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중화인민공화국은 만주방면으로의 공세를 시작하였습니다.
관동군의 저항이 있었으나 차질없이 제파하여 몽강연합자치정부와 만주국을 전열에서 이탈시키고 만주전역을 사실상 장악하였습니다.
이에 고무된 마오쩌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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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입니다. 예상을 깨고 백두대간이 산악이 아니라 언덕지형으로 판정되어 있습니다.
첩보를 종합해본 결과 일제는 그동안 동아시아 대륙진출을 목적으로 한반도의 산업시설과 사회기반시설을 매우 충실히 완비해놓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일본에게 사할린 지역의 할양을 추가로 요구하였습니다.
만주방면에 새로 편성된 신징 군구사령관 주더는 만주 전역에 고립된채로 잔존한 관동군 잔당들을 소탕하였습니다.
악명높은 일본 해병사단도 조직력을 잃고 패주중입니다.
한편 나치독일은 서부전선에서 완벽하게 연합군의 상륙을 몰아낸 후, 소련군을 다시 동쪽으로 밀어내고 있었습니다.
잠시 전황이 소강상태에 있던 사이 일본의 맨파워가 빠르게 회복되었습니다.
아무튼 간에 이젠 요구할 영토도 없어서 괴뢰국이 되라는 모욕까지 시전하였습니다.
만주공세의 성공에 고무된 마오쩌둥은 국무회의서 "지체없이 한반도 전역으로 진공하라"고 교시하였습니다.
지난 인도차이나 공세와 달리 이번에는 그 어떤 장성들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후 군과 당내에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질 기회라 여긴 장성들간에 신경전이 벌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상황을 정리한 이는 신징군구 사령관 주더였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영광의 길을 차지한 자는 주더 휘하의 만주집단군 사령관 팽덕회였습니다.
기갑, 차량화, 산악사단으로 구성된 충격군이 압록강을 도하하였습니다.
아래의 우측 화살표를 따라 6개 기갑사단이 남한으로부터 북상하는 조선 주둔 일본군을 차단합니다.
그동안 산악사단들이 위쪽의 화살표를 따라 북진하며 적의 병력들을 분단시킬 것입니다.
일본의 1개 해병사단이 이미 압록강을 넘은 충격군을 저지하려 시도하였지만, 중공군은 빠르게 제파하였습니다.
기갑사단들을 계획대로 기동시키던 중에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의 방비가 소홀한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마치 위력정찰하듯이 1개 기갑사단으로 평양을 공격하며 일본군의 반응을 지켜보았습니다.
예정대로 기갑사단들의 기동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산악사단들도 예정대로 진격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목할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1개 기갑사단이 평양에 대한 공격에 성공한 것입니다.
평양공격에 대한 일본군의 반응이 없는것을 보니 북한과 만주에 걸쳐있는 관동군 잔여세력들이 일본군의 실질적인 주전력으로 판단됩니다.
그래서 계획을 바꾸어 6개 기갑사단으로 한반도 전체에 대한 공세를 감행하였습니다.
한반도의 파란 점선 아래로는 일부 저항세력이 존재하였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습니다.
생각보다 일본군 잔여세력이 빠르게 붕괴되었습니다.
서울과 부산에 주둔병들이 있지만 수많은 전투를 겪어온 최정예 기갑사단들에겐 한줌 모래에 불과합니다.
서울의 주둔병들이 절망적으로 기갑사단에 반격을 가해보았지만 서울이 '해방'되는 시간을 줄였을 뿐입니다.
아직 일본이 항복할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한편 이 상황에서도 만주-몽골 접경지대의 산속에서 버티던 관동군 잔여세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보급부족에 시달리다 전멸하였습니다.
조선 주둔 일본군의 주요 지휘부들은 목포까지 밀려나 절망적으로 저항하였습니다.
하지만 팽덕회는 중화인민공화국이 파시스트 제국에게 베풀 아량따윈 없다고 분명하게 전달했습니다.
목포를 마지막으로 한반도를 모두 '해방'한 6개 기갑사단은 서울에서 열병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최신예 전차의 천둥같은 엔진소리와 높게 곧추선 포신들이 서울시내를 가득 메웠습니다.
이제 조선반도의 영토와 세금과 인명은 모두 중화인민공화국에게 귀속되었습니다.
'조선인들은 전근대 왕조와 식민제국의 착취에서 벗어나 인민을 위하는 당과 지도자의 영도 아래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 중국 공산당 선전부가 서울시내에 뿌린 삐라의 내용이었습니다.
조선반도에 잔존한 마지막 일본군들은 너무 산세가 험하여 기동이 불가한 양지를 등에 업고 청진에서 저항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잠깐이나마 전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서울에서의 열병식을 마친 6개 기갑사단이 빠르게 투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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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중화인민공화국은 대륙에서 일본군을 격퇴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모든게 최초로 공세를 시작한지 1년 8개월이 걸렸습니다.
1947. 11. - 1949. 06.
첫댓글 만주에서 바로싸울게아니라 압록강,두만강라인따라 보급차단하거나 한반도부터 정리하면 관동군을 말려죽일수있었을거같은데요
그 방식은 생각을 못했었네요. 다만 제가 ZEALOT님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한게 맞다면, 두가지 문제가 있어 불가능 했을겁니다.
첫째로 관동군 본대를 피해 한반도로 바로 상륙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륙정과 호위함대를 구성할 구축함 등이 전혀 연구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함정연구에 배분할 리더쉽이 부족했으니까요. 함정연구가 되었어도 최소한 필요한 분량의 상륙정을 새로 건조하는데 대략 2년정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또한 설사 관동군의 반격에 대처하는데 성공하여 한반도를 전역을 점거하더라도 요동반도의 다롄항과 후루다오항이 있어 관동군의 보급을 차단하는데엔 실패했을 것입니다.
둘째로 만주전역의 관동군은 무시하고 육로를 통해 다롄, 후루다오를 거쳐 한반도까지 바로 진입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방식의 경우 베이핑으로부터 대략 1000km에 가까운 육상회랑Corridor가 형성될것이고 아군의 보급은 이 회랑에 의존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난편의 하얼빈과 신징 공략과정을 보셨다면 알 수 있듯이 회랑은 적의 반격에 취약함을 저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전선에 최초 충격을 가하여 적 종심 깊숙히 진입한 충격군들이 고립되어 보급이 차단된채 역포위당할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에, 저는 만주국부터 빠르게 제압하여 전선의 안정을 도모할 것입니다. 지난 게시글처럼요.
@cjs5x5 2안을 말한거였는데 종심작전을 벌이기엔 충격군의 후속제대가 부족한가보네요. 다시보니 지형도 기동부대가 지형패널티가 심해보이고...
@ZEALOT 네 맞습니다. 보병사단이 두배는 필요했을겁니다.