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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0)의 서양에서의 역사*
영(0)의 역사에 대해서 비교적 최근에 번역되어 출간 된 아래 5권의 서구 석학들의 저술 가운데에서 각각 일부를
발췌하여 개재하여 보았습니다.
1) 찰스 사이퍼 저술, 홍종도 옮김, <zero(0)을 알면 수학이 보인다.>,(서울:나노미디어출판사, 2000).
2) 존D 배로 지음, 고중숙 옮김, <無 0 眞空>,(서울:해나무, 2003).
3) 콘스탄스 리드 지음, 허민 옮김, <영부터 무한대까지>,(서울:경문사, 2003),
4) 앙드레 주에트 지음, 김보현 옮김, <수의 비밀>,(서울:이지붘, 2002)
5) 손영일 지음, 임승원 옮김, <제로(0)의 불가사이-탄생에서 컴퓨터처리까지->(서울:전파과학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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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0에 관한 이야기로서, 고대 시대의 0의 탄생에서부터, 동양에서의 성장, 유럽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한 투쟁, 서양에
서의 그 전성기, 그리고 그것의 현대물리학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또한 이 신비적인 숫자의 의미
를 파악하기 위해 싸워 온 사람들 - 나름대로 0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학자들과 신비주의자들, 과학자들과 성직자
들 - 에 관한 이야기이며, 하나의 동양적 사고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서양세계의 헛된(그리고 때로는 난폭한) 몸부림의
역사다. 그리고 이것은, 아무 죄도 없어 보이는 하나의 숫자 때문에 재기되어, 금세기까지도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뒤흔들고
있고 과학적 사고의 전체의 틀을 혼란시키려 위협하는 역설(逆說)들의 역사다.
0은 무한대의 쌍생아이기 때문에 강력하다. 0과 무한대는 같으면서 상반되며, 음(陰)과 양(陽)이다. 그 둘은 모두 역설적이고,
골칫덩어리다. 과학과 종교에서의 가장 큰 의문은 무(無)와 영원, 공(空)과 무한, 0과 무한대에 관한 것들이다. 철학과 과학,
수학 그리고 종교의 근본을 뒤흔드는 싸움들은 모두 0에 관한 충돌 때문이었다. 모든 혁명의 근저에는 0이 깔려 있었다. - 그
리고 무한대도.
0은 동양과 서양 사이의 싸움의 핵심에 있었다. 0은 종교와 과학 사이의 투쟁의 중심에 있었다. 0은 자연의 언어가 되었고 수학
의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물리학의 가장 심오한 문제들 - 블랙홀의 어두운 중심과 빅뱅의 찬란한 섬광 - 은 0을 극
복하려는 투쟁들이다.
0은 전 역사를 통해 거부되고 추방되었지만, 언제나 자신의 반대자들을 물리쳐 왔다. 인류는 절대로 자신의 철학에 0을 맞출 수
가 없었다. 0이 오히려 인류의 우주관을 - 그리고 신에 대한 견해도 - 형성했다.
<찰스 사이퍼 저술, 홍종도 옮김, zero(0)을 알면 수학이 보인다,(서울:나노미디어출판사, 2000). pp.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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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류가 품은 무의 관념이 지식의 성장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 서양은 논리학과 분석철학에 빠졌다. 그
리하여 무를 눈에 보이는 현상의 해명에 관한 유용한 도구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반면 동양의 철학자들은 무를 실체로 보는
사고방식을 얻어 냈다. 이로부터 음수의 개념도 쉽게 파생되어 나왔다. 무의 첫걸음은 미약했지만 이어지는 진보는 눈부셨다.
그로부터 만능의 셈법이 나왔고, 결국은 심원한 현대수학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또 과학 분야가 천년의 세월 동안 헤쳐 온 진짜 진공의 가능성과 필요성, 그리고 그것이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등의 탐구
에 얽힌 숱한 우여곡절을 둘러 볼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궈진 관념은 물리학과 공학의 많은 분야에서 나아 갈 길을 이끌어 왔으
며, ‘물리적인 무’인 진공의 가능성과 필요성에 관하여 신학과 철학이 벌여 온 논쟁의 틀을 새로이 짰다.<p. 14.>
나는 이 책을 통하여 무에 관해서 언뜻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얘깃거리가 있음을 전하고자 한다. 그 본질과 특성, 그리고
느리기도 하고도 빠르기도 한 변화의 경향을 올바로 파악하는 것은 우리가 왜 여기에 살면서 생각하는 존재가 되어 있는지 이
해하는데 필수적이다.<p.16.>
이 책의 원제목은 ‘The Book of Nothing'이다. 무에 관하여 그야말로 여러모로 다루고 있다.
