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와 물외
며칠 전, 해운대구 복지회관에 들렀다가 토론회까지 시간이 남아 옥상 정원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옥상 문을 여는 순간, 나는 한순간에 시골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바닥은 곱게 깎인 잔디로 덮여 있고,
화단마다 제철 꽃들이 알록달록 피어 있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작은 텃밭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
에는 고추와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고추나무마다 손가락보다 훨씬 긴 풋고추가 주인을 기다리듯 흔들리고, 제일 아래의 한 고추는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오래전 어린 시절의 여름 한가운데로 마음이 훌쩍 건너갔다.
시골의 여름은 농사일이 가장 바쁜 때였다. 점심상이라고 해 봐야 꽁보리밥 한 그릇에 풋고추 몇 개, 그리고 생된장
한 접시가 전부였다. 가끔 여유가 있을 때면, 마당 옆 샘에서 길어온 차가운 물에 갓 딴 물외를 총총 썰어 넣고 간장
한 숟갈로 간을 맞춘 ‘맥국’이 올라왔다. 그 시절, 보리밥이라도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오이는 우리 고향에서 ‘물외’라 불렀다. 이른 봄, 구덕을 파고 씨를 심으면 며칠 지나 떡잎이 올라오고, 곧 줄기가 사방
으로 뻗어 나간다. 노란 꽃이 피면 그 자리에 물외가 맺히는데, 하루가 다르게 눈에 띄게 자란다. 푸른 빛이 도톰하게
차오를 때 따서 먹으면 아삭한 맛이 일품이었다.
고추도 마찬가지였다. 오뉴월 뙤약볕 속에서 모종을 옮겨 심으면, 어느새 파릇한 고추가 달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키우던 것은 지금처럼 크고 두꺼운 것이 아니라, ‘조선고추’라 불리던 길쭉하고 매운 품종이었다. 손가락 길이만큼
자라면 된장에 찍어 먹었고, 더 단단해져 ‘깩’ 하고 부러질 정도가 되면 그 매운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한여름 햇볕
아래 붉게 익은 고추는 바싹 말려 방앗간에서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었고, 그 가루는 겨울 김장과 온갖 찬거리에 빠질
수 없는 양념이 되었다.
옥상 텃밭에서 본 고추와 물외는 내게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여름, 흙냄새와 땀냄새, 그리고
소박하지만 넉넉했던 한 끼의 기억을 통째로 품고 있었다. 도시 한복판의 옥상에서, 나는 잠시 고향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