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율리우스 카이사르 평가
그렇다고 원로원 없이 새로운 로마 공화정을 꾸려간다는 시나리오를 본다면,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도시국가를 넘어서서 지역의 패권을 좌지우지하는 국가 중에서 공화정으로 운영되던 나라는 로마 이전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당장 공화정은 세계 역사에서 로마 공화정 이후에는 한참 동안 찾아보기도 힘든 정치 체계이다. 1800년쯤 뒤의 영국이나 미국 정도는 되어야지 말을 꺼내볼 만한데 영국의 입헌군주정은 긴 시간 왕정과 귀족, 부르주아 층간의 갈등을 계기로 긴 시간에 만들어진 타협의 결과물에 가까운 것이고, 왕정도 아니었던 로마에서 단시간에 따라할 수 있던 게 아니므로 그나마 비교대상으로 미국을 정치 시스템을 로마가 취할 수 있었을지 살펴본다면 당대의 최고위 지식인 및 지도자층 55명이 모여 지금까지의 공화정 시스템의 장점을 최대한 취합해서 수개월간의 긴 회의와 극적인 타협으로 간신히 만든 시스템이 미국 정치 시스템이란 걸 감안하면 매우 어렵다.
이렇게 보면 공화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기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위업인지 알 수 있다. 무려 1800년의 세월을 넘어야 하며, 세계 역사적으로 또 다시 최초로 기존의 원로원 기반 귀족 공화정이 아닌 또 다른 공화정의 새 패러다임을 그 당시에 제시한다는 것은 시간여행물이나 이세계물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의 비현실적인 시나리오이다. 또한 통신 기술과 투표 시스템의 비효율성 등 여러 가지 기술적 한계까지 감안하면 당시 소수의 귀족 공화정으로도 의견을 모으기 힘들어서 넓은 영토를 관리하기 힘들었던 게 로마였다.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는, 이상적인 민주공화정에 가까운 형태로 변화한다는 건 한층 더 비현실적인 시나리오이다.
그렇다고 원로원이 민중파에 양보를 할 수 있을까? 이 양보를 할 생각이 있었다면 이미 그라쿠스 형제 시기에 양보했을 것이다. 이미 최악의 수단으로 최소 3번 이상 민중파를 탄압한 원로원이 갑자기 민중파의 요구를 들어줄정도로 급변한다는 것도 비현실적이다. 당장 수백 명 단위의 타락한 기득권층을 단체로 개과천선시킨다는 사례는 전 세계 역사를 통틀어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결국 종합해보자면, 원로원의 무력화 및 기득권의 소실이 사실상 로마 공화정의 종말에 가까운 형태라고 본다면 원로원이 양보하지 않는 당시의 로마의 상황을 감안하면 로마 공화정의 종말은 필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걸 단순한 결과론이라고 보긴 힘든 게, 원로원 자신이 초래한 결과물이므로 사실상 자업자득에 가까운 전개이며, 무려 그라쿠스 형제와 마리우스까지 포함해서 최소한 3번의 해결 찬스까지 자기 손으로 엎어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만한 규모의 민중의 요구를 무려 3번이나 무시하고도 멸망 안 당한 시나리오가 드물다는 걸 감안할 때, 그들에게는 이미 충분히 많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스스로 져버린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더군다나, 초기 로마면 몰라도 당시 로마를 권력이 쪼개진 체제라고 주장하며 '폭주하는 집정관은 탄핵으로 어루만져주면 되지만, 폭주하는 황제에게는 칼 외에는 해결책이 없다'라는 주장은 그야말로 문제의 본질에서 눈을 돌리는 헛소리인데, 공화정 말기 로마의 최대의 문제는 탄핵할 수 있는 집정관이 아니라 바로 원로원 최종 권고였기 때문이다.
