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이편에 《 愼終追遠, 民德歸厚矣. 》
구절이 나오고,
맹자 만장장구에 《人少則慕父母, 知好色則慕少艾, 有妻子則慕妻子, 仕則慕君, 不得於君則熱中. 大孝終身慕父母. 五十而慕者, 予於大舜見之矣. 》
구절이 나온다.
源은 根源의 뜻이고 原과 遠자와도 통한다. 原자도 根源의 뜻이 있다. 追遠齋를 흔히 볼 수 있는데 논어에서 나온 말이고 追慕도 흔히 쓰는 말이다.
忠州에서 松齋 李鎬昌翁의 碑文을 많이 볼 수 있다.
慕源亭
蘂南槐北 有劍岩山 雲岸磅礴逶迤匝(糸奄)傍鑿岡 而通川岫中闢 而朗塏峰影 水瞻眺極佳 西接八峰村 容似桃源 而爽開 南望 玉山案峰 掛半空而嵬 長江環繞 天光如鏡面之平坦 蒼崖如屛 松韻奏自然律呂 白石晴沙 灘聲互起 加之百花爛漫 棹歌頻聞 綠陰方濃垂露 㲯毶霜染而楓葉落 而山庾白雪編山層 氷懸岩因此四時之景 而偸閒賞景寓物寄情 則可謂開豁心者 有超然自得之妙 此占基得宜也 湖西李雅明洙 姿質溫良氣宇不拘 勤儉稼穡康濟一家 年過六旬 旣不吝財致誠多年 作亭於斯 數間翼然於壁上 非但深於城市紛華之場 每盤桓乎 林皐泉石之美宜養性於烟霞風物之中於是乎 山川增彩草木生輝非徒 爲一人之事業 是鄕之名盛績也 噫 此亭之作奚止於斯越觀西麓父阡相見因陟降而不忘其親寓慕之情於斯頻起古有不忘其親而有作思亭者 盖其不忘 乃所以報本之一道也 且主傍祖灘翁 旣享於八峰院撤己積歲久未伸情 亦不無追遠未逮之感矣 俱緣於此而扁之曰 慕源亭 惟主人隨時登臨 而必會其義下庭而宜銘 于心動靜語默之間造次施爲之際恒思所以慕源而 乃己則勝坮名之吟風詠月 而操弄墨者 流實不矣 夫子所謂 人不忘其本者 亦可期而待之矣 然則作亭者之 爲功於世觀覽者之有賴於此亭 豈可以勝喩其大歟 要余名亭而記之文 雖不工述其所感 而記之 凡厥後仍莫倦於羹牆之慕奉先之道 永保其無彊安止 爲亭之美哉 余曰望其如此而識之
玄默 茂春 松齋 李鎬昌 記
<교정ㆍ표점>
慕源亭記
蘂南槐北,有劍岩山。雲岸磅礴,逶迤匝掩;傍鑿岡,而通川岫;中闢朗塏,峰影水光,瞻眺極佳。
西接八峰村,容似桃源而爽開;南望玉山案峰,掛半空而嵬然。長江環繞,天光如鏡面之平坦;蒼崖如屛,松韻奏自然律呂;白石晴沙,灘聲互起。加之百花爛漫,棹歌頻聞;綠陰方濃,垂露毿毿;霜染而楓葉落,山塢白雪遍山層,冰懸巖壁。
因此四時之景,而偷閒賞景,寓物寄情,則可謂開豁心胸者,有超然自得之妙,此占基得宜也。
湖西李雅明洙,姿質溫良,氣宇不拘,勤儉稼穡,康濟一家。年過六旬,旣不吝財,致誠多年,作亭於斯。數間翼然於壁上,非但深厭城市紛華之場,每盤桓乎林皐泉石之美,宜養性於煙霞風物之中。於是乎山川增彩,草木生輝,非徒爲一人之事業,實鄕里之名盛績也。
噫!此亭之作,奚止於斯?越觀西麓父阡,相見因陟降,而不忘其親;寓慕之情,於斯頻起。古有不忘其親,而有作思亭者,蓋其不忘,乃所以報本之一道也。
且主傍祖灘翁,旣享於八峰院,撤後積歲久矣,未伸情,亦不無追遠未逮之感矣。俱緣於此,而扁之曰「慕源亭」。
惟主人隨時登臨,而必會其義,俯庭仰宇,宜銘于心。動靜語默之間,造次施爲之際,恒思所以慕源,乃已,則勝於臺名之吟風詠月,而操弄翰墨者流,實不及矣。夫子所謂「人不忘其本」,亦可期而待之矣。
然則作亭者之爲功於世,觀覽者之有賴於此亭,豈可以勝喩其大歟?
