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야구, 농구, 배구, 탁구, 골프 등의 구기종목을 비롯해 육상이나 수영 심지어 두뇌 스포츠인 바둑까지 소위 전성기라는 것이 있어 나이가 들면 기량이 급격히 쇠퇴하기 마련이다. 특히 엄청난 체력과 순발력, 민첩성을 요구하는 스포츠일수록 전성기의 연령이 낮다. 그런데 노년기에 접어들어서까지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종목이 있는데 바로 당구다. 요즘도 3쿠션을 매우 즐기는 편이다. 2년 전쯤인가 하루는 어찌나 게임이 안 풀리던지 당구를 치다 말고
"아이고, 당구도 이제 때려치워야겄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갈수록 안 되네."
하며 투덜거렸더니 아주 친한 젊은친구 하나가
"무슨 말씀이세요? 나이가 들어도 실력이 늘 수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당구라는 걸 모르십니까?"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강렬하게 다가와 생각이 바뀌면서 기본부터 다시 정립하기 시작하며
간단해 보이는 당구에도 물리적 이론을 비롯해 수많은 이론들이 있다는 걸 난생처음 알게 되었다. 책도 몇 권 사서 보고 비디오도 보고,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은 주저없이 고수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면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치던 때의 자세나 스트로크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동네하수 경력 수십 년의 관성은 올바른 스트로크 세계로의 방향전환을 어렵게 만들었다. 마치 요요현상처럼 조금만 방심하면 동네하수 샷으로 금방 회귀하는데 미칠 노릇이었다. 이러기를 2년여 간신히 대대 기준으로 5점을 더 올렸는데 주위에선 "아이고, 그 연세에 빨리 느신 겁니다." 하며 위로하지만 나로선 대단히 불만스러운 진전이다. 그러나 진전이 늦은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안다. 대체로 게임만 즐길 뿐 실력 향상에 가장 필요한 반복훈련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위 고수님들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왜 연습을 안 하세요?"다. 반복훈련이 없으면 당구에서 가장 필요한 '스트로크의 일관성'이 몸에 배기 어렵다. 생각에 맞게 몸을 반응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한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수없이 많은 반복 훈련이 있으면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상황에 맞는 스트로크를 일관성 있게 구사할 수 있다. 이른바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경지인 것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당구 에피소드가 많은데 그 중 하나다. 속칭 겐뻬이라는 2인조 팀게임이었는데 나보다 서너 점 고수인 친한 동생 팀이 8점이 남고 상대 팀은 단 한 점이 남아 거의 패색이 짙었다. 돈내기 당구는 아니었지만 그 한 판에 걸린 게 만만치 않았다. 그날 종일 친 당구비 엎어쓰기 최종전이었고 식사비며 술값, 끝나고 들르기로 한 노래방비까지 무려 25만여 원의 거금이 걸린 판이라 그 아우의 표정을 보니 이미 사색이 되어 있었다. 거기다 수비까지 안 돼서 2적구에 맞을 범위 즉 방수가 수박 만한 옆돌리기 (속칭 하꼬)를 상납하고 말아 당사자들이나 구경꾼들 모두가 "끝났네." 하는 표정들이었는데 갑자기 조그만 변화가 생겼다. 기고만장해진 상대편 고수가
"으하하핫. 이거 눈을 감고 처도 무조건 들어가게 되어 있어."
라며 호언장담하자 팀동료는 말리기는 커녕 거기다 기름을 부었다.
"맞아 맞아. 우리 실력에 이런 거 눈감고 못 치면 당구 때려치워야지. 눈감고 쳐라. 하하핫."
눈을 감고 치는 일이 어려울 것 같지만 일정한 수준에 오른, 즉 일관성 있는 스트로크를 구사할 줄 아는 고수들에게는 가까운 1적구에 두께를 맞춘 뒤 눈을 감고 샷을 하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에 파장 분위기는 여전했다. 상대 고수가 자세를 잡고 1적구를 겨냥한 후 눈을 지그시 감고 보기에도 편안한 스트로크를 구사한 후까지도 그랬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 반대편 코너까지 씩씩하게 진군한 수구가 거기에 있던 모두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던 코너의 좁은 공간을 바람처럼 돌아서 빠져나온 것이다. 잘 친 것 같지만 눈을 감는 바람에 약간 빨라졌던 큐스피드가 화근이 됐다. 거기서 상대팀은 균열이 생겼고 아우팀이 그 이닝에 3점을 따라붙은 뒤 상대가 다시 무득점, 그리고 다음 이닝에 다시 3점을 따라붙어 두 점을 남겼다. 기본 포지션을 내 주었지만 한 번 흔들린 상대는 다시 실기하고 아우가 나서 남은 두 점을 득점하며 그 날의 파란만장했던 팀게임에 마침표를 찍었다. 친한 아우님 팀이 이긴 건 좋은데 그 무용담을 일년내내 주야장천 되새김질하는 걸 참고 들어야 했던 건 고역이라면 고역이었다.
