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환 사진전 ‘고향 이야기’ 2006년 4월 2일~ 4월 8일 싸이드림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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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새로운 길이 열리다. 책을 보다 우연히 카메라를 메고 있는 기자의 사진을 보고 “나도 카메라를 들고 세계를 누비고 싶다”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이 새로운 시작이었다. 약학을 전공하던 차정환 교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진’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어쩌면 그 선택은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식사도 함께하지 않으시고, 호적에서 빼겠다는 완강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친형님 결혼식까지 불참하며 시험을 보러 갈 정도로 간절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접어든 길에서 새로운 제2의 사진인생이 시작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집에 있는 라이카 카메라를 몰래 가져다 찍는 게 시작이었던 한 소년이 오늘날 ‘고향’사진의 대가로 손꼽힐 수 있게 되기까지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차정환 교수는 서라벌예대 사진과에 입학해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졸업 후 20년동안 현대자동차에 근무하며 현장에서 갈고 닦은 실력으로 그 분야의 베테랑 사진가로 인정받았다.
자동차와 고향 풍경. 도시와 농촌의 너무 대조적인 이미지다. 어색한 만남이지만 그의 고향 사진 촬영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며 자동차 사진을 찍다 보니 장소가 자연스럽게 인적 드문 외곽이 되었다. 새벽에는 작품사진을 찍고 낮에는 일을 할 수 있으니, 일과 작품 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어 더욱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말한다.
‘농촌 출신은 농촌 사진을 찍어야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차교수는 유년 시절을 보낸 시골의 모습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이다. 어린시절 추억이 늘 머릿속에 내재되어 있어 그런 소재를 보면 추억의 맛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늘 옛것이 있는 장소를 찾아다닌다.
경주 양동 이씨마을이나 하회마을, 낙안마을 등 전국 방방곡곡을 많이도 다녔다. 그래서 그의 머릿속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풍경들이 훤하다. 초가지붕에서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멀리 보이는 뒷산에 걸친 구름과 붉게 물든 하늘의 모습까지 정겨운 우리네 모습 그대로다. 하늘이며, 나무, 햇살까지 어찌나 섬세하게 설명을 하는지 시골집 담장 너머로 보고 있는 듯 눈에 선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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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제로 30년이 넘는 세월을 찍는다는 것은 단지 끈기와 집념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이는 힘들다. 바로 생활의 일부분이 되는 것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차교수는 매일 4시에 일어나 해뜨기 한시간 전 하늘을 본다.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의 농도를 보며 날씨를 예측하고, 하루의 일과를 계획한다. 날씨에 따라 촬영 스케줄을 잡는 것이다.
1995년도에 나주 동신대학교 전임교수로 재직한 이후에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물론이거니와 시도 때도 없이 낙안 민속마을을 향한다.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그의 열정에 불이 붙은 것이다. 지난겨울 60년만에 전남지방에 내린 폭설로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차교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소중함을 안겨준 눈이었다.
폭설로 통제된 길을 뚫고 달려간 낙안에서 초가집 지붕위에 쌓인 눈 사진을 찍고 느낀 감동이란 천금, 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는 환희였다고 한다.
차교수가 찍는 고향풍경은 주로 생활주의 사진이다.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옛 모습 그대로가 묻어나는 풍경을 찾는다. 사진은 기록이기 때문에 사실만 찍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8×10 디아돌프 카메라와 독일제 짐마 렌즈를 고집한다.
그의 사진을 보면 밝고 어두움이 강한 사진보다 중간톤을 살린 사진이 많다. 색감을 중시하기 때문에 해뜨기 30분전과 해뜨고 30분이나 해질 무렵에 주로 촬영을 하고, 저기압일 때 연기가 곧게 올라가는 모습을 담을 수 있어 돌아다니기 힘든 궂은 날을 택한다. 남들이 잘 다니지 않을 때 촬영을 하다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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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긴장감이 팽배했던 20년전 낙안으로 촬영을 갔었는데, 경찰이 저를 잡으러 왔어요. 제가 새벽에 돌아다녀 바지가 이슬에 젖어있고, 신발에 흙이 묻어있으니 동네 할머니가 간첩으로 오해하고 신고를 하셨던 겁니다. 거기다 시골 분들이시라 노출계를 무전기로 아셨더라구요.”