이 원로원 최종 권고가 발동되어 집정관에게 권한이 부여되면 거부권이나 탄핵을 모조리 무시하므로, 그야말로 칼 말고는 해결책이 없는 수단이자 그 자체가 자국민 정적을 향한 재판 없는 절대 무력 행사 선언이나 다름없다. 발동되면 천 단위 이상의 자국민 학살조차 정당화하고, 이게 발동된 순간 항복한 정적조차 죽어야 끝났으며 물론 재판따윈 없었다. 어지간한 절대왕정 체제의 왕도 단체 학살을 해버리면 반란이 일어나므로 함부로 휘두르기 힘든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하는 이 최악의 수단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문제지만, 초기 로마에는 이게 발동되지 않는 선에서 로마의 권력 체계가 잘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로마 공화정 말기에는 이 원로원 최종 권고가 남용되었으며, 무엇보다 국가의 이득이 아니라 자기네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남용되었다는 것이 로마 공화정 말기의 결정적인 문제점 중 하나이다. 건강한 국가 시스템에 권력 견제가 필요한 근본적인 이유 중 가장 큰 원인이 이것이다. 권력자나 권력 집단이 사익을 포기하고 오로지 국가를 위해서만 결정을 내린다면, 독재의 폐해는 현저히 줄어든다. 하지만 권력자나 권력자가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견제가 필요한 것인데 로마 역사에서 확인되는 최초의 원로원 최종권고가 발동된 안건이 바로 민중의 요구를 주장하던 가이우스 그라쿠스와 그 지지자들을 학살하는 것이었으며, 심지어 그라쿠스 1명도 아니고 그 지지자 약 3250여 명을 싹 다 죽여버린다. 권력 분리가 잘 되지 않은 건강하지 않은 정치 시스템이 일으키는 폐해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원로원 최종 권고는 로마에 내려오던 무슨 전통적인 방법 같은 것도 아니다. 원래 로마에 내려오던 제도는 원로원 권고로, 집정관이 도를 넘을 가능성이 있으면 원로원의 권고로 이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어느새 원로원 최종 권고가 되어 사람을 마구 학살해도 용납되는 어처구니없는 제도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는 결국 대 민중파 최종병기로, 민중파를 때려잡기 위해 원로원에서 고안된 제도로 봐도 무방하다. 전술하였듯 최초로 발동한 것이 바로 그라쿠스 형제를 때려잡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오늘날 정확한 표결 수는 알 수 없지만 로마에서는 한번 투표하면 수천에서 수만 명 정도 투표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오늘날의 투표 시스템과 로마 공화정의 투표 시스템이 다르므로 투표 수와 지지자 수를 일대일로 대입할 수는 없지만 무려 3000명 단위로 지지자를 학살하는 행위는 그야말로 특정 지지자의 정치 지지 기반을 추후에도 씨도 안 남기고 학살하려고 한 뒤, 도망치거나 숨지 못한 사람들 빼곤 다 죽였다고 봐도 될 정도의 학살이다. 공화정이라는 시스템이 투표로 인해 돌아간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권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로원 최종 권고라는 수단이 군주정의 권력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나마 상시 발동이 아니라는 점이겠지만, 대신에 상시 발동이 아니므로 한번 발동이 걸리면 군주정에서조차 반란이 무서워서 함부로 못하는 짓을 끝까지 해버릴 수 있다.
또한 키케로와 카토는 개인적으로는 청렴했을지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절대 민주적이라고 할 수가 없는 인물들이었다. 당장 키케로가 자신의 최고 업적이라고 내세웠던 카틸리나 탄핵부터가 문학사적으로는 걸작 소리를 듣지만, 그 내막을 뜯어보면 유력한 정치인과 그 지지자들을 재판도 없이 처형해 놓고는 그것이 로마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며 정당화하며 법치주의를 완전히 무시한 연설이었다. 당장 키케로는 이 사건에서 원로원 최종 권고를 발동시킨 뒤 카틸리나와 그 지지자들을 학살했다. 그라쿠스때 처럼, 약 3000명의 지지자들도 학살시켰으며, 이는 카틸리나의 지지자들을 보이는 족족 다 죽여버렸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투표에서 이기는 방법! 경쟁자의 지지자를 다 죽여버리자. 카토 역시 필리버스터를 남발하며 카이사르를 견제했다며 고평가 받지만, 이 인간이 필리버스터로 반대한 안건이라는 게 바로 민중에게 토지를 재분배하는 법안이었다. 그나마 원로원파 중에서 나은 인물들로 언급한 게 이런 수준이었다.