거의 모든 스포츠에서 멘탈은 날이 갈수록 주목을 받으며 연구가 되는 요소다. 타고났거나 훈련으로 다져진 기량일지라도 멘탈에 따라 사뭇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 한화이글스 선수들 중에서도 곧잘 치거나 던지다가도 갑자기 길을 잃기라도 한 듯, 미로에 빠진 듯 까닭모를 부진에 허우적대는 선수가 몇 명 보여서 안타깝다. 물론 소질이나 자질이 부족해 보이는 선수도 있지만 잘하던 선수가 길을 잃으면 안타까움은 더하다. 보기에도 멘탈이 흔들려 보인다.당구 이야기로 서두를 냈지만 나 역시 멘탈이 약한 편이다. 특히 소란스런 분위기에선 멘탈이 형편없이 무너진다. 조옹한 가운데 치면 승률이 높지만 상대가 말이 많거나 주위가 소란하면 승률이 현저히 떨어진다.요즘 나름대로 약한 멘탈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쓰리쿠션의 황제 쿠드롱의 멋진 샷 128선을 모아놓은 비디오가 있는데 20번 이상 본 것 같은데 요즘도 본다. 예전에는 공의 움직임을 쫓아다녔는데 요즘은 그의 팔동작이나 당점 위치, 스트로크의 스피드, 큐가 나가는 길이, 큐끝의 업다운 여부 등을 주로 면밀히 본다.
예전에 이대호 선수가 일본에 진출했을 때 너무나 부진에 시달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기사에 댓글을 아주 길게 단 적이 있다. 기억하기로는 " "대호야, 너는 누가 뭐래도 이대호다. 나는 이대호다. 나는 이대호다. 나는 이대호다를 수없이 되뇌어라. 너는 누가 뭐래도 한국의 이대호다. 힘내라, 대호야"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는데 며칠 후부터 이대호는 펄펄 날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이대호다' 라는 다큐멘터리가 나와 깜짝 놀랐었다. 내키지 않는 환경에서 당구를 칠 때 쿠드롱의 128샷을 떠올리며 '나는 쿠드롱이다'를 속으로 되뇌는 것이다 그러자 스트로크가 흔들리지 않 으면서 에버리지 1을 넘는 일이 잦아졌다. ㅋㅋ. 남에게 조언한 방법을 내가 써먹는 것이다.나야 취미생활에 불과하지만 멘탈이 무너진 우리 선수들에겐 야구는 어쩌면 인생이 걸린 일이란 생각에 안타까움은 더하다. 한 번 무너진 멘탈은 두려움을 부르고 조바심을 부른다. 자신으로 인해 경기의 맥이 자주 끊기다 보면 팀멘탈까지 무너뜨린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초조함을 넘어 팀동료에 미안함이 커져가고 격한 팬들의 온갖 비난에 수치심을 느낄 것이고 때로 분노에까지 휩싸여 날이 갈수록 개선은 커녕 더 악화될 위험이 크다.
강경학이 달라졌다. 예전에 보던 청년이 아니다. 전혀 다른 청년이 됐다.멘탈도 어찌나 강해 보이는지 타석에서 볼을 고르는 모습에서 사믓 여유로움이 넘쳐나 보인다.예전에 보이던 조바심이나 두려움같은 걸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 이 청년은 절치부심하며 스스로 해법을 찾았으리라. 정말 대단하고 대견한 친구다. 다른 선수도 무너진 멘탈을 빨리 추스렸으면 좋겠다. 빨리 찿아 보자.
'나는 하주석이다. 나는 하주석이다. 나는 하주석이다. 나는 하주석이다........'
첫댓글 요즘 하주석나오면 나는 하주석이다가 아닌 나는 김하성이다 또는 나는 양의지다 라는 응원글이 올라오네요.
아, 그렇습니까?ㅎㅎㅎ
요즘은 기사를 잘 안 봐서요.
타이콥이나 베이브 루스 또는
장효조도 있는데요.
나는 하주석이다.
아자 아자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