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tr4Snut3ISE?si=3opyGd0uGYvCH207
-식민지가 된 여러나라들 가운데 가장 치열하게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했던 나라, 한국
-1894년 동학농민운동->1895년~1910년 항일의병->1910년 이후 해외 독립군 활동
-독립운동기지 설립(만주, 간도, 연해주 등)
-1910년, 만주, 간도(만주의 삼원보, 간도의 용정 등) 에 넘어간 조선인의 숫자는 약 20만명에 달해, 그 이후에도 매년 2만명이 넘어감.
-1925년, 연해주에 약 25만명이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블라디보스토크 개척리, 신한촌 등)
-이익주 교수님이 생각하기엔 한국인들이 끈질기게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국과 식민국 의 피부색이 같고, 과거에 그 제국 일본이 어떤 나라인지 알고 있던 경우도 우리 밖에 없어. 삼국시대부터 알던 나라, 일본. 그 '관계 역전'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잔인하고 가혹했던 일본의 식민지배로 실제로 피해를 겪었고 민족적 자존감의 상처를 입어.
-독립군 양성의 대표 만주 삼원보로 건너갔던 우당 이회영 선생의 6형제, 안동의 이상룡 선생님 등
-우당 이회영 선생 형제의 경우, 8,820,939 m2 의 토지를 다 처분하고 삼원보로 이주하여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설립에 다 씀 (둘째 이석영의 경우 상하이에서 굶어 죽음)
-신흥무관학교에서 독립군 2100명 배출, 1920년 폐교, 여기서 배출된 장교들이 독립군에 합류
-사관연성소가 1920년, 길림성의 왕청현에 설립: 교장은 김좌진, 교관 이범석등, 사관 298명 배출 했으며 졸업생 200명이 청산리 전투에 참여
-홍범도 장군에 대한 자료 중 '홍범도일지' 가 남아 있어.
-홍범도 장군이 소비에트의 카자흐스탄에 거주할 당시 '홍범도' 라는 희곡을 쓴 고려인 작가 '태장춘'이 구술로 홍범도 장군과 인터뷰 한 것을 기록한 것으로 원본은 없고 필사본 4종이 존재.
첫댓글 유투브 '안될과학'에서도 일제식민지 시절, 조선의 과학하는 모던 보이들의 에피소드(아이슈타인을 조선에 초청하는 일, 상대성 이론을 소개하는 일, 과학의 중요성 강조 등)를 소개해주고 있었습니다. 귀를 더럽히는 뉴라이트같은 망발들과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건, 국방부 후보자의 과거발언들 ,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등 같은 이슈들이 오히려 요즘 독립운동사 들을 다루는 컨텐츠를 더욱 풍성해지게 하고 더욱 관심을 가지게 해주는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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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배들에게 떳떳한 사람이 되고자 많은 사람이 노력하는데, 그렇지 않은 놈들도 그만큼 많으니... 참
독립전쟁을 격하하면서 목숨을 받치는 행위를 폄하하고 국뽕아냐? 시전하며 쿨게들, 식민사관에 오염된 놈들 요즘 많이 기어나오더군요.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그런말을 하고 있는건지. 봉오동이나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치르지 않았다면 레닌이 뭐하러 모스크바 극동방향의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의병대장을 만나겠습니까? 이봉창, 윤봉길 의사가 의거를 일으켜 일본수뇌부를 타격하니 중화민국의 장제스가 임정을 적극지원하고 카이로에서 연합국에게 조선의 독립을 의제로 올린거 아니겠습니까?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그건 우리가 우리를 아전인수격으로 보는 관점이라서 그렇지 저는 그다지 열심히 한 비율이 낮다고 보는 입장이라 생각이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