要余名亭而記之。文雖不工,述其所感而記之。凡厥後人,仍莫倦於羹牆之慕、奉先之道,永保其無疆安止,爲亭之美哉。
余曰:望其如此,而識之。
玄默 茂春 松齋 李鎬昌 記
<번역>
모원정기(慕源亭記)
예성(蘂城, 충주의 古號)의 남쪽과 괴산(槐山)의 북쪽 사이에 검암산(劍岩山)이 있다. 산세는 구름 언덕처럼 넓고 웅장하며 굽이쳐 둘러싸고, 곁으로는 바위를 깎아 만든 언덕이 이어진다. 그 가운데 시냇물이 흐르는 골짜기가 열려 있으며, 밝고 트인 대지와 봉우리의 그림자가 어우러져 있다.
서쪽으로는 팔봉촌(八峰村)이 이어져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무릉도원과 같아 시원스럽고 탁 트여 있다. 남쪽으로는 옥산(玉山)의 안산(案山)이 보이는데, 반공중에 걸린 듯 우뚝 솟아 있다.
긴 강물이 둘러 흐르며 하늘빛은 거울처럼 평탄하고, 푸른 절벽은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소나무 숲의 바람 소리는 자연의 음률을 연주하고, 흰 바위와 맑은 모래가 깔린 여울에서는 물소리가 서로 화답한다.
여기에 봄에는 온갖 꽃이 만발하고 뱃노래가 자주 들려오며,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 이슬이 맺힌다. 가을에는 단풍이 붉게 물들어 낙엽이 지고, 겨울에는 산마다 흰 눈이 덮이며 바위에는 얼음이 매달린다.
이처럼 사계절의 경치가 아름다우니, 한가롭게 경치를 즐기며 자연에 마음을 맡긴다면 마음이 넓어지고 초연히 스스로 만족하는 묘미를 얻을 수 있다. 이는 터를 잡은 위치가 매우 적절하기 때문이다.
호서 이씨(湖西李氏)의 이명수(李明洙)는 성품이 온화하고 인자하며 기상이 속됨에 얽매이지 않았다.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농사를 지어 집안을 넉넉하게 하였으며, 예순을 넘긴 나이가 되었어도 재물을 아끼지 않고 오랫동안 정성을 다하였다.
마침내 이곳에 정자를 세우니, 몇 칸의 정자가 날개를 펼친 듯 절벽 위에 우뚝 서게 되었다. 이는 단지 번화한 도시의 소란을 피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숲과 언덕, 샘과 바위의 아름다움 속에서 머물며 자연과 더불어 심성을 기르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산천은 더욱 빛을 더하고 초목은 더욱 생기를 띠게 되었다. 이는 한 개인의 사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이름난 업적이라 할 만하다.
아아, 그러나 이 정자를 세운 뜻이 어찌 경치를 즐기는 데만 있겠는가?
서쪽 산기슭을 바라보면 부친의 묘소가 보인다. 오르내릴 때마다 부모를 잊지 못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그리워하는 정이 끊임없이 솟아난다.
옛날에도 부모를 잊지 못하는 마음으로 사정(思亭)을 세운 사람이 있었으니, 부모를 잊지 않는 것은 곧 근본에 보답하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의 선조인 탄옹(灘翁)께서는 일찍이 팔봉원(八峰院)에 배향되었으나, 그 서원이 철폐된 지 오래되어 추모의 정을 제대로 펴지 못하였다. 먼 조상을 추모하고도 충분히 받들지 못한 아쉬움 또한 없지 않았다.
이 모든 뜻이 이 정자에 담겨 있으므로, 정자의 이름을 모원정(慕源亭)이라 하였다.
‘원(源)’이란 곧 근본을 뜻하니, 주인이 때때로 이 정자에 올라 경치를 바라볼 때마다 반드시 그 이름의 뜻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뜰에 내려와서도 그 뜻을 마음에 새기고, 움직일 때나 고요할 때나, 말할 때나 침묵할 때나, 그리고 모든 행동을 할 때마다 항상 자신의 근본을 사모하는 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단순히 좋은 누대에 올라 바람과 달을 읊고 시를 짓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사람이 그 근본을 잊지 않으면(人不忘其本)”이라는 뜻도 또한 이로써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정자를 세운 사람의 공덕과, 이 정자를 찾아 구경하는 사람들이 받게 될 유익함을 어찌 말로 다 비유할 수 있겠는가?
주인이 나에게 정자의 이름을 짓고 기문을 써 달라고 하였기에, 비록 문장이 졸렬하나 느낀 바를 적어 기록한다.
바라건대 후손들은 부모를 사모하는 마음(羹牆之慕)을 게을리하지 말고, 선조를 받드는 도리를 길이 지켜 나가기를 바란다. 그렇게 하여 이 정자가 오래도록 보존되고 편안히 자리 잡는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정자가 될 것이다.
나는 그 뜻이 그러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적는다.
현묵(玄默) 무춘(茂春) 송재(松齋) 이호창(李鎬昌) 기(記)
---------------------------
[모원정기 (慕源亭記)
예성(蘂城, 충주의 古號)의 남쪽과 괴산(槐山)의 북쪽 사이에 검암산(劍岩山)이 있다. 구름 낀 언덕이 웅장하게 서서 비스듬히 굽이치며 사방을 가리고 있고, 산기슭을 깎아내어 시내와 산골짜기가 통한다. 그 가운데가 훤하게 열려 밝고 높은데, 봉우리 그림자와 물빛이 어우러져 바라보는 경치가 극히 아름답다.
