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 전 수원 삼성 감독이 21일 환갑을 맞이한다. 1944년 음력 9월8일 경상남도 통영에서 태어나 두룡초등학교 시절 축구를 접한 후 50년의 축구인생 을 보낸 이순(耳順)의 백발 노신사는 60세 생일을 맞아 ‘애제자’ 고종수를 떠올렸다.
김감독은 최근 수원에서 임의 탈퇴된 고종수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저 열심히 훈련해서 다시 필드에 서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사실 김감독은 고종수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대신 수원의 한 팬에게 “축구선수는 그라운드에 있을 때 당당해질 수 있다. 재기에 성공한 후 기쁘게 전화하자”는 말을 고종수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앙팡테리블’ ‘대학 4학년생’ ‘애늙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고종수는 천재적인 축구감각과 타고난 왼발 킥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게으름과 절제되지 않은 생활태도, 끊이지 않는 부상 등으로 빛을 발하지도 못한 채 사그라들고 있다.
김감독은 기자가 60세 생일 축하 인사를 전하자 자신의 환갑 얘기보다는 보인정보산업고에서 개인훈련에 돌입했다는 고종수의 소식을 먼저 물었다.
김감독은 “종수는 이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인내심을 갖고 내년 시즌에 대비해 재활에 힘써달라”며 “고종수가 다시 한번 그라운드에서 진가를 펼쳐 보이는 게 가장 뜻깊은 환갑 선물이다”고 말했다.
95년 첫만남. 기다림의 철학으로 최고 스타로 견인
김감독이 고종수를 처음 본 것은 수원 삼성 창단을 앞뒀던 1995년. 당시 광주 금호고 재학중이던 고종수의 플레이를 보고 “바로 이 놈이다”며 쾌재를 불렀다. 당시 고종수는 초고교급스타로 랭킹 1위의 유망주였다.
하지만 고종수는 특출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16세, 17세, 19세 청소년대표팀에서 감독들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던 천둥 벌거숭이로 악명이 높았다.
김감독은 고종수를 수원에 입단시킨 후 그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충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삼국지 등 책을 사다주며 인성교육을 직접 맡았고 톡톡 튀는 생활에도 은근한 웃음으로 지켜봐줬다. 김감독이 고종수를 따뜻한 품에 안는 어머니 역할이었다면 악역은 당시 최강희 코치의 몫이었다.
밤새 고종수의 숙소를 지켰지만 어느샌가 숙소를 빠져나가 술자리에 합류하는 고종수는 정말 골치거리였다. 한번은 새벽녘에 경찰서로부터 전화를 받고 나가니 고종수가 술자리에서 시비가 붙어 붙잡혀 와있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최코치는 고종수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김감독에게는 보고하지 않고 고종수를 챙겼다.
수원의 창단멤버인 고종수는 1998년 정규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수원의 우승가도를 이끌기 시작했다. 지난 1999년 K리그 부산 대우(현 부산 아이콘스)와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 끝난 후 당시 시드니올림픽대표로 중국에 머물던 고종수가 경기 결과가 궁금해 전화를 하자 김감독은 “이 놈이 이제 사람이 돼간다”며 승리보다 더욱 기뻐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로골절, 만성적인 무릎 부상 등 고종수의 방황은 계속됐다. 부상 때마다 고종수는 술을 찾았고 김감독의 잔소리는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종수는 만날 때마다 긴 인생강의를 펼치는 김감독을 은근슬쩍 피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반쪽짜리 선수로 살테냐
따뜻하게 고종수를 감싸주던 김감독이 어느 때부턴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기자들을 만날 때면 공공연하게 고종수에게 경고메시지를 보냈다.
이때부터 각종 매체에서는 ‘김호 감독, 고종수에게 쓴소리’ ‘김호 감독, 고종수 옐로카드’ 등의 기사들이 속출했다.
김감독의 불만은 고질적인 무릎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몸관리가 뒷받침돼야 하는데도 여전히 불성실하게 생활하는 고종수의 생활태도 때문이었다.
주변에서는 김감독과 고종수의 사이가 벌어졌다는 우려가 흘러나왔다.
특히 지난해 김감독이 수원의 체질개선을 이유로 고종수를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로 떠나보내자 “김감독마저도 고종수를 포기했다”는 얘기도 속속 들려왔다. 하지만 서로간의 믿음은 변치 않았다.
고종수가 지난해 9월 교토에서 퇴출된 후 가장 먼저 찾았던 사람이 김감독이었던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당시 김감독은 “수원으로 복귀해서 몸을 만든 뒤 다시 큰 무대에 도전해보라”고 조언했다.
지난해 11월15일. 9년간 몸담던 수원을 떠나는 대구와의 고별전 전날 밤 김감독은 수원의 서포터스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이 자리에서 한 서포터스가 고종수에 대해 질문하자 김감독의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졌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서포터스들은 무척 당황했고 김감독은 “아들 같은 놈인데…”라며 9년간 미운정 고운정을 쌓아온 고종수의 방황을 안타까워했다.
고종수의 부활을 바라며
“요즘 축구가 어찌 재능만으로 되나. 펠레나 마라도나 시대에는 개인능력으로 충분히 승리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개인보다는 조직이 강조되고 있어. 종수도 최고의 선수는 조직과 팀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돼. 그리고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주변 생활을 무 자르듯이 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
김감독이 고종수의 추락을 안타까워하며 늘어놓은 넋두리다. 김감독은 “모두들 끝이라고 얘기하지만 아직 고종수의 진가는 발휘되지도 않았다. 다시 재기하기를 빈다”며 고종수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을 보였다.
아버지와 아들처럼 수원을 상징하는 두 개의 푸른날개로 13개 우승컵을 거머쥐었던 김호와 고종수. 기다림의 미학으로 언제나 고종수를 지켜봐준 김감독의 환갑을 맞아 고종수가 다시금 부활의 날개를 펼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첫댓글 리니지는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