눈물을 거두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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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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