동네사람들과는 오해가 풀려 오히려 한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고, 이제는 고향집처럼 찾는다고 한다.
오해까지 받아가며 힘들게 찍은 사진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고 공감할 수 있는 사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서 과학사진을 전공하는 아들(차재원)에게 이미지를 데이터화하는 작업이나 분류작업 등 사진마케팅을 맡겼다. 아들에게 사진을 물려준다는 것은 아니다. 갈수록 디지털화 되고, 앞서가는 젊은 감각에 맞게 활동적인 마케팅을 키워나갔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단지 파일 속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사진은 사진이 아니라고 봅니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잊고 있었던 고향을 한번쯤 되돌릴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사진도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그는 자연사진을 찍으면서 자기 것을 뒤돌아볼 수 있는 묘미를 갖는다고 한다.
‘자연은 참고 기다리는 자에게 언젠간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라는 그는 삼박자가 맞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오랜 시간을 참고 견뎠다.
관심을 갖고 시작하면 사진의 모든 것을 걸줄 아는 열정과 인내가 오늘의 그를 만들었으리라. 사람도, 사진도 한번 마음에 담으면 마지막까지 지키고 사랑할줄 아는 그의 곧은 품성이 파인더를 통해 고향 풍경을 길이 남기는 사진가로 남게 한 것이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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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일깨워준 제2의 아버지 故 이경모 선생 차정환 교수의 오늘에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사진과에 들어가 처음 만났고, 2001년 돌아가시기전까지 사진의 길을 함께 걸어온 아니 돌아가신 이후에도 발자취를 더듬게 하는 질긴 인연을 맺은 故 이경모 선생이다. 이경모 선생은 자신에게 사진의 눈을 뜨게 해준 제2의 아버지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이경모 선생을 처음 만난 건 서라벌예대 면접 때였다.
‘사진은 모르고 왔지만 대학에 입학만 할 수 있게 해준다면 1등으로 졸업하겠다’는 당돌한 학생에게 손을 내밀어 주신 분이다.
학교에서는 선생의 수업을 들어본 적도 없었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꾸준히 사진 지도를 해주셨고, 개인적인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신경 써주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함께 촬영을 다니는 등 사진일을 하는 그에게 사제지간을 넘어서 큰 힘을 주셨다.
그렇게 쌓아온 인연은 차교수가 1995년도 동신대학교 사진과 교수로 가게 됐을 때 객원교수로 이 선생을 모시고 갈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특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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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셨던 이경모 선생님은 본인은 물론이고, 저도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강단에 서질 못하게 하셨어요. 강의 초창기 시절 1년 동안은 강의 10분전에 들어오셔서 맨 뒤에 앉아 수업을 들으셨죠. 말투며 옷차림이 어땠는지, 시간안배는 적당했는지, 빼먹은 내용은 없었는지 등 꼼꼼하게 메모하셨다가 끝나면 이야기해주시곤 하셨어요.”
옷차림과 음식을 먹는 습관까지도 조언을 해주셨고, 하루에 11번 통화한 적도 있을 정도로 각별한 사랑을 쏟으셨다. 두 사람은 어디든 동행하고, 상의하고, 의지하며 힘이 되는 그런 존재였다.
“낳아주신 아버지께는 거짓말을 했어도 선생님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사진을 통한 인생을 살게 해주신 고마운 분이시죠.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선생님과 함께 다니며 먹었던 음식들을 이제는 스스로 찾는 걸 보면 저도 모르게 선생님을 닮아가나 봅니다. 정신적인 지도를 많이 받았던 그분은 저에게 영원한 스승이십니다.”
누구보다도 서로에 대해 잘 알았던 두 사람이기에 차교수는 사진작가협회의 세미나에서는 선생의 작품세계를 전달한다. 그에게 있어 이경모 선생을 이야기하는 것은 늘 가슴 뜨거워지는 일이다.
글·김수이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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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정환 1949년 전남 여천 출생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졸 개인전 16회 고향사진집 5회 출간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 동아일보 사진동우회 정회원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사진부문 추대작가 현 동신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학과 교수 한국문화재사진연구소 소장 연락처 : 011-9700-32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