심지어 술라가 카이사르보다 낫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데, 술라가 사욕을 위하지 않았다는 부분을 아무리 높게 평가하더라도 기득권인 원로원을 위해서 내전을 일으킨 뒤, 내전 이후에도 수천 명 단위로 정적을 학살했다. 사욕으로 움직이진 않았지만 기득권층을 위해서 내전을 벌이고, 정적을 학살하고 독재를 하다가 내려온 사람이 낫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술라는 군사적 능력과 권력을 잡는 능력은 빼어났을지 몰라도 당시 로마체계의 문제의 본질조차 이해하지 못해서 결국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성과는 전무했으며, 개혁을 일으키긴 했지만 긍정적인 영향은 없는 반면 내전으로 국내를 피폐화시킨 이후에도 민중파를 학살하고 원로원 최종 권고 발동 등으로 국가 시스템의 불안정성만 키우는 퇴보나 다름없는 개악이었다. 무능한 리더가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말아먹었지만 의도는 좋았다는 건데, 카이사르가 민중에게 가져온 긍정적인 부분은 "독재를 정당화할 순 없다"라며 전부 무시한 뒤, 술라가 말아먹은 것에 대한 평가는 다 건너뛰고, 그 좋았던 의도에 대한 평가만 하면 전혀 공평한 비교가 못 된다.
결정적으로 일부 공화정 말기의 원로원이 청렴한 사람이었다, 훌륭한 사람이었다, 아니었다를 논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과도 거리가 멀다. 원로원이 비판받는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악이라서가 아니다. 단순히 그들이 부나 권력을 많이 가져서도 아니다. 로마는 중산층까지 무너져가는 상황에 있고 심지어 로마의 근간을 이루는 시민병조차 은퇴하면 퇴직금으로 땅도 못 받고, 벌어둔 돈은 부족하기 짝이 없어서 깡통차는 상황이다 보니 내전이나 반란 일어나기 딱 좋은 상황을 만들어 놓았는데, 원로원은 이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해결하지 않은 채로 부를 독점하고, 해결하라고 뽑아놓은 호민관들이 이 점을 개선하려 들면 원로원 최종권고를 통해 박살내 버렸다. 하다못해 원로원이 부를 쓸어담더라도 시민병이 입에 풀칠할 정도의 환경이라도 만들어주고 나서 벌어진 빈부격차라면 그래도 공화정을 유지하는 것이 독재보단 낫다고 주장할 여지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반란이나 내전을 부르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국정운영을 진행한 것이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는 설령 내전이나 반란이 진압되더라도 얼마 안 가서 다시 발발할 게 뻔하고, 다시금 진압되더라도 무한반복될 게 뻔하다. 그 원로원 의원 중 몇 명이 개인적으로 청렴했다고 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셈이다. 더군다나 그 상황을 수습할 의지조차 없었고, 그 해결을 하려는 민중파의 의견을 묵살하기 위해, 원로원 최종 권고를 남발하거나 필리버스터로 토지 재분배를 막는 데 앞장서기까지 한 모습을 보인다면 더더욱 옹호의 여지가 없다.
카이사르가 정적을 숙청한 뒤, 절대 권력을 구축한 것이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끼쳤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동시에 당시의 원로원이 이끌어가던 공화정은 민중을 위한 법을 만들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가 없다. 때문에 원로원한테서 권력을 뺏은 것 자체는 잘못한 일이라고 볼 수가 없으머, 카이사르의 오점을 찾는다면 그렇게 획득한 권력을 독점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권력을 손에 넣은 자의 인간적 한계이자 당시 시대 그 자체의 한계라고 봐야지, 카이사르가 야망이 넘치는 폭군이라서 그랬다고 보는 것은 심한 처사다. 그리고 전제정은 고대와 중세 기준으로 봤을 때 매우 효율적인 정치 체제이다. 오늘날에야 교육의 질 상승, 계몽주의와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둔 인권 의식의 상승, 정보 통신 기술과 교통수단의 발달 등을 통해 민주주의가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자리잡았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그러질 못했으며 영역이 넓어지고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진 로마 입장에서 민주정이든 과두정이든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한 사람이 모든 정권을 위임받아 일을 처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빠르다. 전제정에는 무능한 한 사람에 의해 나라가 기우는 형세를 만들 수 있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마저도 민주정 혹은 과두정에서의 지지부진한 일처리와 다수라는 명목하에 개혁 의지를 없애버리는 것보단 낫다. 전자는 유능한 한 사람이 나오면 나라가 개혁될 수 있지만 후자는 그 다수가 전부 바뀌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바라본 것이지만 카이사르는 유능했고, 불안한 정세를 바로잡고 다수의 의견을 수용할 능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