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왜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 (Jacques-Louis David 작. 프랑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기원전 399년 늦은 봄날,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아고라(광장) 한쪽에 시민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 70세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피고인으로 한 재판이 열렸는데, 혐의 사실은 '아테네의 신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을 숭배하면서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이었다. 당시 아테네 에는 검사, 판사가 없었고, 누구나 고발장을 내면 재판이 열리고, 추첨으로 뽑힌 시민들이 재판관이 되어 판결을 할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재판이 개인적인 복수와 정적 제거 수단으로 악용되기 일쑤였다. 소크라테스의 재판관은 500명이나 되었고, 하루 동안 쌍방의 변론을 듣고 그날로 판결을 선고해야 했다. 고발 사실 자체가 막연하고 증거가 없어서 무죄나 가벼운 벌을 예상하였는데 결과는 뜻밖에도 사형이었다! 그의 제자인 플라톤이 현장에 있어 변론을 상세히 기록한 책(《소크라테스 의 변론》)을 썼고, 후세 사람들은 이를 읽으면서 수많은 논쟁을 벌여 왔다. 이런 엉터리 판결에 그가 아무 불만도 제기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 들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는 얼마든지 다른 나라로 망명할 수 있었는데도(수십 년 후 같은 상황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망명을 택했다) 왜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그 답은 당시 아테네의 상황과 그의 신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아테네에서 특이한 사람이었다. 솜씨 좋은 석공이었고 전쟁에 세 번 이나 나가 용맹을 떨친 시민이었는데 40세 무렵부터 거리를 다니 면서 사람들을 붙잡고 대화하기 시작했다. 올바름, 선악과 같은 근본적 문제를 제시하고 논쟁을 벌였다. 못생긴 배불뚝이 남자가 추레한 옷을 걸치고 맨발로 다니면서 사람들을 흔들어 놓았다. 순수한 젊은이들이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감화를 받아 제자가 되었고 사회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개는 그를 무례하게 여겼고, 대화에서 말문이 막힌 엘리트들은 모욕감에 앙심을 품었다. 당시 아테네는 붕괴 직전 상태에 놓였다. 전염병으로 인구 4분의 1이 죽었고, 민주정치는 무책임한 정치가들의 선동으로 무너졌으며,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독재 정권은 민주주의자 1,500명을 살해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 눈에 거슬리는 시비꾼은 불만 해소의 희생양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도 그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재판정에 섰다. 사실을 다투는 데에 필요한 증인 신청도 하지 않았다. 평상시와 똑같은 말투로 조목조목 따지는 변론만 하였다. 280대 220으로 유죄 평결이 내려진 점을 보아도 그가 조금만 애썼다면 충분히 무죄를 받았을 것이다. 유죄 평결에 이어 사형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변론 태도를 전혀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아테네에 좋은 일을 하였으므로 '형벌이 아니라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말까지 하였다. 이런 말이 반감을 사서 결국 재판관 중 360명이 사형을 선택하였다. 그는 사형 집행을 기다리면서 한 달간 감옥에서 지냈는데 믿기 어려울 만큼 평안했고 심지어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죽음을 몇 시간 앞둔 그의 모습을 기록한 글 (《파이돈》)은 고전 문학상 가장 위대한 글로 꼽힌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신성한 힘인 신과 영혼이 존재하며, 이를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선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를 믿기에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다면서 오히려 눈물 흘리는 제자들을 위로하였다. 제자들이 망명하라고 요청하였으나 자신이 재판에 응한 이상, 판결이 아무리 불리하더라도 따르기로 약속한 것이라면서 이를 거부하였다. 불의한 행동은 어떤 이유로라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혼탁한 그리스 사회에 도덕과 양심의 절대성을 최초로 명확히 하였을 뿐 아니라, 죽음 앞에서 진리를 따르는 실존적 삶을 생생하게 보여 주었다. 플라톤이 방대한 철학을 저술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스승의 언행 일치적 삶을 목격한 데 있을 것이다. 진짜 용기를 직접 보는 것처럼 결정적인 체험이 어디 있을까. 그가 보여준 정신의 위대함이 플라톤과 바울 등을 거치면서 서양 문명의 초석이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소크라테스가 왜 죽어야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겠다. 그는 재판에서 사형이 확정되자 그 자리에서 일어나 재판관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이제 떠날 때가 되었군요. 나는 죽기 위해서,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그러나 우리 중에 어느 쪽이 더 좋은 길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좁쌀같이 왜소한 정신과 아름드리나무처럼 큰 정신이 있는 법이다.
그의 죽음은 우리의 큰 정신을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고, 우리는 그 덕에 오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얻은 것이리라.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년). 그리스 철학자 윤재윤 | 변호사
|
첫댓글 좋은글에 머물다 갑니다 감사 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왜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오늘도
귀한 글로
감동방을 채워주신 망실봉님
고맙습니다
감사히 즐 감 합니다
수고 많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