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제가 2018년부터 작성해 온 글로써, 매년 조금씩 교정하여 다시 올리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죄를 벌하신다고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이 없다는 구절도 대부분 알고 있지요. 그러다 보니 죄사함을 깨달은 사람들은 자칫 마음껏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약간 그렇게 들리는 경향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상충되는 주장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지, 12살 때부터 장로교에서 성장한 입장에서 설명 드려 보겠습니다. (저는 만 3세에 성결교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감리교회를 거쳐 부산으로 이사 온 뒤로는 계속 장로교에서 성장했습니다)
죄는 원죄, 자범죄 할 것 없이 모두 예수님께 전가되어 십자가에서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요일 2: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며 그리스도 안에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위와 사실상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행위와 관련이 있다면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믿음에 의한 구원이 아니며 갈라디아서에 말하는 다른 복음입니다.
그래서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부터 우리는 완전히 정결케 된 상태이며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보시기 때문에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우리는 정결합니다. 방금 전에 죄를 지었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점도 흠도 없습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깨끗케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범위가 넓고 더 까다롭기 때문에 우리 생각에 죄가 아니라고 해서 죄가 아닌 게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이기 때문에(롬 14:23) 모든 사람이 방금 전에 죄를 지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죄가 있냐, 없냐를 따질 때,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냐, 없냐와 동의어입니다. 내가 무슨 행위를 했냐, 안 했냐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보통 “아니, 그럼 앞으로 마음껏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입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여기서 뭐가 “된다”는 건지 생각해 보면 죄를 지어도 천국 가냐는 말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답을 하자면 애초에 내가 천국 가게 된 것도 내가 죄를 안 지어서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라면 죄를 지어도 천국 갑니다. (사실, 위에서 말씀 드린대로 성경의 기준으로 죄를 안 짓는 사람도 없고요.)
그렇다고 '죄를 마음껏 지어도 된다'고 주장하거나 또 그렇게 죄를 마음껏 지으면서 사는 사람들은 아마도 사탄마귀에게 짓밟히며 살고 있을 겁니다. 왜냐면, 이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는 죄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탄마귀는 호시탐탐 우리가 죄를 짓기만을 기다리다가 죄를 지으면 얼른 우리 삶에 들어와 죽이고, 앗아가고, 파괴하기 때문입니다(요 10:10). 죄는 사탄 마귀에게 문을 열어주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 죄를 지으면 죄의 종이 됩니다.
(엡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 죄를 지으면 마귀에게 틈을 내어 줍니다. 영어로 보면, 내 삶에 어떤 장소(place)를 내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마귀에게 열린 문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죄를 인정하고 자백을 하면 죄의 결과인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여기서 어떤 분들은 이런 의문이 드실 겁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도 다 죄라서 우리 모두가 죄 가운데 있다면서요? 그러면 우리 모두가 마귀에게 틈을 내어 준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우리 삶에 마귀에게 열린 문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축복이 모두 풀어진 상태로, 복음 때문에 받는 핍박 외에는 완벽한 삶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과 동일한 삶을 살고 있는 상태지요.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자주 묻는 또 다른 질문 하나.
'죄에 경중이 있는가?' (큰 죄, 작은 죄가 있는가?)
하나님의 눈에는 차이가 없지만 사탄마귀에게는 죄의 종류에 따라 개입할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고전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위의 구절을 보면 성도들이 짓는 죄는 경, 중에 따라 나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을 때는 각자의 죄에 따라 판단 받는 게 아니라, 정체성 자체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의 정체성으로 판단 받습니다. 죄의 크기와 종류에 따라 나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탄마귀가 우리 삶에 역사할 때는 죄의 종류와 크기, 정도에 따라 그에게 주어지는 권세가 달라집니다. 보통 음행을 큰 죄로 여기는데 위의 구절에서도 음행만이 우리가 몸 밖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몸에 범하는 죄라고 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도 음행을 한 경우, 이혼을 허락하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 19: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정리해 보면, 우리가 처음에 구원받으러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자범죄가 아닌 원죄를 근거로 나아가기 때문에 죄의 크기, 종류, 정도와 상관없이 우리의 정체성 자체가 죄인이므로, 모두가 같은 처지입니다. 그리고 일단 예수님의 공로로 죄사함을 받으면 그 이후로도 예수님의 공로로 죄사함이 유지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죄 때문에 구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며(이것에 대해서는 영혼몸 9장을 참고하세요) 우리가 아무리 거룩하게 살아도 내 공로로 구원받는 것도 아닙니다. 할렐루야! 우리를 조건 없이 용서하시고 죄를 사해주셔서 구원해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다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우리 삶에 마귀가 들어오는 문이 열리고 죄의 종류, 크기, 정도에 따라 마귀가 역사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완전한 죄사함을 받았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내 행위와 관련 없이 정결한 신부로 서 있지만 그래도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마귀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주님을 만날 날을 사모하는 사람들은 주께서 깨끗하심과 같이 나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자 하는 소망이 생깁니다. 그래서 죄사함 받았다고 마음껏 죄 져도 된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은, 땡! 틀렸습니다.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또 은혜를 전하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는 말씀을 이용하여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해석하는데 그것도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것입니다. 은혜는 우리에게 거룩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딛 2:11, 킹제임스 흠정역)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12)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13)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무슨 말이냐면, 은혜가 우리를 직접 가르치는데 우리로 하여금 성화의 길을 걷도록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 여러분 대부분은 죄사함을 받았다고 '마음껏 죄짓자,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를 더하자', 이런 주장은 정말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그런데 바울이 은혜를 전했을 때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4번이나 받았고 사실, 복음을 100% 정확하게 전하면 그런 질문이 나와야 마땅하기도 합니다. 너무 어마어마한 은혜를 듣다보니, “아니, 그럼 뭐야? 마음껏 죄를 지어도 나는 계속 의인이란 말이야?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하면 죄를 더 짓는 게 좋겠네?”라는 질문이 나오게 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머리로는 다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런 질문이 안 나오면 복음을 100% 전하지 못한 것이며, 그랬다고 마음껏 죄지어도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자들입니다. 우리에겐 하나님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마귀 사탄도 존재합니다. 또 마귀 사탄이 없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이라면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소망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단순하고 당연한 진리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