멘 처음에 무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을 조금 둘러 본 후, 곧이어 ‘수학에서의 무의 표현’ 이라고 할 수 있는 ‘0’. 즉 ‘영’에 관한
예기로 접어든다. 거기에서 우리는 오늘날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의 상식과 달리, 영이라는 개념을 떠 올리고 붙잡고
마침내 ‘0’이라는 기호로 포섭하기까지 험난한 우여곡절이 숨어 있음을 살펴보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신학 철학 종교 문학
음악 미술 등의 분야에서 무의 개념이 단순한 ‘없음’의 차원을 벗어나 ‘진지한 정신적 관념’으로 인정받기까지 수많은 현인들
이 펼쳤던 현란하고도 치열한 논쟁의 장(場)을 아쉬운 대로 조금씩이나마 섭렵해 본다.
그런 뒤에는 이 책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현실 세계 속에서의 드러나는 무의 모습’을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수학에서의
무의 모습은 0이지만 현실 세계에서의 무의 모습은 바로 ‘진공(vacuum)'이다.
갈릴레이, 토리첼리, 파스칼 등의 천제들이 그때까지 거의 2천년의 세월 동안 서구의 정신의 세계를 지배해 왔던 아리스토텔
레스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상세히 살펴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공은 불가능하다.”라고 말 했다. 그리고 이 한 마디
는 자연의 실상과는 상관없이 오직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이름의 권위 하나만으로 그 오랜 세월 동안 진리로서 군림해 왔다.
그러나 이 천제들은 그 허위성을 타파했다. 이 관정은 게리케의 ‘마그데부르크 반구 실험’으로써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은 이것으로 마무리 되지는 않는다. 그 중에서도 ‘빛’이 가장 문제였다. 그때까지의
물리학적 지식에서 보면 빛은 파동의 일종이었다. 파동이 전파되는 데에는 매질이 필요했는데, 이 가상의 메질을 그리스시대
이래 이른바 ‘제5원소’를 가리켰던 이름을 따서 에테르(ether) 라고 불렀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특수상대성이론에
의하여 마침내 그 존재의 불필요성이 깨끗이 증명되었다. 그리하여 다시금 진공은 ‘아무 것도 없음; 이란 상태를 회복했다.
상대성이론과 함께 현대물리학의 양대 기둥을 이루는 양자역학이 등장함에 따라 진공의 ’있음‘으로서의 속성은 다시금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하여 오늘날 이 새로운 모습을 탐구하는 데에는 가장 극미한 분야를 들여다보는 소립자물리학에서부터
가장 거대한 규모를 내다보는 천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연구 분야가 망라된다. 물론 이러한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논의
못지않게 종교 철학 수학 등에서의 형이상학적 추상적 논의도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결론은 무엇일까? 그와 정반대로 우리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무와 진공의 본질에 대해서는 아직껏 뚜렷한 결론
이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 대한 ‘모름’의 지평선이 더욱 크게 확대 되는 듯하다.
<존D 배로 지음, 고중숙 옮김, 無 0 眞空,(서울:해나무, 2003). pp. 426-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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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을 세계에 퍼뜨리고 0이 포함된 실용적인 산술 표기법을 퍼뜨린 것은 인도였다. 인도 사람들은 주판 위의 알이 없는 열을
나타내기 위해서 슈냐(sunya)라고 부르는 점을 고안해서 기호로 사용했다.
없음 또는 공(空)에 대한 기호의 발명은 그 인도 사람의 특유한 철학과 종교의 일면이라는 점이 지적 되었다. 그 인도 사람이
발명한 슈냐는 수 0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빈 공간을 지적하기 위한 기계적인 도구에 불과했는데,
실제로 그 단어 자체는 비어 있음을 의미했다.
슈냐와 함께 기호 0이 발명되었다. 그러나 수 0은 발견되지 않았다.