서쪽으로는 팔봉촌(八峰村)과 접해 있으니 그 모습이 무릉도원 같으면서도 시원하게 열려 있고, 남쪽으로는 옥산(玉山)의 안산(案山)을 바라보니 반공(半空)에 걸린 듯 높이 솟아 있다. 큰 강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어 하늘 빛은 마치 평평한 거울 면과 같고, 푸른 절벽은 병풍을 둘러친 듯한데 소나무에 부는 바람 소리는 자연의 율려(律呂, 음악)를 연주한다. 하얀 돌과 맑은 모래 위로 여울 소리가 서로 주고받듯 울려 퍼진다.
여기에 봄이면 온갖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뱃노래가 자주 들려오며, 여름이면 녹음이 바야흐로 짙어져 이슬이 길게 드리운다. 가을이면 서리가 물들어 단풍잎이 떨어지고, 겨울이면 산마을의 겹겹이 쌓인 산등성이에 흰 눈이 가득하며 절벽에는 고드름이 매달린다.
이러한 사계절의 풍경을 인하여 틈을 내어 경치를 감상하고, 사물에 마음을 붙여 감흥을 기탁하니, 참으로 가슴을 활짝 열어젖힌 자가 초연히 스스로 득의(得意)하는 오묘함이 있다고 할 만하다. 이것이 바로 정자의 터를 마땅하게 잘 잡았다고 하는 이유이다.
호서(湖西)의 이명수(李明洙)는 타고난 자질이 온화하고 어질며 도량이 활달하여 구속받지 않았다. 부지런하고 검소하게 농사를 지어 한 집안을 풍요롭고 편안하게 구제하였다. 나이 예순이 넘어서도 재물을 아끼지 않고 여러 해 동안 정성을 다하더니, 마침내 이곳에 정자를 지었다.
절벽 위에 두어 칸 정자가 날개처럼 우뚝 솟았으니, 비단 도시의 시끄럽고 번화한 곳을 깊이 싫어해서만은 아니다. 매번 숲과 못, 샘과 돌의 아름다움 속에서 서성이며 머물렀으니, 마땅히 안개와 노을, 풍경 속에서 본성을 기를 만하다. 이로 인해 산천은 광채를 더하고 풀과 나무도 빛을 발하게 되었으니, 비단 한 사람만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실로 이 향리(鄕里)의 명성 높은 훌륭한 업적이다.
슬프다! 이 정자를 지은 뜻이 어찌 여기에만 그치겠는가? 서쪽 기슭 너머에 있는 아버지의 무덤(父阡)을 바라보며, 오르내릴 때마다 그 어버이를 잊지 못하여 사모하는 정이 이곳에서 자주 일어났다. 옛날에도 그 어버이를 잊지 못하여 ‘사정(思亭, 그리워하는 정자)’을 지은 자가 있었으니, 대개 그 잊지 못함은 바로 근본에 보답하는(報本) 하나의 길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이명수)의 방조(傍祖, 방계 조상)이신 탄옹(灘翁, 灘叟 李延慶을 말한다)께서 이미 팔봉서원(八峰書院)에 배향되셨으나, 서원이 철폐된 후로 세월이 오래 흘러 정을 펴지 못했으니, 먼 조상을 추모함에 미치지 못했다는 감회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인연이 여기에서 비롯되었기에 정자의 편액을 ‘모원정(慕源亭, 근본을 사모하는 정자)’이라 하였다.
생각건대 주인이 때때로 이곳에 올라 반드시 그 뜻을 음미하고, 뜰을 굽어보고 집을 올려다보며 마땅히 마음속에 새겨야 할 것이다. 움직이고 조용히 있고 말하고 침묵하는 사이(動靜語默)와 문득 일을 행하는 즈음(造次施爲)에도 늘 근본을 사모할 바를 생각하고 나서야 그칠 일이다. 그렇게 한다면 정자나 대(臺)의 이름을 따서 바람을 읊조리고 달을 노래하며(吟風詠月) 붓과 먹이나 희롱하는 무리들보다 훨씬 나을 것이니, 그들은 실로 미치지 못할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바 “사람이 그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기약하고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정자를 지은 사람의 공로가 세상에 보탬이 되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이 정자에 의지함이 어찌 그 위대함을 다 말로 비유할 수 있겠는가?
내게 정자의 이름을 짓고 기문(記文)을 써달라고 요청하기에, 내 글이 비록 정교하지 못하나 그 느끼는 바를 서술하여 기록한다. 무릇 그 후손들은 부모를 사모하는 정성(羹牆之慕)과 조상을 받드는 도리(奉先之道)에 게으르지 말고, 끝없는 편안함과 안식을 영원히 보존하기를 바라니, 이것이 정자의 아름다움이 될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기록하노라.
현묵(玄默) 무춘(茂春) 송재(松齋) 이호창(李鎬昌)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