마침내 그 인도 사람의 표기법이 유럽으로 전파 될 때, 그것은 아라비아 사람들을 통해서 ‘아라비아’ 표기법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것은 굉장히 우수했지만 즉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아라비아숫자가 로마숫자 보다 훨씬 쉽게 위조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숫자를 상업 어음에 사용하는 것이 1300년에 금지 되었다. 더욱 보수적인 대학교수들은 로마숫자와 주판을 고수했던
반면에, 상인들은 새로운 숫자의 유용성을 인식했다. 1800년대까지도 새로운 숫자가 유럽 전역에서 수용되지는 않았다.
<콘스탄스 리드 지음, 허민 옮김, 영부터 무한대까지,(서울:경문사, 2003), pp.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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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0)의 창조는 천제적인 발명의 하나이다. 영은 궁극적인 가치를 지닌다. 503이라고 쓰면 그것은 백이 5개이고, 십이 없고,
일이 3개인 것을 뜻한다.
영의 사용은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함무라비 왕이 다스리던 시절, 바빌론의 수학자들은 숫자가 없는 자리를 빈 공간
으로 남겨 두었다. 그런데 그 빈 공간이 클 때, 빈 공간이 몇 개인지 모호하게 되었다.
영이 실제적인 형태(비어 있는 원)로 나타난 것은 마야나 인도에서다. 아마도 기원전일 것이다. 인도의 수학자인 아라아
바타(Aryabhaya : 476-550? 유럽에 알려진 최초의 인도 천문학자․수학자. 499년 인도의 수학을 요약한 책「아리아바
티야(Aryabhatiya」완성)가 5세기경에 사용했다. 825년 아라비아의 수학자인 알콰리즈마(Alkhwarezmi : 780-850, 바그다
드 ‘지혜의 집’ 회원으로 유럽에 가장 많이 알려진 수학자. 아라비아 기수법을 의미하는 알고리즘(algorism)은 그의 이름
에서 나왔다.)가 인도의 수에 대한 책에서 영(0)을 소개했다.
우리가 아라비아숫자라고 말하는 수(아라비아인들은 좀 더 정확하게 인도숫자라고 부른다.)는 프랑스 최초 교황인 실베스
트르 2세(SylvestreⅡ:940,50-1003)에 의해 10세기 말에 동유럽 지역에 소개 되었다. 아라비아숫자가 이탈리아나 스페인에
전파되고 사용된 것은 12-14세기 사이의 일이다. 그 이후에 유럽 전체에 보급되었다.
정수와 소수를 분리하는 소수점은 1617년 로그(logarithme)의 발명자인 네이피어(Napier, John:1550-1617, 영국의 수학자.
「경이적인 로그 법칙의 구조」가 유고로 출간)가 쓴 책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소수점은 곧 천문학자인 로이엔
(Snell van Royen, William:1580-1626. 네덜란드 천문학자. 반 셀렌의 방법으로 파이 값을 계산. 삼각측량으로 지구를 측량)
에 의해 채택되었다.
<앙드레 주에트 지음, 김보현 옮김, 수의 비밀,(서울:이지붘, 2002) pp.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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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발달은 참으로 눈부시다. 그 옛날 2진수를 생각한 독일의 수하자 라이프니츠(Leibmiz, Gottfried Wilhelm von,
1646.7.1-1716.11.14)도 오늘 날의 컴퓨터 발전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0과 1만으로 양의 정수, 즉
자연수를 나타내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확실히 0과 일, 즉 점(點)과 멸(滅), on과 off, 여러 가지 생각 할 수 있는데 yes
와 no로도 괜찮다.
바꿔 말하면 이것이 제로의 최대 이용이고 큰 승리인지도 모른다. 이만큼 제로를 활용한, 즉 잘 이용한 예는 없을 것이다.
이 절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서 언급하기로 한다. 이 프로그램은 나라(奈良) 여자대학교 조교수 공학박사인 니시오
카 히로아키(西阿弘用) 선생의 호의에 따른 것이다.
우선 먼저 도호쿠(東北) 대학 명예교수 이학박사인 히타야마 아키라((平山明) 선생으로부터 편지로 받은 파이의 전개공식을
사용해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았다.
이 프로그램은 후지쓰(富士通)M 767/6, FORTRAN 77을 사용한 것이다.
<손영일 지음, 임승원 옮김, 제로(0)의 불가사이-탄생에서 컴퓨터처리까지-(서울:전파과학사, 1995).p.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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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0 의 탄생과 쓰임새가 인류에게 커다란 축복이었군요~
서양에서 0의 쓰임은 불교에서의 0의 쓰임과 함께 할 때에 축복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